11월 18일 유엔 총회 제3위원회가 북한 인권 결의안을 통과시킨 이후, 그 불똥이 남북관계에도 튀고 있다. 남북한의 비방전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고, 국회에서는 북한인권법 제정을 둘러싼 갈등도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 이명박 정부의 '잃어버린 5년'이 하염없이 연장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들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며 단절과 고립의 길을 고집하면서 지금 북한 주민들은 기아와 비극적인 인권 상황에 직면해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드레스덴 연설 이후 가장 강도 높은 대북 비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자 북한은 23일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박 대통령의 발언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이 땅에 침략의 포성이 울부짖고 핵전쟁이 터지는 경우 과연 틀고 앉아있는 청와대가 안전하리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위협했다.
이 와중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오늘(24일) 전체회의를 열어 여야가 개별 발의한 북한인권법안을 일괄 상정키로 해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현재 국회 일정은 이렇다. 24일 외통위 심의에 착수해 25일 대체토론을 거쳐 27일에는 법안심사 소위에 회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숨가뿐 일정은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해서 나온 것이다. 만약 새누리당의 공언처럼 북한인권법이 통과되면, 북한의 반발 수위가 높아져 남북관계는 더더욱 회복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릴 우려가 크다.
내년 초, 한반도 위기는 또 오는가?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 "북남관계 개선"과 "경제발전에 필요한 평화로운 환경 조성"을 핵심 기조로 내세웠었다. 그러나 남북, 북미, 북일 관계 개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고, 저지하고자 했던 북한 지도부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조항이 유엔 결의안에 포함되었다. 이로 인해 북한 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향후 기조가 강경한 방향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성급한 전망일 수 있지만, 내년 초에 또다시 심각한 위기 상황이 조성될 위험도 크다. 우선 2~4월에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인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한미 양국은 10월 연례안보회의(SCM)에서 군사훈련을 강화하기로 합의했고, 미국 군부는 국방예산 확보를 위해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실시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3월에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북한 인권문제 논의가 예정되어 있다. 북한이 이번 결의안을 전면 배격한다고 선언한 만큼, 내년 유엔에서의 논의 수준도 높아질 공산이 크다.
북한이 한미군사훈련과 대북 인권 공세를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두 축으로 간주해온 만큼, 북한의 반발 수위도 커질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와 4차 핵실험에 나설 때 조성된다. 한미일은 유엔 안보리 제재 수위를 높이는 한편, 3자 군사동맹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려고 할 것이다. 특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사드(THAAD) 한국 내 배치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한반도 정세는 물론이고, 동북아 정세 전반에도 심각한 파장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이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발언 속에는 북한이 또 다시 핵실험을 강행하면 대북 압박과 제재를 크게 높여 북한 정권의 붕괴까지 시도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 중국 및 러시아를 의식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자제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북방한계선(NLL)에서의 긴장 조성, 중·단거리 미사일 및 신형 방사포 시험 발사, 대북 삐라 살포시 요격 사격 등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정부‧여당 내년에도 실기할 것인가?
내년은 분단 70년 이자 박근혜 정부가 임기 후반기에 접어드는 때이다. 그런데 내년마저도 갈등과 대결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다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의 기회는 더더욱 기약하기 힘들어진다. '코리아 리스크'가 커지면서 경제살리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군비 부담이 늘어나 복지 재원 확보도 힘들어지며, 공안 분위기 조성으로 대한민국 인권과 민주주의도 후퇴를 거듭할 위험이 커진다.
이에 따라 중요한 것은 예방과 위기관리에 힘쓰면서 전환을 도모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길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대북 삐라 살포는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속히 삐라 살포에 대한 규제안은 만들어 남북 고위급 접촉의 장애물을 없애야 한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국회 역시 실효는 없고 남남갈등과 남북갈등만 키울 소지가 큰 '북한인권법'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필자가 앞선 글에서 주장한 것처럼(☞바로가기 : 북한 인권결의안 통과, 핵실험으로 가나?) '남북인권협력법'은 그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어차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북한 정부와의 인권 대화 및 교류는 필수적이다. 국회가 대결이 아닌 협력의 관점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풀어가려고 노력한다면, 그 실효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남남갈등 및 남북갈등 해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공론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북한 역시 적대적인 의도가 없는 나라와는 인권 대화와 협력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제 이러한 입장을 검증해야 할 때인 것이다.
'악마화'가 진짜 악마를 만들 수 있다!
북핵과 인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지 20년 정도 흘렀다. 이 사이에 인권 상황은 별로 개선된 것이 없는 반면에 북한의 핵 능력을 크게 강화됐다. 대북정책의 총체적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성적표이다. 정책의 실패를 북한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높여 무마하려는 게 유행이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성찰적인 관점에서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는 데 있다.
기실 북한 악마화의 쌍두마차격인 북핵 문제와 인권 문제에 접근하는 저변에는 북한붕괴론과 흡수통일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 한국의 김영삼, 이명박 정부가 흡수통일을 노골적으로 추진했고, 북핵과 북한인권은 이를 위한 좋은 구실이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악의 축' 발언과 '정권 교체' 추구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나왔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역시 큰 차이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통일된 한반도는 핵무기 없는 세계의 출발점이자, 인권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한 것 역시 이러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혹자는 북한 정권을 ICC 회부하는 내용이 포함된 유엔 결의안 채택이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강행하면 북한이 감당할 수 없는 제재의 모자를 씌울 수 있다고도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을 악마화하고 북한 붕괴론과 흡수통일론의 망상에 빠져드는 것이야말로 북한 정권을 진짜 악마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인권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핵과 미사일 능력은 강해지며,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피해의식이 강해지는 북한이야말로 제일 우려되는 대상이다.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이 이런 괴물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되물어봐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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