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1인 1닭'을 외치는 '배달'의 민족이었나? 우리는 언제부터 스마트폰 앱으로 피자를 주문해서 먹어야 행복한 사람들이었나? 프랜차이즈 외식업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가운데, 그 때문에 더욱 외식업의 마케팅 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주문 앱과 관련 서비스가 광고판을 주름잡고 있다. 이러다 보니 그 부작용 또는 이면의 문제들도 알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으로 실시간 주문을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앱 회사가 단말기에 뜬 주문 내용을 확인하고 해당 음식점에 전화로 재주문을 하는, 즉 무늬만 최첨단인 원시적인 방법이라는 문제가 있다. 개별 음식점까지 온라인망 일원화가 어려운 탓에 오히려 직접 주문보다 시간이 더 걸리거나 재주문시 착오로 음식과 주문 장소가 바뀌기도 하는 데에 따른 불만이 보도된 바 있었다.
음식점 업주들도 고충도 토로한다. 주문을 뺏기지 않으려면 (주문 앱에서 동네 단골은 의미가 없어진다) 앱 서비스 망에 가입할 수밖에 없는데, 앱을 이용해 주문할 때마다 점주에게 15%의 수수료가 부과되다 보니 몇 푼 안 되는 마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벌충하려다 보면 음식의 양이나 질이 저하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앱 서비스 업체도 광고비와 인건비를 확보해야 하니 수수료를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사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배달 대행업체에 의한 배달 노동의 증가다. 각 음식점이 배달원을 따로 두기 어려운 사정 때문에 여러 음식점을 오가며 다양한 메뉴를 배달하면서 시급은 대행업체를 통해 받는 오토바이 배달원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14일 방영된 문화방송(MBC) <시사매거진 2580>의 "오늘도 배달시키셨습니까? 2500원에 목숨 건 아이들" 편은 이러한 신종 노동의 실태를 잘 보여주었다.
우편 배달 노동자나 퀵 서비스 노동자의 일도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만, 외식업 배달은 다루는 상품이 '음식'이라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 뜨거운 음식이 식거나 찬 음식이 뜨거워지면 먹기 어려워지고 때문에 배달은 시간과의 전쟁이 된다. 2011년에 피자 배달원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30분 배달 보증제'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짬뽕은 불기 전에 고객의 집에 당도해야 하고 통닭이 식어버리면 고객은 불평을 하거나 요금 지불을 거부할지 모른다. 이러한 부담은 대개는 10대인 배달 노동자들에게 온전히 전가된다.
배달 대행업체에 소속되어 배달 건당으로 수익을 나눠 갖는 구조이다 보니 대행업체는 주문 콜을 연결해주면 끝이고 음식점은 음식을 내주면 끝이다. 때문에 배달이 취소되면 음식 값을 자기가 떠안아야 하고 사고가 나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속에서 "수수료 2500원에 목숨을 걸고 달리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위험천만한 질주"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이 배달 노동자들은 질주를 즐겨서도 아니고 성질이 급해서도 아님에도, 행인들 사이를 위험스레 지나치고 안전지대 위로 달리다가 유턴하는 차량과 충돌한다. 차량 사이의 좁은 틈을 빠져나가려고 백미러를 스스로 떼어내고 더운 날씨에 헬멧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치킨을 주문한 고객에게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신호를 다 지켰을 때가 10분, 교통 법규를 어기고 갔을 때가 4분이었다. 주문받은 치킨이 튀겨지는 동안 15분을 기다렸으니 교통 법규를 다 지켰다면 고객과 암묵적으로 합의된 배달 시간인 30분을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는 게 다반사임에도 그러면서 손님에게도 욕을 먹고, 배달업체 사장에게도 욕을 먹고, 음식점 주인에게도 욕을 먹는 게 이 배달 노동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법적 지위는 어디에 하소연하기 어려운 '개인 사업자'다. 즉 노동자가 아닌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1년에 수도권 배달 음식점업의 사업주와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배달 노동자는 72.6%가 10대와 20대였고 92.6%가 고졸 이하 학력이었다. 50.9%가 친구나 지인, 친인척 등을 통해서 취업하고, 48.3%는 생활정보지나 인터넷 광고 등을 통했다.
근속 기간은 3년 미만이 72.0%였고, 하루 평균 9시간, 일주일 평균 6일 가까이 일하면서도 22.5%는 휴무일이 하루도 없었다. 56%는 정해진 휴게 시간이 없어서 알아서 쉰다고 했고, 아예 휴게 시간이 없다고 답한 경우도 38%였다. 지난 3년간 배달 노동자가 오토바이 배달 중 사고가 난 경험이 있는 사업장이 35.2%였고, 상대적으로 치킨과 피자 배달 음식점의 사고 비율이 높았다.
물론 배달 노동자들이 이런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은 그나마 최저 임금보다 약간이라도 높은 시급을 주는 그리고 자격을 따지지 않는 일자리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이 노동자에게 바람직할 리가 없음은 불문가지다. 노동자들에게만 해로운 게 아니다. 질주하는 오토바이는 직접적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공포스러운 소음으로 거리의 평화를 해치고 매연과 분진을 유발한다.
음식 배달에 수반하는 각종 일회용 포장재와 섞여 버려지는 잔반들도 당연히 늘어난다. 음식 배달 서비스가 도처에 있기 때문에 테이블을 갖추어 놓은 갈 만한 식당은 더욱 줄어들고, 때문에 더 배달 서비스에 의존하게 된다. 그렇게 시나브로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 되어갔고 배달의 전사들에 대한 착취까지 묵인 방조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두고 볼 일이 아니다. 이제까지 노동 단체나 청소년 노동 인권 단체에서 나온 대안은 배달 사업장의 산재보험 의무성 강화와 노동자의 행정 절차 접근성 해결, 안전 교육 강화 등 사업주의 책임성 제고, 노동부의 근로감독 개선, 청소년 노동의 특수 고용 형태 제한과 노동자성 인정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들은 대개 청소년과 청년 배달 노동의 현 실태는 인정한 가운데 안전사고 예방이나 사후 구제와 보상 보완의 성격이 강하다. 이것으로 충분할까?
아무리 사전 사후 조치를 더한다 하더라도 빨리, 많이 배달해야 그 나마의 이윤과 소득이 얻어지는 것이 음식점 배달업의 본질이라면 배달 노동의 노동자 착취 구조는 물론 자영업자 스스로의 제살 깎아먹기 구조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비정상적으로 커진 음식점 배달 산업과 배달 노동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청년 일자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이러한 배달 노동이 과연 권할 만한, 지속 가능한 일자리인지를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이들을 이런 일자리로 몰아 두면서 청년 실업률 통계만 낮은 수치를 기록하면 되는 것인지를 따져야 하지 않을까?
법과 행정력은 이럴 때 나서야 하고 규제는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배달 노동이 결부됨에도 메뉴 음식 가격이 똑같은 불합리부터 바꾸어 나갈 수는 없을까? 배달 메뉴가 다만 몇 백 원이라도 더 비싸다면 그리고 그 차액분이 배달 노동자에게 돌아가도록 강제할 수 있다면 당장은 배달 노동자들의 질주 유인을 줄이게 될 것이고 길게 보아 소비자의 배달 서비스 이용 유인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배달 대행업 자체를 규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단은 유통산업법 보완이나 지방자치단체 조례 제정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손해를 보는 배달 앱 서비스 회사와 배달 음식점들이 생길 것이고 반발이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늘어갈 열악한 배달 노동과 사고 앞에서 다 사후약방문이다.
당장 뾰족한 수가 없는 나는 일단 배달 앱을 멀리하고, 이사하는 날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장면도 중국집에 가서 먹을 생각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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