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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노태우에게서 배워라

[정욱식 칼럼] 군사훈련의 딜레마, 어떻게 풀 것인가?

“군대가 있으면 훈련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이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할 때마다 한국과 미국의 당국자들이 습관처럼 하는 말이다. 군대가 있는 모든 나라가 어떤 형태로든 군사훈련을 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요구는 생트집 잡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더구나 한반도는 아직 정전 상태에 있고 군사적으로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하여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군사훈련은 상식이자 정상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우리가 상식과 정상이라고 여기는 현상을 극복하지 않는 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긴 불가능하다. 이 점은 보수적인 지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두 지도자 모두 강력한 군사력과 억제에 의존하는 ‘불안한 평화’에서 상호 간의 신뢰구축을 통한 ‘공고한 평화’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수사는 구체적인 정책적 실천으로 뒷받침되지 못했다.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스커드 미사일 ⓒ연합뉴스

노태우 대통령은?

언행일치의 덕목을 실천한 보수적 지도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세계적인 탈냉전의 기류를 포착한 노태우 정부는 북방외교와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했다. 그러나 당시 세계 최대 규모로 불렸던 한미합동군사훈련인 ‘팀 스피릿’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자 노태우 정부는 조지 H.W. 부시 행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팀 스피릿’을 중단키로 하고, 이를 대북 협상의 지렛대로 삼았다.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뿐만 아니라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협정 가입을 상응 조치로 요구한 것이다. 북한도 이에 호응했다. 이로써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탈냉전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딛는 듯했다.

그러나 92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후보 진영과 노태우 정부 내 대북강경파가 팀 스피릿 재개를 추진했다. 북풍을 일으키고자 하는 성격이 짙었다. 결국 대선을 코앞에 두고 이 훈련 재개 방침이 발표되고 북한이 강력 반발하면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이어 한미 양국은 93년 들어 팀 스피릿 훈련을 강행했고 북한은 이에 반발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버렸다. 남한 냉전 세력의 ‘꼬리로 몸통 흔들기’ 즉,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남북관계를 악용한 정략과 북한의 과잉 대응이 맞물리면서 한반도는 탈냉전이 아니라 냉전과 열전의 위험을 오가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북침연습’과 ‘도발’이라는 양극단을 넘어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지난 수십 년간 한반도 정세는 한미합동군사훈련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 따라 크게 출렁거려왔다. 다행히 올해 들어서는 이러한 패턴에 변화가 생기는 듯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입장 변화는 흥미롭다. 처음에는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했고, 하려면 멀리 가서 하라고 했으며, 그래도 할 거면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겹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엔 ‘세게는 하지 말아달라’고 물러섰다. 전략 폭격기와 핵추진 항공모함 및 핵잠수함 등 전략 무기를 동원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한미동맹 발(發) 군사훈련의 파고를 넘자 이번엔 북한발 군사훈련이 악재로 등장하고 있다. 북한이 2월 27일에 스커드 탄도미사일 4발을 시험 발사한 데 이어, 3월 3일에도 2발의 미사일을 추가 발사한 것이다. 이는 한미 양국의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에 대한 대응 훈련의 성격이 짙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남북관계의 첫 단추를 어렵게 끼우고 북한 스스로 군사적 긴장완화를 제안하면서 미사일 훈련을 강행한 것은 분명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는 한반도 정세가 ‘깨지기 쉬운 유리알’이라는 것을 거듭 보여준다. 한미 양국의 군사훈련에 의해서든, 북한의 훈련에 의해서든 해빙 분위기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과잉 대응의 자제이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유감과 비판의 수준을 넘어 ‘도발’, 더 나아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정하고 과잉 대응을 선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또 다시 어렵게 끼워진 첫 단추는 이내 풀어질 공산이 크고, 조심스럽게 빚은 유리알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이 한미 양국은 군사훈련을 하면서 자신의 시험발사를 문제 삼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을 ‘북침 연습’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한미 양국은 납득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남한이 북한의 훈련을 ‘도발’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자신의 훈련은 평화를 위한 ‘방어용’이라고 주장하고 상대방의 훈련은 전쟁을 준비하는 ‘공격용’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일방적 행태를 이제는 개선할 때가 되었다. 최선은 양측 모두 군사훈련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겠지만, 이건 아직까진 이상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군사훈련의 빈도와 수위를 줄여나가면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남북한이 서로를 겨냥해 습관처럼 사용하는 ‘북침 연습’이나 ‘도발’과 같은 표현의 남발을 자제하는 것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제 논에 물 대기’식의 이름 짓기 습관을 고치지 못하면, 신뢰가 싹트고 자라날 수 있는 여지는 갈수록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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