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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불평등 문제, 지방 정부도 할 일 많다

[복지국가SOCIETY] 건강 불평등 해소를 위한 지방 정부의 역할

건강 불평등의 해결은 복지국가로 가는 데 중요한 과제이며, 복지국가의 성공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이기도 하다. 복지국가의 궁극적 지향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차별 없이 적정한 생활수준을 향유하도록 보장함으로써 각자 처한 상황에서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건강 불평등의 문제는 소득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것이므로 중앙 정부의 고용 정책이나 조세 정책을 통해 소득 불평등 문제를 제거해야지, 지방 정부가 할 일은 별로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방 정부의 역할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그렇다면 지방 정부는 어떠한 방식으로 건강 불평등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가? 복지 공동체를 지향하는 지방 정부는 어떤 전략적 접근을 통해 지역의 건강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지방 정부의 지향에 따라 건강 증진 성과도 달라져

지방 정부가 관할하고 있는 지역은 중앙 정부의 정책과 사업이 실제적으로 집행되는 공간이다. 이 과정에서 동일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지방 정부의 지향에 따라 사뭇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걷기 등 신체 활동을 증진하기 위해 중앙 정부에서 각각 1000만 원의 예산을 아무런 조건 없이 두 지방 정부에 일임하는 방식으로 배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한 지방 정부는 1000만 원의 예산으로 할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여 지방 정부 주최로 시장이 참여하는 단 한 번의 걷기 대회를 개최하여 예산을 모두 집행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반면, 다른 지방 정부는 1000만 원의 예산으로 시민들이 생활하는 마을을 중심으로 스스로 참여하는 걷기 운동을 활성화하기로 방향을 잡고, 도시 내 걷기 환경이 열악한 마을을 중심으로 주민 참여 중심의 걷기 동아리를 만들고 지원하는 데 예산을 집행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전자는 대표적인 일회성의 사업인 동시에 지방 정부 편의적 사업이며, 시민을 위한 사업이라기보다는 지방 정부의 치적을 알리기 위한 사업이다. 이에 비해 후자는 지방 정부의 치적보다는 시민들을 위한 사업이며, 전자에 비해 지역 내 건강 격차를 해결하는 데 좀 더 적합한 방식이다.

건강은 보건 의료와 다르다

건강 불평등의 해결을 위한 전략적 접근에서 핵심적인 것은 건강은 보건 의료와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지방 정부의 수장들이나 주요 정책 결정가들은 건강을 보건 의료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며, 정책의 중심을 보건 의료 서비스 제공의 문제 또는 예산의 문제로 귀결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시민들, 심지어 시민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 역시 이러한 사고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

건강을 위해 보건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지만, 보건 의료 서비스가 건강 문제, 특히 건강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건강의 문제는 생태 환경, 인적 네트워크, 주거 환경, 교육, 식품, 고용 상태, 노동 환경, 보행 및 도로 교통 등 보건 의료 서비스 외적 요인들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사실, 건강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추가 예산이 소요되는 새로운 시설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기보다는 기존의 지방 정부 사업을 어떻게 잘 조직화하고 조정할 것인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바람직한 건강 정책 위해 지방 정부의 부처 이기주의 극복해야

▲ 건강 도시는 시민에 대한 보건 의료 서비스의 제공이라는 협소하고 소극적 사업이 아니라, 건강한 도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포괄적이고 적극적 의미의 지방 정부의 노력이다. 사진은 2009년 7월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석면 관련 산재 인정 기준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석면 질환 피해자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처 이기주의이다. 지방 정부가 건강 불평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시민 건강'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부처 간의 벽을 반드시 허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 정부 수장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하며, 시민의 건강을 고려한 도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도로 영향 평가, 환경 영향 평가를 하듯이 공공 정책을 수립할 때 사전적 건강 영향 평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

현재 지방 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업들 중에서 이러한 내용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바로 '건강 도시' 사업이다. 하지만, 현재 상당수의 건강 도시 사업은 건강 도시의 의미가 퇴색한 채 형식적이고 관료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건강 도시는 '건강 형평성'과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두 개의 이론적 지향과 함께 '사회적, 물리적 환경의 개선'과 '지역 사회의 협력을 통한 시민들의 건강 잠재력을 최대화'하는 것을 주요한 접근 전략으로 삼는다.

결국 건강 도시 사업은 시민에게 보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소하고 소극적인 사업이 아니라, 건강한 도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지방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사업이다.

선별주의적 접근은 건강 불평등의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건강 불평등이라 하면 취약 계층부터 떠올리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건강 불평등은 전 인구 집단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지 특정 계층에게만 집중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건강 불평등 정책들이 취약 계층에 대한 정책이나 프로그램에 집중된다.

게다가 취약 계층은 상대적 빈곤 개념보다는 절대적 빈곤 개념에 근거한다. 절대적 빈곤 중에서도 법적, 제도적 빈곤층에 혜택이 집중된다. 인구의 소수에 불과한 이들 선별적 빈곤층을 대상으로 수행하는 사업을 통해 전 인구 집단에 걸쳐 분포한 건강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산과 인력의 부족, 정책적 편의성, 단기적 사업 성과 등의 이유로 보건소를 중심으로 이들 선별적 취약 계층에게 보건 의료 서비스의 강도를 높이는 방식에 의존한다. 복지 공동체를 지향하는 지방 정부는 이러한 방식을 고집해서는 안 되며, 새로운 전략적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실질적 주민 참여와 심의 민주주의

새로운 접근 전략의 핵심은 '실질적 주민 참여' 와 '심의 민주주의의 실현'에 있다. 건강과 보건 의료의 영역에서도 주민들을 서비스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 건강의 주체이자 협력자로 보자는 것이다. 주민 참여와 심의 민주주의의 실현은 타 부문에서는 비교적 낯익은 개념이지만, 건강과 보건 의료 분야에서는 아직까지는 낯설다.

실제 주민 참여와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만을 보더라도 다른 분야에서는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주도적 활동을 강조하면서도, 건강과 보건 의료에서만큼은 외부 자원에 기대거나 더 많은 서비스의 혜택을 받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짙었다. 이는 지금까지의 주류적인 건강과 보건 의료 정책이 주민을 서비스의 대상자로만 대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공동체의 현안과 그 해결 방법을 지역 주민들이 가장 잘 알듯이, 지역 공동체의 건강 문제 역시 그 지역의 주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문제 해결의 주체는 지역 주민이 되어야 하며, 주민들 스스로 지역 공동체의 건강 사업을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정책과 사업들을 구상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특정 취약 계층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국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또는 지역의 인구 집단 전체에 대한 보편적인 건강 사업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 그것이 건강 불평등 해결을 위해 복지 공동체를 지향하는 지방 정부의 차별적인 방식이다.

사람이 희망이며 지속 가능성의 원천

복지 공동체를 지향하는 지방 정부는 돈 또는 외부의 자원에 의존하는 기존의 관행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필요로 한다.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그러한 전략을 수립하는 데 실질적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시민 건강을 위한 사업은 토목 사업과 같이 큰돈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대규모의 예산이 쓰이는 토목 사업들이 시민 건강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를 주위에서 심심찮게 본다.

돈의 힘에 의존하는 정책은 돈을 모을 수 있는 권력의 획득에 집착하게 되며, 따라서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이에 비해 복지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지방 정부는 돈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힘과 이를 극대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사람이 곧 희망이며, 지속 가능성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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