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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선택적' 복지? <한겨레>에 이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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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선택적' 복지? <한겨레>에 이의 있다

[복지국가SOCIETY] 보편적 복지와 기초연금

나는 2013년 10월 15일자 <한겨레신문> 26면의 '사설 속으로'를 읽고 이 칼럼을 쓰기로 작정했다. 이날 '사설 속으로'에서는 <한겨레신문>의 사설 "기초연금 공약 파기, '어물쩍 사과'로 넘길 일인가"와 <중앙일보>의 사설 '박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설명 책임을 다하라'를 비교하여 분석하고 있다. 이 분석 기사는 두 칼럼이 공히 "지난 대선의 결정적인 변수였던 핵심 공약을 수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사안의 심각성에 비추어볼 때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의 글에서 드러난다. 분석 기사에 의하면, 소득 상위 30% 노인을 기초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두 신문은 철학을 달리하고 있는데,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한겨레는 '보편적 복지'에 가깝고, 이를 충분히 국민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일로 간주하는 중앙은 '선택적 복지'를 앞세우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내가 10월 15일자 <한겨레신문> 26면의 '사설 속으로'를 문제 삼는 부분은 '보편적 복지'의 대립적 개념으로 '선택적 복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보편적 복지'의 대립적 개념은 '선택적 복지'가 아니라 '선별적 복지'이다. 나는 복지 정책에서 '선별'과 '선택'의 올바른 사용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둘은 의미가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부터 살펴보자. 보편주의(universalism)와 선별주의(selectivism)를 구분하는 핵심적 기준은 소득 조사(means test)를 실시하여 가난한 일부 사람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는지의 여부이다. 보편주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소득과 사회 서비스를 보장한다는 기본적인 철학을 제도화한 것이므로 소득 조사를 시행하지 않는다. 모든 구성원이 복지 수혜의 대상이고, 여기서 복지는 모든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며, 이런 사회에서는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수준이 높고, "모두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사회연대 의식도 매우 높으므로 사회적 격차가 적고, 창의성과 도전 정신이 높으므로 복지와 경제 성장이 통합적으로 잘 이뤄지게 된다.

▲ 9월 26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백발의 한 어르신이 기초연금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에 선별주의는 가난한 일부 사람들에게만 복지를 제공한다는 원칙하에 엄격하게 소득 조사를 실시한다. 한정된 재원 조건하에서 복지를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계층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논리 때문에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오던 방법이다. 그런데 선별적 복지는 그 한계가 뚜렷하다. 누가 보더라도 지나치게 가난하기 때문에 정부가 최저 생계를 지원해주어야 하는 극빈 계층을 선별하고, 이들에게 최소 복지를 제공하는 일은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선별의 공정성을 상당하게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선별의 대상이 우리나라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보는 것처럼 소득 하위 2.8%의 가장 가난한 국민이 아니라, 대학생 등록금 지원 정책에서 보는 것처럼 소득 하위 30%냐, 50%냐, 또는 70%냐에 따라 혜택의 크기가 크게 달라지는 상황에서는 선별의 공정성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다. 이렇게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음에도, 우리는 복지 수혜자를 선별하는 일에 엄청난 규모의 인력과 행정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선별적 복지에서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는 정부가 아무리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정밀하게 소득을 파악하려고 노력해도 온 국민을 소득 수준에 따라 서열 매기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누가 보더라도 명백해 보이는 가장 가난한 소득 하위 2.8%의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를 선별하는 데도 공정성 시비가 늘 따라다닌다. 하물며 소득 하위 30%와 50%를 각각 선별해내는 일에서 엄격하게 공정성을 구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정부의 대학생 등록금 차등 지원 정책만 봐도 잘 드러난다. 여기서 가구 소득의 서열을 매기는 기준은 국민건강보험료 수준인데, 이것이 해당 대학생의 실체적 소득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는 지표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가난한 대학생 10%를 골라내는 일이라면 다소의 불공정 시비가 있더라도 복지의 규모가 작으므로 수긍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대학생 등록금 차등 지원 정책은 선별주의가 초래하는 불공정의 전형적인 사례라 하겠다.

선별적 복지는 복지의 수혜자와 복지 비용의 부담자를 분리시킴으로써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낮고, 소득 계층 간의 갈등을 증폭시킨다. 가령, 선별적 복지 제도인 공공부조가 처음 제도화되었을 때는 전체 인구의 2% 규모로 시작되었지만, 인구의 고령화와 함께 치열하게 전개되는 경쟁 만능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끊임없이 실패하고 주변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양극화로 인한 빈곤층의 증가) 때문에 공공부조의 규모는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공부조의 규모가 전체 인구의 10%로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복지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복지 비용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한 번 복지 수혜자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은 좀처럼 여기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도덕적 해이' 탓도 있겠으나 지나치게 치열한 경쟁 만능의 시장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탓도 크다. 결국, 복지 재정의 한계로 인한 선별적 복지의 질 저하 및 양극화와 함께, 엄청나게 늘어난 선별적 복지 비용을 부담하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세금을 더 내는 데 저항하게 된다. 사회적 갈등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오늘날 미국에서 보고 있다. 미국의 정당 정치도 이러한 갈등 상황을 반영하듯 극한적 대립으로 치닫는다.

선별(selection)과 선택(choice)

복지 정책에서 '선별'과 '선택'은 완전히 다른 말이다. 그런데 <한겨레신문>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들에서 의도적으로 또는 잘 몰라서 이 두 용어를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2011년 민주당이 내놓은 보편적 복지 재정에 관한 보고서에서 보편적 복지의 대립적 용어로 '선택적 복지'를 사용한 것을 보고 놀라서 이것을 문제로 지적했던 적이 있었다. 이후에도 주요 언론의 여러 글에서 이러한 혼용의 사례를 더러 접했다. 이러한 실수는 복지 정책을 전공하는 일부 학자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오류는 바로잡아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보편적 복지는 특정 인구의 구성원 모두 복지의 수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특정 연령의 모든 아동에게 보육 서비스나 아동 수당을 제공한다든지, 또는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선별적 복지는 특정 인구의 구성원 중에서 엄격한 자산 조사를 통해 가난한 일부만을 선별하여 이들에게 국가가 정한 최소 복지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일부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선별'과 '선택'을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고 잘못 사용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단순한 실수라고 생각한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대립 용어로는 '선별적 복지'라는 말을 써야 하는데, 실수로 '선택적 복지'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글이나 발언에서는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잘못된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보편적 복지보다는 선택적 복지가 더 바람직"하다는 등의 글이나 발언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선택'의 대립적 용어로 설정된 '보편'적 복지가 마치 서비스를 선택할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획일적이고 질 낮은 복지라는 이미지를 연상케 하려는 고도의, 계산된 네거티브 전략이 숨어 있다. 보편적 복지는 획일적 복지가 아니다. 제대로 된 '보편적 복지'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그들이 원하는 복지 서비스를 선택하고 이용할 권리(선택권, the right of choice)를 보장해주므로 결코 획일적이지 않다. 오히려 보편적 복지의 대립적 개념인 '선별적 복지'가 질이 낮고 획일적이거나 차별적으로 선택의 자유가 제한될 개연성이 크다.

소득 하위 70% 복지는 선별적 복지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기초연금 공약 파기와 관련하여 9월 26일 국무회의에서 사과한 데 이어 27일에도 노인 단체 관계자들에게 거듭 사과했다. 사과의 핵심적 내용은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죄송한 마음"이라는 박 대통령의 표현에 잘 포함되어 있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는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씩을 기초연금으로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기초연금의 수급 대상을 전체 노인이 아닌 소득 하위 70% 노인으로 제한한 데 대해 거듭 사과한 것이다. 그리고 주요 언론들은 공통적으로 이러한 사과로는 부족하며,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좀 더 공식적으로 재차 사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인식에 동의한다. 기초연금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 노인으로 축소한 것은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파기'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보편주의 원칙의 파기로 보는 입장은 옳은 것인가?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보편주의가 맞다. 그런데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를 선별하고, 이분들에게만 기초연금을 지급한다면? 이를 선별주의라고 해야 하는가. 나는 이것을 선별주의로 규정하면서 보편주의 원칙을 어겼으므로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전체의 70% 정도라면 이것을 보편주의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때 사용된 선별의 도구인 자산 조사는 내용상 소득 하위 30%를 골라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득 상위 30%를 골라내기 위한 것이다. 나는 기초연금 대선 공약의 이 부분은 국민적 공론을 통해 일부 수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재정 상황과 복지의 우선순위를 고려해볼 때, 보육이나 의료 등의 사회 서비스와 달리 정부 재정을 투입하는 소득 보장에서는 필요에 따라 고소득 계층을 일부 제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보편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 노인의 소득 수준을 고려해볼 때 기초연금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80%로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노후 소득 보장의 '실질적 보편주의'

기초연금 공약의 실천과 관련하여, 우리가 정작 반대해야 할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죄송한 마음"이라는 박 대통령의 사과와는 전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바로 "소득 하위 70% 노인에 대해서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하여 10만 원부터 20만 원까지 차등 지급"하겠다는 부분이다. 나는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시절에 이미 이러한 실수를 두 번이나 경험했다. 첫째, "국민연금 보험료의 일부(약 10%)를 기초노령연금의 재원으로 사용"하겠다는 인수위의 구상이 나왔을 때 국민들 사이에서 국민연금 기금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어 이것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했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해서 노후 소득 보장의 보편주의를 달성해야 할 정부가 '국민연금의 미래 적립금'에 대한 불안을 키우는 돌발적인 정책 제안을 한 것은 잘못된 일임에 틀림이 없다. 둘째,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가입 기간에 따라 기초연금의 월 수령액에 차등"을 둔다는 정책 방안이 인수위에서 흘러나왔다. 이것 또한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부추겼고, 이것 때문에 실제로 지난 2월 한 달간 임의가입자 수가 7223명이나 감소했다.

우리나라에서 노후 소득 보장의 '실질적 보편주의'를 달성해야 한다. 그래야 노인 빈곤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실질적 보편주의'는 외형상의 보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다. 즉, 대상 인구를 모두 포괄하는 것을 의미하는 '외형상의 보편주의'와 함께, 해당 복지 제도의 보장성 수준이 최소한의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후 소득 보장과 관련하여 '실질적 보편주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해소이고, 둘째는 노후 소득 보장 제도의 적절한 소득 대체율 확보이다. 먼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금의 안정성을 포함한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더해, 납부 예외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재정 및 행정 지원이 필요하며, '1인 1연금' 정책의 강력한 추진도 요구된다. 다음으로, 우리나라 노후 소득 보장 제도의 적절한 소득 대체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금이 최대한의 보편성을 갖도록 해서 국민연금의 낮은 소득 대체율(40년 가입에 지급률 40%)을 보완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정치·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도입 방안은 노후 소득 보장의 '실질적 보편주의'라는 원칙에서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하며, 국민적 공론의 장에서 합리적 방안이 다시 도출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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