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13일 11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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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은 과연 남아 있는가?
[민미연 리포트-다시 한국을 생각한다]<8>
한국 현대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 흥미 있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고졸 출신의 변호사로서 많이 알려진 정치인도 아니었고 선거전에서 별로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았음에도 2002년 대선에서 화려하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변화를 바라는 많은 국민의 성원을 얻어 막판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한국경제의 총체적 파국이 임박했다
[민미연 리포트-다시 한국을 생각한다]<7>
지금까지 본 대로 세계경제는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호와 같은 모습이다. 배 바닥에 큰 구멍이 뚫어져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데 구조선이 멀리서 시간을 맞추어 오기는 힘들다. 구명선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는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다.
경제공황인가, 장기적 경제불황인가
[민미연 리포트-다시 한국을 생각한다]<6> 지는 통화주의 경제학, 뜨는 공황 경제학
2008년 9월 이후 지난 2년 반 동안 세계경제는 마치 살얼음을 딛는 듯한 상황을 헤쳐 왔다. 세계 각국들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막대한 유동성을 풀고 소비를 늘리기 위해 국민들에게 세금 감면이나 보조금 지급까지 했으나 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2010년에는 그리스의
2008년 9월 미국 금융위기의 성격은 무엇인가 ?
[민미연 리포트-다시 한국을 생각한다]<5>
2008년 9월 15일에 미국 4대 투자은행 가운데 하나인 리먼브라더스가 돌연 파산 신청을 했다. 그런데 그해 초에 다른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즈가 구제된 것과 달리 그보다 세 배나 규모가 더 컸던 리먼브라더스는 며칠 후 파산 처리되었다. 이렇게 대형 투자은행들이 파산
'우'와 '좌'의 담합구조를 깨지 않으면
[민미연 리포트-다시 한국을 생각한다]<1>
연재를 시작하며 저희 민족미래연구소(민미연)에서는 이번에 프레시안에 '민미연리포트-다시 한국을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약 30회의 기획 기사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연구소는 1992년에 창립한 후 민족·민생·중도를 기치로 한국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어떻게 설정할까 하는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 왔습니다. 이번의 연재물은 그 결과의 하나입니다. 한국은 외환위기
민족주의의 구조적 요인은 무엇인가 (3)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78>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비판
근대국가와 민족주의 근대국가가 민족주의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대표적인 사람의 하나가 1982년에 대표작인 <민족주의와 국가>를 낸 존 브릴리이다. 그는 민족주의를 발전시킨 요인으로 산업화나 자본주의보다 근대국가가 더 중요
민족주의의 구조적 요인은 무엇인가 (2)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77>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비판
자본주의와 민족주의 민족주의와 자본주의의 관련을 가장 중요하게, 또 끈질기게 주장해 온 것은 맑시스트들이다. 이것은 맑스 이래 지속되어온 전통이다. 그들은 민족주의를 자신의 상품 시장을 확보하려 하는 흥기하는 산업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로 보았다. 또 그것
민족주의의 구조적 요인은 무엇인가 (1)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76>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12)
1930, 40년대만 해도 민족주의 연구는 그 이념적 뿌리를 찾는데 주력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연구를 주도한 칼톤 헤이즈나 한스 콘은 그것을 독일의 계몽사상에서 찾으려 했다. 특히 한스 콘의 경우 그의 주 전공이 사상사였으므로 그런 태도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근대민족주의가 특별하지는 않다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75>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11)
지금까지 중세시대의 스코틀랜드, 근대 초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민족주의를 살펴보았다. 그러면 여기에서 나타는 요소들은 일반적으로 근대민족주의의 전형으로 보는 프랑스혁명기 민족주의의 본질적인 요소들과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가. 민족자결이라는 면에서 보
근대 초 네덜란드의 민족주의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74>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⑩
네덜란드의 전근대 민족주의는 최근까지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 고스키의 연구로 새로이 조명을 받게 되었다. 16세기와 17세기는 네덜란드에서 혼란이 지속된 시기였다. 정치적, 종교적 분쟁 때문이다. 1568년에 네덜란드인들은 이 지역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