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많은 한국인들은 이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한국만은 요행히 피해 갈 것처럼 별로 괘념치 않는다. 한국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에서 가장 빨리 회복되었고 한국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고 하므로 한국만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2010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6.1%로 OECD 국가 가운데에서 터키 다음으로 높다. 중국의 10.3%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그래서 1인당 국민소득도 다시 2만 달러대로 복귀했다.
또 한국의 대표기업들인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는 매출을 급격히 확대하며 최고의 이익을 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매출은 2010년에 약 136조 원(1170억 달러)으로 세계 최대의 전자업체가 되었다. 순이익도 약 11조 원에 달했다.
현대·기아차는 합해서 매출이 약 60조원에 순이익이 7조5천억 원 정도로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가 되었다. 올해도 판매량을 계속 늘려 5월에는 미국 시장의 10.1% 점유율을 차지했다. 외국 회사로는 도요타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대기업들의 경우도 정도는 다르나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한국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이익도 늘리고 있다. 그러니 그것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언론들은 이런 홍보성 기사들로 도배를 하고 있다.
또 작년에 어떤 유력 신문은 창간기념으로 특집을 내며 2020년이면 한국의 1인당 GDP가 4만 달러에 육박하고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가 될 것이라고 환상적인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살려고 이민비자를 신청한 유럽인들이 크게 늘었다는 가상 기사까지 실었다. 그야말로 단꿈에 취해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경제가 별 문제 없이 잘 굴러가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는 데도 이런 식의 자기 최면을 자꾸 거는 것은 우리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실을 냉정하게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현실 대응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한국경제가 그동안 선전한 것은 원화에 비해 일본 엔화의 가치가 상당히 올라가 특히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상품의 경쟁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고환율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작년 한 해에만 고환율을 유지하느라고 외국환평형기금에서 5조 원의 손실을 보았다고 한다.
또 금융위기 이후 미국산업이 재정비되는 틈새를 이용해 미국시장에서 자동차 등이 점유물을 높였고, 동유럽이나 아시아, 중남미의 중가 제품을 주로 소비하는 이머징 마켓에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대지진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때문에 일시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환율은 상황에 따라 오르내리는 것으로 장기적으로 항상 우호적인 요소는 아니다. 또 이머징 마켓은 이제 다른 선진국들도 노리고 있으므로 한국의 우세가 언제까지 유지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심지어 BMW같이 고급자동차만을 만드는 회사들조차 이머징 마켓을 겨냥하여 저가자동차를 선보이고 있는 판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반짝경기를 가지고 좋아하기는 이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전 세계적인 소비의 감소가 가져올 경기침체를 고려에 넣는 일이다. 그럴 경우에도 한국경제가 아무 영향을 받지 않고 순항할 수 있을까?
세계경제가 침체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국제무역이다. 국제무역량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또 무역량이 줄어들면 나라들 사이에 수출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너도나도 수출은 늘리고 수입은 줄이려 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 위안화 절상문제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였었지만 많은 나라들 사이에 환율을 둘러싼 싸움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또 지금도 벌써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나 많은 나라들이 관세율을 가지고 다투게 될 것이다.
심하게 되면 모두 보호무역주의 쪽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세계무역기구가 무력화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최근 국제사회의 유행이고, 한국이 목매달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들은 휴지 조각이 되고 말 것이다.
▲ 올해 4월, 한미FTA의 후속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만나는 게리 록 미국 상무장관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http://asiancorrespondent.com |
수출 불가능한 국제환경은 한국경제에 사형선고
그런데 한국은 기본적으로 수출국가이다. 수출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그래도 2007년에는 69.4%였으나 2010년에는 87.9%까지 올라갔다. 거의 세계 최고수준으로 규모 있는 어떤 산업국가보다도 많다. 미국은 작년에 18.7%, 일본은 22.3%이다. 독일은 이보다는 훨씬 많아 40% 대이나 그래 보았자 한국의 절반 정도다.
이렇게 내수가 아니라 수출에 경제의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에 수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국제환경이 온다는 것은 한국경제에는 사형선고와 같다.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면 고용도 크게 감소하고 가뜩이나 작은 내수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수출이 줄어도 내수가 워낙 크므로 살림을 줄여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거의 파멸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경제가 수출부진으로 이렇게 큰 타격을 받으면 어떤 결과가 올까?
이런 낌새를 채면 우선 외국자본이 대거 빠져나가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가 믿을 수 없게 된 이상 탈출은 필연적이다.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채는 3월 말 현재 총 3,819억 달러이다. 그 가운데 단기외채는 1,467억 달러이고 장기외채는 2,352억 달러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3,000억 달러 남짓이나 대부분은 미국 국채 등에 투자되어 있다.
필요할 때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따라서 외채가 단기간에 빠져나가면 한국은 다시 한 번 외환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장 외환부족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고 국제적인 도움이 없으면 국가부도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 1997년 이후 두 차례나 외환위기를 겪고도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안전장치가 없다.
게다가 세계적인 금융쇼크가 오면 한국 금융시장에 투자했던 외국자본도 당연히 빠져나가게 된다. 현재 외국의 투자자금은 주식시장의 약 1/3을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이다. 이 자금의 일부만 이탈한다고 해도 주식시장은 붕괴를 면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주식에 투자한 수많은 국내투자자들의 자산은 몇 분의 일 토막이 나게 될 것이다. 1998년에 코스피 지수가 1,000에서 200으로 급격히 추락했던 사실을 상기하면 그것이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일은 현재 과도하게 외채를 들여온 상태에 있는 은행들의 운명이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빌려 온 단기자금의 만기를 연장받지 못하게 되면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고 은행들은 대출금 회수에 목숨을 걸게 될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금융대란을 의미한다.
잘못되면 은행들에 맡긴 예금은 정부에서 보증하는 5천만 원 이상의 경우는 모두 허공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알뜰살뜰 저축한 돈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지난번 부산 저축은행 사건들에서도 본 바 있다.
그것을 막으려면 정부가 예금 보증액을 더 늘이든가 은행들을 인수하여 국영화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의 힘도 제한되어 있으므로 기껏 일부 은행만 그런 식으로 구제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은행들은 파산하게 될 것이다.
은행의 금융활동이 크게 제약되면 기업 활동도 마찬가지로 큰 제약을 받거나 거의 중단상태에 빠질 것이다. 충분한 자금을 보유하지 못한 기업들은 연쇄 도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수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파산위기까지 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오게 된다.
한국사회의 구매력도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므로 간신히 살아남은 기업들이라 할지라도 정상적인 영업을 하기는 힘들다. 매출이 줄어들어 회사의 규모를 크게 축소하게 될 것이고 임금도 삭감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사회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수준의 최대의 실업자 대군이 형성될 것이다. 경제공황 당시의 미국 실업률 25%, 독일 실업률 35%를 평균한 30%를 대입하면 장기적으로 현재 취업자 1,700만 명 가운데 500만 명까지도 실업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또 임금도 현재의 수준에서 수십%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시중에 자금이 부족해지면 부동산을 헐값에라도 현금화하려는 기업들이나 개인들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그것은 과도한 빚을 진 국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2011년 1분기 현재 가계신용은 사상최대로 무려 801조4천억 원에 달한다.
그 가운데 가계대출은 752조 원, 판매신용은 49조 원이다. 2010년 3/4분기보다 약 31조 원이 늘어났다.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저금리 때문이다. 2009년 말의 GDP 대비 가계부채율은 80.4%로 2007년 말의 OECD평균인 70%보다 훨씬 높다.
또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신용의 비율은 2005년 104.3%에서 2009년 122.7%로 급증했다. 단순하게 말하면 평균적인 한국인이 자기가 쓸 수 있는 연 수입의 120% 이상 되는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의 이 비율은 110% 정도로 한국보다는 사정이 좋다.
가계대출 가운데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2011년 1분기 현재 289조9천억 원이고 그 대출의 약 92%가 변동금리 대출이다. 그러니 금리가 올라가면 급격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결국은 부동산을 헐값에 팔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건물이나 토지의 값도 크게 하락하게 될 것이다.
▲ 신도시인 산본시의 아파트군. 한국의 아파트는 한국 중산층이 부를 축적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으나 이제 그 파멸을 가져올 개미지옥이 될 가능성이 높다. ⓒhppt://www.ftlcomm.com |
부동산마저 무너지면?
부동산가가 절반으로 하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의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이 47.1%이므로 은행들은 간신히 손해는 면하겠지만 거액의 대출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담보부동산을 팔아도 잘못하면 빚도 청산할 수 없는 비극적인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부동산 소유가 부를 가져다주기는커녕 오히려 사람들을 빈털터리로 만들거나 빚더미 위에 올라서게 만드는 통로가 되는 셈이다. 부동산가격의 이런 폭락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금까지 부동산을 재산 증식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아왔고, 부동산의 비중이 전체 재산 가운데 80% 정도를 차지하는 한국 중산계급이 파멸적인 타격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순식간에 그 부의 절반 이상을 잃게 되고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하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기둥이 흔들리는 상황이 야기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경제의 겉으로 보이는 번영이 실제로는 얼마나 취약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외풍이 한번 거세게 불면 그대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상누각이다. 아이슬란드, 그리스, 아일랜드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도 그와 똑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경제위기는 한국사회에 큰 소용돌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새로 생겨나는 수백만의 실업자, 소득의 급속한 감소, 빈곤층의 양산은 한국사회에 엄청난 긴장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최악의 상태를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공상의 산물은 아니다. 현재 세계 경제의 움직임을 보면 이렇게 될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그냥 좋은 소리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의 한국 정치는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또 이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세계경제야 어떻게 되든 민생이야 어떻게 되든 별 관심사가 아니다. 여당과 야당 사이에 좀스러운 땅따먹기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다. 또 다음에 어떻게 정권을 잡느냐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정권만 잡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형세이다.
그러니 경제위기가 한번 들이닥치게 되면 그 운명이야말로 뻔할 뻔자이다. 모든 정치세력이 한마디로 일패도지, 한꺼번에 다 무너져 버릴 것이다. 한국 정치는 이 상태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 한국의 정치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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