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13일 11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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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면직산업의 성장과 국가의 역할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3> 산업혁명과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 ④
산업혁명은 시작되고 나서도 한 세기 이상 몇 개의 선도적 부분에 제한되어 있었다. 면직산업, 철강산업, 철도와 운하를 포함한 운송산업이 그것이다. 그러나 면직산업은 1780-1860년 사이에 총 생산액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부문이었다. 또 가장 먼저 기계화되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영국 산업혁명의 요인들 (2)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2> 산업혁명과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 ③
그러나 내부적 요인들을 강조하는 해석들은 1980년대에 오면 저항에 부딪치기 시작한다. 그것들이 역사적 실제와 잘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특히 핵심이라고 할 농업혁명은 문제거리이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실체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토니를
영국 산업혁명의 요인들 (1)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1> 산업혁명과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 ②
즉 잉글랜드의 산업혁명은 18세기 말의 우연적인 기술발전의 산물로 나타난다. 기술발전으로 생산비용이 절감되며 해외시장을 하나하나 장악하게 되었고 이것은 마침내 영국이 세계의 공장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해외 수출의 확대는 기술혁신의 원인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0> 산업혁명과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 ①
그러므로 산업혁명은 영국과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눈을 세계사적인 차원으로 돌리지 않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식민지의 약탈과 노동착취, 그리고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산업혁명의 기둥이라고 할
세계사 속의 프랑스 혁명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9>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⑩
프랑스혁명의 맑스주의적 해석은 프랑스의 문화적 민족주의와 맑시즘의 기묘한 결합이다. 잘못된 교육은 사람들의 정신을 썩게 만든다.
프랑스혁명과 식민주의, 노예제, 유대인 해방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8>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⑨
카리브 식민지와 관련해 혁명가들은 식민지 해방이나 노예제, 노예무역의 폐지에 전혀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노예해방은 카리브 식민지들이 영국의 손에 넘어갈까봐 취한 궁여지책에 불과한 것이다.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운 것은 흑인 노예들이었지 혁명가들은
프랑스 혁명기의 문화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7>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⑧
문화와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려는 혁명기의 노력은 일부 살아남은 것도 있으나 테르미도르의 반동과 함께 대부분 자취 없이 사라졌다. 너무 이상주의적이고 급진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종교문제가 특히 그렇다.
프랑스 혁명과 자본주의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6>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⑦
1793년의 봉건제 해체를 포함한 혁명기 농촌사회의 변화는 자본주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봉건제 해체는 농촌사회의 토지소유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농민들이 당시까지 영주들에게 내던 여러 공납이나 부담을 면제 받음으로써 자신들이 경작하던 땅을 이제 직
프랑스혁명과 봉건제 폐지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5>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⑥
맑스주의 역사가들에게 봉건제 내지 영주제의 폐지는 매우 중요하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봉건적 생산양식의 청산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에서도 봉건제 폐지를 통해 구체제를 파괴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를 위해 필수
민주주의인가, 독재정치인가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4>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⑤
혁명에 의해 새로운 사회의 기준이 된 것은 무엇일까. 그 가장 중요한 것이 재산이었다. 그래서 귀족들은 사회적 특권이 사라진 데 대해서는 불만을 느꼈으나 크게 잃을 것이 없었다. 소수의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귀족들이 망명을 했을 뿐 대부분의 귀족이 뒤에 남은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