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이제 남북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할 시점"이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장소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을 공식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여건이 마련됐다"며 "북한의 여건이 되는 대로 장소와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남과 북이 마주 앉아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넘어서는 진전된 결실을 맺을 방안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 논의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제안했다. 의전과 보안 등에 준비가 많이 필요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는 다른, 오직 실무 협상을 위한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정상회담 장소로는 일단 판문점이 유력하게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2018년 5월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을 당시 남북 정상은 5월 26일 판문점에서 '깜짝 정상회담'을 열고, 6.12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린 전례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초대한다면, 문 대통령이 평양에 재방문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방식이다. 공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넘어갔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로 지난 4월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과 기대를 표명했고, 김정은 위원장이 결단할 경우 남북미 3자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뜻을 밝혔다"는 점을 제시했다. 남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남북미 종전 선언'의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다는 뜻이다.
한미 간 '군사적 긴장 완화' 방침은 북한이 '제재 완화' 대신 내세운 '새로운 상응 조치'와도 연결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재 해제 문제 따위에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북한의 의중을 드러내는 매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미국의 '핵 전쟁 위협을 없애 나가는 군사 분야 조치'가 필요해졌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북한이 제재 완화 대신 종전 선언, 군사적 위협 해소나 체제 보장과 관련된 상응 조치 요구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상응 조치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는 알 수 없다. 낮은 단계로는 종전 선언이 가능하겠지만, 만약 미국의 핵우산 제거나 주한미군 철수 등을 언급한다면 제재 완화보다 북미 협상이 더 난항에 빠질 수도 있다. 북한의 '또 다른 상응조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남북 정상회담이 더 필요해진다.
문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은 "제3차 조미 수뇌 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며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보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사실상 대선 국면에 접어드는 올해 말부터는 사실상 북미 관계가 더는 성과를 낼 수 없으므로, 2019년 말을 일종의 협상 '데드라인'으로 잡은 셈이다. 5월~6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두 차례 일본 방문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위한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제기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북미 대화의 동력을 되살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기 위한 동맹 간 긴밀한 전략 대화의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양국은 빠른 시일 내에 북미 대화의 재개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며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남북 관계 개선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동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데 인식을 공유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남북미 정상 간의 신뢰와 의지 바탕으로 하는 톱다운 방식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필수적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한결같은 의지와 전례 없는 길을 걷고 있는 담대한 지도력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 대해서도 "북미 대화 재개와 제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를 높이 평가하며 크게 환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를 할 게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 데에도 반응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서 남북이 함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는데, 이 점에서 남북이 다를 수 없다"며 "우리 정부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남북 공동선언을 차근차근 이행하겠다는 분명하고도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나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또 한 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더 큰 기회와 결과를 만들어 내는 디딤돌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남북미가 흔들림 없는 대화 의지를 가지고 함께 지혜를 모은다면 앞으로 넘어서지 못할 일 없을 것"이라는 각오를 다졌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는 우리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우리는 한반도 운명의 주인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일과 할 수 있는 역할에 맞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주도해왔고, 앞으로도 우리 정부는 필요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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