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신석정의 <꽃덤불> 한 구절로 시작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꽃덤불>은 해방의 환희만을 노래한 시가 아니다. 어둠은 걷혔지만 아직 차가운 겨울이 남아 있고 진정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해방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해방이다.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광복을 과거의 한 시점에 가두지 않고 오늘 우리가 완성해야 할 과제로 불러낸 '새로운 광복'은 의미가 있다.
광복을 국권 회복에 그치지 않고 '주권자의 존엄을 되찾은 날'로 규정한 것도 좋았다. 독립운동과 산업화, 민주화를 서로 경쟁하는 역사로 만들지 않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온 하나의 긴 과정으로 이었다.
태어난 곳과 살아온 길, 신분과 계층, 좌와 우가 달랐어도 나라를 되찾겠다는 마음과 헌신은 하나였다는 독립운동의 기억은 경축사 후반의 "차이가 적대가 되어선 안 된다"는 말과도 통한다. 차이를 없애는 통합이 아니라 차이를 넘어 공동의 목적을 찾는 통합이다. 지금 우리 정치와 사회에 꼭 필요한 언어다.
대일 메시지는 상당히 절제되어 있고 균형감 있다. 한일 협력의 필요성을 분명히 하면서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고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과거와 미래를 잇는 기준으로 제시했다. 역사냐 미래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역사와 실용을 동시에 붙들려는 의도로 읽힌다. 지금의 국제환경에서 한일 협력이 중요하다는 현실을 외면할 필요도 없고, 협력을 위해 역사를 지워서도 안 된다.
그래도 광복절의 대일 메시지라면 한 걸음 더 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과거를 직시하는 일이 미래 협력의 장애물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한일관계의 토대라는 점, 일본 정부 역시 역대 정부가 밝혀온 역사 인식을 흔들림 없이 이어가야 한다는 정도의 메시지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대통령이 그 한 걸음을 아낀 것이 전략적 절제인지 역사 문제를 피해간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향후 한일 정상 간 후속 조치와 일본 정부의 태도에서 판별될 문제다. 절제가 일본의 책임 있는 호응으로 이어지면 외교가 되지만 우리만의 자기절제로 끝난다면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경축사에서 가장 힘을 실어주고 싶은 대목은 남북관계다. 놀랄 만큼 새로운 제안이 나와서가 아니다. 통일이라는 먼 목표를 반복하기보다 지금 남과 북이 어떻게 충돌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정책의 앞자리에 놓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밝힌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일체의 적대행위 중지라는 원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올해는 '포용적·안정적·책임 있는 평화공존'을 제시했다. 얼어붙은 남북관계와 높아진 군사적 긴장을 생각하면 반드시 필요한 변화다.
특히 "싸울 필요가 없는 안정적 평화공존"이라는 표현은 움켜쥐고 발전시킬 가치가 있다. 평화는 상대를 압도해 감히 싸우지 못하게 만드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싸워서 얻을 것이 없고, 싸우지 않아도 안전하며, 작은 충돌이 큰 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 더 안정적인 평화다.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평화 조치"를 언급한 것도 의미가 있다. 상대의 호응을 기대하고 먼저 변하기만을 기다리는 조건부 평화로는 지금의 남북관계에서 아무것도 시작하기 어렵다.
정부가 경축사 이후 연락채널 복구와 9·19 군사합의 복원 노력,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을 후속 과제로 제시한 것도 같은 방향에서 평가할 수 있다. 거대한 정치적 선언보다 우발적 충돌을 막을 작은 안전장치부터 다시 세우는 일이 지금은 더 중요하다. 평화공존이라는 말이 정책으로 살아나려면 바로 이런 낮은 단계의 위기관리 장치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만 평화에 대한 의지만으로 평화를 지킬 수는 없다. 무엇을 선제적으로 할 것인지, 어디까지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지, 북이 호응하지 않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억제와 대화, 긴장완화와 대비태세는 서로 반대되는 정책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평화조치라면 상대의 상응 행동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면 조정할 수 있어야 하며,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연락채널과 군 통신선, 우발적 충돌 방지 규칙, 접경지역과 서해에서의 군사적 안전장치를 하나씩 복구해야 한다. 평화는 선의보다 제도가 오래 지킨다.
북핵 문제에서는 더 큰 전략적 공백이 보인다. 대통령은 "북의 핵 능력 고도화를 멈출 실효적 방안"을 논의하자고 했다. 당장 실현 가능성이 낮은 완전한 비핵화만 되풀이하지 않고 핵능력의 추가 고도화를 우선 멈추자는 접근은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통일부도 후속 조치에서 북핵 능력 고도화 중단과 핵 활동 중단을 위한 실효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핵능력의 고도화를 어떻게 멈출 것인지 그 시작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멈춘 뒤 어디로 갈 것인가. 고도화 중단에서 핵능력 감축으로, 감축에서 실질적인 핵위협 감소로 이어지는 경로도 보이지 않는다.
위험감소와 군비통제는 필요한 수단이지만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현실주의는 최종 목표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단계를 설계하는 일이다. 어떻게 시작할지와 어디로 갈지가 빠진 단계론은 현실주의가 아니라 현상 관리에 머물 위험이 있다.
"페이스메이커이자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라는 표현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페이스메이커는 다른 주자의 기록을 위해 달리다가 자신의 역할이 끝나면 트랙에서 내려오는 사람이다. 대한민국의 한반도 역할을 설명하기에는 맞지 않는 은유다.
우리는 북미 간 협상을 돕기 위해 잠시 함께 뛰는 존재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직접 당사자다. 당사자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 촉진자도 될 수 있다. 북미관계가 움직여야 우리 역할도 생기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평화를 다른 나라의 협상에 맡기는 순간 평화의 외주화가 시작된다.
이런 점에서 경축사의 가장 큰 아쉬움인 '대체 불가 대한민국'도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세계가 꼭 필요로 하는 나라, 모든 나라가 협력하고 싶은 나라를 만들자는 뜻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반도체와 첨단산업, 제조업과 문화, 외교에서 다른 나라가 쉽게 대신할 수 없는 역량을 갖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전략적 자율성을 넓히는 중요한 수단이다.
북핵 접근에서 어떻게 시작하고 어디로 갈지가 불분명했다면, 국가비전에서는 목적의 자리를 차지한 수단이 문제다. 결국 "무엇을 위해 그 수단을 사용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광복'은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는 언어다. 반도체를 생각하면 '대체 불가'의 성격은 더 분명해진다. 세계가 우리 반도체를 필요로 하고 공급망에서 우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동안 한국은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존재일 수 있다. 기술과 공급망, 국제 분업 구조가 바뀌면 그 지위도 달라진다. 대체 불가능성은 영원한 가치가 아니라 특정한 조건에서 만들어지는 역량이다. 결국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에 의해 성립하는 관계적 개념이다.
"세계가 꼭 필요로 하는 나라"가 국가비전의 최상위에 놓이는 순간 묘한 역설이 생긴다. 우리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보다 세계가 우리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가 국가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동맹이나 강대국의 보장에 전적으로 맡길 때 평화의 외주화가 발생하듯, 국가의 존재 가치를 다른 나라의 수요에서 찾으면 국가의 목적마저 외부에 위탁할 위험이 있다.
경축사의 출발은 '새로운 광복'이었다. 희망의 광복, 기회의 광복, 균형의 광복, 평화의 광복이라는 내용도 제시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이 모든 광복이 "대체 불가 대한민국의 광복"으로 수렴한다. 순서는 반대여야 한다. 대체 불가능한 역량은 새로운 광복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새로운 광복이 대체 불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광복'은 '대체 불가'보다 훨씬 큰 말이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세계가 우리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보다 우리가 어떤 삶과 질서를 원하는가에서 먼저 답해야 한다. 국민이 존엄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나라, 차이가 적대가 되지 않는 나라, 전쟁하지 않아도 안전하고 함께 번영할 수 있는 나라여야 한다. 무엇보다 누구와도 협력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는 나라여야 한다. 그런 대한민국이 세계에도 꼭 필요한 나라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81년 전 광복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일이었다. 오늘의 새로운 광복은 우리 삶의 목적과 국가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힘을 지키고 넓히는 일이 되어야 한다. 신석정이 기다렸던 봄은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다. 분단과 전쟁의 위험이 남아 있고 불평등과 격차가 삶을 짓누르며 정치적 차이가 너무 쉽게 적대로 변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말한 새로운 광복과 평화공존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특히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를 정부의 구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한반도 전략으로 발전시키기를 기대한다. 연락채널부터 살리고 충돌 방지의 안전핀을 하나씩 다시 끼우며, 핵능력 고도화 중단 이후의 분명한 경로를 만들고, 남북이 서로를 없애지 않고도 안전하게 살아갈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평화공존은 통일의 포기도, 안보의 포기도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국민의 생명과 일상을 지키고 미래의 가능성을 닫지 않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다. 성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미완의 광복을 한 걸음 앞으로 옮기는 일이 될 수 있다.
광복의 완성은 세계가 대한민국을 대체할 수 없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우리의 운명과 우리가 원하는 나라의 모습을 스스로 정하고, 누구에게도 그 운명을 맡기지 않은 채 다른 나라와 평화와 번영을 나누는 데 있다. 그 힘을 갖춘 대한민국이라면 굳이 '대체 불가'를 외치지 않아도 세계는 우리를 필요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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