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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살인사건…'가해자를 왜 제때 막지 못했냐'는 질문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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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살인사건…'가해자를 왜 제때 막지 못했냐'는 질문을 넘어

[신당역 살인사건 4주기 연속기고] ⑥ 일의 세계에서의 젠더폭력·괴롭힘 근절 위한 정책과제

서울교통공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입사 동기였던 남성 직원에 의해 숨진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4주기가 되어간다. 비극의 반복을 막고, 젠더폭력과 괴롭힘 없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담아 공공운수노조가 보내온 글을 싣는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4년이 지났다. 이 사건을 기억하며 던지는 질문은 가해자의 행위를 왜 제때 막지 못했는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젠더폭력이 한 노동자의 일상과 노동, 그리고 일터의 안전을 침범할 때, 우리는 이를 개인의 피해를 넘어 노동의 문제이자 불평등한 젠더질서에 기반한 사회구조적 문제로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ILO(국제노동기구) 제190호 협약은 젠더기반 폭력과 괴롭힘을 성별 또는 젠더를 이유로 특정인에게 가해지거나, 특정 성별 또는 젠더의 사람들에게 불균형하게 영향을 미치는 폭력으로 정의한다.

젠더폭력은 신체적·성적·정서적·경제적 피해와 고통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행위뿐 아니라 그러한 행위에 대한 위협, 강요와 자유의 박탈을 포함한다. 젠더폭력의 대표적인 형태로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성적 학대와 착취, 성희롱, 인신매매 등이 있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불문하고 발생할 수 있다. 젠더폭력은 불평등한 젠더 권력관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 규범 속에서 발생하고 지속된다는 점에서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이며, 따라서 국가는 젠더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할 책무를 가진다. 이는 UN과 유럽의회 등이 규정한 내용이다.

이처럼 젠더폭력은 공·사 영역을 망라하여 다양한 양태로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일터에서 발생하는 젠더폭력은 주로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 또한 그러한 폭력이 직장 관계자에 의해 발생했는지, 직장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발생했는지,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어 왔다. 반면 가정폭력이나 교제폭력, 스토킹 등의 젠더폭력은 개인의 사생활로 여겨져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 문제와는 별개인 것으로 취급되어 왔다. 젠더폭력의 여러 심각한 양상이 소위 사적 영역이나 친밀성의 맥락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동안 일터에서의 젠더폭력으로 포착되고 논의되어 온 범위는 상당히 제한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젠더폭력은 그렇게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깔끔하게 나뉘어 발생하지 않는다.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 등 젠더폭력의 가해자는 피해자의 직장으로 찾아오거나 출퇴근길을 따라다니고, 근무시간에도 지속적으로 전화와 메시지를 보내며 피해자를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 출근을 방해하거나 잠을 자지 못하게 해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어렵게 만들고, 업무에 필요한 물품이나 자료를 훼손할 수도 있다. 나아가 피해자의 소득을 빼앗거나 일을 그만두도록 압박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자립을 방해하기도 한다. 폭력이 가정이나 친밀한 관계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서 그 영향까지 사적 영역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일터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일터는 피해자가 가해자와 물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공간이자, 독립적인 소득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폭력에서 벗어날 힘을 마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용자와 관리자, 동료는 피해 상황을 인지하고 필요한 정보와 자원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주변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피해자가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단순히 고용상의 편의를 제공하는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의 안전과 경제적 자립을 유지하여 폭력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ILO 제190호 협약이 폭력과 괴롭힘의 문제를 '직장(workplace)'에 한정하지 않고 '일의 세계(the world of work)'로 확장하여 다루는 것은 이런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협약은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발생하거나 동등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젠더폭력과 괴롭힘이 여성과 소녀에게 불균형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하고, 가정폭력이 고용과 생산성, 보건과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명시한다. 또한 젠더폭력을 포함한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 젠더 고정관념, 복합적·교차적 차별, 불평등한 젠더 권력관계와 같은 근본적인 원인과 위험요인을 다루는 젠더반응적 접근(gender-responsive approach)을 요구한다.

여기서 말하는 젠더반응적 접근은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더 많은 배려나 보호·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를 뜻하지 않는다. 왜 특정한 성별이나 집단이 젠더에 기반한 폭력과 괴롭힘에 더 쉽게 노출되는지, 피해를 신고한 사람이 왜 오히려 조직에서 고립되거나 일자리를 떠나게 되는지, 폭력의 결과로 발생하는 비용을 왜 피해자가 자신의 연차나 소득, 경력 단절로 감당해야 하는지 묻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젠더반응적 접근은 개별 사건을 처리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젠더폭력이 발생하고 지속되는 사회구조적 조건과 메커니즘을 살피고 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요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터에서의 젠더폭력에 대응하는 정책의 범위와 방향 역시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일터에서의 젠더폭력을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차원에서 협소하게 대응해 온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소위 사적 영역이나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과 괴롭힘은 일터와 무관하다는 인식 역시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협약의 서문에 명시된 것처럼 "젠더폭력과 괴롭힘을 포함한 폭력과 괴롭힘이 없는 일의 세계에 대한 모든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일터에서의 젠더폭력 예방 및 대응에 대한 정책적 질문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예컨대 몇 건을 신고받고 몇 건을 처리했는지만으로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 뒤에도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었는지, 젠더폭력 피해사실 또는 신고로 인한 인사상·업무상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는지, 젠더폭력 피해자의 비밀보장과 안전을 위한 조치가 실효성 있게 이루어졌는지, 경찰조사 또는 재판에 참여하거나 병원과 상담기관을 이용하기 위해 개인 연차를 소진하거나 소득 손실을 감수하지는 않았는지, 결국 가해자로부터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지는 않았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피해자의 상황에 따라 휴가와 근무시간 조정, 근무지나 직무의 변경, 개인정보와 연락처 보호, 보안 및 출입통제, 출퇴근 시 안전지원, 외부 피해자 지원기관과의 연계 등 다양한 조치가 마련되어 피해자가 필요에 따라 이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조치가 사용자의 선의에 따른 '배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젠더폭력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지 않고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노동권과 평등권의 문제이다. 사회구조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비용을 피해자 개인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변화는 모든 일터에서 필요하지만, 공공부문은 이러한 변화를 먼저 시작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 국가는 일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괴롭힘을 규율하고 감독하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사람을 직접 고용하는 사용자이기도 하다. 국가가 민간사업주에게 피해자의 안전과 고용을 보호하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공공부문에서 이러한 기준을 충분히 실천하지 못한다면 정책의 설득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공부문부터 젠더폭력이 노동자의 안전과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이에 관한 법제도적 대응 전략과 원칙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 대상 역시 공무원이나 정규직 노동자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협약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피고용자, 계약상 지위에 관계없이 노동하는 사람들, 인턴과 견습생을 포함한 훈련과정에 있는 사람들, 고용이 끝난 노동자, 자원봉사자, 구직자와 입사지원자" 등 일의 세계에 속한 모든 사람의 권리가 존중되고 보장받아야 하며, 자신의 소속이나 고용형태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수준의 보호를 받아서는 안 된다.

신당역 사건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건의 의미를 현재의 제도와 실천 속에서 다시 묻는 일이기도 하다. 젠더폭력의 위험을 피해자 개인이 홀로 감당하도록 두지 않고, 피해자가 안전하게 일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사용자가 그 위험을 인지하고 책임 있게 대응하는 것, 그것이 젠더폭력과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운 일의 세계를 만드는 출발점이자, 지금 이 시점에 신당역 사건을 다시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 참고문헌

ILO, Violence and Harassment Convention, 2019 (No. 190), Article 1(1)(b).

UN, Declaration on the Elimination of Violence against Women (1993).

Council of Europe, Council of Europe Convention on Preventing and Combating Violence against Women and Domestic Violence (2011), CETS No. 210.

▲ 지난 9월 11일 국회의원회관 1간담회의실에서 ‘젠더폭력·괴롭힘 근절 위한 국가 의무 및 사업주 책임 강화 방안 모색 : ILO 190호 협약 비준 전략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 노동자권리연구소, 더불어민주당 이수진·이용우 의원, 진보당 손솔 의원이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에 온전한 2인1조 근무제 실시를 요구하는 한편 정부에 ILO 190호 협약 비준을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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