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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쿠바, 수주 내 무너진다"? 200년 압박에도 쿠바는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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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쿠바, 수주 내 무너진다"? 200년 압박에도 쿠바는 무너지지 않았다!

[기고] 클라우디오 라울 몬손 바에사 주한쿠바대사가 전하는 미 제국주의 부당한 개입

한반도 평화와 자주를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은 8월 1일 클라우디오 라울 몬손 바에사 주한쿠바대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진행했다. 미국은 올해 초 베네수엘라 침략, 2월 말 이란 침략에 이어 쿠바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암시하고 있다. 마약을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쿠바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제재는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라 200여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쿠바에 대한 통제권을 갖기 위한 오랜 전략의 결과다.

미국은 2024년 쿠바와 수교를 맺었지만 이후 부당한 개입을 이어가고 있다. 주한쿠바대사는 이날 강연에서 미국의 강압적 행태에 맞서 자주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래는 강연 주요 내용이다.

먼로 독트린(1823)과 행정명령 14380(2026)

미국은 흔히 냉전의 언어를 통해 쿠바와의 관계를 설명하지만, 미국과 쿠바의 역사는 결코 전형적인 냉전의 결과가 아니다. 쿠바 혁명이 있었던 70여 년 전, 그리고 그 전 100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쿠바에 대한 주권 침해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미국과 쿠바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영국으로부터 독립, 즉 미국의 건국과 동시에 시작했다. 1776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건국의 아버지들은 쿠바를 "미국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얼마나 유용하고 편리한가"를 반복적으로 논했다.

1823년 미국이 먼로 독트린을 발표할 때 언급한 중남미 식민지의 독립을 지지한다는 그럴듯한 선언 뒤에는 "미주 대륙은 미국을 위한 것"이라는 제국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먼로 독트린이 발표된 같은 해, 미국 국무부 장관 존 퀸시 애덤스는 '성숙한 과일(Ripe Fruit)' 정책을 동시에 발표했다. 쿠바라는 열매가 지금은 스페인이라는 나무에 매달려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중력의 힘으로 결국 미국의 손에 떨어질 것이니, 중력이 작용하기를 기다리면 된다는 정책이었다.

당시 한 잡지에 실린 그림은 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미국을 상징하는 인물이 나무 아래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바구니에는 이미 하와이라는 열매가 담겨 있고, 나무에는 '쿠바'라는 열매가 매달려 있다.

▲ 미국에서 19세기에 발행된 잡지 <퍽>(Puck) 제40권 제1036호 표지. ⓒ미국 의회도서관

이 잡지가 1987년도에 발간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때는 쿠바 독립군이 30년 가까운 독립전쟁 끝에 영토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고 스페인이 후퇴 직전이던 시점이었다. 쿠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을 때, 미국은 쿠바를 장악하려는 음흉한 속셈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1898년, 미국은 스페인에게 전쟁을 걸었다.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해방'하겠다는 명분이었으나 실제로는 이미 독립을 이루어 가던 쿠바 독립군의 결실을 가로챈 전쟁이었고, 쿠바 입장에서는 '독립을 빼앗긴 전쟁'이다. 그해 12월 10일 파리 조약으로 쿠바는 물론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이 미국에 이관되었다. 이어진 미국 군정과 신식민지 체제에서 쿠바 영토의 약 25%가 미국 소유가 되었고 경작지의 75%, 발전 시설의 90%, 석유 정제시설의 70%가 미국 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이 신식민 지배를 헌법 차원에서 공식화한 것이 플랫 수정(Platt Amendment)이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보존하는 원문에 따르면, 1901년 미 의회를 통과한 플랫 수정은 1903년 미-쿠바 관계조약으로 발효되어 쿠바 헌법에 "미국의 이익에 해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공식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조항을 박아 넣었다. 1934년 플랫 수정이 폐지되기 전까지 이 법안은 미국의 쿠바 개입의 법적 근거로 기능했다.

먼로 독트린의 그럴듯한 수사 뒤에 감춰진 미국 제국주의의 욕망이 1898년 파리 조약의 무력으로, 1903년 플랫 수정의 법리로, 그리고 2026년 1월 행정명령 14380으로 이어지는 단절 없는 연속선이야말로 오늘날 미국의 패권적 행태를 설명하는 본질이다. '냉전'이라는 단편적 프레임을 들이미는 것 자체가 바로 '패권의 장치'였다.

헬름스-버턴법이 드러내는 미 제국주의의 본질

미국이 공식적으로 쿠바에 '자유'와 '인권'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왜곡이고 거짓 사상일 뿐이다. 미국이 실제로 원하는 것을 확인하려면 말이 아닌 법문을 읽어야 한다. 미국은 1996년 헬름스-버턴법(Helms-Burton Act), 정식 명칭 '쿠바 자유와 민주주의 연대법(Cuban Liberty and Democratic Solidarity Act)을 제정한다.

헬름스-버턴법은 대쿠바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세 가지 조건을 규정했다. 첫째 쿠바가 '다당제 정부'를 수립할 것, 둘째 정부가 '과거 미국인 소유였던 토지와 자산을 미국 시민에게 반환'할 것, 셋째 체제 전환이다. 미국은 소위 민주주의라는 것을 말하면서, 결국 쿠바의 영토, 쿠바의 자산들을 미국의 소유로, 미국의 통제로 가져오겠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실체는 쿠바 영토와 경제에 대한 침탈 욕망을 감추는 수사적 언어일 뿐이다.

쿠바는 혁명 직후 국유화 과정에서 미국에 충분한 보상 조건을 제안했다. 스페인을 비롯해 쿠바 토지를 소유하던 유럽 국가들은 이 보상을 수용했으나 미국만 거부했다. 미국 입장에서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쿠바 영토의 가치는 단순한 경제적 가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쿠바에 대한 실질적 지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목적은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쿠바의 영토에 대한 통제권이었다. 헬름스-버턴법은 이 통제권 회복 요구를 1996년 법률로 공식화한 셈이다.

헬름스-버턴법은 사실상 주권 양도 요구다. 다당제 전환정부 수립, 미국인 토지·자산 반환, 체제 전환,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해야 비로소 제재가 풀린다는 것은 쿠바가 자국의 정치 체제와 경제 구조와 역사적 결산을 미국에 맡기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쿠바의 문제는 결코 단순한 이념적 분쟁이 아니라 쿠바의 주권을 걸고 있는 미국 제국주의와의 싸움이다.

쿠바에 가해진 미국의 테러와 경제 제재

1960년 4월 6일자 미 국무부 맬러리 부차관보(중남미 담당)의 기밀메모는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대부분의 쿠바인들은 카스트로를 지지하고 있습니다.(중략) 실질적인 정치 반대 세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내부 지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가능 수단은 경제적 불만족과 고난에 기초한 환멸과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뿐입니다. 쿠바의 경제 생활을 약화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합니다. (중략) 쿠바에 자금과 물자가 들어가지 못하게 차단하고, 실질 임금과 화폐 가치를 하락시켜 굶주림과 절망을 유발하고 정부를 전복시키는 행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이 메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난 70년 미국 대쿠바 정책은 쿠바 정부를 전복시키고 국민들의 숨통을 조여 쿠바를 장악하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은 지난 70여 년 동안 쿠바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더욱 심한 압박과 정책들을 취하고 있다.

그 '굶주림과 절망의 계획'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감행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이 2026년 1월 29일 발표한 행정명령 14380은 연방관보(Federal Register)에 전문이 공표되었다. 발효 직후 멕시코 Pemex의 대쿠바 송출량이 하루 2만 배럴에서 7천 배럴로 급감했다. 쿠바는 소비 석유의 70%, 식품의 약 70%를 해외 수입에 의존한다. 6개월이 넘도록 석유가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병원과 상하수도와 냉장고가 멈추는 일상을 의미한다.

쿠바 정부 집계에 따르면 트럼프 2기 들어 260개가 넘는 신규 제재가 추가됐다. 매주 새로운 조치가 발표되며, 항구 앞에는 식품과 의약품, 전력 설비를 실은 70여 개의 컨테이너가 제재에 묶여 정박해있다. 아바나 어린이병원에서 인큐베이터 전력이 불안정해지고 필수 의약품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는 현실이다, 미국은 국제법이 금지하는 의약품 차단까지 감행하고 있다.

▲클라우디오 라울 몬손 바에사 주한쿠바대사. ⓒ평화통일시민행동

미국은 경제제재로 쿠바 국민들을 굶주리게 하는 것도 모자라 직접적인 테러 공작도 일삼았다. 1961년 피그스만 만에 미국의 지원을 받은 테러 단체들이 침략을 하는 일이 있었다. 쿠바 출신의 망명자들이 미국에서 훈련을 받고 군사 지원을 받은 테러 단체들이 쿠바의 해변을 통해서 쿠바를 자유화시키겠다는 목적으로 일으킨 침공이다. 정부 집계로는 3400여 명이 사망을 하고 또 2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또 미국은 CIA 주도 하에 1961년~62년에는 ‘몽구스 작전(Operation Mongoose)'을 감행했다. 피델 카스트로를 암살하려는 작전이었다. 공개된 CIA 내부 문서에 따르면 음식에 독약을 넣어 암살하는 방법, 시가에 보툴리늄 독소를 넣어 암살하는 방법 등 상상을 초월하는 작전을 통해 쿠바 혁명의 지도자에 대한 암살을 기도했다.

또 하나의 잘 알려지지 않는 비극이 있다. 1976년 10월 6일, 바베이도스 해상 상공에서 쿠바항공 455편이 폭발했다. 쿠바 유소년 펜싱 선수단과 일반 승객을 태운 비행기였다. 비행기는 테러로 인해 폭발하게 됐는데, 테러를 가한 이들은 자신들이 비행기를 날려 버렸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국가안보보관소(NSA Archive)의 관련 기밀해제 문서에 따르면 테러범들의 배후에는 미국 정보기관의 연결 정황이 드러난다. 쿠바 국민들에 대한 테러를 가함으로써 공포심을 조장하고 정부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들은 미국에서 재판을 받은 뒤 한 명은 이민법상 경범죄로, 다른 한 명은 대통령 사면으로 풀려났다.

봉쇄 속에서도 꽃 피운 쿠바의 코로나 대응

봉쇄가 부른 코로나 펜데믹의 위기 속에서도 쿠바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쿠바는 Abdala·Soberana 02·Soberana Plus 등 자체 백신 5종을 개발하고 그중 3종을 승인받아 전 국민에게 투약했다. Abdala는 3회 접종 후 92%의 효과, Soberana 02는 3회 이종 접종 시 92.0%의 효과를 보였고 2회 단독 접종으로도 69.7%를 기록했다.

베트남·멕시코·베네수엘라·러시아에서 쿠바 백신이 사용됐고 의료협력단은 이탈리아에도 파견되었다. 미국은 자신들이 제재를 가하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 모더나 등 국제 백신 예외 조치를 내리면서도 쿠바만큼은 그 예외에서 배제했다.

관타나모 기지, 되찾으려는 쿠바와 '통제'를 잃지 않으려는 미국

인도주의 위기의 무기화 외에 주목할 사안은 100년이 넘는 또 하나의 주권 침해, 관타나모 미군기지이다. 1903년 쿠바 초대 대통령 에스트라다 팔마 정부는 미국과 불평등 임대 조약을 맺었다.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 R44137에 따르면 연 임대료는 고작 4,085달러다. 쿠바는 혁명 이후 이 임대료 수령을 일관되게 거부하고 기지 반환을 요청해왔으나 미국은 묵살하고 있다.

이 조약은 쿠바가 미국의 신식민지였던 시절에 맺어진 불공정한 조약이고, 미국은 마땅히 영토를 되찾으려는 쿠바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미국은 돌려줄 마음이 없다. 관타나모 기지는 과거 미국이 쿠바를 통제하던 시기를 연상시키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관타나모 기지는 냉전의 유산이 아니라 1903년 신식민 지배의 물질적 잔재이자, 123년이 지나도 반환되지 않는 주권 침해의 살아있는 증거다.

쿠바와 조선의 관계는 변함이 없다

한국과 쿠바는 2024년 2월 14일 유엔본부에서 양국 유엔영주대표가 서한을 교환하는 형식으로 수교를 공식화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단순히 '북한 우회 외교'의 일환이라는 단편 프레임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쿠바 교류의 결실은 20년에 걸친 누적이다. 2005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아바나 무역관을 개소하면서 시작됐다. 즉 쿠바와 한국과의 관계는 단기적 외교 행보가 아니다.

한편 한국과의 수교로 조선(북한)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 아니냐는 일각의 분석은 잘못되었다. 쿠바와 조선과의 관계는 역사도 길고 현재까지 오래 이어져 온 관계이다. 언론에 보도됐다는 조선에서 쿠바와의 정상회담을 거절했다는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앞으로도 조선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쿠바 정부의 입장이다.

▲ 1일 평화통일시민행동 주최로 클라우디오 라울 몬손 바에사 주한쿠바대사 초청 강연이 열렸다. ⓒ평화통일시민행동

다자주의를 통해 국제질서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쿠바

쿠바의 외교 노선은 비동맹 운동(Non-Aligned Movement)의 핵심 국가로서 다자주의와 약소국 주권 수호다. 쿠바는 가장 대표적으로 비동맹 국가로서 다자주의를 지키려고 하는 국가이다. 현재의 국제질서와 국제법이 결코 완벽하지는 않지만 쿠바와 같은 약소국을 지키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쿠바 정부는 다자주의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와 국제법을 지향해나갈 것이다. 또한 쿠바와 같은 약소국들이 국제사회에서 더 많은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제재에도 쿠바는 나아간다

수십년 간에 걸친 미국의 봉쇄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에너지 봉쇄를 시작할 때 미국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은 "수주 내에 쿠바가 무너질 것"이라 반복했다. 그러나 수개월이 지난 지금 쿠바는 무너지지 않았고, 미국은 더 이상 그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미국이 바라는 쿠바 정부 붕괴나 정치적 위기는 일어나지도,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쿠바 경제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작동하고 있으며, 공공 분야의 기본 서비스도 최소한의 자원으로 대중에게 제공되고 있다.

쿠바 정부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의 하나가 에너지 믹스이다. 과거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태양광을 필두로 한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충하고 있다. 최근 태양광 발전 시설을 늘리면서, 햇볕이 좋은 날 에너지를 저장하면 전체 필요 에너지의 약 10~20%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쿠바 내에서도 석유가 생산되는데, 전체 소비량의 약 30%를 국내에서 생산한다. 품질은 낮고 정제되지 않은 석유지만 전력 발생에 쓰이고 있다. 과거에는 석유 정제 시설이 쿠바에 없었으나 최근 정제 기술과 시설 개발을 추진 중이며, 기술이 정착되면 가솔린·경유·농업용 기름 등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쿠바 정부가 정제 기술을 연구·개발하겠다고 발표하자 미국은 그 연구시설에 제재를 가했다. 미국의 조치는 쿠바가 스스로 석유를 정제해 경제를 운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드러낸다.

쿠바 정부는 최근 176개의 새 경제정책도 발표했다. 민간 분야에 더 많은 지원을 해 경제를 활성화하면서도 사회보장 체계, 즉 사회주의의 기본 틀은 유지하겠다는 정책이다. 이 정책들은 지난 10년간 대중토론을 거쳐 쿠바 민중의 지지와 동의를 받아왔다. 2011년부터 사회경제 방향성을 설정하는 토론이 정부 내에서 뿐만 아니라 학생·직장인·농민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긴 시간에 걸쳐 이어졌다. 시장을 확장하고 개방하되 사회보장·사회보호 체계는 보장하자는 핵심 내용이 정리됐고, 이 과정은 헌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헌법 개정안은 국민투표로 통과됐다.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항마다 국민이 함께 토론하고 동의했다. 헌법 조문을 해석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국민이 함께했다. 2019년에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가 마무리됐으나, 코로나 사태와 미국의 제재 심화로 적용 시기를 미뤄왔고 이제서야 실현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 정책들은 경제에 역동성을 가져오는 동력이 될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어려워 빠른 결과를 거두기는 어렵겠지만 꾸준히 추진하면 긍정적 성과를 내리라고 판단한다. 시장을 최대로 개방하면서도 사회보장 체계와 쿠바 사회주의의 본질을 보호하는 정책이다. 미국의 70년 봉쇄가 실패한 이유는 이처럼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쿠바 정부와 국민들이 미국의 주권 침해가 현 상황에 대한 핵심 문제임을 인식하며 이에 대응해 나가기 위해 힘과 의지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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