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4일 13시 55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김구와 김석황, 누가 거짓말을 한 것인가?
[해방일기] 1948년 3월 15일
한국 언론사에 특기할 만한 현상 하나가 3월 내내 벌어졌다. 장덕수 살해 사건 재판이 3월 2일부터 4월 1일까지 열리는 동안 <동아일보>가 엄청난 지면을 이 재판에 쏟아부은 것이다. 같은 기간 <경향신문>에 비해 줄잡아 다섯 배의 지면을 투입한 것 같다. 장덕
김기협 역사학자
2013.03.15 10:53:00
"가능 지역 총선거" 드디어 결정되다!
[해방일기] 1947년 3월 13일
유엔 조선 위원단(U. N.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정식 명칭은 '유엔 임시 조선 위원단'인데, 이 일기에서는 알아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유엔 위원단' 또는 '조선 위원단'으로 표시했다)은 1948년 3월 12일 제23차 회의에서 유엔 소총회의
2013.03.13 11:25:00
캐나다 대표, 단독 선거를 맹렬히 반대한 이유는?
[해방일기] 1948년 3월 11일
메논 의장과 호세택 사무국장이 3월 6일 뉴욕에서 돌아온 후 유엔 조선 위원단은 8일 오후 3시 제16차 전체 회의를 열었다. 조선에 들어와 활동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것이었다. 회의의 주요 내용은 당연히 메논의 소총회 참석 보고였다. 보고 내용은
2013.03.11 07:30:00
장덕수의 유령에게 시달리는 김구
[해방일기] 1948년 3월 8일
1947년 12월 2일 저녁 장덕수가 집으로 찾아온 두 명의 범인에게 암살당하고 40시간 만인 4일 오전 현직 경관 박광옥(23세)과 연희대 학생 배희범(20세)이 체포되었다. 별다른 증거를 남기지 않고 현장을 완전히 벗어난 범인들을 이틀도 안 되어 체포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인
2013.03.08 09:51:00
중간파의 태생적 갈등 : 원칙론과 현실론
[해방일기] 1948년 3월 6일
1946년 10월 16일 각 정당 시국 대책 간담회가 결성된 일이 있었다. 당시의 주요 정당 중 남로당(준비위)과 한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여기 참여했다. 대구에서 시작된 전국적 소요 사태에 대한 정치계의 대응을 위한 집결이었다. 1년이 지나 또 하나의 위기 앞에 이남의
2013.03.06 07:33:00
"일제 악습 '공창' 폐지가 맞긴 하지만…"
[해방일기] 1948년 3월 4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어제 기자 회견 중 선생님의 민정장관 사임설 질문에 "항간에 본인의 사임설이 상당이 유포되고 있는 모양이나 나로서는 사임원을 제출한 일도 없고 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 관계로 묵묵히 직무를 수행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대답하셨죠. (<조선일보> 1948년 3월 4
2013.03.04 07:40:00
정면충돌로 치닫는 김구와 이승만
[해방일기] 1948년 3월 1일
3000만 겨레여 기억하라 단기4252년 기미 3월 1일 이날은 배달 민족의 대대손손이 영원토록 잊지 못할 기념의 날이다. 5000년 역사에 최대의 굴욕인 소위 한일 병합의 오점을 우리의 피로써 씻기 시작한 날이요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세계만방에 선언한 날이다. 30년 전 이날
2013.03.01 11:55:00
남북 협상…여운형이 있었다면!
[해방일기] 1948년 2월 27일
김구와 김규식이 보낸 편지가 어제 오늘 사이에 김일성과 김두봉에게 전해졌을 것 같다. 김규식의 비서 송남헌은 그 편지 부치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1948년 2월 16일 나는 그녀(러시아어에 능통한 송남헌의 지인 고릴리)와 함께 왜성대로 갔다. 당시 남산 경성 방송
2013.02.27 12:28:00
소련도 미국의 '분단 건국'을 도왔다!
[해방일기] 1948년 2월 25일
유엔 조선 위원단은 소련의 북조선 입경 거부에 직면하자 "총선거를 통한 조선 국민 정부 수립"이라는 사명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소총회에 보고하여 활동 방향에 대한 지침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메논 의장이 2월 19일 소총회에 조선 상황을 보
2013.02.25 09:18:00
분단을 재촉하는 '막장 드라마'
[해방일기] 1948년 2월 22일
2월 19일 입법의원 제205차 본회의에서 격렬한 사태가 벌어졌다. 설립 후 14개월 만에 가장 격렬한 사태였던 것 같다. 19일 입의의 205차 본회의에서는 서상일 의원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총선거와 독립 정부 수립을 돕기 위하여 내조한 유엔 위원단을 맞이하고 있는 역사적 이
2013.02.22 08: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