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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은 경찰이 만들어낸 참극이었다! ①
[해방일기] 1948년 5월 1일
1948년 5월 1일 한낮에 제주읍내에서 남쪽으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오라리 연미 마을로 30명가량의 청년들이 들어와 민가 10여 채를 불태우는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만으로는 4·3 사태 중 일어난 수많은 참혹한 사건 가운데 두드러질 것 없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런데 제
김기협 역사학자
2013.05.01 08:27:00
목소리마저 빼앗긴 민족주의자들
[해방일기] 1948년 4월 29일
서울의 기자 여러 명이 남북 협상을 취재하러 평양에 갔지만 통신 여건이 안 좋았는지 그 취재 내용이 잘 보도되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경우 4월 27일의 김구 인터뷰와 4월 29일의 김일성 인터뷰가 모두 5월 3일자 신문에 게재되었다. 기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남북
2013.04.29 06:43:00
민족 갈등, 좌우 대립이 겹친 '한신 교육 투쟁'
[해방일기] 1948년 4월 26일
여러 갈래 중요한 사태가 긴박하게 펼쳐지고 있다. 2월 말의 유엔 소총회 결의를 기점으로 시작된 '가능 지역 선거' 추진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고, 이에 맞선 '남북 협상'이 평양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제주에서 터진 4·3 사태는 미군정의 모순과 문제
2013.04.26 08:14:00
홍명희는 왜 이북의 들러리로 나섰을까?
[해방일기] 1948년 4월 24일
3월 25일 평양방송에서 이북 측의 남북 회담 제안이 발표된 후 4월 19일 '남북 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열릴 때까지 이남 신문에서는 "남북 협상", "남북 회담", "지도자 회의", "남북 요인 회담" 등 용어가 쓰이고 '연석회의'란 말은 보이지 않는다. 4월
2013.04.24 05:48:00
돌아온 콤비, 김구 주석과 김규식 부주석
[해방일기] 1948년 4월 22일
4월 19일 북으로 떠난 김구의 뒤를 이어 김규식도 21일 평양으로 향했다. 지난 13일 경교장 회의 때 김규식이 북행 보류의 입장을 보인 것이(4월 15일 일기) 정말로 안 가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중석은 김규식의 속내를 이렇게 풀이했다. 우사가 4월 13일 북행을
2013.04.22 07:08:00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김구
[해방일기] 1948년 4월 19일
3월 25일 평양방송은 북조선 당국이 "남조선 각 정당 단체에 대하여 4월 14일 평양에서 회담할 것을 초청"하였다고 보도되었다. 그리고 그 날짜를 붙인 편지 "남조선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조선 정당 단체에게 고함"이 여러 정당과 단체에 전달되었다. 발송자는 김두
2013.04.19 10:11:00
남조선을 무법천지로 만든 조병옥의 '향보단'
[해방일기] 1948년 4월 17일
18세 이상 55세 이하의 모든 남성을 의무적으로 가입시키는 '향보단(鄕保團)' 이야기가 난데없이 튀어나왔다. "향토 방위의 목적으로 '향보단'을 조직-군정의 지령으로 경무부에서" 향토를 방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향보단 조직이 방금 진행 중에 있
2013.04.17 11:10:00
김규식 "평양에 가기는 가야겠지만…"
[해방일기] 1948년 4월 15일
지난 1월 28일 일기에서 '고쟁생(苦諍生)'이란 필명의 <경향신문> 논설을 소개했다. 2월 3일자부터 4회에 걸쳐 연재한 '3영수 협의론'이었다. 유엔의 성격과 한계에 대한 인식이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 글이었다. 그리고 문제의식의 명석함과 논리의
2013.04.15 09:28:00
중간파 선거 참여가 '기회주의'? 뭐 묻은 개가…
[해방일기] 1948년 4월 12일
3월 30일 선거인 등록과 함께 후보자 등록도 시작되었다. 후보자 등록은 4월 15일 마감이다. (실제로는 16일 마감으로 늦춰졌다.) 일사불란하던 선거 추진 세력에서 후보자 등록 시작과 함께 잡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난립 방지 대책 애련서 검토" 민족진영애국단체대표자
2013.04.12 07:53:00
한국여론협회 "자발적 선거인 등록은 7퍼센트 미만!"
[해방일기] 1948년 4월 10일
총선거의 첫 단계인 선거인 등록이 3월 30일에서 4월 8일까지 진행되었다. 유권자의 91.7퍼센트인 800여만 명이 등록을 마친 것으로 중앙선거위원회가 발표했다. 선거 추진 세력에서 만족하고도 남을 결과였다. 하지 사령관이 만족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4월 13일의 담화문
2013.04.10 10:4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