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2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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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남산 '노인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근대 의료의 풍경·49] 종두의 양성소
1899년 4월 14일, <제국신문>은 4월 9일 남산 노인정(老人亭)에서 열린 종두의 양성소 3회 졸업식에 대해 제법 상세하게 보도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에서는, 일본 공사 가토 마쓰오(加藤增雄)와 공사관 직원, 수비대 장교, 상인
황상익 서울대학교 교수
잊혀진 의사, 후로시로는 누구인가?
[근대 의료의 풍경·48] 후루시로 바이케이
"사립" 종두의 양성소를 세운 후루시로 바이케이(古城梅溪·1860-1931)는 누구인가? 1860년 3월 2일, 일본 큐슈(九州) 동북부의 오이타(大分縣, 벳부 온천으로 유명하다) 현에서 태어난 후루시로는 1880년 3월 오이타 현립(縣立) 의학교에 입학하여 3년 반을 공부하고 1883년
1890년대 예방 접종 '사교육'도 있었다?
[근대 의료의 풍경·47] 근대 보건의료 개혁 : 종두
1895년 11월 26일(음력 10월 10일), 내부령(內部令) 제8호로 <종두 규칙>이 제정되었다. 이것은 1883년부터 정부가 시행해 온 종두(우두) 사업을 한층 더 체계화하기 위한 조치로, 이를 통해 이전까지 대체로 간접적이었던 중앙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고 구체화되었다.
조선 최초의 '보건복지부' 장관은?
[근대 의료의 풍경·46] 근대 보건의료 개혁
1894년은 갑오농민전쟁과 갑오개혁의 해이다. 봉건 타파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제1차 농민봉기는 민 씨 척족 등 집권 세력의 간담을 서늘케 했고, 그만큼 정부의 개혁 조치를 압박했다. 하지만 봉건·매판적인 집권 세력의 대응은 역사를 거스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농민을
역병과의 전쟁…무당 vs 의사, 승자는?
[근대 의료의 풍경·45] 지석영과 우두 ⑤
외아문이 주관하여 1885년 11월에 시작된 국가 우두 사업은 불과 1년 만에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 뒤 도(道)에 따라 우두 보급이 중단되거나 유명무실해진 경우도 있었지만 정부에 의한 우두 사업은 지속되었다. 그것은 그만큼 두창이 당시 조선 사회에서 가장 큰 보건 문
역병 퇴치의 숨은 공로자, 김인제를 아는가?
[근대 의료의 풍경·44] 지석영과 우두 ④
1880년대 후반 충청우도에서 펴낸 <우두절목(牛痘節目)>과 <경기 관초>(양력 1888년 9월 29일자), <함경도 관초>(양력 1890년 4월 25일자) 등의 문서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우두국의 구체적인 운영 방식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우두 접종 지역은 경기도…처음 시작한 곳은?
[근대 의료의 풍경·43] 지석영과 우두 ③
박영교의 권유문(제42회) 외에는 전주 우두국에 관한 자료가 없어 실제로 권유문에 나오는 대로 우두 사업이 이루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듬해인 1883년 충청우도 어사 이용호(李容鎬·1842~?)의 건의와 정부의 결정에 의해 충청도 우두국이 설치, 운영된 것은
조선 최악의 전염병은 어떻게 사라졌나?
[근대 의료의 풍경·42] 지석영과 우두 ②
임오군란이 수습된 뒤 충주 처가의 피난처로부터 한성으로 되돌아온 지석영은 파괴된 종두장을 복구하고 다시 우두 사업을 활발하게 벌여 나갔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정부에서도 우두술 보급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정책 시행을 준비해 나가고 있었다.
7월19일, 성난 조선 군인은 왜 지석영을 공격했나?
[근대 의료의 풍경·41] 지석영과 우두
지석영(池錫永·호 松村·1855~1935)은 1855년 5월 15일(음력) 한성에서 지익룡(池翼龍)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석영은 집안이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편이었지만 어려서부터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아, 강위(姜瑋·1820~1884) 등 개혁적인 성향의 문장가나 지식인들과
한국 최초의 '근대 의사'는 정약용?
[근대 의료의 풍경·40] 근대와 서양 의학
우리는 종종 1876년 "개항" 이전의 조선 후기 시대를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전혀 발전이 없었거나 오히려 퇴보했던 암흑기로 기억하고 있다. 세도정치와 쇄국, 부패와 빈곤, 기아와 전염병, 나태와 무기력 등 부정적인 모습만 있었던 양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