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6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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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03>
동대문 병원
나는 다리를 부러뜨렸다. 캄캄한 밤에.별도 없는 캄캄한 한겨울 밤, 해남 근교의 한 논바닥에 굴러떨어져 왼쪽 무릎 아래 다리를 부러뜨렸다. 지독한 통증 속에서 별도 없는 캄캄한 겨울 하늘을 쳐다보았다. 나는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확신과 고요일 것
김지하 시인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02>
민족미학
본디 부산 민족미학연구소의 소장 채희완 아우와의 약속은 일정 기간 부산에 머물면서 민족미학의 기초에 관련된 일련의 강의를 해주기로 한 것이었다. 우선 강의하고 뒤에 희완 아우와 연구소 팀이 그 강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정리해 실천문학사에서 책으로 출판하는 것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01>
등탑암
맑은 날은 대마도까지 환히 보이는 해운대 언덕 위에 불 켜진 등탑이 하나 서 있다. 등대가 길 잃은 뱃사람들에게 북극성 노릇을 하듯 등탑은 참 삶의 길로 나그네를 인도하는 난야(蘭若)인 셈이니 곧 절집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암(庵)'이다.숙일스님의 등탑암에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00>
부용
저 산속에, 저 숲속에 내가 지나온 길이 나 있을 것이다. 그 길 위에 나를 싣고 온 자동차 바퀴 자국도 있을 것이다. 그 자국 위에 누군가 알코올로 새겨놓았을 것이다."나는 부용芙蓉으로 간다"라고.그렇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내가 온 길을 알려놓고서 부용에 머물렀다.사실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99>
산에서
산에서 산이 내려온다고 한다.그 말을 전한 사람은 죽었다.죽은 그 사람의 말을 타고 산에서 산이 내려왔다. 창이 뚫리고 벽이 무너지고 지붕이 내려앉았다.눈과 혀와 성기가 뽑히고 콧구멍과 귓구멍과 똥구멍에는 말뚝이 박혔다.물에서 물이 올라온다고 한다.그 말을 전한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98>
일본
작년 초까지 세 번을 다녀왔다. 일본엔.4332 년(1998년) 겨울 가와사끼(川崎) 시의 초청으로. 4333년(1999년) 봄 교토(京都) 장래세대를 위한 재단 초청으로 '공공성(公共性) 세미나'에. 그리고 4334년(2000년) 봄, 교포잡지 《새누리》 초청의 한일 세미나를 위해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97>
삼남민족 네트워크
나의 관심은 또한 그무렵 만사천 년 전의 마고(麻姑)로부터 천칠백여 년 전의 고구려와 고려에 이르기까지의 동이(東夷)의 예술적 상상력과 역사의식과 종교철학적 사상이 어떻게 현대에 되살아나 미래의 아름다움과 세계사와 철학을 바꾸느냐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기에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96>
흰 그늘
달이 천심(天心)에 이르렀나보다.나의 회상은 어쩌면 '흰그늘'을 천심으로 하는 달의 한 주기(週期)였는지도 모르겠다.시인에겐 그 시학의 유일화두(唯一話頭)가 바로 천심이다. 예컨대 고독이라든가, 그리움이라든가, 민중이라든가, 님이라든가…… 내겐 '흰그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95>
율려
서기 2003년쯤이던가 2004년쯤이던가, 전북 전주시 모악산(母嶽山) 자락 구릿골(銅谷)에 있는 김형렬(金炯烈)가의 귀퉁이방에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선생이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앞으로 오는 후천시대에는 율려(律呂)가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율려가 무엇인가?율려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94>
치우
어느 날 중앙일보 문화면 톱.초호활자다."전쟁터지다!"그보다 조금 작은 활자다."한국과 중국의 필사적 세계관 전쟁 탁록대전 발발하다.그보다 조금 더 작은 활자다."유목과 농경의 문명통합을 지향하는 한국의 고조선족 치우(蚩尤)와 유목을 청산하고 농경일변도로 혁신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