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94>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94>

치우

어느 날 중앙일보 문화면 톱.

초호활자다.

"전쟁터지다!"

그보다 조금 작은 활자다.

"한국과 중국의 필사적 세계관 전쟁 탁록대전 발발하다.

그보다 조금 더 작은 활자다.

"유목과 농경의 문명통합을 지향하는 한국의 고조선족 치우(蚩尤)와 유목을 청산하고 농경일변도로 혁신하려는 중국의 화하족(華夏族) 황제(黃帝) 사이의 74회에 걸친 대전쟁이 드디어 개막되다."

동북아시아 상고대의 신화와 역사에서 현대적 의미를 탐구하려는 우리의 중앙일보 문화운동 '신시(神市)' 기획은 이렇게 첫 활자를 뽑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신시 연구가 김영래(金永來), 상고대 사학자 박희준(朴喜俊), 이대박물관 학예실장인 고고학자 나선화(羅善華), 현대 철학자 이정우(李正雨) 씨와 동서양철학을 통합하려는 김상일(金相一) 선생과 나, 그리고 중앙일보측에서 당시 문화국장 이근성(李根成) 씨와 지금의 문화전문기자 이경철(李京哲) 씨 등이 참가하여 십수회의 연구모임을 가졌었다.

고조선의 신화를 역사로 실증하는 과정은 다만 실재성 여부에 대한 고증에 한정된 일이 아니라 그 역사적 존재가치, 그 세계관과 문화의 핵심을 살핌으로써 하나의 새롭고 탁월한 해석학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고 주장이었다.

예컨대 '신시(神市)'를 상식선에서 '신성공동체' 따위 종교적 해석만을 내려가지고는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는 것이니 가령 '신(神)'의 우주적 생태적 인간학적 관점과 '시(市)'의 사회적 경제적 시장적 접근을 연결시키는 포트라치와 비슷한 '계(契)'꾼들의 호혜시장(互惠市場)으로 볼 수는 없는가? 또 화백(和白)의 경우에는 전인류가 꿈꾸어 마지 않는 전원일치제적인 복합적 직접민주주의 정치의 원형으로 그 가설을 세울 수는 없는가? 그리고 풍류(風流)를 우주생명의 생태학적 사이버문화로, 솟대를 그 문화의 디지털적 교육장이요 파급처요 유목민들의 생명문화적 거점으로 인식하고 증명할 수는 없는가? 요컨대 풍류는 새 시대가 요구하는 "몸속에서의 디지탈과 에코의 결합"이 아닐까?

한국과 중국의 상고문화가 만나는 하나의 모태문명(母胎文明)은 무엇이며, 어디에서부터 동이족(東夷族) 문화와 화하족 문화가 서로 갈라지는가? 서로 갈등하는가? 또 연속 공존하는가? 장기간 대립 유통하는가?

이 분기점과 그 표출점이 바로 4500년 전의 치우와 황제의 탁록대전이 아닌가? 그것이 만약 고조선 동이족의 유목-농경통합문명 지향 대 중국 화하족의 반유목적 농경일변도 문명지향의 싸움이라면 바로 그 세계관, 가치관에서 고조선과 한민족의 기층문화를 찾을 수 있겠고 바로 그 지점에서 서구인들이 지금 찾고 있는 유목일변도의 도시문명 지향이나 환경운동가들과 반세계화주의자들과 기타 지식인들의 농경일변도의 생태적 농업문명 지향을 공존 동거통합시키는 유목 사이버적인 농업에콜로지의 새로운 문명통합 지향, 새로운 세계사적 비젼을 읽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또 북방계 대륙문화와 남방계 해양문화의 교류와 융합, 하늘과 땅, 영성과 지성 대 감성과 욕망 사이의 결합을 기초로 한 여러 부족들의 가치관의 연합의 역사가 가진 오늘날의 의미, 동북아 및 세계물류와 문화교류의 허브로서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기초관점에서 모든 문화와 사상과 철학과 역사를 다시 보는 동북아시아의 일대 문예부흥을 일으키고, 그에 터해서 새로운 세계적 문화혁명을 탄생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한 문화혁명을 통해서라야 비로소 프랑스혁명의 그 정치경제적 조잡성을 넘어선 예술유희적 인간존엄의 생명과 영성의 혁명이 가능하고 그때에라야 비로소 동서양의 사상적 통합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관점은 여기에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식인들과 사학계는 이병도 씨 이래의 식민사관, 반도사관, 초보적 실증사관을 채 벗어버리지 못한 중에 중국은 이미 여러 해 전 인민문화회의를 열면서까지 자기들의 삼대 조상으로 황제(黃帝)는 물론이고 동이족의 조상으로 알려진 신농(神農)을 끌어들였으며 나아가 자기들의 신화적 공포의 대상인 치우(蚩尤)까지도 끌어들여 북경 인근의 삼조당(三祖堂)이란 건물에 모셔놓는 이변이 돌발한 것이다. 이것은 시간의 강탈이요 역사의 병탄이며 정신의 착취다. 하긴 고구려까지도 저희 조상이라고 우겨대는 중국인들이고보면 무슨 짓은 못하랴! 그러나 조상과 역사를 빼앗긴 것은 우리의 잘못이고 우리가 못난 탓이지 남을 욕할 일이 못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일은 더 이상 진행되지를 못했다. 우리 기획을 승낙, 지원해준 중앙일보 홍석현(洪錫炫) 회장의 구속과 우리 팀 내부의 논쟁이 원인이었으니, 아깝다! 다만 훗날 다른 기회에 보다 더 훌륭한 기획으로 다시 살려볼 꿈만은 버리지 않고 있었으니, 그것은 나의 동이적 상상력의 여러 원천 중의 하나였었으니, 아아! 붉은 악마들이 한국 축구대표팀과 그 응원단의 월드컵 로고로 새빨간 치우를 그린 텔레비전 장면을 보고 듣고 나의 놀라움, 나의 기쁨, 나의 감동과 나의 새로운 기획의 용솟음이 어떠했겠는가! 이것이 어디 나만의 일이던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