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2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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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위한 죄로 파직된 통제사를 추억함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 김영 통제사 기리는 비석이라도 있어야
동피랑에서 남망산(72미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길이 있지만, 나그네는 '덤바우길'을 그중 편애한다. 동피랑 2길 나무 계단을 내려가면 동네 구멍가게처럼 주택가에 들어선 쌍둥이 꿀빵집이 나타난다. 꿀빵집 옆길을 따라 아래로 이어진 길이 덤바우길이다.
강제윤 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팔만대장경을 보호한 천 년의 칠, '옻칠'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31>
팔만대장경을 보호한 천 년의 칠, 옻칠 최고의 약술 옻 막걸리 옻을 타는 사람들은 옻 이야기만 들어도 가렵다고 한다. 하지만 나그네가 이 나라 곳곳을 주유하며 마셔본 술 중에서 단연 으뜸은 경북 청도의 옻 막걸리였다. 옻나무 수액을 다려서 우린 물로 빚은 막걸
거북선이 정박하던 강구안에서 용왕굿 열리던 날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 <30> 용왕제와 강구안
태평동에 사는 무당 할머니가 '용왕제'를 지내시는 중이다. 사천에 사는 배씨 집안을 위해 용왕님께 제사를 올린다. 배씨 집안에서는 고깃배도 부리고 사업도 한다. 바다에서 안녕과 풍어, 사업 번창을 위해 용왕제를 지내는 것이다. 요왕대신은 용왕이다. 용왕님께
마시멜로처럼 사르르 녹는 연탄불 '꼼장어'구이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 <29> 바다의 갱, 장어
잘 구운 '꼼장어'를 접시에 담아 내주는데 양도 푸짐하지만 그 맛이 환상적이다. 지금껏 먹어본 '꼼장어'는 '꼼장어'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차원의 맛이었다. 굵은 산 '꼼장어'를 얇게 잘라서 구워냈다. 지윤이는 그 맛을 마시멜로 같다고
집단이 꾸는 꿈 '신화', 늙지도 않는다!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28>통영의 서화담, 백운선생
서화담은 조선 최고의 도사다. 전우치의 도술 스승일 정도로 도력이 높았다. 물론 조선 시대 소설 <서화담전>과 <전우치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소설 속의 도사 서화담은 현실 대중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하나의 신화가 됐다. 마치
탈해왕의 후예, 통영의 마지막 대장장이들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27> 통영 도심의 대장간
삼도수군 통제영 12공방에서 비롯된 장인들의 고장답게 통영에는 아직도 도심 한복판에 대장간이 남아 있다. 대장장이가 쇠를 다루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도시가 몇이나 될까.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좋아하던 대장간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통영 중앙 시
정신줄 놓게 하는 맛, 바람둥이 물고기 '볼락'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 <26> 볼락을 사랑하는 통영 사람들
통영 사람들은 볼락을 '뽈락' 혹은 '뽈라구', '뽈래기' 등으로 부른다. 통영도 '토영' 혹은 '퇴영'이라 한다. 통영을 통영이라 발음하면 외지인이라 판단한다. 토영이나 퇴영이라 해야 비로소 통영 사람인 것이다. 입맛 또한 '
며느리 한테도 안 주는 5월의 이것은 무엇?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25> 통영의 대세, 멍게 비빔밥
봄이면 통영 바다에는 꽃이 핀다. 뭍에서 동백과 매화와 벚꽃이 흐드러질 때 통영 바다 곳곳에도 붉은 꽃이 화려하게 피어난다. 그 꽃의 이름은 멍게 꽃이다. 멍게 수확이 시작되는 봄이 되면 양식장에서 수확한 멍게를 어선들이 끌고 오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바다 위에 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랑한 화가, 전혁림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24>
노무현 대통령 재직 시절인 2006년, 청와대 벽면에 그림 한 점이 새로 걸렸다. 통영 앞바다를 그린 <한려수도>란 대작이다. 작가는 당시 나이 구십이 넘은 노 화백이었다. 화백이 젊은 시절 그린 그림이 아니라 구십 노구에 그린 신작. 그 그림의 작가가 전혁림(1915-2
박경리는 왜 50년간 고향을 찾지 않았을까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 <23> 박경리와 통영, 그 애증의 세월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10.28 ~ 2008.5.5) 선생은 살아생전 고향 통영을 떠난 뒤 50년 동안이나 고향을 찾지 않았다. 외국에 나가 살았던 것도 아니고 수몰민이나 실향민처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처지도 아니었는데 선생은 어째서 50년 세월, 단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