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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줄 놓게 하는 맛, 바람둥이 물고기 '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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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줄 놓게 하는 맛, 바람둥이 물고기 '볼락'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 <26> 볼락을 사랑하는 통영 사람들

죽기 전에 꼭 맛봐야 할 음식, 볼락

일본의 사진가이자 여행작가인 후지와라 신야의 어머니가 임종 직전 병상에서 유언처럼 남긴 마지막 말은 볼락 이야기였다. 가족들이 달려갔을 때 의식이 몽롱한 상태였던 어머니는 그 와중에도 "냉장고에 있는 볼락이 상하니까 빨리 먹어야 해" 하신다. 죽음 앞에서도 남편에게 요리해 주려고 사다 냉장고에 넣어둔 물 좋은 볼락이 상할까 걱정이 됐던 것이다. 후지와라 신야의 아버지는 통영 사람들처럼 볼락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어머니의 걱정에 아들인 후지와라 신야는 "냉장고에 넣어 둔 볼락은 상하기 전에 먹을 테니까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킨다.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는 임종을 맞이한다. 정작 후지와라 신야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람이란 세상에 남긴 미련이 없어져야만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의미였지만, 나는 그보다 볼락에 관심이 갔다. 통영에 온 뒤 통영 사람들의 유난한 볼락 사랑 때문이었다.

내 고향에서는 볼락을 그리 귀한 생선으로 쳐주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처음 통영에 정착했을 때 이 고장 사람들의 유별난 볼락 사랑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이제는 이해가 간다. 내가 어릴 적 고향에서 먹던 마른 장어의 맛을 두고두고 못 잊어 지금도 남도에만 가면 마른 장어 구이를 찾는 것과 같은 심리이리라. 누구든 죽기 전에 맛보고 싶은 음식을 딱 한 가지만 고르라면 통영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아마도 볼락일 것이 분명하다.

▲ 볼락구이는 통영 사람들이 정신줄을 놓게 만드는 맛이다. ⓒ이상희

통영 사람들은 볼락을 '뽈락' 혹은 '뽈라구', '뽈래기' 등으로 부른다. 통영도 '토영' 혹은 '퇴영'이라 한다. 통영을 통영이라 발음하면 외지인이라 판단한다. 토영이나 퇴영이라 해야 비로소 통영 사람인 것이다. 입맛 또한 '뽈래기'를 최고로 쳐야 비로소 토종 '토영' 사람이다. 수많은 생선들 중에서도 통영 사람들의 볼락 사랑은 각별하다. 광주 사람들의 홍어나 제주 사람들의 자리돔 사랑에 비견할 만하다.

한국 해역에는 대략 15종류의 볼락이 살고 있다 한다. 볼락은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이다. 뽈래기, 뽈락, 감성볼락, 꺽저구, 열갱이, 우레기 등 수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 볼락은 망상어나 쏨뱅이처럼 알이 아니라 직접 새끼를 낳는 태생 어류다. 볼락은 보통 밤에 먹이를 얻으러 갔다가 새벽에 집으로 돌아온다.

오해받기 좋은 그 밤 나들이 습성 때문에 바람둥이 물고기로 불리기도 한다. 완도 지방에서는 딱돔(금풍쉥이)을 샛서방 고기라 부른다. 워낙 맛이 좋아 본서방 몰래 숨겨 놨다가 샛서방한테만 준다는 뜻에서 샛서방 고기다. 감칠맛 나는 딱돔 구이를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은 그 말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우리가 흔히 보는 볼락은 대부분 손가락만큼이나 작은 물고기들이다. 어떤 때는 멸치만큼이나 작은 것들도 버젓이 시장에 나온다. 수족관을 봐도 대부분 피라미처럼 자잘한 볼락밖에 보이지 않는다. 워낙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다 보니 다 자라기도 전에 잡혀 오는 것이다. 너무 작은 것을 잡는 것은 불법이다. 자랄 틈을 안 주고 잡아들여서 그렇지 볼락이 원래 그리 작은 물고기는 아니다. 평균 20~30㎝, 큰 것은 42㎝까지 자라기도 한다.

밥도둑 볼락젓갈…"달콤해서 쌀강정 같다"

▲ 통영의 밥도둑, 볼락젓갈. ⓒ이상희

담정 김려(1766~1821)의 <우해이어보>에도 볼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해이어보>는 <자산어보>보다 11년 일찍 저술된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다. 김려도 정약전처럼 우해(진해)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진해 바다에 서식하는 72종의 어패류를 관찰해서 기록했다. 진해는 통영과 가까운 곳이니 <우해이어보>는 통영의 볼락을 이해하는 데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다. 김려는 볼락을 '보라어'라 기록하면서 진해 사람들은 '볼락어'나 '보락'으로 부른다고 썼다.

"보라어는 모양이 호서 지방에서 나오는 황석어와 비슷한데, 아주 작고 색이 엷은 자주색이다. 이곳 사람들은 보라어를 보락이나 볼락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방언에 엷은 자주색을 보라라고 하는데, 보는 아름답다는 뜻이니, 보라라는 것은 아름다운 비단이라는 말과 같다. 보라라는 물고기는 반드시 여기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당시에 진해에서 볼락은 귀한 물고기였던 듯하다. 그래서 김려는 진해 어부들이 그물로 불락을 잡지만 많이 잡지는 못한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거제도에서는 많이 잡혔던가 보다. 해마다 거제도 사람들이 볼락을 잡아 젓갈을 담은 뒤 수백 항아리씩 배에 싣고 진해로 와서 포구에서 팔았고 그 돈으로 생마를 사간다고 했다.

이 기록으로 추측건대 통영의 어부들도 볼락으로 젓갈을 담아 다른 지역에 팔고 필요한 물품을 구해오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통영 사람들은 볼락젓갈을 최고로 친다. 볼락젓갈이 통영에서는 밥도둑이다. 김려는 거제도 볼락젓갈 맛이 "조금 짭짤하지만 달콤해서 마치 쌀강정 같다. 밥상에 올려놓으면 윤기가 나고 색깔이 더욱 좋다"고 했다. 김려도 볼락젓갈 맛에 반했던 것이 분명하다.

손암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에도 볼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박순어(薄脣魚)가 있는데 그것의 속명을 발락어(發落魚)라고 한다 했다. 발락은 볼락을 말한다.

"모양은 검어(黔魚:검처귀)와 유사하나 크기는 조기만 하고 빛깔은 청흑색이고 입은 작고 입술과 아가미는 아주 엷으며 맛은 검어와 같다."

검어, 검처귀는 우럭, 곧 조피볼락을 말한다. 언뜻 보면 우럭과 볼락은 색의 차이만 있지 모양은 비슷하다. 맛도 거의 비슷하다.

볼락이라면 정신줄 놓는 통영 사람들

▲ 시원한 맛이 일품인 볼락김치. 상큼한 무의 맛은 예술이다. ⓒ강제윤

통영의 생선 맛이 좋은 것은 통영 근해의 물살이 빨라서 어족들이 군살이 찌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대부분의 생선이나 조개류는 계절에 따라 맛 차이가 크다. 채소나 과일처럼 바다 음식에도 제철이 있다. 그러니 맛있는 해산물을 먹으려면 제철에 찾아가야 한다. 여름에 통영 와서 굴을 찾는 것은 바보짓이다. 굴은 찬바람 불기 시작해야 맛이 든다. 하지만 철이 없는 생선이 있으니 바로 볼락이다.

통영에서는 볼락이 계절과 관계없이 사철 변함없는 맛있다고 생각한다. 살이 오르는 산란 철이 좀 더 맛있겠지만 통영 사람들이 워낙에 볼락을 유별나게 사랑하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먹어본 바로도 볼락은 겨울과 봄에 좀 더 차지고 고소한 맛이 더 하다. 통영에서도 과거에는 볼락이 가장 흔하고 싼 생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싼 생선이 됐다. 워낙 잡히는 양이 적으니 그렇다. 그럼에도 통영 사람들은 볼락만 찾는다. 외지 나가 사는 친구가 통영에 오면 반드시 볼락을 먹는다. 볼락을 먹으면서 옛이야기를 한다. 볼락은 생선이 아니다. 추억이다.

볼락은 어떻게 조리해도 맛있지만 나는 회나 구이를 선호한다. 구이는 너무 잘거나 크지 않은 것이 좋다. 너무 큰 것은 뼈가 억세서 구이보다는 탕으로 많이 끓인다. 통영의 섬 하노대도 민박집에서 갓 잡아 온 볼락회를 먹었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달고 고소하고 쫄깃하고 거의 회 맛의 완결판이었다. 신선도도 한몫했을 것이다.

볼락은 회뿐만 아니라 구이, 탕, 조림, 김치까지 다양하게 조리된다. 그중에서도 겨울에 담는 볼락김치는 통영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토속 음식 중 하나다. 김장을 할 때 무를 큼지막하게 썰어서 볼락을 넣고 김치를 담근다. 그 맛에 통영 사람들은 자주 '정신줄'을 놓는다. 나도 처음에는 시장에서 파는 볼락김치를 사다가 먹어보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일단 볼락이 너무 짰다. 하지만 집에서 직접 담근 볼락김치를 맛보고는 그 고소하면서도 시원한 맛에 반하고 말았다.

통영의 거의 모든 횟집에서는 볼락 요리를 내놓는다. 하지만 맛은 크게 차이가 없다. 워낙 싱싱한 재료로 요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볼락 요리를 다 맛있다고 생각할까? 거기까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자리나 홍어처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영 사람들의 볼락 맛 자랑에 과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상 담백한 볼락구이만은 맛있다는 평가가 대체로 일치한다.

□ <통영학교> 5월 답사, <섬학교> 6월 답사 안내

강제윤 시인이 이끄는 인문학습원 <통영학교>가 5월 답사를, <섬학교>가 6월 답사를 떠납니다.

통영학교 5월 답사
일시 : 17일(석가탄신일), 18일 / 장소 : 통영 일대
☞ 자세한 답사 내용 보기 :"청보석 바닷길 따라...제철 해물천국으로"

섬학교 6월 답사
일시 : 1일~2일 / 장소 : 매물도·소매물도
☞ 자세한 답사 내용 보기 : 한려수도의 비경 소매물도·매물도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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