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를 통한 실증분석으로 노동 진영의 이데올로기에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노동시장전문가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경제학 박사)은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현재 지나친 노동유연성에 따른 사회불안 증대와 분배의 불평등에서 비롯된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3가지 정책 제언을 해 관심을 모았다.
***제안1, 수량적 유연성 확대가 아닌 기능적 유연성 증대로**
김 소장의 첫 번째 정책제언은,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성을 제어하는 대신 기능적 유연성을 증대하라는 것이었다. 수량적 유연성이란 고용조정, 비정규직 확대, 아웃소싱 등의 방법을 통해 고용의 수를 조절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반면, 기능적 유연성은 노동자의 교육훈련, 작업조직 재편 등을 통해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김 소장은 "지금까지 정부 정책은 수량적 유연화 증대로 집약할 수 있다"며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효율성을 의미할 수 있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고용과 생활의 불안정을 의미한다"며 "수량적 유연화 증대가 노동자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운용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저해함을 물론 사회불안마저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기능적 유연성은 노동자에게 고용안정과 생활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고, 기업에게도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의 원천을 보장할 수 있다"며 "더욱이 고성과-참여적 작업시스템 전환으로 한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은 '사람이 경쟁력의 원천'이란 전제 아래, 기업의 전략을 '인건비' 절감을 통한 단기수익 극대화에서 사람을 중시하는 장기수익 극대화로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며 "노조도 '사람중시' 경영철학, 노조의 의사결정 참여 등을 전제로 (기업의) 기능적 유연성 증대 노력을 적극적으로 평가해 고용과 생활의 안정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안2. 무작정 일자리 늘리기가 아닌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두 번째 정책제언은, 일자리 창출의 문제로 비정규직·저임금 일자리가 아닌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었다.
김 소장은 지난해 2월 정부가 민주노총이 배제된 상태에서 맺어진 '노·사·정 일자리 만들기 협약'에 대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선언한 점은 긍정적"이라며 "그러나 실제 운용 과정에서는 '앞날을 기약하기 힘든 맹목적인 일자리 늘리기로 전락했다"고 평가했다.
김 소장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청년실업문제와 중소영세업체 인력난이 병존하는 등 인력수급구조 불일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양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청년층의 학력수준은 높아졌지만, 이들의 눈높이에 걸맞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중소영세업체·비정규직 일자리를 갖는다고 해서 더 나은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닐뿐더러, 오히려 비정규직 일자리는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함점으로 기능한다"며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정책기조로는 청년실업 문제와 중소영세업체의 인력난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해결책은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막고 저임금을 일소하는 등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만이 청년실업과 중소영세업체 인력난이라는 인력수급구조 불일치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안3.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자**
세번째 정책제언은,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와 형평성 제고였다.
김 소장은 "최근 5년간 경제지표를 확인해 보면 경제성장이 파이는 키울 수 있지만, 곧바로 소득분배 구조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이는 현재 우리 사회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가 깨어져 있음을 시사한다"고 진단했다.
김 소장은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그에 따른 소득분배 구조악화를 기정사실 즉 불가항력적 힘에 의한 결과로 받아들여 사회 안전망 구축 등 사후적 보완책에 초점을 맞춰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사후 보완 중심의) 정부 정책은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고 단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다"며 "특히 빠른 속도로 악화하는 노동소득 분배구조를 방치하면 수많은 노동자가 저임금과 빈곤의 덫에 빠져 설령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한다고 하더라도 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 제어, 최저임금 수준 현실화, 연대임금정책, 연대복지정책, 교육훈련시스템과 연계된 숙련급 체계형성, 산업별 단체교섭 초진과 단체협약 효력확장 등의 정책을 통해서만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고 소득분배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협약정치 활성화 해야**
이같은 3가지 제언을 한 김 소장은 '사회협약 정치'의 활성화를 강조했다. 사회협약 정치는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사관계, 노동정책 등에 대해 일종의 '룰'을 만들어 제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사회협약 정치는 지난 2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폭력에 좌초될 정도로 노동계 내부에서 이견이 큰 주제로, 사회협약 정치 반대편에는 조직화 모델 정치(조직 활동가들이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조직에 주력해 노조의 대표성을 확장하고, 이를 토대로 정부의 노동정책에 개입하는 전략을 의미)가 존재한다.
김 소장은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화하고 산별 교섭 내지 노사관계 형성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사회혁약 정치에 주목해야 한다"며 "실제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노조운동은 사회협약 정치를 통해 노동운동 활성화에 유리한 제도적 장치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이어 "사회협약정치를 통해 적절한 제도적 장치를 확보한다면 그만큼 조합원 동원,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시민사회운동과의 연대를 소홀히 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러나 현재 노동운동은 이런 문제점을 논하는 것조차 한가롭게 느껴질 정도로 매우 급박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정규직 고용과 차별의 확대, 노동계급 내부의 불평등 심화, 기업별 노사관계의 부작용 확대, 조만간 논의될 노사관계로드맵에서 야기되는 노사관계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이 현실화 혹은 예정돼 있다"며 "하지만 노조는 이같은 현실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만한 뚜렷한 제도적 공간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며 사회협약정치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요컨대 김 소장의 주장은 노동운동이 처한 급박한 상황 아래서 정부 정책에 주도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회협약정치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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