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21세기, 굶어 죽지 않고 더워 죽는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21세기, 굶어 죽지 않고 더워 죽는다

[초록發光] 늦기 전에 에너지복지법 제정해야

가난을 얘기할 때, 춥고 배고픈 설움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제는 기후 변화로 계속되는 폭염과 열대야로 더워 잠 못 자는 설움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특히 경제적 육체적 취약 계층에게 추위와 더위가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2005년 한 여중생이 단전으로 촛불을 켜고 잠자다 화재로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에너지 기본권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이래, 해마다 유사한 사건 사고가 반복되고 있지만, 정작 취약 계층의 에너지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제도는 여전히 정비되지 않았다.

2050년까지 폭염으로 서울에서만 매년 최소 650명 사망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2050년까지 여름철 폭염으로 서울에서만 매년 최소 평균 65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2015년에서 2050년까지 매년 평균 최소 약 651명에서 최대 1100명의 65세 이상 고령자가 폭염으로 초과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빈곤으로 인한 냉·난방 부족으로 거주자의 건강이 훼손될 수 있으며, 특히 만성적인 감기, 기관지염, 심장 질환과 같은 질병으로 시달리거나 악화될 수 있다.

이에 따라서 장애인, 만성 질환자, 노인 등이 있는 가구는 더욱 취약한 상태로 내몰릴 수 있다. 안산 지역의 한 빈민 운동가는 폭염과 한파 등 기후 변화로 지역 노점상이 1년에 3개월가량은 영업을 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라며 취약 계층의 기후 적응 정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는 적응 능력이 떨어지는 노약자와 저소득층 등 취약 계층에게 더욱 가혹하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빈곤이란 특정 가구가 냉·난방을 유지하는데 있어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태에 처한 경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정부는 에너지 빈곤층을 '소득 중 광열비 지출 비중이 10% 이상인 계층'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추산한 결과 130만 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에너지 복지는 "모든 국민들이 소득에 관계없이 건강하고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 수준의 에너지 공급을 보장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에너지 빈곤은 저소득-노후 주택-가격 상승 때문

ⓒ연합뉴스
그렇다면, 에너지 빈곤의 원인은 무엇인가? 에너지 빈곤의 원인으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손꼽히는 것은 '저소득'이다. 실직과 건강 문제 등으로 인한 근로 능력 부족, 가구원 중에서 보호 대상자가 있어서 겪는 노동 기회 부족, 제한된 금액의 연금 및 급여로 인해서 에너지를 구입하는데 필요한 비용 지불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둘째, 건축 연도가 오래되었다든지 하는 이유로 단열 상태가 부실한 노후 부실 주택에 거주할 경우에 에너지 빈곤을 초래할 수 있다. 더구나, 냉·난방 기기도 노후화되어 같은 에너지를 사용하더라도, 그 효과가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 구조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

셋째, 원유 가격의 상승 등으로 인하여 에너지 가격 자체가 비싸질 경우에도 에너지 빈곤이 악화될 수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저렴한 도시 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의 저소득층의 경우, 등유 보일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유가로 인해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4년간 가스 요금을 제때 내지 못해 가스 공급이 중단된 가구는 23만3665가구에 달했다. 또 같은 기간 750만 가구는 전기 요금을 제때 내지 못해 전기 공급이 중단됐다.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가스 공급 중단은 5만5803건이었고, 단전은 16만5000건(516억 원)이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 2010년 한 해 동안 삼성전자 등 10대 기업에 대한 전기 요금 지원액은 4387억 원에 달했다. 대기업에 대한 산업용 전기 요금 혜택만 없애도, 정부가 추산하고 있는 에너지 빈곤층 130만 가구에 대한 전기, 가스 등의 무상 공급이 가능하다.

정기 국회에서 에너지복지법 제정해야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시기, 에너지 기본권 혹은 에너지 복지와 관련한 공약이 빠지지 않는다. 또 산업통상자원부는 관련 정책을 추진한다 하고, 국회는 18대 이래 현 19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관련 법안을 다루고 있다.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논의 중인 에너지복지법은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통과하여, 지난 8월 16일 관련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로 넘어 갔다. 절차상 9월부터 시작되는 정기 국회에서 제도화될 가능성이 있지만, 여전히 복병은 남아 있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문제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높고, 정부도 에너지 빈곤층을 없애겠다고 하는 마당에, 에너지복지법이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프랑스는 전력과 가스 공급사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해, 취약 계층에게 생활 필수 에너지를 무상으로 공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또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빈곤층에게 50킬로와트시의 전기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무상 기본 전기 정책을 펴고 있고, 태국(타이)은 월 90킬로와트시 이하를 사용하는 모든 가정에 전기를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에너지 빈곤 없는 따뜻한 에너지 복지 실현'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에너지 빈곤층에게 전기 가스 요금을 현재보다 2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하고, 기초 생활용 전기 사용량을 보장하며, 국민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을 위한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공급형' 에너지 복지 정책이라 볼 수 있고, 대개 동절기 에너지 사용을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에너지 빈곤의 원인은 저소득과 노후 주택, 비효율적인 가전 기기, 에너지 가격 상승 등에 있다. 그렇다면, 그 대책은 '효율형' 에너지 복지 정책이어야 한다. 즉, 주택 에너지 효율화와 고효율 가전 기기 보급, 그리고 생활 필수 에너지의 무상 공급으로 하는 등 근본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폭염과 같이 취약 계층의 여름철 에너지 복지 정책은 주택 에너지 효율화 등을 통해 적은 에너지로 보다 쾌적한 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복지 효과뿐만 아니라, 집수리 과정에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에너지 소비가 줄어 온실 기체를 감축하는 환경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지난 3년 동안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사이의 부처 갈등으로 국회에서 먼지만 쌓아 왔던, 에너지복지법이 다가오는 정기 국회에서 제정되어, '에너지 빈곤 없는 따뜻한 에너지 복지'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