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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김대중의 핵무장론, 설익은 민족주의 자극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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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김대중의 핵무장론, 설익은 민족주의 자극말라

[기고] 1950년대로 돌아갈 각오를 묻는가?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역으로 말하면, 핵 폐기 조건으로 북한이 내건 북미관계 정상화와 평화체제로의 전환 및 경제적 지원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낮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집트 사태로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정책은 선호도 면에서 더욱 뒷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는 2008년 12월 회담을 마지막으로 2년여 넘게 대화의 문이 열리지 않고 있는 6자회담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그동안 개최된 6자회담 협상에서 드러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회담 참여국들(주로 한국과 미국)의 경제 지원 이행 여부를 핵 포기와 연계해 짧은 기간 내에 최대한 지원을 얻어내는데 주목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 개발해 놓은 핵무기를 포기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구소련 시절 배치된 핵무기를 반납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의 사례,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핵 개발 자체를 포기한 리비아의 일화는 이제 국제정치학 교과서에나 언급되는 옛 이야기가 되었다.

따라서 20년 이상 핵 무장을 추구해 온 북한이 앞서 언급된 국가들이 취해 온 길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폭풍 질주'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가운데, 일각에서 거론되는 남한의 핵무장화 논리가 설익은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순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토네이도로 발전할 수 있다. 아직은 소수에 불과한 이들은 남한 핵무장의 정당성을 인화성이 높은 민족주의와 교묘하게 결부시켜 이를 공고화하려는 것이다. 핵무기로 인해 국가의 존폐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몰려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무조건 '대북협상의 허상에 매달리는 것'이야말로 자기기만이고 이율배반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그러나 절반만 옳다.

북핵 위협이 노골적으로 증폭되어 가는 마당에 남한의 핵무장론을 동네 강아지 보듯 무시하듯 가볍게만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시설 건설이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에 이제는 동의하지 않는다. 에너지 해결 등 경제적 이익 해결이 급선무였다면 북한은 핵시설 개발을 유보하고 남북간 신뢰구축에 더 집중했어야 옳았다. 실기(失機)한 셈이다.

동시에 북핵 문제는 우리가 보다 자주적이고 접근해야 할 중대한 의제이며 특정 강대국의 일방에 의해 국가안위가 달린 정책이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 제고되어야 한다. 미국은 분명히 한반도에서 비핵화정책과 핵(우산)을 통한 억제라는 두 가지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일례로, 1991년 11월 8일 한국정부가 발표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선언'이 전자에 해당하며, 1992년 7월 24일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스카시가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에 대한 핵우산을 계속 제공할 것이라고 발언한 이후 변함없이 견지되는 확장억제력 정책이 후자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비용과 이익을 계산하지 않은 채 감성적 차원에서 우리의 핵무장을 공론화 하는 것은 자칫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그래서 곧 후회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남한의 핵보유 논거가 북핵을 궁극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종결자' 노릇을 할 것이라는 초박막(超薄膜) 가설이 정확히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1950~60년대 이전으로 되돌아갈 각오가 되어 있는가'라는 물음에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그렇다'라고 답해야 한다. 이는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 시절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왔다.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민주정치 체제에서 어느 권력자가 자신의 정권을 담보로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겠는가? 핵무장은 극단적으로 말해 북한과 같이 장기집권 독재체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최첨단 핵감시 첩보위성들이 한반도 상공을 24시간 1년 365일 모니터링하는 상황에서 A.Q. 칸 박사(사실은 영국 식민지하의 인도 보팔에서 1936년 출생했으나 인도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 16세가 되던 1952년에 형제들과 함께 앞서 1947년 유혈충돌로 인도에서 분리된 파키스탄으로 옮겨감)와 같은 과학자가 남한에서 출현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핵무기를 지닌 북한이 가고자하는 길의 끝이 어딘지를 안다면 붕괴를 유도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부적절하다. 대신, 무너져가는 김정일 정권을 어떡해서든지 설득해 자기파멸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장기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이러한 비군사적 요인과 외교의 역할,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의 선의의 결단과 노력이 투영된 자유주의적 시각은 미래 통일한국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남과 북 주민들간의 이질성이 '질서있는 통합'으로 순조롭게 이행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게다가 남한의 핵무장에 반대하는 것이 곧바로 북핵 무해론과 직선으로 연결 지을 필요는 없다. 북한의 핵은 엄연히 실존하는 최고의 위협이기에 최대한 빨리 이를 무력화 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이를 위해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실제로 핵을 포기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정치, 경제, 외교, 군사적 이익을 좀 더 선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동시에 북한으로 하여금 폐기하지 않을 수 없는 여건을 밀도 있게 조성해 나가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자 전술이다.

미국은 그러나 한반도에서 적절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한미관계의 이완을 방지하고 나아가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견고하게 지키는 도구라고 판단해 왔다. 따라서 핵무기확산방지체제를 유지하고 한반도에서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어떡해서든지 방지하기 위해 북한에 대해 강온 양면 전술을 적절히 섞어 구사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대북 영향력을 점차 강화하고 있는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체제 안정이 우선임을 강조하면서 유달리 핵에 대해서는 관용적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핵 해결방식에 대해 미국과는 달리 대국주의 외교를 내걸고 독자적인 길을 가려는 의도로 읽혀질 수 있다. 점차 쇠퇴해 가는 미국의 힘만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다시 말해, 북핵 문제의 '터미네이터'는 없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2003년 8월 처음으로 시작된 6자회담은 북한 핵 폐기의 서막을 알리는 회의체였다. 이는 마치 수술 받기를 거부하는 환자를 겨우 달래어 수술실에 눕힌 격이었다. 환자 함께 수술실에 들어와 있는 한·미·중·일·러 의사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환자의 건강상태에 대해서 의견 일치가 되질 않아 여태껏 수술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불안감을 느낀 환자는 수술실에서 뛰쳐나와 독자적 행보를 가려하고 있다.

체제 유지를 위해 마지막 수를 두고 있는 북한이 쉽사리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예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그리고 핵무기 보유가 곧바로 핵무기 발사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고는 단선적이다. 양자간, 다자간 수많은 외교적 협상을 통해 북한 핵무기의 용도를 변경시키는 것이 비전 있는 지도자가 할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2005년에 합의한 9.19 공동성명의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북한의 핵 포기 시한을 확정적으로 명기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남한의 핵무장은 그 다음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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