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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한국 역사와 수백만 희생자들에 대한 관대함을…"

[6.15 공동선언 10주년 연속 인터뷰]<7·끝> 브루스 커밍스 美시카고대 교수

"1910년 이후 고난으로 점철된 한국의 역사와 수백만 희생자들에 대한 관대함, 역사의 진실에 대한 성실함, 남북의 깊은 균열을 메우고야 말겠다는 다짐, 코리아는 한반도 주민들을 위해 존재하며 오직 한반도 주민들만이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결의…"

6.15 공동선언 10주년 연속 인터뷰 마지막 주인공은 한국전쟁 연구의 대가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다. 그의 인터뷰가 나가는 오늘은 마침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다.

부르스 커밍스 교수는 '남북의 화해·협력,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관대함'(magnanimity), '성실함'(sincerity), '다짐'(commitment), '결의'(determination) 같이 우리말로 번역하기 쉽지 않은 단어들을 나열했다.
한반도를 수십 년 간 연구한 미국인 사학자가 역사에 대한 깊은 사색의 우물 속에서 길어 올린 화해와 평화의 언어들이었다. <편집자>

▲ '비무장지대에 평화는 없다. 비무장지대는 '음산한 고요'의 지대이다." (이문재, '나는 섬나라 사람이다' 中) ⓒ이상엽

프레시안 : 천안함 사건 이후 동북아 정세를 진단한다면?

브루스 커밍스 :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그라들 것이다. 1968년 북한의 푸에블로호 납치나 청와대 기습, 1976년의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1983년 랭군 사건처럼 한동안 시끌시끌하다가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있게 될 것이다. 분단되고 적대적인 교착상태로. 우리는 이미 워싱턴과 평양이 2주일 전의 강경한 반응을 슬며시 누그러뜨리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천안함 국면에서 오바마 미 행정부가 이명박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커밍스 : 단기적으로 오바마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 외에 달리 선택할 방도가 없다. 하지만 미국 지도자들이 우익 인사들만이 한국에서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생각을 버린다면 참 좋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지나 (지난 2007년 말)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워싱턴에서 커다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의 당선을 반기는 모습이라니. 적어도 내게는 아주 당혹스런 일이었는데, 이는 미국 지도자들이 한국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지난 20년간 워싱턴의 분위기가 엄청나게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프레시안 :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발표에 수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한국을 적극 지지하는데 대해 1980년 광주항쟁을 계기로 형성된 반미정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커밍스 : 또 다시 반미감정이 일어날지 여부는 백악관과 청와대가 천안함의 진실을 제대로 말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사건에 관해 400쪽짜리 보고서가 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아직도 비밀에 쌓여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프레시안 :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은 왜 클린턴 행정부의 마지막 시기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커밍스 : 나는 오바마가 그렇게 하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취임 초기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2차 핵실험을 하는 등(그것도 미국의 현충일에) 매우 강경한 노선으로 오바마를 맞이했다.

내 생각에 북한은 오바마의 취임 첫 해 심각한 판단 착오를 했다. 그러나 나는 오바마가 궁극적으로는 클린턴의 화해노선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과의 관계 진전을 이룰 수 있는 정책은 오직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오바마 행정부는 외교적으로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군사적으로는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비확산을 현실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커밍스 : 워싱턴의 정책담당자들 중에는 북한 핵무기는 이미 기정사실(fait accompli)이며 이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핵무기 또는 핵물질의 확산(대외 이전)은 미국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금기사항이며 이를 북한도 매우 잘 알고 있다.

이 두 가지 사항을 종합한다면, 미 행정부는 핵확산 금지선에 대해서 매우 강경한 태도를 취하기만 하면 북한의 핵무기(보유)에 대해서는 강경책을 취하지 않고도 이럭저럭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프레시안 : 앞으로의 전망은? 천안함 문제를 풀기 위한 제언은?

커밍스 : 나는 이 사건이 서서히 사그라들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은 결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에 대해 의미 있는 징벌을 하거나 제재를 할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앞으로 6개월간은 긴장이 지속될 것이다. 그때쯤 되면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이미 시작됐을 것이고 북한은 2012년 (한국)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이번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한반도 분쟁의 본질을 알려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미 언론이나 정부가 (이전에도) 서해에서는 교전사례가 수도 없이 많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만 했다면 말이다.

예컨대 1999년 서해교전에서는 북한 군인 30명이 죽고 70명 이상이 부상했다. 이 전투를 누가 시작했는가는 아무도 모르지만 김대중과 김정일은 이 전투를 무시하고 2000년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그러나 미국의 어느 누구도 이번 천안함 사건을 이전의 역사에 비추어 생각하려는 사람이 없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커밍스 : 나는 이명박에게는 (제대로 된 의미에서의) 대북정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정책이란 전임자가 남겨놓은 정책에서 시작해서, 그 정책의 좋고 나쁜 점을 가려내 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방안을 개발해 가는 것이라고 본다면 말이다.

이 대통령의 정책은 앞에 말한 과정을 거치지도 않았을 뿐더러, 북한으로부터 단 하나의 긍정적 반응도 이끌어내지 못했고, 단지 역사의 시계를 냉전시대의 대결상태로 돌려놓았을 뿐이다.

내 생각에 그의 정책은, 북한은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패했으므로 이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남한에게 원조를 구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분노를 자아냈을 뿐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명박 취임 이후 남북관계는 계속 악화됐을 뿐이다.

프레시안 :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에도 강경파들이 득세한다는 분석이 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김정일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북한에 하고 싶은 제언이 있다면?

커밍스 : 그런 분석들의 대부분은 그저 (근거 없는) 추론(speculation)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남과 북이 서로에 대해 적대적이 돼갈수록 양 측의 강경파들이 득을 본다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분단체제론'을 빌려 설명한다면, 분단체제는 1998~2008년 동안 크게 약화돼 오다가 최근 긴장이 고조되면서 다시 한반도 양측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화해정책으로 되돌아오든가 아니면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부시의 정책들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가 호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정책들이 지속되는 한) 상황은 사태의 자체 전개에 따라 악화돼 갈 뿐이다.

프레시안 : 6.15 공동선언의 의의는 무엇인가?

커밍스 : 6.15 공동선언의 원칙들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보는 눈에 깊은 변화가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과 북한 역사에 대해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됐고 많은 수의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직접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됐다.

이러한 경험들과 공동선언 자체가 남북간 화해를 깊이 뿌리 내리게 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한국의 유권자들이 이명박의 (대북 대결) 정책을 심판을 내린 것이야말로 남북 화해가 깊이 뿌리 내렸음을 보여준다.

▲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 ⓒ뉴시스
프레시안 : 지난 10년을 돌아보면서 6.15 선언이 목표로 했던 남북의 화해·협력,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최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커밍스 : 1910년 이후 고난으로 점철된 한국의 역사와 수백만 희생자들에 대한 관대함, 한국판 진실화해위원회의 노선과 원칙들에 따라 역사의 진실들에 대한 성실함, (남북간) 화해와 상호 이해를 위한 진실된 노력을 비롯해 남북 간의 깊은 균열을 메우고야 말겠다는 다짐, 코리아는 한반도 주민들을 위해 존재하며 오직 한반도 주민들만이 자신들의 재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결의(해외 열강들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으므로)

프레시안 :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커밍스 : 2000년 6월 15일 시작된 (통일의) 과정이 중단 없이 지속되기를 기원한다. 7년간의 진전 뒤에 몇 년간의 후퇴가 발생하는 식이 아닌. 그것은 수치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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