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명예대표는 한나라당의 참패로 끝난 6.2 지방선거에 대해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바닥으로 떨어지다가 다시 반전한 결정적인 계기"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백 명예대표는 남북관계 개선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묶어주는 당면한 과제는 천안함 침몰 진실 규명이라면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그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단체제론'을 정립한 이론가이자 6.15 남측위원회를 직접 이끌었던 실천가인 백낙청 명예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 중 한 사람이다. 다음은 지난 7일 서울 서교동 세교연구소에서 있었던 백낙청 명예대표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했다. <편집자>
▲ 백낙청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명예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6.2 지방선거 결과 어떻게 보나.
백낙청 : 우리 국민들이 간단치 않다는 게 또 한 번 입증됐다. 이번 선거는 긴 역사적 안목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바닥으로 떨어지다가 다시 반전한 결정적인 계기로 평가받으리라고 본다. 우리 역사의 명운이 갈린 결정적인 사건으로 평가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겨우 한숨을 돌린 형국이다. 앞으로도 계속 하루하루 싸우고 또 싸우는 힘든 나날을 보내야 되지 않나 싶다. 4대강사업도 그대로 남아 있고, 정부가 쉽게 물러서지도 않을 것 같다.
이제 우리는 4대강에 대한 민심의 반대를 확인했다는 데 만족하지 말고, 사업의 중단을 계속 요구하면서도 기왕에 벌여놓은 사업 중에서 어떤 건 그래도 괜찮으니까 계속 하고, 또 중단했을 때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할 일이 참 많다.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도 계속되리라고 봐야 하고, 정부의 무리한 정책에 반대했다 해서 직장에서 쫓겨나고 잡혀가기도 하는 언론인들이나 공무원노조, 전교조 등 각계각층 사람들의 싸움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제가 절실한 문제로 걸려 있다고 생각된다.
프레시안 : 선거결과는 천안함 조사발표에 대해 민의가 인정하지 않은 것 아닌가?
백낙청 : 천안함사건을 이용해서 선거를 이겨보겠다는 소위 북풍 공작에 민의가 휘둘리지 않았다는 건 입증됐지만, 천안함의 진실이 뭔가에 대해서는 아직 민의의 판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앞으로 우리가 노력해서 규명하고 책임을 물을 건 물어야 한다.
프레시안 : 백 교수께서는 지난 5월 "어뢰냐 아니냐, 북한의 소행이냐 아니냐 같은 문제에 매달려 있는 건 이 정부가 설정한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다. 시민들의 프레임으로 바꿔 봐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백낙청 : 정부가 천안함을 다루는 태도에는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적어도 대통령 자신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근거가 없다고 굉장히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다가 점차 북한의 소행인 것 같다는 식으로 몰고 가면서 점점 북풍을 일으키려고 했다.
4월 중순부터 그러다가 5월 13일에 또 하나의 전환점이 있었는데,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이 '외부 공격'이란 표현을 썼다. 그 전까지는 '외부 폭발' '외부 충격'이라고 했는데 '공격'이란 말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15일에 소위 '결정적 증거'가 인양됐다.
내가 '북한-어뢰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말한 건 5월 11일이었는데, 발언을 한 현장에서 기뢰폭발설 등 여러 가상 시나리오에 관한 얘기가 길어지는 걸 보고 했던 말이다. 정부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게 뻔히 보이는데 어뢰냐 기뢰냐에 너무 집착하는 건 정부의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우리는 민주시민의 입장에서 이 정부가 이런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수 있는 정부냐 아니냐, 과거 행태에 비춰볼 때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할 수 있는 정부냐 아니냐, 프레임을 그렇게 바꾸자는 말이었다.
당시로서는 타당한 주장이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정부가 소위 '결정적 증거'를 들고 나와서 북한의 소행이었다고 단정하고 구체적인 북한봉쇄 작전을 벌이는 마당에서는 이제 그 결정적인 증거라는 것이 과연 결정적인 것이냐, 진실이 뭐냐를 규명하는 게 최대 과제다. 많은 전문가들과 상식을 가진 시민들, 지식인들이 조사결과 발표도 부실하고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도 너무나 말바꾸기가 많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정부가 필요한 정보를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정보를 못 가진 입장에서 좌초였다거나, 좌초됐다가 이초(離礁)하는 바람에 제2의 사건이 벌어졌다거나, 어뢰가 아니라 기뢰였다는 식의 얘기에 너무 집착하는 건 지금도 올바른 대응책이 아니다.
대신 지금 나온 발표가 엉터리 같다, 말이 안 되는 게 너무 많으니 해명해라, 왜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생존자들과의 접근도 차단하느냐,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부분적인 정보밖에 없는 상태에서 대안적인 시나리오를 내놓는 것은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
물론 정부에 제대로 된 조사를 하라고 압박하는 방법으로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당신들이 주장하는 어뢰설보다 당신들이 최초에 유족들에게 발표했다는 좌초설이 그래도 신빙성이 더 있지 않느냐, 어뢰라고 하면 북이 한미 합동군사훈련 도중에 경계망을 뚫고 들어와서 한국과 미국의 군대를 완전히 바보로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런 시나리오보다는 기뢰라고 하는 게 당신들 자존심을 위해서 차라리 낫지 않느냐, 이런 식의 수사적 방편으로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아직은 대안 시나리오를 내세울 능력이 우리에겐 없고, 그런 과욕을 부릴 필요도 없다.
프레시안 : 중국이 남·북·미·중 4개국 공동조사를 하자고 제안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백낙청 : 공동조사는 바람직하다. 북에서 검열단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검열단이라는 게 그쪽 문자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참 적절치 않은 표현이었다. 어쨌든 검열단 제안이 왔을 때 우리 정부는 유엔사령부 조사결과를 가지고 군사정전위원회를 소집할 테니 거기 나오라고 역제의를 했다. 군사정전위는 지금 거의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인데 그걸 되살리겠다고 하니까 북에서는 '이제 와서 무슨 정전위냐'고 하면서 안 받았다.
그런데 남·북·미·중 4개국의 공동조사를 하자는 중국의 일종의 수정제안은 정전위 기구를 재활용하자는 남쪽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다.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조사한 것을 갖고 와서 심문을 받아라, 야단 좀 맞고 가라는 게 아니라, 조사 자체를 4개국이 하자는 거니까 북은 마다할 이유가 없고 남쪽 정부도 자신 있으면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하는 제안이다.
그런데 만약 사실무근을 가지고 정부가 이렇게 해놨다면 어떠한 공정한 조사 제의도 받기 어려운 상태로 자신을 몰아넣은 것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5월 11일 시점에서 '북한-어뢰 프레임'에 갇히지 말자고 말할 때만 해도 나는 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일종의 영구미제(永久未濟) 상태로 끌고 가면서 북의 소행이라는 냄새만 잔뜩 피우다가 선거가 끝나면 적당히 물러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어찌 보면 우리 정부의 과감성이랄까 저돌성을 내가 과소평가 했다.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웃음)
그러니까 나쁘게 보자면 적당히 장난치려고 했는데 장난이 너무 심해서 장난이 아니게 돼버린 것이다. 이제 정부는 추가자료를 제시해서 국민과 국제사회를 납득시키거나, 아니면 대한민국 역사에 유례가 없는 망신을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밖에 길이 없어졌다.
대한민국 국민 치고 나라가 망신을 당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나. 적어도 나는 안 그렇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통킹만 사건처럼 오랫동안 진실을 묻어놓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나 네티즌들이 문제제기하는 걸 봐라.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가. 뚜껑을 눌러놓고 무한정 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정부가 어떻게 수습을 할지 모르겠다. 국제사회가 정말로 납득할 만한 자료를 제시해야 하는데 과거 김일성 주석이 김신조 사건에 대해 '나는 몰랐다'고 했듯 대통령이 '나는 몰랐다. 허위보고에 속았다'고 할 것인가? 그것도 간단치 않다. 우리는 북한 체제와 다르다. 정말 걱정이 되지만 어쨌든 진실에 입각해서 수습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시민사회는 진실과 원칙에 입각한 대응을 해야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가령 선거를 앞둔 야당 같으면 '북한 소행이라는데 정부는 뭐하고 있었냐. 안보무능 아니냐. 차라리 참여정부가 안보에 유능했다'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정부가 진실을 말한다는 확신이 없을 때는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진실에 입각해 문제를 풀어 나가자, 아무리 힘들어도 그 외엔 길이 없다고 계속 얘기해야 한다.
▲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올 초만 해도 정상회담 추진설이 나왔었는데
백낙청 :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은 국내문제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뒤집는 아젠다를 밀고 나가더라도 남북관계만큼은 실용적으로 대처할 생각이 없지 않았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었다.
첫째, 이 분이 개인적으로 남북관계에 식견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주변 참모들이 오도해서 그랬던 건지, 북한의 비핵화라는 게 남한이 요구하면 북한이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로 나왔다. 비핵화 문제는 북미관계에서 풀어야 하고, 그걸 풀기 위한 6자회담 프레임이 만들어져 진행되고 있는데 '비핵·개방·3000'이란 걸 들고 나와서 일을 꼬이게 했다.
또 하나는, 남북관계 발전과 국내 민주화의 진전은 크게 보면 맞물려 진행된다는 게 내가 과거부터 해왔던 주장이다. 물론 일대일로 조응하는 건 아니다. 남북관계가 한걸음 앞서가기도 하고 반대로 민주화가 앞서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크게 보면 맞물려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에 무리한 일을 해대다가 촛불시위를 비롯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쳤다. 그때 그런 민의를 수용해서 정책을 바꾸지 않고 오히려 탄압하는 길로 나아갔다. 그 결과 결국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동력도 없어지게 됐다. 오히려 남북대결을 추구하는 세력에 의존해서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갈팡질팡 했고, 남북관계가 한참 악화되다가는 또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북미관계도 풀려가는 모양인데...' 하면서 정상회담도 추진해보려고 하긴 했는데, 첫째는 정상회담을 만들어낼 실력이 부족했다. 정상회담의 실현이란 건 굉장히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조율하고, 준비하고, 성사를 위해 자제할 일은 자제하는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대통령 자신이나 주변인사들이 그런 실력이 없었다.
또 정상회담을 하려면 국내정치에서도 국정운영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그런데 그럴 뜻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점점 국민의 불만을 사고, 그런 상태에서 지방선거를 치르게 되고, 그러다가 천안함을 둘러싼 엄청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진상은 확실히 모르지만 북측의 어뢰 공격이라기보다는 해군이나 국방 당국에서 은폐하고 싶은 유형의 어떤 사고였을 가능성이 있고, 대통령은 북한소행으로 몰고 가려는 일부 언론이나 국방 당국에 비해 처음엔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이 사고를 이용해서 남북대결상태를 복원하려는, 다시 대결상태로 몰고 가려는 세력이 선거를 앞둔 단기적인 정략적 계산도 겹쳐 정부 안팎에서 득세하면서 일을 벌이다 보니까 이제는 이 나라를 온통 딴 나라로 바꿔놓거나 아니면 외교와 국내정치에 있어서의 참담한 실패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프레시안 : 천안함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를 미국이 전폭 지지했다. 왜 그럴까?
백낙청 : 글쎄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서 왜 이러느냐 묻고 싶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했을 때 한국의 시민사회가 걸었던 높은 기대가 실망으로 변한 건 이미 오래 됐다. 그렇게 된 데에 북측의 책임도 없지 않았다.
또 어떻게 보면 경하할 일인지도 모르겠는데, 한국이 미국이라는 큰 나라의 발목을 잡는 실력이 옛날에 비해 월등해졌다. 국력이 신장한 결과 적어도 한반도문제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발목 잡는 실력을 적잖이 발휘했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세밀히 살펴볼 경황도 없는 처지이고, 그 밑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이 옛날 얼굴 그대로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지 않나 싶다. 큰 틀에서는 그렇게 본다.
천안함사건과 관련해서는, 미국은 초기에는 한국 정부에 자제를 당부하는 등 비교적 신중했다. 그러다가 변했는데, 왜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추측하는 길밖에 없다.
단기적으로 보면, 이 사건은 미국으로서는 일종의 꽃놀이패다. 한국이 이 문제를 가지고 전쟁을 다시 일으킨다거나 북을 무력으로 공격하는 사태만 없으면 나머지 상황은 단기적으로 미국에 이득이 되는 게 너무 많다.
천안함사건의 진상이 한국 정부의 발표와 다르다는 걸 미국이 알고 있다고 해도 그걸 미국이 밝힐 의무가 없다. 한국 정부가 우기면 '그래, 너희들이 그렇다고 하니 우리가 우방으로서 밀어주겠다'고 하면 되고, 그렇게 해준 만큼 한국 정부에 대해 채권 하나를 더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방면에서 나중에 한국 정부를 압박해서 대가를 받아낼 수 있다. 당장 무기를 파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해군력 증가하겠다고 하면 어디서 무기를 사오겠나?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좋은 압박 카드가 된다. '한국 정부가 국제조사단을 만들어서 이런 결과를 도출했는데 책임 있는 대국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고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 말을 듣지는 않겠지만, 안 들으면 안 듣는 대로 미국한테 손해될 게 뭐가 있나. '우리는 정당한 요구를 했는데 중국은 북을 비호하기만 하더라'고 하면 끝이다.
중국도 일방적으로 북을 비호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으니까 공동조사를 하자, 결과가 나오면 그 누구도 비호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미국도 조금 움찔했을 것이다. 그래서 안보리에서 자기네들이 적극적으로 뭘 해보겠다는 소리가 쑥 들어갔고, 서해 군사훈련을 연기했다. 서해에서 훈련을 하면 사실 북한보다는 중국을 겨냥하는 성격이 큰데 그런 걸 할 수 있게 되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이미 오키나와 기지이전 문제에서 천안함사건을 빌미로 일본의 양보를 받아내는 등 재미를 톡톡히 봤다.
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중국까지 동참해서 북을 봉쇄해서 북이 가령 무너진다면 상당수의 미국 사람들이 좋아할 일이다. 그렇게까지 되진 않더라도 어쨌든 북에 대해 압박효과가 있는 것이다.
천안함사건이 있기 전까지 미국은 북한에 대해 6자회담에 나오라고 하고 북은 제재를 해제하면 나가겠다고 다소 고자세를 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이 6자회담을 열어주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생색을 낼 판이다. 지난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서 중국더러 6자회담이 성사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달리 말하면 북한도 6자회담에 나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천안함정국으로 단기적 실속을 차리고 있지만…
이처럼 단기적으로 볼 때는 미국이 실속을 차리고 있는데, 그러나 만약에 천안함사건에 대한 합조단 발표가 진실이 아니라면, 더구나 충분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알고도 한국에 동조했다는 게 장차 밝혀진다면, 미국의 국제적 위신은 손상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국민들은 1980년대의 기억을 되살리지 않을 수 없다.
광주 학살을 미국이 주도했다는 건 과장된 해석이지만, 그걸 용인하고 전두환 정부를 지지함으로써 미국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얼마나 큰 손해를 봤나. 이번 일이 그 정도까지는 아닐 수 있지만, 그에 버금가는 손상을 입을 수 있다. 한국 국민들하고는 단단히 의를 상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을 미국이 지금 하고 있다.
물론 미국은 완전히 두 발을 담그고 있지 않다. 천안함에 대한 국제적 행동을 한국이 주도하면 지지하겠다는 식이니까 나중에 책임도 한국이 지라는 얘기다.
프레시안 : 그렇게 보면 미국도 4개국 공동조사에 나설 유인이 없는 것 같다.
백낙청 : 국제 공동조사는 국민들의 압력이 상당해서 한국 정부가 일종의 출구전략으로 받아들이는 사태가 오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런 사태가 온다면 미국은 역시 '한국이 하겠다는데 지지하겠다'고 나올 것이다. 미국 스스로 앞장서서 하겠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고, 앞장서서 반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이 하자고 하면 '알겠다. 한국 정부하고 잘 얘기해 봐라' 정도로 나오지 않을까.
프레시안 : 천안함을 계기로 '한·미·일 대(對) 북·중·러' 신냉전이 부활한다는 말이 있다.
백낙청 : 지금은 국제적 상황이 너무 유동적이라서 그런 식으로 고착된 대립관계가 다시 나오긴 어렵다. 그런 구도가 부활하더라도 엄청나게 비대칭적인 관계가 된다. 예전엔 크게 보아 사회주의권과 자본주의권의 대립구도였는데 지금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고 중국도 당시와 같은 의미의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다. 또 두 나라 모두 한국과 수교했고 많은 교류와 경제협력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런 두 나라하고만 연대한 북과, 미·일은 물론 중·러를 비롯한 다른 많은 국가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의 대치가 안정적일 수는 없다. 북이 핵무기라도 가져야겠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 정세는 이처럼 불안정하고 극도로 위험한 상황으로 가거나 아니면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거나 둘 중 하나라고 본다. 안정된 대립관계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
백낙청 : 북 소행이라는 가능성을 선험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제까지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 검토할 때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것뿐이다.
북한 체제는 근본적으로 대단히 문제가 많은데다가 지금 어려운 고비에 와 있다. 또 내부에 극렬분자의 존재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김정일 위원장의 정책적 판단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망동을 누가 저질렀을 수 있다. 따라서 북의 소행일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김태영 국방장관 말대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하는 게 맞다.(웃음) 다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부가 발표한 사실을 포함해 관련 사실을 하나씩 좁혀가다 보면 북 공격설의 입지가 점점 위축되지 않는가 한다.
프레시안 : 이대로 가다간 사건의 진실이 영영 밝혀지지 않고 미제가 되어버릴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백낙청 : 많은 이들이 제기하는 의문점과,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자료공개를 거부하고 국제사회에서도 계속 뻗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럴 경우 적어도 앞으로 2년 반 동안은 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더라도 안타깝지만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바탕으로 대응해가는 수밖에 없다.
천안함사건은 현재 대한민국의 국정운영체제가 얼마나 엉망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민주사회는 물론이고 어느 정도 질서를 갖춘 독재사회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함부로 벌어지는 사회라는 게 입증됐다. 사건이 북의 소행이라고 해도 대응책이 그게 뭔가?
또 만약 북의 소행이 아닌 다른 사고였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사고를 은폐해서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없도록 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공안사범으로 몰고, 언론을 통제하고 언론인 스스로 자발적으로 협조하게 만들고…, 이런 건 건전한 사회의 운영방식이 아니다.
천안함 사태는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건이지만 이렇듯 우리 사회의 건전성, 국정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하는 사건이다.
말이 나온 김에 언론의 천안함 보도에 대해 얘기를 좀 하겠다. 최근에 언론3단체(전국언론인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가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에 문제를 제기하는 자료를 만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신문, 방송에서 거의 안 다루더라.
천안함사건 보도에 모범적이었다고 할 <프레시안>에서조차 기사가 안 보였다. <한겨레>의 경우는 다른 사안에서는 독립언론의 대표격이라 알아줄 만한데 그동안 천안함사건 보도에서는 너무나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고 본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얘기들을 신문이 일일이 써줄 필요는 없지만, 이번에 나온 보고서는 대표적인 언론단체들이 만들어낸 것 아닌가.
프레시안 : 지난달 24일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백낙청 : l이번 대통령 담화는 거의 초법적인 조치였다. 형식상 대통령 담화니까 청와대에서 하든 전쟁기념관에서 하든 엿장수 마음이지만 그런 식으로 지난 20여년간의 국가정책을 뒤집는 내용의 담화를 국회와의 협의나 국민여론의 수렴과정도 없이 발표한다는 게 말이 되나.
정부에 의하더라도 천안함 합동조사단의 발표는 7월 20일에야 최종발표가 나온다는데, 그렇다면 5월 20일 발표는 중간발표에 불과한 것 아닌가. 더구나 그런 부실하고 의문투성이인 중간발표를 바탕으로 한갓 담화를 통해 그동안의 남북간 합의, 또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남북관계발전법을 비롯한 온갖 성과를 일거에 무너뜨리겠다는 거다.
이건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만을 뒤엎은 게 아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내놓은 7·7선언 이래 남북관계 22년의 성과를 단번에 없애버리는 것이다. 동시에 남북관계의 발전과 맞물려 진행되어온 한국 민주주의를 다 뒤엎을 수 있는 엄청난 행위다.
다만 형식이 대통령 담화였기 때문에 그 내용을 새로운 담화로 다시 뒤집을 여지가 있고, 국민과 국회의 압력으로 그 실행을 유보할 수도 있다. 6.2 지방선거를 통해 그런 여지가 넓어졌다. 이걸 대한민국 국회와 시민사회가 내버려두면 일종의 '할부제 헌정질서 교란'을 묵인하는 꼴이다.(웃음) 박정희는 말하자면 일시불로 정변을 일으켰고, 전두환은 12.12와 5.17의 2회 할부로 헌정질서를 뒤집었다. 이번 정권은 군사쿠데타를 안하는 대신 5년 장기 할부제로 야금야금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변질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지난 10년간 6.15 공동선언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질문이다. 남북은 그동안 7.4공동성명, 10.4선언 등 여러 합의를 내왔는데 그 중에서도 6.15 공동선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낙청 : 6.15선언의 의의를 밝히려면 그 전에 나왔던 합의와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하는 게 중요하다. 10.4선언은 6.15선언을 바탕으로 일종의 실천강령을 만든 거니까 6.15선언이 더 근본적인 거라고 말해도 10.4선언 지지자들이 전혀 섭섭해하지 않을 거다.
7.4공동성명은 남북통일의 3대 원칙을 선언했다. 그렇지만 남북조절위원회 등 구체적인 조치들은 금세 중단됐고 통일의 3대 원칙도 한동안 진전이 없었다. 그러니까 최초의 남북 당국간 합의문이고 통일원칙을 밝혔다는 정도의 의미에 그친다.
거기에 비하면 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훨씬 진전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6.15선언을 앞지르는 게 많은데, 두 가지 면에서 6.15선언만한 의의를 갖지 못한다.
첫째, 기본합의서는 정상 간에 직접 타결해서 서명된 게 아니라 총리급이 서명했다는 점이다. 북 체제에서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서명하지 않은 문건은 언제든 바꿔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은 물론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기본합의서가 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둘째, 남북간 합의를 할 때 늘 걸리는 문제가 통일방안이었다. 특히 북은 통일방안 같은 '근본문제'를 젖혀두고 지엽적인 합의를 해봤자 소용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기본합의서 채택 때 북은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중·러가 한국과 수교하는 등 매우 다급했던 것 같다. 그렇게 몰리는 입장에서 많이 양보해서 통일방안 문제를 비켜가면서 합의를 했던 거다. 그래서 거기엔 '남과 북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지향 상태의 잠정적 특수 관계'라는 언급만 있지 잠정적 특수관계를 어떻게 통일로 연결시키겠다는 얘기는 없다.
그런데 6.15선언 2항에 보면 극히 모호하지만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가 있다. 양쪽 방안에 공통점이 있고, 앞으로 그 방향으로 가겠다는 의지가 있다. 당장 후속대책이 나온 건 아니지만 그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기본합의서의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교류협력조항들에 비해 훨씬 막연한 합의문인데도 종전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됐다. 6.15 전과 후의 교류 수준은 완전 딴판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6.15에 대해 떨떠름하게 생각했다. 기본합의서가 더 좋다고 했다가, 모든 합의의 정신을 존중하겠다는 선까지 한때 진전했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 담화로 모든 남북교류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기본합의서까지도 파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다만 명시적으로 기본합의서, 6.15선언 등을 파기하겠다고 말하진 않았기 때문에 아직 빠져나갈 구멍은 남아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개성공단도 누구 표현대로 산소호흡기로 연명하고 있긴 하지만 소생 가능성이 없진 않다. 그러나 6.15선언 10주년을 이런 상태로 맞는 심경은 참담할 수밖에 없다.
▲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지금 상황만 보자면 6.15선언 이후 10년 동안 생각만큼 많은 진전을 이끌진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백낙청 : 어느 한 가지를 딱 집을 수는 없다. 가령 북은 6.15선언을 계기로 남북문제를 함께 풀어가자는 쪽으로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보는데, 그 내부에도 우리가 모르는 문제가 워낙 많고 세력갈등도 많아서 북은 북대로 여러 한계에 봉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6.15선언 이후 상황에서 결정타로 작용했던 건 미국의 정권교체였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들어서고 한 6년간은 남북관계에 온갖 장애물이 만들어졌다. 그나마 한국에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있었기 때문에 더 악화되진 않았다. 그들의 영향력에다가 2006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부시의 패배가 겹치면서 미국 정부의 입장이 바뀌었다.
"이제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된 전선은 남쪽 사회 내부"
그래서 나는 2006년 말부터는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된 전선이 남쪽 사회 내부로 옮겨 왔다고 주장한다. 그전에는 북미대립이 제일 큰 문제였고 주된 전선이었지만 그 후로 남쪽이 하기에 달린 상황이 전개됐다. 그래서 2007년에 한국 정부가 미국의 태도변화를 활용해 2차 정상회담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남북화해와 민주화의 전진을 추구하는 세력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잇달아 패했다. 주 전선에서 패배하고 나니까 남북관계가 잘 풀릴 리 없었다. 미국에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든 누가 들어서든, 북이 성의를 더 보이든 덜 보이든 상관없이 남쪽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문제를 풀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것은 2008년 이후의 사태진전이 입증하고 있다.
물론 일이 잘 안 풀렸다고 해서 북이 서둘러 로켓을 발사하고 2차 핵실험을 한 게 잘한 건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 남쪽에서 일을 잘 풀어나갔으면 안 일어났을 일들이다.
남쪽 사회로 주 전선이 이동했다면 그만큼 정부뿐만 아니라 남한 국민들의 책임도 무거워지는 것이다. 아무래도 초기에는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이고 일반 국민들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정상회담 같은 것은 물론이고 경협을 보더라도 정부가 주도하고 그 다음으로는 기업의 역할이 크지 않은가. 시민사회는 보조역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길게 보면 민주화와 맞물린 남북관계 발전을 지속하느냐 마느냐는 결국 시민들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또 4대강을 지켜내는 일, 언론자유와 공정성을 지켜내는 일을 시민들이 얼마나 잘 하느냐도 한반도문제 해결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면 흔히 '남북관계를 어떻게 시민사회가 좌우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나는 당국간의 행위로만 분단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게 바로 한반도 분단의 특징이라고 본다.
베트남은 전인민이 동원돼서 총력전을 폈지만 어쨌든 정부 주도의 무력통일이었고, 독일도 시민사회의 작용으로 통일의 가능성이 열렸지만 신속한 흡수통일로 마무리지은 건 정부였다. 예멘은 쌍방 지도자들의 담합으로 통일이 됐다. 그런데 한반도에선 그 어느 방식도 안 통하게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어떤 진전을 이룩했다고 해서 그대로 놔두면 반전될 위험에 반드시 처한다.
그래서 남북관계도 개선돼야 하지만 남녘의 시민사회 자체로서도 진정한 법치, 건전한 상식, 기본적인 교양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훨씬 더 전면적이고 다양하게 전개해야 한다. 마침 천안함사태의 진실규명 작업은 양쪽을 묶어주는 고리다. 데모나 규탄대회 같은 형식으로 풀 수 있는 성질도 아니다. 전문성도 동원해야 하고, 반대로 너무 전문가적 논의에 빠져드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이 문제를 다른 국내현안과 연결시켜서 보는 시야도 확보해야 하고 국제사회에서 활동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프레시안 : 시민사회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역시 정부의 역할이 크다.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전선이 남한 사회 내부로 왔다면 2012년 대선이 분수령이 될 텐데, 어떻게 보는가.
백낙청 : 물론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2012년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다. 민주주의와 남북화해에 역행하는 정부권력, 그리고 여기에 맹종하는 세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국회 등 지금의 조건이 몹시 열악하지만, 정부의 일방통행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고 새로운 세력을 키워가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가 그런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당장의 현실에서는 한숨 돌린 데 불과하다고 앞서 말한 것이 그런 뜻이다.
프레시안 : 북한은 2006년에 1차 핵실험을 해서 부시 대통령의 태도를 바꿔냈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제재와 압박이 강화된다면 또다시 핵실험을 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많은데.
백낙청 : 천안함 관련해서 만약에 중국이나 러시아까지 대북압박에 동조하면 3차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1차 핵실험에 대해 북쪽 사람들은 너무 한 면만 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핵실험 이후 부시 행정부 태도가 바뀌고 협상이 어느 정도 되는 등 효과가 좋았던 점만 보려고 한 거다.
핵실험 때문에 미국이나 남한 사회에서 북한 정권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이 얼마나 늘었는가를 보지는 않는 것이다. 그저 북한정권의 인기가 내려갔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천안함 사건 같은 게 터졌을 때 자신들의 입지가 얼마나 좁아지는지, 그런 계산을 못한 것이다.
쉬운 예로, 북이 핵실험을 안했던들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비핵·개방·3000' 같은 엉터리 공약이 먹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들 중 상당수가 '북한은 워낙 이상한 애들이니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합조단이 어떤 발표를 해도 야당마저 정면으로 반박하기를 꺼리곤 한다.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것'하고 '바로 이 짓을 한 것'은 천양지차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프레시안 :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강경하니까 우리도 강경하게 나간다'고 말한다.
백낙청 : 우리 내부의 상황으로 미루어본다면 북에서도 화해·협력이 진행되면 섭섭할 사람들이 특히 권력층에 많지 않겠는가. 그런 세력은 북측이 사건을 일으켰다고 해도 통쾌해할 텐데 만약 하지도 않았는데 남쪽이 자진해서 대결정책을 펴고 있다면 얼마나 좋아하겠나. 지금 이명박 정부가 강경하게 나오는 것에 대해 '봐라, 이런 놈들하고 무슨 협력을 하고 화해를 하겠다고 했느냐' 하면서 희희낙락하고 있지 않을까.
프레시안 : 북한의 대응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백낙청 : 6.15선언의 실천을 주장하는 많은 분들이 북에 '너무 과민하게 대응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나 역시 그런 조언을 하고 싶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장기적으로 남녘 민심의 움직임에 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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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6.15선언 이후 나타난 사회적 변화에서 중요한 것 하나를 꼽는다면?
백낙청 : 거대 언론들이 국민의 '안보불감증'을 탓하는데 실은 이것이 6.15 이후 변화된 한반도 정세에 적응한 체질일 수 있다. 만일 6.15선언 이전의 체질로 천안함사건을 맞았더라면 한국사회는 패닉 상태에 빠졌을 것이고, 선거에서 심판받아야 할 정당에 오히려 몰표를 주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현상이 별로 없었고, 옛날엔 보수측에 표가 집중됐던 소위 '접적지역'인 파주, 고성 이런 데서 모두 야당이 이겼다. 그건 6.15선언 이후 10년 동안 남북화해의 진전이 이들 지역에서 생활상의 이득과 직결되게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한때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다가 요즘 와서는 이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전면전은 절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도 결국 한국에서는 6.15선언이 만들어놓은 경제적 기반을 흔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6.15선언은 그만큼 우리 안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고, 그것의 폐기는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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