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장관은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비교적 젊은 나이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 6.15 선언이 탄생하는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당시 그는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즉 학자 신분이어서 6.15 선언이 채택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서 선언의 의미를 해석하고 향후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에 필요한 논리를 개발했다.
무엇보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게 하는 가교가 됐다. 서해상 남북간 무전 교신 합의, 개성공단 사업 본격화 등 6.15 선언에 기초하는 동시에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에 입각한 일들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다.
그런 역할을 했던 인물이 현재의 한반도 상황에 할 말이 많은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이종석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는 전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부족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비록 야당과 시민사회의 정책 전환 요구는 거부하더라도 6.2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만큼은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이 2006년 11월 중간선거 참패 이후 한반도 정책을 바꿨듯, 이명박 대통령도 더 이상 안정과 평화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지난 10일 세종연구소에서 있었던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6.15 공동성명 이후에도 남북관계에 부침이 있었는데,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었으며, 그를 위해 어떤 일들이 추진됐나.
이종석 : 남북 대결구조를 해소하는 일이 가장 시급했다. 군사적 대결 국면을 해소하는 한편 남북한 주민 간의 심리적인 대결구조도 해결해야 했다. 이 문제가 가장 컸고 지금까지도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전 세계는 이념적 대결 시대였던 냉전을 끝내고 경제적인 이익과 자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놓고 무한 경쟁을 벌이는 탈냉전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다. 그런데 남북간 적대적 구조는 국민의 경제적 발전에 근본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가 남북 대결구조를 지속하는 한 탈냉전 시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에 봉착했다.
군사적 대결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정점으로 각급 당국간 회담, 군사회담을 했다. 또 서해상에서의 우발 충돌을 막기 위한 체제를 확립하고, 휴전선에서도 상호간 선전·비방 수단을 제거함으로써 남북이 군사적으로 부딪칠 수 있는 가능성을 낮췄다.
이를 군비통제 차원에서 보자면 병력을 감축하는 구조적인 부분이 있는가 하면, 그것보다 낮은 수준에서 협정을 맺고 교류를 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군비통제의 초보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거기서 더 나간다면 남북이 군사 훈련을 할 때 교류를 한다거나, 비무장지대(DMZ), 휴전선 감시 초소(GP)에서 병력을 축소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데까지 가려는 게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공통적이고 장기적인 구상이었다고 본다.
주민들 사이의 심리적 적대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문화 교류와 경제협력 활성화가 중요했다. 아시다시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간 과거에 비해 주민들이 오고 가는 횟수가 크게 늘었고, 이산가족 상봉도 자주 했다. 무엇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통해 남북경제공동체를 지향해나갔다.
프레시안 : 6.15 공동선언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종석 : 남북한 주민, 나아가 세계 모든 인류의 인식 속에서 '대결과 갈등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로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것이다. 역사적인 전환이다. 물론 6.15 선언 이후 모든 게 화해와 협력으로 가지만은 않았고 가는 과정 속에서 충돌도 있었지만 갈등과 대결은 점점 희석되고 약화됐다.
프레시안 :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비교적 젊은 나이로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했다. 소회가 있었다면?
이종석 : 평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모 방송국에 납치돼 끌려가기도 했었는데(웃음) 당시의 감격은 방송으로 회담을 지켜 본 우리 국민들 누구에게나 다 같다고 본다. 나 역시 우리가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진정한 통일지향의 시대를 여는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특히 6.15 선언이 만들어졌던 6월 14일, 선언이 합의되는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감격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국민과 민족에 대한 끊임없는 연민이 있었다. 그건 거기에 속해 있는 나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이렇게 우수하고 근면하고 성실하고,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있는 국민이 없는데 분단으로 인해 반신불구가 됐다. 6.15 선언으로 그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과 명확한 근거가 생겼다는 게 너무 기뻤다.
나에겐 또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로써 느꼈던 감격이 있었다. 그동안 내가 연구했던 인물들과 그렇게 빨리 대화를 해볼 거라고, 내가 연구했던 권력구조 속에 닿아 볼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치 소설을 쓴 작가가 소설 속의 주인공을 만난 느낌이었다고 할까.
프레시안 : 6.15 선언 이후 남한 사회 내부의 변화 중 중요하게 꼽을만한 것은?
이종석 :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6.15 선언 이후 우리 국민들은 이른바 '남북간 적대적 의존' 관계를 거부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갖게 됐다. 나는 지난달 한반도평화포럼 월례토론회에서 "한국 사회가 기본적인 상식과 합리주의가 통하는 사회냐에 대한 문제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시험대에 올랐다"는 말을 했었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과연 당시 몰아치던 북풍이 얼마나 강할 것인가가 그 합리성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12년 전 <분단시대의 통일학>이라는 책을 쓰면서 나는 적대적 의존관계라는 표현을 썼고, 이게 냉전시대의 중요한 프레임이라고 주장했다. 냉전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북한과 적대적 의존관계였다. 정권이 권력의 안정화나 강화를 위해 안보 위기를 조장하는 일이 빈번했다. 북한을 가장 미워한다고 하는 이들이야말로 어쩌면 북한의 존재를 가장 원하는 듯 적대적 의존관계를 구축시키기 위해 숱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만 우리 민족의 미래가 있다는 철학을 설정했고, 그래서 국민들도 남북관계 악화는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이성을 확립하게 됐다. 감성적인 것? 얼마나 쉽나. 소리 한 번 지르면 끝인데. 그런데 지난 정권 10년간 정부는 새로운 방향을 잡았고, 국민들은 거기에 지지를 보냈다.
국민들은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우리 삶이 불편해진다는 걸 느끼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비핵·개방·3000'을 주장하고 대결적인 정책을 추구하면서도 남북한 긴장 고조 행위에 대해서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적대적 의존관계가 점점 해소되어 가는 게 아닌가 하고 느꼈는데 천안함 사태가 발생했다. 원인은 차치하고, 이 사태를 두고 보수 언론들은 다시 한 번 반북 캠페인을 벌이고,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신(新) 적대적 의존관계를 만들어 거기에 정부가 편승하는 꼴이 됐다.
그들은 천안함을 북풍으로 몰아갔고 북한과 각을 세워 '내부의 적'을 섬멸하자는 논리를 폈다. 보수단체들이 서울광장에 모여서 하는 말과 똑같은 얘기를 했다. 한 마디로 '다른 세력은 척결시켜버리겠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야당과 여당이 경쟁하면서도 공존하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한 쪽을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적대적 의존관계가 다시 부활하는 느낌이었다.
이 적대적 의존관계를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합리성이다. 어떻게 됐을 때 내 삶이 편한가를 육하원칙에 따라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남북관계를 악화시켜서는 우리 미래가 별로 밝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 바로 합리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6.2 지방선거는 적대적 의존관계 시대로의 복귀를 거부한다는 국민들의 엄중한 뜻을 보여줬다. 국민들의 선택은 전율을 느낄 정도로 위대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상식과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 왔는데 북한 문제, 남북관계로 들어오면 유독 일방적이고 감성적으로 빠졌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그걸 극복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6.15 선언 이후 추진해 온 정책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해줬다. 그런 합리성이 앞으로 더욱 공고해졌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적대적 의존을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거부됐지만, 2000년 정상회담 발표 후에 치러진 총선과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 후 대선을 보면 적대적 의존을 거부하자는 정책을 내세운 여당이 패했다. 그건 어떻게 설명이 되나?
이종석 : 유권자들의 투표 동기가 남북관계 하나만은 아니다. 다양한 걸 보고 종합해서 투표한다. 2007년 대선 땐 더더욱 남북관계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한 이슈였고, 남북관계는 관심이 안 쏠리는 영역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북풍이 주요한 이슈였다. 다른 문제를 삼켜버리지 않았나. 정부의 북풍 드라이브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이 고조됐다. 요컨대, 평화라는 것은 공기와 같아서 평화가 문제가 안 될 때는 평화·안보 이슈가 투표 동기의 후순위로 밀린다. 2000년 총선과 2007년 대선 때 그랬다. 그러나 평화가 흔들릴 때는 그 문제가 주된 투표 동기가 된다는 걸 이번 선거가 보여줬다.
사실 지방선거 전 남북관계 악화에 대해 우려를 많이 했다. 북한은 어차피 위기가 고조될 때 위기관리가 안 되는 집단이다. 그걸 막아 온 건 우리의 이성이고 우리의 관리 능력이었다. 그런데 선거 전 이명박 정권은 북한이 더 도발적 조치를 해오길 원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
개성공단 인질 발생시 대비 시나리오가 언론에 유출됐었는데, 그런 걸 함부로 흘리는 걸 보고 어떻게 보면 인질 발생을 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기가 막혔다. 인질 사태가 우려된다면 긴장 고조 행위를 안 하면 되고, 그래도 우려되면 모두 철수시켜야지 인질 시나리오를 흘리는 의도는 뭔지 모르겠다.
그런데 거기에 미국이 편승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국은 한반도 위기 고조를 제어하지 못했다. 거기에 문제 제기를 하고 긴장을 톤다운 시킨 게 중국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위대한 역할을 한 게 6.2 지방선거의 국민들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
이종석 : 일단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 포용정책 안에서 같은 정책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이룬 것은 갈등과 대결로 일관되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바꾸는 노력이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그런 화해·협력의 관계를 지속하면서도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하려고 했다. 평화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려는 노력이었다. 또 관계로서의 협력을 넘어 진짜 협력으로 가기 위해 공동이익과 공동번영을 향해 가는 평화번영정책을 내세웠다.
다시 말해 김 대통령은 관계의 질을 바꾸려고 했고, 노 대통령은 바뀐 관계에 내용을 채우려고 했다. 그러니까 두 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이라는 일관된 틀 속에서 관계의 재설정(햇볕정책), 구체적인 제도화(평화번영정책)로 발전해 갔다. 평화로 가는 길에 이제 걸음을 뗐는데 바로 제도화에 들어갈 순 없는 거 아닌가.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는 화해·협력의 관계 속에서 남북 장성급 회담을 통해 군사적 합의를 할 수 있었고, 개성공단 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금강산 관광의 폭도 훨씬 넓혔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서 달리 접근하거나 배제해도 될 건 없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군사적 대결 구도 해소를 위한 합의 부분이 좀 늦고 부족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군사적 부분에서 구체적 결실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노 대통령은 평화를 제1의 가치로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남북간 전쟁의 위험성이 있는 구조를 없애는 게 굉장히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2003년 6월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1999년과 2002년 서해교전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노 대통령이 직접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에 다녀온 뒤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북과 협상해서 서해상에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체계를 반드시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서해는 꽃게철만 되면 초긴장 상태가 되는 남북의 화약고다. 그곳을 어떻게 평화지대로 만들 것이냐 하는 게 노 대통령의 고민이었다.
남북 장성급 회담의 대표를 육군이 아니라 해군 제독(준장)에게 맡겼던 것은 그런 배경이 있었다. 물론 휴전선 인근에서의 긴장 완화 방법도 고민하고 추진했다. 반면 북측은 남측이 요구하는 서해상 평화 정착 문제에 대해 휴전선 부근의 대북 선전 수단을 제거하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당시에는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남북이 서로 확성기를 뻥뻥 틀어놓고 있었다. 소리가 너무 커서 장병들은 밤에 잠도 못 잔다. 그래서 양쪽의 선전을 다 중단하자는 쪽으로 얘기가 됐다. 그런데 합참 쪽에선 반대했다. 우리 앰프의 성능이 더 좋다는 이유에서다.
NSC가 합참을 찍어 누를 순 없으니까 합참의 주장대로 일단 가려고 했는데, 북쪽에서 우리 앰프가 워낙 세니까 선전 활동을 중단하지 않으면 서해상 우발충돌 방지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아주 강하게 나왔다. 바로 그 시간 평양에서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담을 했는데, 우리도 '서해상 우발충돌 방지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쌀 40만 톤을 주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런 줄다리기 끝에 남북 모두 선전 활동 수단을 제거하게 됐다.
이런 것들이 노 대통령의 평화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나마 그때 선전 수단이 제거됐기 때문에 이번 대북조치 이후에 바로 확성기 방송을 곧바로 재개하지 못하지 않았나. 상황을 '쿨링 다운'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거다. 서해상 우발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적 구도가 남북간 긴장 완화를 하는데 큰 도움을 줬고 앞으로도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 당시 남북관계에서 힘들었던 상황이 있었다면?
이종석 : 북에 섭섭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내가 명색이 북한 전문가다. 북에 대해 기대를 가질 리가 있나. 그들이 특별히 우리를 봐준 적도 없고 봐줄 거라고 기대도 안 했다. 겉으로는 민족, 평화 같은 말을 내세웠지만 결국 북에 있어 남북간 평화 증진을 위한 노력은 실리 싸움이다.
2005년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2차 정상회담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를 봤다. 그때 림동옥 북한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과 정동영 장관, 나 이렇게 셋이서 6자회담과 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나눴다.
그때가 9.19 공동성명이 나오기 직전인데, 남북이 6자회담과 관련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깊이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9.19 공동성명 같은 게 만들어 진 후에 정상회담을 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사실상 그해 가을 정상회담을 하는 정도까지 인식이 공유되고 있었다.
그런데 9.19 공동성명 직후 BDA 사태(미국이 북한 계좌가 있는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을 제재한 일)가 터지면서 정상회담을 못 하게 됐다. 그렇지만 섭섭하다고 생각 안 했다. 북은 북미관계가 자기들 안보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북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워낙 특별한 걸 기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실망은 없었다. 기대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걸 받기 위해 뭘 줘야 하나를 생각했을 뿐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자평한다면?
이종석 : 자화자찬으로 비칠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굳이 자평한다면 우리 역량에 맞는 수준의 외교·안보 정책을 추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우리더러 능력도 안 되면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환수하려고 했다고 비난했지만 우리는 우리 몸집에 맞게 갔다고 본다.
우리가 적어도 주권을 가진 국가라면 그 수준에 맞게 행동하는 게 국민이 바라는 바고, 그게 옳은 대의이며, 그렇게 됐을 때 우리의 협상력도 높아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이 국가주권을 행사하고 그 대표인 대통령이 군사주권을 행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고, 능력이 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겼다. 참모인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노 대통령의 그런 주권의식을 높이 샀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능력만큼, 성장한 만큼 하자는 거였다.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파병됐을 때만해도 피복, 음식, 무기류, 심지어 월급까지 다 미국이 대줬다. 한국군은 몸만 갔다. 그러나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러 이라크에 파병할 때는 피복, 음식, 월급은 물론 수송기의 부품 하나까지 다 우리가 지불했다. 우리가 자립한 능력을 가지고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그 수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더 이상 미국이 후견하고 우리가 받는 관계로 가면 안 된다. 노 대통령이 전작권을 환수하겠다고 했을 때는 특별한 주장을 한 게 아니다. 지구상에 전작권을 다른 나라에 위임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외교 분야에서도 우리 역량에 맞는 수준의 적극적인 외교를 펼치려고 했다. 피스 키핑(peace keeping) 면에서는 대북억제력을 스스로 구비하기 위해 전작권을 환수하려고 했고 또 6자회담을 위해 중심적 역할을 하려고 했다. 그 때 한국 외교가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위상을 가졌다고 봐야 한다.
피스 메이킹(peace making) 면에서는 우리 능력으로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했고 개성공단, 10.4 선언 등의 성과를 냈다. 또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관련해 우리가 직접 북미관계, 북일관계 개선을 미·일 양국에 권고했다.
▲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이종석 : 이명박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을 하면서 과거 정부 탓을 좀 안 하면 나도 비판할 일이 없을 것이다. (웃음) 그런데 이 정부는 걸핏하면 과거 정부를 헐뜯는다. 내가 일했던 정부의 대통령인 노 대통령이 돌아가신 상황에서 거기에 대해 방어하고 우리 입장을 밝히는 건 내겐 역사적 소명이나 마찬가지다.
천안함 사건 이후 모 일간지가 '북한 어뢰가 햇볕정책을 침몰시켰다'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그런데 햇볕정책은 이미 2008년 2월 25일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3000'에 의해 침몰했다. 그리고 북한 어뢰가 침몰시킨 건 햇볕정책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다. 그런데 거두절미하고 보면 그 일간지 말이 맞는 것 같지.(웃음)
어쨌든 현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적 문제는 세 가지라고 본다. 첫 번째로 과거 정부의 성과를 부정하고 있다. 과거 정부 10년 동안 남북한 간 최소한의 안전판이었던 정상회담, 장관급 회담, 6.15 선언, 10.4 선언, 서해상 충돌방지에 대한 합의, 휴전선 비방 중지에 대한 합의 등을 다 무효화시켰다.
그 합의나 선언들은 북한이 원해서 한 게 아니라 우리가 원해서 아주 어렵게 이뤄낸 것들이다. 이걸 다 무효화하는 건 자해적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결국 최소한의 평화를 유지하는 안전판까지 해체하고 국민들의 삶을 불편하게 하는 결과까지 초래했다.
둘째, 외교·안보 전략과 능력이 없다. 먼저 전략을 보자.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을 도식적으로 정리하면 북핵 문제 해결 없이는 남북관계를 하지 않겠다는 얘긴데 한 마디로 남북관계를 핵문제에 종속시킨 거다.
그런데 남북관계 문제라고 하는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니까 '천안함 해결 없이는 6자회담 재개할 수 없다'고 했다. 핵문제를 남북관계(천안함)에 종속시킨 거다. 이런 정신분열이 어디 있나.
그렇게 되면 결국 북한의 핵 보유를 공고화시키는 기회와 공간을 열어주는 결과 밖에 나오지 않는다. 작년 하반기 이후 북핵 문제를 위해 중국이 갖은 노력을 했고 그 위에 미국이 올라타야 되는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이 과연 북핵에 대해 해결 의지가 있는지, 원하는 게 비핵화인지 비확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명박 정부는 오바마 정부를 붙잡고서라도 비확산이 아니라 비핵화로 가야 한다고 주장해야 맞는 건데 '천안함 해결 없인 6자회담 재개 없다'고 하고 있다. 천안함에 어떤 출구가 있을 수 있나? 과연 이분들 머릿속에 전략이란 게 있는지 의심스럽다.
다음으로 능력이 없다. 천안함 침몰 뒤에 허둥지둥하다가 아무 대응을 하지 못 한 것도 그렇지만 천안함 문제를 출구 없이 붙잡고 있는 것도 능력의 부재를 보여준다.
정부가 대북 강경 조치를 취할 거면 단독으로 남북관계 내에서 하든지 아니면 국제사회의 완벽한 동의를 받아서 해야 할 텐데 지금 상황을 봐라. 중국과 러시아가 국제적 제재에 동의하고 있지 않다. 앞으로 그들이 어디까지 동의할지도 대단히 불투명하다.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전략에 출구가 없다는 사실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다들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북관계를 대단히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문제가 있다. 올 초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했고 정보기관의 주요 책임자들도 관련 정보를 흘렸다.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면 통일부 같은 기구를 통해 공개적으로 하든지 아니면 아예 비공개로 하든지 해야지, 북한과 합의했건 안 했건 일단 공개하고 띄워 둠으로써 '우리도 남북관계 잘 할 수 있다'고 보여주는데 급급했다. 결과적으로 정상회담이란 말만 띄웠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이종석 : 천안함 출구 전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의 단기적 미래가 불안하다. 과거부터 정세 긴장 요인이 생겼을 때 그걸 안정적으로 관리한 것은 남쪽이었다. 북한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처럼 남쪽이 위기를 상승시키는 언행을 하고 미국이 손을 놓고 오히려 한국을 지원하면 자칫하다 북한이 도발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중국이 그나마 상황을 안정화시키고 있는데, 그건 한국이 한반도 정세의 이니셔티브를 상실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도 한반도 정세의 중요한 기점마다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불안정을 원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전략적 이해가 한반도에 순기능을 하고 있는 게 객관적인 현실이다.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이 끌고 나가고 중국도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호전적인 북한을 끌고 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 구도가 깨져 있다. 그걸 빨리 복원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우리 국민들이 북풍이나 적대적 의존관계를 거부하고 남북관계에서의 합리성을 요구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 뜻을 받들어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이 정부가 야당이나 시민단체의 의견을 받아서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없지만, 국민의 뜻이 이렇다면 바꿔야 한다.
부시 행정부가 그랬다.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대패하면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카메라 앞에 데리고 나와서 '이 사람 해임하겠다'고 했고, 그러면서 북핵 정책이 180도 전환했다. 이명박 정부도 야당은 안 두려워해도 국민은 두려워해야 한다. 국민들의 의사가 이렇다면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키는 주도자로서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오바마 정부도 한국이 그렇게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끝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종석 : 통일·외교·안보 문제에서 진보라고 하면 경제, 복지, 사회 영역에서 쓰는 진보와 의미가 다르다. 소위 진보라고 하는 쪽에서 내놓는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평화 통일, 국가주권에 대한 정당한 행사, 남북간 대결구도 해소 같은 것들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가치들을 거부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상식과 합리성에서 비롯된 가치들이 모두 진보의 영역이 됐다. 대한민국의 보수가 일제 친일파의 맥락 속에서 민족주의를 담지해내지 못했던 것처럼 평화와 안정, 통일, 국가주권의 실현 같은 것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진보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진보라기 보다는 상식과 합리성이라는 말을 해야 하고, 그에 기초한 판단과 전략 수행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를 보수라고 칭하는 국민들까지도 설득해 낼 수 있다고 본다.
끝으로 하나를 덧붙이자면, 참여정부가 미국과 했던 중요한 합의에 대해 편견 없는 이해와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게 잘 되지 않아서 참여정부가 했던 일들의 가치가 폄훼되거나, 그 합의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충실히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선 전작권 환수 연기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에 대해 강력히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전작권 환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단순한 감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군이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판단을 하고 추진한 것이다. 그것도 군의 판단을 존중해서 국방비를 연 9%까지 늘리는 기회비용을 치르면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보수진영에서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노무현 정부가 한 것이라고 무조건 거부하고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미국이 주도적으로 한 것이라고 오해를 해서 그런지 내버려 둬도 된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전작권 연기론에 별 말을 하지 않고 있는데 아쉬운 일이다.
용산기지 이전도 노태우 대통령이 약속한 사항이다. 이상훈 장관인가 그 분이 국방장관을 할 때 합의했다. 용산기지 이전 협의를 할 때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을 비롯한 142명 의원들이 반대 서명을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람들이 뭘 하고 있나. 용산기지 부지에 뭘 만들까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면서도 노무현 정부가 한 일이라고 안보 공백을 얘기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진영에 할 말이 있다. 참여정부가 전략적 유연성 협의에 응하면서 가졌던 핵심적인 문제 의식은 동북아시아에서는 미군이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외교부 조약국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고 해서 관련 논의를 다시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2006년 1월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하고, 미국은 한국이 한국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걸 존중한다'는 문구에 합의했다. 합의문도 법적 강제력을 없애기 위해서 외교장관 선언 형식을 취했다. 그래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지도 않는다.
미국은 한국의 의사를 존중하고, 한국은 미국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합의가 너무 잘 됐다고 생각해서 국민들 앞에 내놨다. 그랬더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했다고, 팔아먹었다고 하는데 기가 막혔다. 그 소리를 듣고 노 대통령은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존중한다는 말은 믿고 한국이 존중한다는 말은 안 믿는다는 말인가요?'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 얘기하는 진보진영이야 말로 패배주의적이고 사대주의적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미국에다가 '문제의 핵심은 대만 문제'라고 얘기했더니 미국이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말했던 내용을 지금 밝힐 수는 없는데, 미국한테 마냥 퍼주기만 했다고 하면 너무 불쾌하다. 물론 다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일방적으로 매도하면 안 된다.
또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바꾸는 문제는 우리가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전쟁이 아닌 상태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미군 사령관이 북한에 대한 권리를 갖겠다는 게 5029의 핵심이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주장은,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주권을 발동할 사항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전계획으로 바꾸려는 걸 막았다. 그게 틀린 얘기인가?
그런데 보수진영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5029의 작전계획화를 막았다고 북한의 눈치를 봤다고 한다. 북한의 비상사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솔직히 준비 다 하고 있었다. 다만 앞에서는 화해·협력·공존하자고 하면서 뒤에서는 관 짜고 있는 걸로 보일까봐 공개하지만 않은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주장을 하고, 작전계획화를 추구하는데 대해 진보진영이 강력히 제동을 걸어야 한다.
참여정부는 진보가 지향한 만큼의 정책을 다 추진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라크 파병처럼 한미관계나 한반도 정세 때문에 우리의 지향을 일정하게 양보했던 일도 있었다. 또 대한민국은 보수가 반이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자신의 뜻을 한꺼번에 다 펼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참여정부는 보수가 맹공하고, 진보는 비아냥대는 좁은 통로를 걸었다. 성공적으로 걷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가졌던 시대적·역사적 길이었다. 이제는 그 시대의 상황과 역학구도의 맥락을 보면서 당시 추진하고 합의했던 일들을 평가해주고 인식해주면 고마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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