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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엄마로 살고자 성희롱과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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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당당한 엄마로 살고자 성희롱과 싸운다”

[기고] 2년째 소송중인 전 <스포츠조선> 직원 정현옥씨

최근 법원은 한 여교사가 회식자리에서 술을 따르도록 강권 받은 뒤 상대 교사를 성희롱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이 여교사 이외에 2명의 여교사가 당시 현장에 있었지만 이들은 이같은 행위를 성희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을 무죄판결의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같은 경우로 회식자리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껴야 했던 여성들은 법원의 이번 결정을 “매우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판결”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 2003년 10월 <스포츠조선>에서 근무하던 중 비슷한 경우로 직장상사를 성희롱 혐의로 고소했다가 회사측에 의해 정리해고까지 당했던 정현옥씨가 그런 대표적 경우다. 정씨는 당시 임시 7개월의 몸으로 음주를 강권 받았고, 이를 문제 삼았다는 이유로 동료 14명과 함께 지난해 정리해고됐으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6일 이들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최근 법원 판결을 보고 정씨가 <프레시안>에 보내온 기고문을 싣는다. 편집자주

***임산부가 되면 눈치부터 보인다**

처음 기고문을 써보는 터라 사실 겁부터 덜컥 났다. 글재주도 없을 뿐더러 감히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국언론노조를 비롯해 성폭력상담소, 여성의 전화 등 여러 단체나 개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아직 제대로 해낸 게 없는 것 같아서이다. 또 인터뷰 한번 했다가 여러 송사에 얽혀 생전 안 가본 경찰서에, 검찰에, 법원에 죄인 아닌 죄인 취급도 받았다. 정말 너무 순진하게만 살아온 우리들에게는 엄청난 일이다 보니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16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나누었던 생각들과 고민들, 그리고 성희롱 투쟁과 관련해서 느끼게 된 것을 솔직하게 정리해 보았다. 부디 오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많은 여성직장인들은 결혼 뒤 임신과 동시에 기쁨도 크지만, 고민도 커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을까?’ 구조조정의 기미라도 보이는 날이면 좌불안석이다. 배가 점점 불러오면 복도에서 상사와 마주치기도 거북스럽다. 괜히 눈치를 보게 되고 기가 죽어 행동은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우대퇴직이 실시되면 상사들은 기혼 여성들을 미리 계산에 넣어 놓고 우대퇴직을 종용하기도 한다. 내 경우엔 출산휴가 뒤에 바로 우대퇴직을 권유받기도 했다. 또 동료 남자직원의 “아줌마들은 집에 가서 애나 키워라”는 짜증 섞인 소리를 듣기도 했다.

운 좋게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다 해도 고민은 계속된다. 산휴 중에도, 산휴를 마치고서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내 자리가 보존될 것인가, 혹 여기저기 부서이동으로 은근한 압력을 받는 것은 아닐까? 이러저러한 고민으로 휴가기간 동안 편안히 쉬지를 못한다. 출근일이 다가오면 또한 엄마로서 갓난아기를 떼어놓고 직장에 나갈 생각에 눈물부터 난다.

임신 초기엔 잘 모르지만, 입덧을 하고 감격의 첫 태동을 느끼고 점점 배가 불러 하루 종일 아기와 교감을 나누다보면 그 소중함과 기쁨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렇게 소중한 아기에게 누군가가 말을 함부로 한다면 그건 정말 죽어도 용서가 안되는 것이다.

***성희롱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사회**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식은 동료들과 함께 모여 먹고 즐기는 즐거움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거나 불쾌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바로 이런 경우가 그러하다.

최고 간부의 주변이 비어져 있고, 여직원들을 앉히려고 한다. 중간간부는 술 좀 따라드리라며 옆에서 눈치를 준다. 술을 잘 안 따라주면 눈치가 없다거나 매너가 없다고 하고, 술도 잘 따라주고 분위기를 잘 맞추면, 헤프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또 주는 술을 감당 못하면 여지껏 술도 못 배우고 뭐 했냐고 하고, 잘 마시면 술꾼으로 놀림을 받는다. 2차로 노래방이나 나이트 등에 가면, 주변의 부추김이나 상사의 요구에 의해 이른바 블루스를 추게 되기도 한다. 계속 거부하면 눈총을 받거나, 왜 그렇게 융통성이 없냐는 핀잔을 듣기도 해 회식자리는 불편해진다.

흔히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이 많이 발생하고, 이러이러한 경우는 성희롱이니 신고하라고 쉽게 말을 하지만, 정작 문제제기를 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상대가 상사일 경우는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성희롱을 당했다면 즉시, 또는 빠른 시일 내에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증언 또는 기록이라도 남겨야 하는데 보통은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움에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냥 한번 참고 잊어버리려고 한다.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되거나 정말 견디기 힘들어지면 문제제기를 하겠지만, 보통은 스스로 사표를 내기 쉽다. 여성으로서 그 과정이나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서 성희롱을 당했다고 노동부나 여성부에 진정을 낸다고 다가 아니다. 그걸 입증해야 하는데, 증거가 없을 경우 가해자가 부인해 버리면 입증하기가 어렵다. 주변에서 증언을 해준다면 모를까. 또 다른 직원들이 전혀 다른 진술을 할 가능성도 있다. 피해자를 돕는 일이 직장생활을 어렵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성희롱을 입증하기가 무척 힘이 든다. 성희롱의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려 더 큰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바로 우리처럼.

***‘고용평등’이란 말이 무색한 고평위**

우리들의 경우 노동부에 성희롱 진정을 해놓고 한참이 지나서 고용평등위원회로 넘겨졌다. 이 위원회는 일년에 한번 열릴까 말까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드문 경우라고 들었다.

이상하게도 우리를 담당했던 근로감독관은 30일 안에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니,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가 두어 달이 지나 사건을 고용평등위로 넘겼다. 그래도 공정함을 기대하며, 고평위 열리기만을 기다렸는데, 고평위의 분위기는 그런 게 아니었다. 한명씩 들어가서 진술을 하는데, 밖에 있던 나는 안에서 큰 소리로 다그치는 듯한 목소리와 울먹이며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는 동료의 격앙된 목소리를 들었다. 왜 저렇게 추궁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피해자의 심정이나 입장은 고려하거나 배려하지 않았다는 느낌뿐이다.

그곳에서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느냐에 대한 것인데, 임산부가 권하는 술을 다 받아먹는다면 제정신을 지닌 임산부는 아닐 것이다. 임산부에게 술을 강권하고, 마시기를 강요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더군다나 당시 직장상사가 “술은 뱃속부터 배워서 나와야 한다”고 한 부분은 태아에 대한 모욕일 뿐 아니라, 술자리 분위기를 위해 모성을 포기하라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임산부에게 이보다 더한 희롱이 어디 있을까 싶다. 산휴를 마친 뒤 모간부는 “나라도 술을 줬을 거야. 그리고 그런 말 농담으로 할 수도 있지 뭐”라고 한 것과, 또 다른 모간부가 “이제는 술 먹어도 되지?”라며 술잔을 내밀던 씁쓸한 기억도 있다.

그리고 고평위 위원장이라는 분도 “조직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해보라. 물론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무조건 참으라는 뜻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의미를 그때는 잘 몰랐는데, 고평위의 의견서 내용과 회사에서 등 뒤로 들리던 ‘회사 말아먹을 것들’이라는 말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죄인이 돼 버렸다**

고평위의 “성희롱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서 한 장으로 인해, 우리들은 바로 징계위원회로 넘어갔고, 징계결정 며칠 전 우리들 모두 해고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오래 함께 지낸 동료는 “여지껏 고생만 하고 이게 뭐야”라는 말로 나를 위로해주기도 했다.

징계내용은 스포츠조선지부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해고, 집행부는 모두 중징계. 피해 여직원들은 견책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우리들의 시위장소를 방문하거나 함께 해 준 사람들 모두도 징계를 받았다. 물론 모두 노동조합 조합원들이었다.

그 뒤 우리는 무장해제된 군인처럼 대부분의 업무에서 배제되었고, 동료들에게는 따돌림을 당하거나 때로는 인사조차 거부당했다. 우리를 비난하고 경계하는 글들이 게시판에 연이어 붙었고, 거의 모든 비조합원들이 ‘허위로 성희롱을 꾸며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우리들과 노조간부들에 대한 중징계 촉구 연판장에 서명을 했다. 정말 절친했던 동료들도 “서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며 미안해했다. 1년도 못 가서 우리는 정리해고를 당했다. 여직원 5명 모두와 함께 징계를 받았던 동지들 대부분이 구조조정 명단에 올랐고 결국 14명은 해고를 당했다.

정리해고 뒤 올해 4월쯤 정보자료요청을 위해 고평위를 다시 방문했다. 당시 조사받았던 내용을 알기 위해 성희롱 피해 동료들과 근로감독관을 만나 “조사 당시 녹취록이나 회의록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이곳은 모든 조사가 비공개이므로 녹취나 회의록 자체를 남겨두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성희롱 피해자 임에도 불구하고 고평위 위원들에게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고평위 위원들이 성희롱의 증거가 없다, 그리고 피의자들이 성희롱을 부인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결국 고평위는 성희롱 무혐의 의견을 내렸다. 당시 고평위 위원들은 새까맣게 모르고 있을 것이다. 본인들이 고압적인 분위기에서 내린 성희롱 무혐의 의견으로 인해 성희롱 피해 여성 동료들과 기타 조합원들이 참담하게 정리해고까지 당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도 당시의 고압적인 고평위 위원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가위가 눌리고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또한 국가기관이라 할 수 있는 고용평등위원회가 성희롱 조사 당시 녹취록이나 기록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욱더 기가 막힐 뿐이다.

근로감독관은 “고평위는 어떤 사안에 대해 심판을 내리는 기관이 아니라 단순히 의견만 내리는 기관이다”라고 고평위의 취지를 설명했다. 나는 “결국 그 단순한 의견이 노동사무소를 거쳐 당시 대량징계의 빌미가 됐으며 고평위의 무성의함을 보여준 사례”라고 근로감독관에게 털어놓았다.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는 없지만…**

지난 2003년 여름부터 시작해서 성희롱 투쟁과 그해 겨울의 정말 차가웠던 광화문 농성장, 견디기 어려웠던 회사생활, 그리고 2004년 12월 정리해고, 그리고 해고자 신분으로 6개월째. 너무도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슬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웃으며 지낼 수 있는 것은 양심을 버리지 않은 동지들이 든든한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분들께는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러나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엄동설한 광화문 차디찬 바닥이 아니라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의 차디찬 눈초리였다. 아직도 치가 떨린다.

내 소식을 전해들은 많은 사람들은 혀를 차며 ‘계란으로 바위를 친 격’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또는 비아냥대기도 했다.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는 없지만, 그 흔적은 남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누군가가 그 흔적을 보아주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는 것이 나, 그리고 우리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다시는 우리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또한 이 땅을 살아갈 내 두 딸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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