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예·결산절차 개선과 사장 등 집행기관의 책임경영 강화 등을 주요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본격 논의될 예정인 가운데 규제기관인 방송위원회와 KBS가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어 방송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언론학계·법조계 등 전문가들은 “방송위-KBS가 현재의 방송법 개정안을 놓고 ‘기 싸움’을 벌인다면 양쪽 모두 강한 역풍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치권으로 공이 넘어가기 전에 각자의 목소리를 낮추고 서둘러 이견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방송위 “사상최대 적자내고도 법 개정 거부하나”**
방송위원회(위원장 노성대)는 지난 4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방송법 개정안 관련 전문가 토론회’를 열고 지난 2월 12일 입법 예고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막판 의견조율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는 입법안을 제출한 방송위와 이에 반대하는 KBS의 입장을 놓고 3시간이 넘도록 토론을 벌였으나 뾰족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양쪽의 확연한 입장 차이만을 확인하고 마무리됐다.
토론회에서 방송위는 먼저, 이번 KBS 관련 방송법 개정이 △지난 2003년 16대 국회가 감사원에 KBS 업무전반에 대한 감사를 청구한 뒤 나온 결과물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 △어느 조직이든 시간이 지나면서 느슨해 질 수 있는 시스템 보완차원에서 관련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등을 내세우며 KBS측과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을 설득하려 했다.
김동균 방송위 법제부장은 “김사원은 지난해 5월 KBS 감사에 대한 최종 결과 발표를 통해 △결산제도 개선방안 △사장에 대한 경영책임추궁 방안 △KBS 이사진의 전문성 강화 방안 △KBS 임직원의 비위에 따른 책임성 강화 방안 등을 강구토록 요구했다”며 “이에 따라 방송위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가급적 KBS 스스로 정관 등의 변경을 통해 개선시스템을 마련토록 요구해 왔으나 KBS의 계속적인 거부로 부득이 방송법의 개정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장은 이어 “이번 개정안에 대해 일부에서는 정치적인 해석을 내놓고 있으나 방송위는 방송법이 부여·보장하고 있는 독립기구로서 자율적으로 행동했을 뿐 어떠한 정치·권력층과의 협의도 거친 바 없다”며 “KBS 또한 공영성 강화를 위해 수신료 현실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수준의 최소한의 법제도적 통제시스템을 통해 재정의 투명성·합리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장은 또, KBS가 지난해 6백38억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적자폭을 기록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이는 현실경제의 상황과 전망 모두가 안좋은 상황에서 오히려 예상수입이 높아질 것을 가정해 예산을 과다편성하고 미리 집행했기 때문이었다”며 “적자가 예상되니 국고보조가 필요하다며 수신료를 올린다면 과연 국민 대다수가 이를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일침을 가했다.
***KBS “감사원 특감은 정치적 산물, 첫 단추부터 잘못”**
이에 대해 KBS는 “방송사들에 대한 규제를 총괄하고 있는 방송위조차 공영방송에 대한 고민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안은 원천 철회된 뒤 새로운 틀 속에서 다시 논의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KBS를 대표해 토론회 발제자로 참석한 황상길(KBS 대외정책팀) 기자는 “방송위는 이번 개정안이 감사원의 특별감사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일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사실 감사원의 지적은 모두 ‘권고’ 또는 ‘통보’ 수준이었음에도 방송위는 굳이 관련법을 개정하려 들고 있다”며 “이는 법 개정의 모체가 된 감사원 특별감사가 지난 16대 국회 막바지에 개혁성향의 정연주 사장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한나라당의 요구로 이루어졌던 것과 연결되면서 오히려 정치적 해석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황 기자는 또, 개정안의 세부사항에 대한 반박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점은 이번 개정안이 언론기관으로서의 KBS를 부정하고 마치 다른 정부출연 공기업이나 영리법인과 같이 취급을 하려 든다는 점”이라며 “이처럼 공영방송의 근간을 흔들 요량이라면 지난 87년 KBS를 다른 정부출연기관과 구분되도록 만들었던 국민적 합의를 뒤집을 만한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며, 더불어 현재의 정부출연·투자기관들이 이같은 ‘경영합리화’ 명목으로 과연 합리적인 경영이 이뤄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설득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 아직 못 느끼나” 질타**
그러나 방송위-KBS의 첨예한 입장대립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이들은 “이 문제가 정치권으로 넘어갈 경우 방송계가 그토록 경계하는 정치 공세적 논란은 볼을 보듯 뻔하게 일어날 것”이라며 “그럼에도 양쪽이 절충점을 찾지 않고 대립을 계속해 나간다면 국민들은 나중에 두 기관 모두에게 현재의 모습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정윤식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번 개정안은 방송위가 감사원의 지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KBS에 대한 상당한 불신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하지만 오늘날의 문제는 KBS 이사회가 예·결산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포기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따라서 현재의 극단적인 대립을 지양하는 차원에서 KBS 예산은 방송위가 사전 심의하고, 결산은 현재처럼 국회가 심의토록 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만 하다”고 제안했다.
신태섭 동의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민주주의 완성도를 고려해 본다면 방송의 정치권 독립은 아직 우려스러운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KBS가 주장하는 ‘개정안 철회론’도 국민들에게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이를 감안해 양쪽은 먼저 공영방송이 ‘돈 버는 것’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서로의 지혜를 모아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태현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팀장도 “방송위가 과연 감사원의 요구에 의해서만 방송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아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KBS 또한 내부개혁에 대해 국민들이 그리 따뜻하지 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을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주지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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