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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민주화 ‘큰 별’ 윤영규 선생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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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민주화 ‘큰 별’ 윤영규 선생 타계

전교조 초대위원장 역임, 4일 5.18 묘역에 안장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위원장을 역임하며 교육민주화에 헌신했던 윤영규(69세) 재단법인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지난 3월 31일 저녁 심근경색으로 타계했다.

***평생을 5.18민중항쟁의 아픔과 함께 한 ‘참스승’**

선생은 1935년 광주 남구에 있는 광주천변의 한 가난한 움막집에서 태어나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며 어렵게 학업을 이어갔으나 이 마저도 가난 때문에 중도 포기해야 했었다. 그러나 선생은 이후 한국신학대학 신학과에 진학해 61년 졸업과 동시에 목포 영흥 중·고교의 교사로 교단에 첫 발을 내딛으며 평생의 교육철학이었던 ‘참교육’과 인연을 맺게 됐다.

선생은 이후 광주 숙문중학교, 광주상고에서 차례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한편으로 광주YMCA에서 청소년 서클을 지도하다가 76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잠시 교단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군사정권의 폭압조차 선생의 민주화 열망만큼은 가로막지는 못했다. 선생은 복직 뒤 흥사단 아카데미, 밀알회, 기독학생회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80년 5.18민중항쟁 당시에는 홍남순, 조비오, 송기숙 씨 등과 함께 ‘17인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 선생은 평생을 전남도청에서 산화해간 젊은 제자들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죄스러워 했다.

5.18 뒤 선생은 본격적으로 교육운동에 매진해 82년에는 광주YMCA 중등교사협의회 창립을 주도했고, 87년에는 전교조의 전신인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의 초대 회장을 맡아 89년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표방한 전교조의 창립을 이끌어 냈다.

선생은 전교조 1~3대 위원장을 지낸 뒤에는 91년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공동의장을 비롯해 조국통일 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위원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98년 1월 마침내 전교조가 합법화된 뒤에는 그리던 교단으로 돌아가 1년 뒤 광주 충장중학교에서 정년퇴임 했다. 선생은 퇴임 뒤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재단법인 5.18기념재단의 4대 이사장을 맡았고, 최근에는 열린우리당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선생의 장례식은 박형규 목사와 송기숙 청와대 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은 가운데 오는 4일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장례 뒤 국립 5·18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다음은 전교조 충북지부장 등을 역임했던 도종환 시인이 전교조 광주지부가 마련한 추모 게시판에 올린 추모시의 전문이다.

***쓴 잔 - 윤영규 선생님 영전에**

당신은 늘 우리보다 한 발짝 앞에 서 계시었고
더 오래 남아 계시었습니다
한 발 먼저 감옥에 들어가셨고
더 오래 포승줄에 묶여 계시었습니다
두 겹 세 겹의 감시를 뚫고 광장으로 나와
오늘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새 장을 연다고
떨리는 음성으로 먼저 말씀하셨고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더 많은 밤을 수배의 고통으로 떠돌았고
더 많은 날을 거리의 교사로 사시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을 바쳐
당신과 함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그 이름을 이 땅에 새겼고
어떤 이는 참교육의 씨앗을 땅에 묻으며 죽어갔고
어떤 이는 교육노동운동과 함께 늙어갔습니다
이 땅의 수없이 많은 이들이 자기 전 생애를 던져
고난받는 교사의 길을 가는 동안 그 등 모두의 생에 깊은 자국을 남기며
당신은 거기 함께 계시었습니다
안으로 강직하여 밖으로 온유할 수 있던 당신
안으로 뜨거워 말보다 먼저 눈물을 쏟곤 하던 당신
분노보다 정이 더 많고
직책보다 가난이 더 많았던 당신
당신은 죽음조차도 우리보다 한 발 먼저 받으셨습니다
아직 완성에 이르지 않은 것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것들을 둔 채 황망히 떠나셨습니다
순간의 죽음을 영원히 사는 자리로 옮겨 놓는 것을
부활이라 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우리 곁에
영원히 모셔 놓고 싶습니다
우리가 역사의 큰 고비를 넘을 때나
세우고자 했던 것을 작게나마 완성하는 날도
우리 곁에 당신이 함께 와 계시고
우리가 더 크게 고통 받고
더 뼈아프게 괴로워하는 날도
우리 곁에 더 오래 남아 지켜보시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이 남기신 향기
당신이 피하지 않던 쓴 잔을 기억하며
우리도 나머지 생을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어느 길을 가든 우리도 결국
당신의 길에 도달할 것입니다
선생님, 한 번만 더
선생님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윤영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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