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신문사에 속아 부모 집-땅 날린 '지국장 이야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신문사에 속아 부모 집-땅 날린 '지국장 이야기'

[현장] 처형 위해 1인시위 나선 어느 제부의 기막힌 사연

지난 22일 정오,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 말끔한 양복 차림의 한 중년 남자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그가 양손에 움켜쥔 피켓에는 '신문지국 다 죽이는 신문 떠넘기기 중단하라'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생전 처음 1인 시위를 해보는지라 그는 자신의 행동에 관심을 보이며 질문을 던지는 기자에게 잠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윽고 말문을 연 그의 1인 시위 사연은 만신창이가 된 신문시장의 실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신문사에 속아 계약 맺고 장인 집과 땅 압류**

충북 청원군에서 이날 아침 상경한 이상국(42세)씨가 4년여 전 인천 구월동에서 A신문의 지국을 운영했던 처형을 위해 1인 시위에 나선 사연은 이랬다.

지난 99년말 무렵 처형은 A신문의 구월동 지국을 인수하고 꿈에 부풀었다. 당시 구월동 지국은 전 지국장이 손을 뗀 뒤 아무도 인수하는 이가 없었던 이른바 '사고지국'이었던 탓에 지국 인수비용은 7백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A지국은 비록 요즘 세가 급속히 기울었으나, 한때 4대 일간지 반열에 들어있던 내로라 하던 신문사였다. 처형이 한번 해볼만 하다고 생각할만 했다.

특히 계약 당시 본사는 처형에게 "월 3백40만원 정도가 되는 구독자수가 그 지역에 있다"고 했다. 본사는 또 구월동 지국이 사고지국이었던 관계로 "본사와 지국이 맺는 약정서 상에는 월 3백40만원을 신문대금으로 납입토록 해 놓고 실제로는 월 1백30만원만 신문대금으로 입금해 주면 된다"고 했다. 본사 판매국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조금만 열심히 뛰어 구독자수를 늘리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개월을 뛰었지만 본사 납입금 1 백30만원도 내기조차 버거운 나날이 계속됐다. 신문사에 속은 것이다. 결국 처형은 지국을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2000년초 무렵 본사에 더 이상 지국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공문을 내용증명으로 보내고 지국운영을 접었다.

그것으로 A신문과의 인연은 끝이 난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지국을 접은 지 2년뒤인 2002년 어느 날, 평생을 농투성이로 살아온 장인 앞으로 법원에서 한 통의 공문이 날아들었다. A신문사가 딸의 연대보증인이었던 장인에게 그동안 밀린 신문대금 2천4백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A신문과 2년간 영업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A신문사는 곧바로 장인의 집과 땅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두 내외가 살던 집과 작은 땅밖에 없었던 노인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더군다나 처형은 이미 그걸 감당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상태였다. 속앓이를 하는 장인·장모를 보다 못해 이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에 대비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법원은 올해 5월 1심에서 처형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씨는 곧바로 항고한 상태다.

"얼마 전 장모는 소송에 따른 노이로제 탓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할 정도가 됐습니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약정서라는 것이 현대판 노비문서라고 하더군요. 신문판매시장이 미쳐있다는 것도 너무 뒤늦게 알았습니다."

이씨는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이런 실상만은 국민들에게 알려야겠기에 1인 시위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당시 A신문의 소장을 보니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만 모두 7명이더군요. 어디 우리들뿐이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신문사에서 그같은 노비문서로 또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있겠습니까."

1인 시위를 멋쩍어하던 이씨가 어느새 이를 굳게 다물은 '투사'가 돼 있었다.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이씨가 말했듯, 이같은 어이없는 사태는 지금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각 신문의 지국장과 종사자들로 구성된 한국신문공정판매총연합회(공판연, 회장 이우충)는 지난 7일 성명을 내어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절규했다.

공판연은 성명에서 "오늘날 신문판매시장은 계약약정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노예사슬에 걸려 판매되지도 않은 신문대금을 갈취 당하고, 한편에서는 판매전쟁의 일선에 내몰려 사채를 얻어 쓰며 빚더미에 허덕이다가 결국 거리로 내몰리는 실정"이라며 "신문고시 부활 이후에도 자정을 못하고 있는 신문협회와 혼탁한 신문시장을 규제 못하는 공정위는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고 개탄했다.

이우충 회장은 "혼탁한 신문시장을 보다못한 서울 북부지역의 각 신문사 지국장들은 지난 17일부터 자체적으로 포상금을 내걸고 불법행위의 단속에 나서고 있다"며 "신문시장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언론을 사익 증식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론사주들의 기업 윤리의식 몰락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민언련 "경기·인천지역 조사결과 신문고시 위반 여전"**

하지만 신문들의 혼탁한 경쟁은 좀처럼 개선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 이사장 이명순)은 지난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인천·경기지역의 동아, 조선, 중앙, 한겨레 등 4개 신문사 1백20개 지국(각 신문사당 30개 지국)을 대상으로 '제8차 신문지국의 무가지·경품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행 신문고시를 준수하고 있는 지국은 17.5%인 21개 지국에 불과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서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모든 지국이 신문고시를 위반하고 있었으며, 조선일보는 3개 지국만이, 한겨레신문은 18개 지국이 신문고시를 준수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지국의 상당수는 무가지와 경품을 동시에 지급하고 있었고, 한겨레신문은 11개 지국이 3개월 동안 무가지를 넣고 있었다. 경품으로는 믹서, 밀폐용기, 쿠커, 청소기, 자전거, 학습지, 상품권 등이 여전히 지급되고 있었으며, 심지어 일부 지국의 경우 경품을 직접 보고 선택하라며 독자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언련은 "이같은 조사결과는 신문시장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보다 실효성 있는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며 "공정위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포상금제를 시행해야 하며, 직권조사 결과 드러난 신문고시 위반 행위에 대해서도 상응하는 제제조치를 속히 내리고 신문고시 위반에 연루된 본사에 대한 직권조사를 철저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