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고교 사회과 수업시간에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의 내용이 대체적으로 노동문제를 어두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어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노동교육원 "교과서, 노사갈등 '나쁜 일'로 규정"**
노동부 산하 한국노동교육원은 지난 30일 '학교 노동교육 제도화를 위한 워크숍'에서 중학교 3종, 고등학교 14종 등 모두 17종의 사회교과서를 토대로 노동문제에 대한 시각을 분석한 결과 △노사관계 △임금문제 △실업문제 △노동시간 △사회보장제도 △직업세계 등에서 대부분의 교과서들이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시각을 이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송태수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사회과 교과서 노동교육 내용분석' 제하의 발제문에서 "우리나라는 시장경제질서를 경제의 기본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노동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자 보호제도를 마련하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 사회교과서들은 노동 또는 노사관계에 대한 설명에 있어 문제 상황의 단편을 가지고 전체를 설명하는 식으로 부적절하고 무리한 인과관계를 유추해 오히려 노사문제의 근본원인과 결과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를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사관계, 불평등함 속에서 '대화·타협'만 강조"**
송 교수는 구체적으로 노사관계와 관련해 "노사관계는 경영, 경제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시민적 권리의 관점에서 동시에 설명될 때 사회적 갈등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능케 한다"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교과서는 노사갈등에 대해 그 원인과 갈등의 성격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제시하기보다는 해결의 방법적 차원에서만 접근해 대화와 타협만을 당연시하는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대화와 타협은 양 당사자의 동등한 지위를 기반으로 해서 이뤄진다"며 "따라서 사용자와의 동등한 지위를 위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노동3권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해 그 해결방법으로 대화와 타협에 접근하는 서술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송 교수는 또 "현행교과서는 전반적으로 노사갈등을 엄연히 발생하고 존재하는 사실로 인정하기보다는 발생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단정하거나, 이러한 부정적인 편견에서 노동자의 파업을 무조건 '폭력적'이거나 '극단적'인 표현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금문제 등도 노동자에게 일방 책임 전가"**
송 교수는 임금 등의 문제에서도 사회교과서가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묻고 있다고 해석했다.
송 교수는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의 절대적이고 유일한 요인이 아님에도 교과서들은 이러한 상황을 단순화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요구를 평가하고 있다"며 "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해야할 실업문제에 대해서도 이를 단순히 개인의 책임이나 개인의 바르지 못한 직업관으로 돌리는 시각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송 교수는 학생들이 가장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직업세계와 관련해서도 "현행 교과서는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이나 차등의식을 조장해 학생들의 직업관 정립과 진로선택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외에도 교과서는 직업선택에 대해 '평생직장'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치 한 번의 직업선택에 성공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의 정태적 서술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 교수는 이같은 문제점의 개선과 관련해 "노동 또는 노사관계에 대한 균형적이고 체계적인 이해와 이에 근거한 이해갈등의 합리적 해결책 모색이야말로 사회집단간 상호인정과 포용적 태도 함양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교과서 안에 노동세계 또는 노사관계에 대한 독립된 장(障)과 절(節)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송 교수가 예시한 사회교과서의 문제 내용이다.
법문사 발행 고등학교 사회교과서 125쪽 : 탐구활동 - 시민의 힘으로 금융산업 파업 해결. 다음은 2000년 7월에 전국금융산업노조가 파업을 선언한 전후의 은행별 저축성 예금의 동향을 나타낸 것이다(관련 그래프, 비파업 선언 은행의 예금과 파업 선언 은행의 예금 대조). 시민의 힘으로 은행 파업을 해결할 수 있는지 토론해 보자. 파업을 선언했던 I은행, J은행이 곧 파업 불참을 선언한 배경을 살펴보자.
송 교수 해석 : 파업의 당위성 여부는 논하지 않고 금융산업노조의 파업에 대해 시민의 힘으로 은행의 파업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을 제시. 다시 말해 노동자의 단체행동을 부정하는 차원을 넘어서 시민권과 노동자의 권리를 대립적 관계로까지 설정.
대한교과서 고등학교 정치교과서 102∼105쪽 : 이익집단은 구성원들이 지닌 공동의 목표 또는 이익을 표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이다. 여기 제시된 노동조합이나 대한노인회, 앞에서 소개한 노래연습장업협회 등이 모두 이익 집단의 예가 될 수 있다… 이익 집단은 정당과는 달리 특수한 영역에만 관심을 가지고 이와 관련된 사람들의 의사만을 대표하며, 정권을 획득하려는 정당과는 달리 단지 정부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송 교수 해석 : 사회적 쟁점과 관련해 노동조합의 활동이 다른 이익집단과 같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일반 이익집단과 달리 노사관계의 경우 그 갈등 당사자의 관계가 시장경제체제에서 불균형적인 점을 고려해야 하고, 국민의 대다수가 노동자임을 고려한다면 사회적 영향 면에서도 일반적인 이익집단과 같은 성격의 집단으로 평가할 수 없다.
지학사 고등학교 사회교과서 244쪽 : 생활 속으로- 최저 임금을 인상하면 10대들은 유리할까 불리할까? 루이지애나 주에 위치한 사이더윈더사는 여름 한 철 동안 12명 이상의 청소년을 최저 임금을 주고 고용해 주차장의 잡초를 뽑거나 주차 공간을 넓히는 등의 일을 시켰다. 그러나 1990년대 초에 최저 임금이 인상되면서 청소년 근로자를 3∼4명 수준으로 줄였다. 그리고 올해 또 최저 임금이 인상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 회사는 여름이면 청소년들을 고용하던 전통을 중단했다.
송 교수 해석 : 최저임금제는 노동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지급을 위해 마련된 제도이다. 이러한 최저임금이 인상이 일자리를 없애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서술되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그릇된 판단을 유도할 여지가 있다. 더 나아가 현재의 실업문제에 대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이 가장 핵심적인 요인인 것처럼 비쳐질 우려도 있다.
교학사 중학교 사회3 교과서 94∼95쪽 : 정보화 사회는 정보나 지식을 중심으로 인간 활동이 이루어지는 사회이다. 사람들은 제조업보다는 지식 산업이나 정보산업을 포함하는 3차 산업에 주로 종사하게 되면서 자본이나 노동력보다는 창의력이나 개성이 중요시된다. 이에 따라 정보나 지식을 다루는 전문직이나, 연구직, 기술자 등이 우대받는 사회가 된다.
송 교수 해석 : 사회의 변화 속에서 지나치게 시류 영합적인 서술은 직업의 귀천이나 차별의식을 조장하는 등 직업관의 정립과 진로의 선택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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