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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영선, '보수신문 인용' 실수를 인정하세요"

[기고] "노 대통령 탄핵이 권한 남용 탓" 논란을 보고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9월 30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TV 토론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탄핵소추가 가결된 것에 대해, 박원순 시민사회진영 후보가 '노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한 탓'이라고 말함으로써 상처를 줬다"고 말했다.

필자가 아는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했기 때문에 탄핵당했다는 식으로 박원순은 말한 적이 없다. 박원순은 오히려 국회가 권한을 남용하여 대통령을 탄핵한 것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2007년 3월 12일 CBS <이슈와 사람> 인터뷰를 근거로 박영선이 위와 같이 말한 것 같다.(다른 근거가 있다면 알려 달라) 진실을 가리기 위해 번거롭지만 원문의 해당 부분만을 그대로 제시하겠다.

▲ 2007년 3월 12일 CBS <이슈와 사람>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인터뷰

논란이 되는 핵심 문장은 다음과 같다. "... 그분들이 보기에는 실수라든지 그런 것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것이 남용될 때는 어떤 저항을 받는다고 하는... 그래서 천심이 민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전화로 인터뷰한 것이라 박원순의 말은 주술관계도 좀 맞지 않고 약간 불명확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오독(誤讀)할 정도는 아니다.

위의 문장에서 '그런 것'이 무엇인가가 관건이다. 박영선은 '그런 것'이 탄핵대상=노무현 대통령'으로, 필자는 '탄핵 주체=국회'라고 각각 상정한다. 국회가 권한 남용할 때에는, 촛불과 같은 민심의 저항을 받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내가 그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민심이 천심'이라는 바로 이어지는 문구 때문이다. 민심이란 탄핵에 저항하는 촛불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국회의 탄핵을 민심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둘째, 탄핵 직후의 총선에서 탄핵 행위에 대한 민심의 준엄한 심판이 있었다. 열린우리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고 탄핵 주체들은 추풍낙엽처럼 낙선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국회 탄핵 결정을 무효화했다. 그런 마당에 탄핵으로부터 3년이나 경과한 시점에, 노무현의 권력남용 탓이라고 박원순이 말했다고? 박원순이 정녕 그렇게 말했다고 믿었다면, 박원순을 지나치게 모욕하는 것이다.

셋째, 내가 지켜보고 연구한 바로는 박원순이 탄핵사태에 대해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는 노무현과 참여정권을 비판했지만, 내심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우호적이었다. 필자는 박원순을 연구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수집했지만 박영선의 주장을 입증할 다른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그 반대 증거는 많이 제시할 수 있다. 한두 가지 증거만 제시하겠다.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 지 4일째 되던 날(2004년 3월 15일), <중앙일보>는 긴급좌담 기사를 내보냈다. 그 좌담에서 박원순의 발언 중 관련 부분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박원순= 야당이 너무 과도하게 행동했다. 盧 대통령에게 흔쾌히 동의할 순 없지만 탄핵은 부적절했다. 야권은 헌법 절차를 따랐다고 하나 정당성까진 연결되지 않는다. '합법성의 허구'다. 이번 사태는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과 그에 소극적인 세력 간 다툼이 배경이다. 탄핵 진행 과정에서 국회 내 검사 역할(법사위원장)을 맡게 된 김기춘 의원이 과거 유신헌법 기초에 참여했다는 게 상징적이지 않은가. 한국 사회 발전에 필요한 많은 법안이 한나라당 때문에 통과되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盧 대통령의 실정이 묻힐 수는 없다. 나는 소수정당이라도 통합·화합의 리더십을 얼마든지 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하다. 그러나 盧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박원순= 이번 사태를 한나라당·민주당이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면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다. 盧 대통령의 발언과 행동이 문제고 나도 이걸 자주 비판했지만, 차떼기나 하던 야당은 도덕적 기반도 없이 탄핵을 밀어붙였다. 아니라면 국민적 분노도 없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소란스러운 악기들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라는 말이 있다. 조용한 질서보다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전달되는 사회가 더 강하다. 하지만 이번처럼 판을 깨선 곤란하다. 앞으로 정치는 추상적 이념 대신 구체적 사실을 따져야 한다. 그간 여야는 차별성이 없었다. 시민단체·언론은 정치권에서 세제·부동산 같은 구체적 정책을 끌어내야 한다."


탄핵 당시에 위와 같이 말했던 박원순이 3년 뒤에 '노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한 탓'이었다고 말한 것과 지나치게 모순된다.

그런데 박영선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 내가 알고 있는 박영선은 그 문맥을 오독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고, 박원순의 정체성에 대해 크게 의문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박영선이 그런 식으로 공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민주당 지지자 일각에서 박원순을 '명박산성의 원숭이'라는 식으로 공격하는 것에 대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민주당의 대표 손학규가 한나라당 출신이고 노무현에 적대적이었던 것을 누군가 거론한다면 박영선이 무어라 변명할지 자못 궁금하다.

박영선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게 되는 과정을 대충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위에서 제시한 CBS 인터뷰를 오독하게 되는 출발점은 극우 매체인 <데일리안>이 오독하면서부터이다. CBS 인터뷰가 보도되던 날(2007년 3월 12일) <데일리안>은 그 인터뷰 기사를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 2007년 3월 12알 <데일리안> 보도, "탄핵소추 그후 3년, 박원순 "노 대통령 권한 남용 탓""ⓒ프레시안

위 기사 제목은 위에서 살펴본 박영선의 말 그대로이다. <데일리안>의 표수진 기자는 노무현을 비난하기 위해 박원순의 말을 자의적(혹은 악의적)으로 해석해서 기사를 작성했고, <데일리안>은 그 기사를 실었다. 노무현과 같은 편인 '진보시민운동의 상징격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기자의 표현 그대로)가 탄핵을 '노무현의 권력남용 탓'이라고 말했으니 좋은 호재였으리라. 사실 이러한 언론의 악의적 행태는 왕왕 보아온 것이다. 악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범할 수 있는 오류이다. 그런데 박영선도 <데일리안>과 동일한 오류를 저질렀다.

<데일리안>은 <빅뉴스>와 함께 극우 매체로서, 현재 박원순을 가장 악의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런 성향의 <데일리안>에 그 기사가 처음 실렸고, 그 기사를 최근 민주당 지지자 일부가 열심히 퍼 나르는 것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박원순을 비판하는 정보라면 옥석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물론 앞으로 같은 배를 타야 할 사람들이었기에 그 행태가 더 안타까웠다. 결국 그들은 박영선에게 중대한 실수를 범하게 하는 우를 저지르고 말았다. 박영선을 도우려는 주관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자해행위를 한 셈이다.

글을 써두고 인터넷을 다시 검색했더니 <빅뉴스>에 이에 관한 비교적 상세한 보도가 실렸다. <빅뉴스>마저 "박원순 후보의 발언은 탄핵을 주도한 세력이 국회의 권한을 남용했다는 취지로 보이나, 다르게 해석하면 노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라고 보도했다.(2011년 9월 30일)

▲ 왼쪽부터 박원순, 박영선, 최규엽 후보 ⓒ뉴시스

박영선은 박원순이 한나라당이나 이명박과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문제제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박원순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박원순이 재벌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의도를 과도하게 실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라고 믿고 싶다. 박영선이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기를 기대한다. 오독한 탓이었노라고 해명하면 족할 것이다. 실수의 자인이 의외로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도 지도자의 덕목이다. 박영선에게 걸었던 기대가 적지 않았기에 그녀에게 일말의 기대를 포기할 수 없다. 그녀에게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자기 장점을 드러내는 경선이 되고, 아름다운 승리 혹은 패배를 기대한다.

이번 글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지하는 박원순 후보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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