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현재까지의 협상 수준에서 체결될 경우 우리나라의 현행 법률 1163개 가운데 100여 개의 법률이 개정 또는 폐기될 가능성이 있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공동대표 박석운 민중연대 대표)는 21일 '한미 FTA 협상 중간평가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의 발언을 인용해 이같이 밝혔다.
한미 FTA 저지 범국본 관계자에 따르면 국회 '한미 FTA 특별위원회' 소속 최재천 의원은 최근 한미 FTA 협상 내용 가운데 우리 법률과 상충하는 부분에 대해 조사해 왔으며 그 구체적인 결과를 곧 발표할 예정이다. 최 의원의 조사 결과와 달리 협상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는 한미 FTA 협상 내용과 상충하는 국내법은 36개라고 파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국본은 전날인 20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외교통상부는 한미 FTA 체결에 따라 개폐될 국내 법률 내역을 즉각 공개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미국법 개정은 0%, 우리법 개정은 10%"
한미 FTA 저지 범국본에 따르면 법률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조례의 무더기 개폐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는 한미 FTA와 상충하는 지자체 조례는 10개, 많아봐야 3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조사에 따르면 비합치 조례는 최소 86개에 이른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주(州) 전체가 한미 FTA에 상충하는 조례(의 개폐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고 외교통상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반면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자동적으로 폐기·수정돼야 할) 우리나라의 비합치 조례는 최소 86개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태호 사무처장은 "그런데도 (한명숙) 국무총리는 지난 11월 국회에서 '우리 법에 저촉되는 협상은 하고 있지 않다'고 증언한 바 있다"면서 "이는 정부 내에서 얼마나 큰 혼란과 혼선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통상부는 지난 9월 말 장영달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보낸 국정감사 자료에서 "우리 측 협정문 초안 내용은 국내 법률 및 지자체 조례와 상충되지 않도록 작성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같은 문서에서 "한미 FTA에서의 미국 측 요구사항과 국내 법령 사항 간 상충 여부는 협상이 타결돼 최종 협정문이 확정돼야 정확한 파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미국 측 협상단은 자국법의 개정이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협상권한이 의회에 있다'는 이유로 논의 자체를 기피하고 있다. 또 비합치 조례에 대해서는 포괄적으로 유보해둔 상태다.
미국은 1994년 도입한 '우루과이라운드 이행법(URAA)'을 통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과 국내법이 상충될 경우 철저한 '국내법 우선주의'를 택하기로 한 바 있어 앞으로 있을 한미 FTA 협상에서도 추가적인 법 개정을 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한미 FTA 저지 범국본 측은 "한국의 지자체 조례에 대한 포괄적 유보와 국내법 우선원칙을 위한 별도의 입법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최악의 경우 미국법 개정은 0%인 데 비해 10%에 달하는 한국 국내법이 개정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빚어져) 법률공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SPS 협상 우리가 연기했다고?…거짓말!"
한편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원래 19~20일 이틀 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위생검역(SPS) 분과의 협상이 연기된 것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협상을 연기시킨 것이 우리 측이라고 국민들에게 알렸지만 실제로는 미국 측이 협상을 연기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박상표 국장은 보다 구체적으로 "미국 측은 SPS 분과에서 쇠고기 뼛조각 문제까지 협의하자고 요구했지만 우리 측 SPS 협상단은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농림부 가축방역과와 수의과학검역원에서 실무 차원으로 따로 협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그러자 미국 측은 지난 16일 쇠고기 뼛조각에 대한 실무협의가 끝난 후에 SPS 5차 협상을 하자고 일정도 정하지 않고 최종 통보를 해 왔다"고 말했다.
박석운 민중연대 대표는 최근 우리 측 협상단이 무역구제 분과의 우리 측 요구사항과 자동차 작업반 및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미국 측 요구사항을 맞바꾸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협상단의 '빅딜'론은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지난 3월 범국본과 협상단과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우리(범국본) 측이 '반덤핑제도 개선을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김종훈 대표가 '반덤핑제도 개선 문제는 사법절차에 관한 문제인데 그걸 어떻게 통상협정에서 다루겠다는 것이냐'고 반대한 바 있다"는 일화를 전했다.
이태호 사무처장은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잘 주목하지 않는 정부조달 분과의 협상도 중요하다"면서 "산업공동화 문제가 심각한 지방 군소도시들에서는 중소기업들이 정부조달을 통해 지역 내수기반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미 FTA에서 미국 측이 정부조달 수주물량을 줄이라고 요구하면서 지역 중소기업이 무력화되고 지역균형발전이 저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한미FTA 저지 범국본은 각계 전문가 20여 명을 동원해 5차 협상까지 다섯 차례 협상의 내용을 19개 협상 분과 및 작업반별로 구체적으로 평가한 '분야별 핵심쟁점 및 중간평가'를 발표했다. 이 자료는 범국본 홈페이지(http://www.nofta.com)에서 볼 수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