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의 단식이 90일을 넘어가면서 그토록 완강하게 단식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비로소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곽결호 환경부장관이 "천성산 터널공사는 적법한 절차에 의거해 정당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진위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법원도 "지율스님 문제제기 타당하다"고 인정**
지율스님이 지난 4년여에 걸쳐서 계속 주장하고 있는 단 한가지이다. "천성산 관통터널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실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적법한 절차'에 의거해 터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는 지난 1992년 용역이 의뢰돼 1994년 11월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 결과 보고서는 "계획 노선 주변에 특별히 보호를 요하는 동ㆍ식물이 없다"고 밝히는 것을 비롯해 고층습지, 지질안정성, 문화재 현황에 대해서는 침묵해 '부실 보고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환경영향평가가 실시된 지 10여년이 지나서 공사가 진행되는 것도 논란거리다. 현행법은 환경영향평가 실시 후 7년이 지나도록 공사가 안 이루어지면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실시할 것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도롱뇽 소송' 1심을 맡은 법원도 "(천성산에) 10여종의 천연기념물과 30종의 보호동식물이 살고 있어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며, 터널의 안정성과 환경영향평가법 등 법률이 정한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점이 인정된다"고 지율스님의 주장을 일부 인정한 바 있다.
***환경부의 군색한 변명들, "환경영향평가 문제 없다"**
이같은 지율스님의 주장에 대해 누가 봐도 군색한 답변을 내놓고 있는 쪽은 환경부이다.
환경부도 "1990년대초만 해도 터널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따지기에는 인식이 낮았던 게 사실"이라며 "당시는 터널 입ㆍ출구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었기 때문에, 환경단체와 지율스님이 천성산 전체를 대상으로 자연환경 조사를 한 것과는 그 결과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1990년대 초 이뤄진 환경영향평가에 일부 문제점을 시인했다.
환경부는 그러면서도 환경평가 시한 논란과 관련해선, "환경영향평가 이후 7년이 되기 전에 부산역사를 짓는 등 착공을 했다"며 "단 신고가 안 돼 있어서 과태료를 물긴 했지만 적법한 절차에 의해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천성산 터널공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1994년 협의된 환경영향평가 때 부산역사 공사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시공사와 환경부도 이런 변명이 군색함을 알았는지 2002년에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실시했다. 사실상 1994년 협의된 환경영향평가를 부정한 셈이다.
***"2002년 엉터리 재조사, 터널공사에 면죄부만 줘"**
그러나 2002년 환경영향평가도 부실하긴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시공사가 환경단체와 다시 실시하기로 잠정합의한 환경영향평가 약속을 깨면서 시작됐다. 시공사가 애초 협의된 생태계, 지하수, 지질, 진동, 터널 구조 등 5개 분야 중에서 지하수, 지질 안정성에 관한 두 가지 검사를 삭제해 시공사와 환경단체간의 공동조사가 결렬되고 만 것이다.
결국 시공사가 단독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천성산에 희귀 동식물이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터널 구간 좌우측 5백m에서는 보호해야 할 희귀 동식물이 없어 별 문제될 게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지율스님은 이 때부터 "엉터리 재조사로 터널공사에 면죄부만 주게 됐다"며 지하수, 지질 안정성에 관한 평가를 포함한 환경단체와 정부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환경영향평가를 요구했고, 결국 네 번에 걸친 단식에 들어가기에 이르렀다.
***지난 8월 '공동 전문가 검토' 약속도 어겨**
정부에게 사태 해결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4년 8월 지율스님의 세 번째 58일 단식에 놀란 청와대와 환경부는 지율스님에게 "환경단체와 시공사가 공동으로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지하수(습지) 문제를 포함한 전문가 검토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환경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시공사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곧바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사실상 공기업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청와대와 환경부의 입장에 반기를 든 것이다. 환경부도 "시공사가 거부한다면 환경부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물러났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환경부는 정부 산하연구소 소속 전문가 3인에게 의뢰해 불과 2박3일 형식적 조사끝에 "2002년 시공사가 내놓은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터널 공사가 습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환경부는 이 전문가 검토 의견서를 '도롱뇽 소송' 2심 재판부에도 제출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율스님이나 환경단체는 전혀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
결국 재판부는 시공사의 손을 들어줘 '도롱뇽 소송'은 지율스님과 환경단체의 패배로 끝난다. 지율스님은 2박3일동안 소위 전문가들이 비행기를 타고 천성산 일대를 몇바퀴 돌아보고 끝낸 이 수박 겉핥기 식의 '전문가 검토 의견서'가 재판부의 최종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때부터 지율스님이 목숨을 건 '마지막 단식'에 들어간 것이다.
***고비마다 일 엉망으로 만든 노무현 정부**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 구간은 문제투성이다. 그 상당 부분의 책임은 노무현 대통령과 관료들 또 정치권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 지적이다.
지난 24일 곽결호 환경부 장관은 "경부고속철도는 말 그대로 빨라야 하기 때문에 직선으로 놓아야 하고 천성산 관통터널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럼 과연 지금 공사가 진행중인 대구-부산을 잇는 구간은 직선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휘어져도 크게 휘어졌다. 이처럼 당초 노선이 휘어지게 된 과정은 더없이 정치적이다.
애초 대구와 부산을 잇는 직선 노선으로 계획됐던 경부고속철도는 선거를 앞둔 지역민원이라는 '정치적 이유'로 경주를 경유하게 됐다. 천성산 관통터널이 필요한 이유도 경주를 경유하는 최단경로를 찾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환경단체 등에서는 대구와 부산을 잇는 직선 노선으로 하는 대신, 경주와는 지선으로 연결하는 대안을 내놓았으나 정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경부고속철도의 속도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유로 울산에서도 한번 정차를 하기로 결정한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대선때 천성산 관통터널 구간을 백지화하기로 하고 노선 재검토 약속을 했었다. 2003년 당시 노선재검토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여기서도 지율스님과 환경단체는 철저히 배제됐다. 노선재검토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기존 천성산 관통터널 고수였다.
한 환경단체 활동가는 갑갑함을 이렇게 털어 놓았다.
"이런 속사정을 다 알고 나면 지율스님이 목숨을 걸고 단식하는 것에 더 분통이 터진다. 이게 목숨을 걸 만한 일인가? 지율스님이 나서기 전에 환경부가 나서서 제 목소리를 냈으면 일이 이 지경까지 안 왔을 것이다. 곽결호 장관이 과연 환경장관인지 건교장관인지 헷갈릴 뿐이다."
여전히 천성산 사태의 진행과정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지율스님이 눈, 귀를 꽉 막고 목숨을 담보로 대형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실제 전개과정을 알면 상황은 정반대다.
지난 4년간 정부는 수차례 일을 제대로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지만 놓쳤다. 이제 정부에게 마지막 기회가 온 듯하다. 이 기회마저 놓친다면 정부는 두고두고 무릎을 치게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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