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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싸움이 쉽게 끝나리라 생각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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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번도 싸움이 쉽게 끝나리라 생각 안했다"

[인터뷰] 단식 계속하는 지율스님, "이번 재판은 이상한 재판"

29일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에 대해서 법원의 판결이 나온 이후 대다수 언론은 3년여를 끌어온 천성산 관통터널 반대 운동이 일단락됐다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에 재항고하겠다는 지율스님과 '도롱뇽의 친구들' 등 환경단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반대 운동은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싸늘한 여론 앞에 선, 천성산 관통터널 반대 운동의 구심점 지율스님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일부 언론의 오보와 달리 지율스님은 지난 10월27일 시작한 단식을 여전히 풀지 않고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단식을 35일째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은 청와대 앞 모처에서 지율스님을 만났다. 전날 있었던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지율스님은 놀랄 만큼 밝은 표정이었다. 지율스님에게 여전히 천성산 관통터널 반대 운동은 '진행형'이었다.

다음은 지율스님과 인터뷰 전문.

***"나는 생각보다 낙천적인 사람"**

프레시안 : 생각보다 표정이 밝다.

지율스님 : 많은 사람들이 내가 단식을 오래하고 이러니까, 또 언론에는 분노한 모습이 많이 비쳐지니까 심각한 사람으로 안다. 사실 알고 보면 아주 낙천적인 성격에 장난기도 많다. 성격이 그러니 이렇게 가능하지 않은 싸움을 계속 이끌어왔겠지. 내가 심각하고 무거운 사람이었으면 벌써 꺾이고 말았을 것이다. 지금도 기자 앞이라 좀 긴장해서 그렇지...... 편하게 만났으면 농담도 하고 그럴 텐데.

프레시안 : 스님이 35일째 단식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건강에 대해서 걱정이 많다. 몸 상태는 어떤가?

지율스님 : 오래 단식을 안 해봐서 모를 텐데... (웃음) 이 정도되면 이미 힘든 단계는 지나갔다. 10일째가 한 고비고, 20일째 넘어갈 때 많이 힘들고 지금은 몸이 단식 상태에 적응이 됐다. 이제 한계에 달할 때까지 몸의 에너지를 소진하는 단계라고나 할까. 머리는 아주 맑아져서 좋다.

***"재판과정 문제, 공론화할 때까지는 단식 풀지 않을 것"**

프레시안 : 기왕 대법원에 재항고하기로 했으니, 앞으로도 긴 싸움이 남아 있는데 건강을 챙겨야 할 때 아닌가?

지율스님 : 사실 이번 단식은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보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다. 일종의 수행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단식일수 같은 것도 안 알리고 따로 단식일지 같은 것도 안 쓴다. 최소한 이번 재판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이 공론화 될 때까지는 단식을 계속할 예정이다.

프레시안 : 단식 장소도 세간의 관심사다. 정부는 청와대 앞으로 올까봐 노심초사하는 것 같은데.

지율스님 : 그런가보다.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단식을 하면 난로까지 들여다 준다는 얘기도 들리고. 조만간 청와대 앞으로 가기는 할 텐데, 노상에서 심각하게 단식하고 그러지는 않을 생각이다.

***"변호사같던 재판부, 결론은 정부 입맛대로"**

프레시안 : 어제 법원의 선고가 알려진 후 여론이 돌아서는 게 보인다. 많은 언론들이 이제 '그만하라'는 충고를 보내고 있다.

지율스님 : '여론이 돌아섰다', '이 운동은 끝났다', 이런 얘기들이 많이 들리지만 여전히 '여기서 끝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내면에서 끊이지 않는다. 무모하고, 과격하고, 이기적으로 보이겠지만 '진실'을 뻔히 알면서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프레시안 : 법원 판결에 불만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2심 재판부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지율스님 : 사실 이번 재판만큼 이상한 재판도 없다. 재판 과정을 직접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어제 결과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재판 과정 내내 재판부는 변호사 같았다. 재판부가 철도시설공단 측에 경제성, 환경성, 위증 문제를 집요하게 추궁했고 철도시설공단 측에서 설득력 있는 답변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판결문에서는 철도시설공단측 주장을 그대로 반영해 판결을 한 것이다.

***"11월 중순 '철도시설공단, 재판 끝났다' 기자 브리핑도"**

프레시안 : 재판부가 지난 9~10월 사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율스님 : 태도를 돌변한 정도가 아니다. 재판부는 애초에 공사가 중단된 상태에서 양측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환경영향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시했고, 판사가 이 제안에 협조하지 않는 측에 불리한 판결을 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프레시안 : 그러던 재판부가 공사를 재개하는 대신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조정안을 내놓았다는 것인가?

지율스님 : 그렇다. 더구나 그 조정안이 사실상 '수순 밟기'였다는 인상을 주는 정황도 많다. 철도시설공단 관계자가 11월초에 나한테 그러더라. "스님 생각보다 재판이 빨리 끝날 것 같다"고. 11월 중순에는 철도시설공단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재판에서 승리했다"는 브리핑을 해 기자들이 법원에 항의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재판 결과도 나오기 전에 철도시설공단은 1달 전부터 재판 결과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대법원 재항고, 재판 과정 문제점 밝히려는 것"**

프레시안 : 만약 스님 주장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다. 주장에 대한 근거는 있는가?

지율스님 : 근거는 충분히 있다. 이번에 대법원에 재항고를 하는 것도 이런 문제를 밝히기 위해서고. 현재 재판 과정에서 작성된 속기록에 대한 공개도 요구해 놓은 상태다. 속기록이 공개되면 재판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공개할 생각이다.

프레시안 : 법원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충고하는 언론도 많다.

지율스님 : 여러 가지 과정에 미심쩍은 게 많은데, 이런 의심을 다 덮고 승복하는 게 맞나? 덧붙이자면 이 일은 어차피 대법원까지 가야 할 일이었다. 설사 2심에서 우리가 이겼다고 하더라도, 철도시설공단에서 대법원으로 가는 것을 원했을 테니까. 철도시설공단이 재판에 졌을 때 언론이 과연 재판 결과를 승복하라고 할지 두고봐야겠다.

***"3년 동안 맺은 좋은 인연이 가장 큰 힘"**

프레시안 : 3년여 동안 싸움을 끌고 오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

지율스님 : 가만히 생각해본다. 도대체 천성산이 뭐길래. 이렇게 좋은 사람, 소중한 사람들을 잡아끄는 것일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런 만남을 통해 힘을 얻고, 그게 가장 인상이 깊었다. 지금 그 사람들과 만나면 이렇게 맺은 인연을 앞으로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해서 의논하곤 한다. 천성산으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의 생명·평화 운동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프레시안 : 항상 궁금했던 게 있다. 반대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도 환경문제와 같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지율스님 :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그렇게 무심했던 것에 대한 '벌'이 아닐까 싶다. 항상 배우면서 스스로 성숙해가는 것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세속적인 거대한 '권력'에 둔감했기 때문에 이런 무모한 싸움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웃음)

프레시안 : 오늘 만나보니 여유가 있어서 보기 좋다.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기원한다.

지율스님 : 오랜만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혼자서 자료도 정리하고, 그 동안 싸워온 것에 대한 기록도 남기고 있다. 한번도 이 싸움이 쉽게 끝날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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