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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또 지율스님에게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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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또 지율스님에게 '거짓말'?

철도시설공단, "환경부-환경단체 합의 받아들일 수 없다"

지율 스님의 58일 단식을 중단케 한 정부의 '전문가 검토' 약속이 백지화됐다. 철도시설공단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또다시 '정부의 신뢰'가 밑둥부터 의심받는 상황의 전개다.

***철도시설공단, "문제없다고 결론 난 일 다시 들춰 뭐하나"**

환경부와 환경단체 등에 따르면, 1일 예정이던 합의 이행을 위한 환경부-환경단체-철도시설공단 3자의 첫 모임이 무산됐다.

철도시설공단 고속철도본부 관계자는 2일 이와 관련, "청와대와 환경부가 환경단체와 잘해보자는 취지로 그런 합의를 했겠지만, 수차에 걸쳐서 적법한 절차를 거친 우리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곤란하다"며 "31일 환경부에 전문가 검토를 위한 협의 과정에 참여하기 곤란하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난 사항을 놓고 다시 논란의 장을 열기보다는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본다"며 앞으로도 이 문제와 관련한 협의에 응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같은 철도시설공단의 버티기에 환경부도 속수무책인 분위기다. 환경부와 환경단체가 합의한 천성산 습지에 대한 전문가 검토는 사업시행자와 시설공단이 절차ㆍ방법 기간 등을 협의하도록 돼 있어 철도시설공단이 협의에 불응할 경우 이행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2일 이와 관련, "26일 환경단체와의 합의에 앞서 철도시설공단 쪽 의사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철도시설공단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계속 협의에 불응할 경우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알았나? 몰랐나?**

철도시설공단이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나섰다"고 주장해온 청와대에게 따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지율 스님이 단식을 중단하는 가장 중요한 명분이 된, '전문가 검토' 이행이 사실상 물 건너 간 상황에서 청와대의 '중재' 역할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8월25일 청와대 문재인 수석이 지율 스님을 방문했을 때, 그는 "법원이 판단할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고, 문제가 많은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보완하겠다"며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 합의의 배경에 청와대가 작용했음은 누구 눈에도 분명하다. 전날까지만 해도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던 환경부가, 다음날 문재인 수석의 지율 스님 방문에 박선숙 차관이 동행하고, 곽결호 장관도 바로 이어 방문해 다음날 간담회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또한 환경부와 환경단체가 '전문가 검토'를 합의한 26일 오후에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청와대가 나서서 지율 스님이 명분을 가지고 단식을 중단할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조율했는데, 도대체 그런 전후맥락을 알고 청와대에 날선 기사를 쓰는 것이냐"는 요지의 항의를 하기도 했었다. 청와대의 '중재 역할'을 자인했던 셈이다.

철도시설공단 고속철도본부 관계자도 "실무자 입장에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면서 "(청와대는 몰라도 환경부에서) 윗분들에게는 좀더 자세한 정보가 제공됐을 것"이라고 사전에 언질을 받았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지율 스님측 관계자도 2일 이와 관련, "26일 환경부와 협의 과정에서 철도시설공단이 빠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청와대나 환경부가 그 쪽에 언질을 안 줬을 리가 없다"며 "'전문가 검토'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사업 추진이 곤란해질까 봐 시설공단이 '버티기'에 들어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지율 스님의 단식을 중단하고, 공을 환경부로 넘기기 위해 꼼수를 쓴 게 아니냐"는 의구심어린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한차례의 '정부 불신' 사태의 발발이다.

***지율스님-환경단체, "환경부가 합의이행 책임져라"**

시설공단이 버티기에 들어서면서 외형상 문제의 해결은 환경부가 떠맡게 됐다.

협의 과정에 참여해 온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일단 사업자에게도 입장을 바꿀 여지를 줘야 하는 만큼 한 2주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다"며 "환경부장관이 일단 약속을 한만큼 권위를 가지고 합의 이행을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율 스님을 대신해 이 문제를 떠안은 '도룡뇽 시민행동'의 입장은 좀더 강경하다. 시민행동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박병상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는, "회복 중인 지율 스님께 누가 될까봐 알리지도 않았다"며 "2주는 너무 늦고 환경부와 철도시설공단을 압박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논의해 시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노력은 해보되 강제할 수는 없다'는 어정쩡한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처음 협의할 때도 사업자의 참여와 동의가 합의 이행의 전제였다"며 "최선은 다해보겠지만, 환경부 보고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식은 곤란하다"고 벌써부터 발뺌을 했다.

문재인 시민사회수석은 지난 25일 지율 스님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청와대가 나서서 해야 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든지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일은 청와대가 꼭 나서서 해야 할 일이었지만 너무 늦게 나섰고, 현재까지는 별로 잘 한 것 같지도 않다. '신뢰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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