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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사셔야 천성산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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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스님이 사셔야 천성산도 삽니다"

['도롱뇽'소송 D-3] 단식 31일째 지율스님께 드리는 편지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 공사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부산 고등법원은 2003년 10월 도롱뇽을 원고로 지율스님과 환경단체 측이 공사중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후 1년여를 끌어온 이 소송에 대해 오는 29일 최종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현재까지 재판부가 지율스님과 환경단체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29일 선고 공판에서 '공사 재개'로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판단이다. 특히 최근 지율스님이 '공사 재개와 6개월간 전문가의 환경 조사를 병행하자'는 법원의 조정안을 거부한 것도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율스님은 결국 마지막까지 '원칙'을 지킨 것이다.

지율스님은 2003년 2월25일부터 35일간, 같은 해 10월5일부터 35일간, 지난 6월30일부터 58일간의 단식에 이어 10월27일부터 31일째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지율스님의 목숨을 건 노력에도 불구하고 3년 넘게 벌인 천성산 지키기 운동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갈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지율스님은 재판결과에 개의치 않고 단식을 계속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율스님과 함께 한 소설가 김곰치씨의 생각은 다르다. 김씨는 26일 지율스님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김씨는 "지율스님이 지금까지 알려온 게 다 맞지만 결국 천성산에 터널이 뚫릴지도 모른다"며 "그것은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에 물든 우리 시대의 업보"라고 탄식했다. 김씨는 그러나 "천성산에 터널이 뚫려도 스님만 살릴 수 있다면, 그건 천성산이 살아 있는 것이나 같다"며 "천성산을 절대 죽지 않는, 죽을 수 없는 산"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년여 동안 지율스님의 실천을 통해, 또 스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천성산의 가치를 환경의 가치를 깨닫게 된 많은 시민들의 마음을 통해, 스님과 '도롱뇽의 친구들'을 통해 전개될 생명운동을 통해서 천상산은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씨는 이에 지율스님에게 단식을 중단하시기를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스님의 몸은 스님 스스로 처분할 수 없습니다. 왜냐! 몇 번이나 말하지만, 스님이 천성산이니까, 우리들이 그렇게 믿으니까! 그리고 그 천성산은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

지율스님이 목숨을 걸고 싸워온 지난 3년간의 실천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짚고 있다고 판단돼, 김씨의 편지 전문을 싣는다. 다음은 소설가 김곰치씨가 지율스님에게 드리는 편지 전문이다. 편집자.

***지율스님께 드립니다**

지율스님, 텔레비전 토론회 잘 보았습니다. 천성산 문제가 있고 첫 방송토론이었죠? 그런데 11월 16일 생방송이 있던 날에도 스님의 네 번째 단식이 20여 일째여서 혹 공단 측의 노여운 말에 스님이 분을 못 이겨 실신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화면에 비친 스님의 얼굴은 의외로 맑았습니다. 세속의 거리로 나온 지 2년, 요즘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고 가장 사나운 논쟁과 싸움의 한가운데를 지켜오셨는데도 스님의 얼굴에 아직 영롱한 기운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뭐라 말씀을 하실 때는 표정이 날카로워지며 좀 미운 얼굴이 되더군요.

방송 도중 불상사는 없었고, 어쨌든 시청자들이 스님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는 것으로 저는 만족하지만, 토론 내용은 극히 불리했습니다. 방송사가 내놓은 설문은 "경제냐 환경이냐"였고, 나중에 아나운서가 '전화조사 결과는 70%, 인터넷 조사는 90%가 '경제'를 택하였다'고 하였죠.

나중에 듣기로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 이미 수백 명의 사람들이 '경제'에 클릭을 한 상태였다고 해요. 시청자가 전화를 걸게 하는 방식의 조사도 제대로 된 여론의 반영이 되긴 힘들죠. 그런데도 이튿날 지역신문과 연합뉴스에서 그 수치를 기사화했습니다. 다 짜놓은 시나리오에 스님이 이용당했다고 사람들이 항의했지만, 방송사는 사과의 말이 없습니다.

사과를 해도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방송토론이란 방식으로, 어쨌든 스님에게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고, 그걸 잘 살려 썼다면, 조사결과가 일방적으로 나왔어도 '뭐야, 엉터리군' 하고 시청자들 스스로 판단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토론 내용에서 이미 스님 쪽이 밀렸던 것 같아요. 공단 측에서 나온 사업본부장이란 분과 터널전문가인 것 같은 다른 한 분은 도표와 사진을 제시하며 대단히 자신 있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 텔레비전의 속성상 그런 준비가 없었던 스님 쪽이 상대적으로 불안하게 보인 한 이유인 것 같아요. 물론 스님이 단식 중이 아니셨고 체력과 집중력에 문제가 없었다면, 토론은 보다 팽팽하였을 것입니다.

스님, 어쨌거나 큰일입니다. 천성산 생명운동이 마지막 고비에 이르러 있습니다. 토론회 바로 전날 부산고등법원 '도롱뇽 소송' 재판부에서 "6개월간 환경조사를 하되 터널공사는 바로 시작한다"라는 '조정 권고안'을 내놓았죠. 공단 측은 권고안을 받아들였지만 스님은 결국 거부했습니다. 이제 재판부는 29일 '기각'과 '수용' 중 하나를 택하게 됩니다.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될 것이라고 제 주변에선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말씀하십니다. "공단 측에 유리한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는 재판부를 보면 다음 주 월요일, 공사를 시작하란 판결이 나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다음주부터 천성산이 뚫린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스님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시지만, 저는 천성산이 뚫리는 걸 충분히 상상해 왔습니다. 그래서 좀 덤덤합니다. 오히려 저는 스님이 천성산과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를 알고 있기에 다른 걱정에 휩싸입니다. 사실 며칠 동안 천성산보다 스님 신상에 대한 걱정에서 헤어날 수 없었죠. 4차례에 걸친 무서운 단식을 보건대, 스님은 마지막 극단적인 저항까지 하실 분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작년 봄 천성산 산행 행사에서 스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조그만 산길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 나왔죠. 스님이 설명해주셨습니다. 언젠가 스님 혼자 천성산에 오르는데, 이 찻길을 내고 있는 불도우저와 인부들을 목격하였다고, 순간 눈앞이 하얘지면서 벼락을 맞는 듯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이게 무슨 짓들이냐"며 미친 사람처럼 펄펄 날뛰었다고, 양산시청에서 천성산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길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스님은 선방 동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그후 몇 달간 사업을 중지시키기 위해 애썼고 마침내 시청이 두 손을 들고 말았다는 것, 그러나 아직도 시청은 호시탐탐 천성산을 노리고 있다고, 이런 이야기였죠.

이 이야기를 지금 다시 되새겨보면,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도대체 요즘 세상에 어떤 사람이 산에 길 낸다고 펄펄 날뛸 수 있을까? 중장비가 와서 태연스레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사업목적에 따른 법적 허가가 났으니 길을 내는 거겠지, 하고 누구든 '그래도 웬만하면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좋은데' 씁쓸해 하며 제 갈길을 가고 말겠지요. 그런데 스님은 달랐습니다. 마치 외계에서 온 사람처럼, 난생 처음 산에 길이 나는 것을 본 것처럼 "벼락을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과연 진실된 표현인지, 사후의 과장인지, 의심할 수 있지만, 언어에 민감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또 그 말을 직접 들은 저로서는, 스님의 벼락 운운하던 표현의 진실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요즘 세상 사람들이 스님과 같은 충격에 빠지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난 2년 넘게 스님이 천성산과 맺어온 특별한 관계는 다른 사람이 짐작조차 하기 힘듭니다. 산에 길 낸다고 벼락을 맞는 듯한 충격을 받고, 또 양산시청을 무섭게 몰아쳐 사업을 포기하도록 만든 것만 봐도 스님은 보통 사람과는 많이 다른 감성과 의지의 소유자입니다. 그런데 다음 주 월요일, 천성산의 운명에 결정적인 재판부의 판결문이 나오는데, 그리고 천성산 터널공사의 허가가 거의 확실한데, 아직도 스님은 "천성산이 뚫린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천성산을 떠나 법원 앞에서 천 마리 도롱뇽 수를 놓고 있지만, 스님이 마침내 천성산으로 허겁지겁 달려가 철통같이 외부방어를 하고 몇 곳에선 발파작업을 하는 공사현장을 목격하면 이번에는 벼락을 맞는 듯한 충격이 아니라 스님의 숨통이 단번에 끊길지 모릅니다. 혹자가 염려하듯이 분신항거가 아니라 그 현장을 보는 것 자체로 스님은 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곡기를 끊은 지 한 달이 돼 가고, 그 충격을 견뎌낼 생명력이 스님 안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런 두려움은 저만이 아니라 스님을 가까이서 지켜본 많은 이들의 불길한 예감입니다.

물론 스님이 현장으로 가지 못하도록 꽉 붙들 것이지만, 그렇다고 스님을 막을 수 있을까요. 오래된 이야기지만, 전태일이 몸에 불을 붙이고 병원에서 숨을 거두자 이소선 여사는 실신해버렸고, 그새 이 여사를 노동청 직원들이 집에 모셔갔는데, 그런데 눈을 뜨자마자 그녀는 부엌 식칼을 들고 "아들 곁으로 가는데 길 막는 놈은 누구든 쑤셔버린다!" 했다고 하지요. 이 여사처럼 스님도 능히 그럴 분이십니다.

스님, 판결을 앞두고 이런 걱정까지 하고 있는 우리 처지가 안타깝습니다. 이런 처지가 지난 몇 년 동안 공단 사람들이 하는 엉터리 주장을 이겨내지 못한 결과라서 더 서글픕니다. 지난주 토론회에서도 우리가 들어야 했던, 수없이 들어 지겹기 짝이 없는, 즉 터널이 토목업계가 자랑하는 가장 친환경적인 공법이라 산의 피해가 적다는 주장과 부산경제, 나아가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해 고속철도사업의 빠른 완공이 필요하다는 주장 말입니다.

터널이 '반환경, 반생명'이 아니라 '친환경'이라니요! 스님도 잘 아시다시피, 산속에는 지하수층에서 물이 솟아오르고 또 빗물의 유입으로 물이 아래로 내려가기도 하는 수맥이 무수히 발달해 있는데, 그것은 인간 몸의 뇌혈관의 배치와도 흡사하지요. 굵은 동맥이 있고 적혈구 하나만 통과하는 미세혈관이 있듯 산의 수맥도 그렇습니다. 그런 산속을 뚫는 일이잖아요. 굵은 수맥을 터뜨려도 최소한으로 지하수 유출을 막는다고 공단 측은 말하지만, 그와 동시에 터널의 외벽은 수맥의 폐쇄를 가져옵니다. 수맥 따라 움직이는 물의 압이 다른 우회로를 찾겠지만, 14Km 장대터널의 많은 곳에서 우회로를 찾지 못한 물이 정체될 경우 물은 썩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회로를 찾았다 해도 물의 순환이 예전처럼 원활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산속의 물의 유입 자체가 절대적으로 줄게 됩니다.

이런 산의 생명활동과 그 활동의 사이클은 물론 사람보다 수백 수천만 배나 길지만, 그렇다고 해도 터널공사는 사람의 머릿속으로 길다란 젓가락을 쑤셔넣는 것과 똑같은 이치의 무지막지한 공법일 뿐입니다. 혈전으로 뇌혈관이 막혀도 1-2시간은 가벼운 증상이 일어나다가 그러나 결국 혼수상태로 가는 것과 같이, 산도 산 자체의 생명 사이클을 따라 얼마 동안 가벼운 증상과 함께 생명력을 유지하겠지만 결국 뇌혈관이 막히고 터진 후의 치명적인 증상을 사람이 피할 수 없듯이 산도 터널공사로 수맥이 터지고 막힌 후 그 나름의 치명적인 증상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산속의 수맥말고 산 표면의 나무와 습지도 그저 하늘의 비만 믿고 생명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끔찍하게 듣기 싫어할 소리지만, 산 밑에서 올라오는 건강한 물의 수기(水氣)가 없이는 나무도 습지도 생명력이 꺾일 수밖에 없습니다. 짐승들의 경우는, 사람 발짝 소리에도 저승사자를 본 것처럼 도망치는데, 고속철도의 운행으로 하루라도 쉬지 않는 땅의 진동에 천성산 터널구간에서 반경 몇 백 미터 내의 날것 길것 뛸것 들은 겨울잠도 잘 수 없고 그 미세한 생명감각이 뒤죽박죽이 되어 터널로부터 최대한 멀리로 보금자리를 옮길 도리밖에 없습니다.

산을 뚫는 터널 일반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고속철도의 경우는, 더욱이 천성산 구간 같은 장대터널은 보다 위험한 터널일 수밖에 없습니다. 3만 볼트 전력을 써서 가늠하기 힘든 쇠무게의 고속열차가 시속 300Km의 속도로 달려가는 터널이잖아요. 고속열차가 지나갈 때의 진동은 산속에서 작은 지진이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또 터널의 콘크리트 외벽은 그 무시무시한 속도의 고속철을 통과시키느라 폐쇄된 지하공간에서 엄청난 기압(氣壓)의 충격을 매일 같이 견뎌내야만 합니다. 공단 측에서는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한 산속의 암반으로 터널 외벽을 구성하기에 터널의 수명은 반영구적이라고 하는데,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물방울의 힘으로 바위를 뚫는데, 어떻게 반영구적이라는 소리를 할 수 있는지요. 또 설사 암반이 반영구적이래도 14Km 구간 중 인위적 콘크리트 구간도 만만찮은 길이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착각하지만, 터널도 하나의 물건입니다. 한정된 기간 동안 쓰다가 결국 내다버리는 것이 물건의 운명입니다. 터널 중에서도 가장 빨리 망가지는 물건은, 가장 무거운 것이 가장 빠르게 달리는 고속철도 터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채 십 년이 넘기 전에 터널에서 이상증상이 나타날 것이고 그러다 결국 고속철도의 경우 터널마다 서행구간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다 최소한의 안전성도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그 인근에 새 터널을 뚫든지 다른 외부노선을 개척해야 할 날이 오고야 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속철도의 터널구간은 총연장에서 30%가 넘습니다!

대체 어떻게 고속철도 터널이 친환경적이라는 건지 저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데, 그런데도 그걸 예전부터 토목업계에서 상식처럼 주장하고 있고 그렇게들 믿고 있으니 알고도 그러는 건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부산경제, 한국경제 운운하는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단기적인 효과입니다. 도롱뇽 소송의 재판장님은 첫 공판에서 고속철도 사업을 백년대계라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적어도 백년은 내다보는 경제적 비전 속에 고속철도 사업이 있는 것이고, 때문에 산의 훼손이 있다손치더라도 장대터널도 불사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백 년을 내다보는 경제적 비전이라뇨!

고속철도가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에너지는 무엇입니까. 전기입니다. 그 전기는 어디서 오지요? 화력ㆍ원자력 발전소잖아요. 석유와 우라늄, 즉 천연자원입니다. 그런데 지금 땅속에 이 두 자원이 50년 이상 인류가 쓸 수 있는 양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 전문학자는 세계적으로도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석유의 경우 2010-15년 즈음부터 급속도로 생산량이 준다는 것이 필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니 50년 앞도 밝게 볼 수 없는 사업이기에, 물론 재판장님이 공단의 말을 믿고서 하신 말이겠지만, 백년대계라는 것은 애초부터 현실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속철도 사업의 경제적 효과란 것도 단기적이고 심리적인 효과일 뿐 다른 장기적인 경제적 비전은 조금도 없습니다. 반면 천성산을 지키는 스님은 몇 년을 내다보는 겁니까. 천년 만년 가는 생명의 보금자리이니 고속철 사업과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터널을 뚫지 않는다면 어쩌란 거냐, 다른 경제성 있는 노선은? 하고 묻는다면, 저는 '산을 우회하라'가 아니라 아예 '미개통구간 공사를 포기해라'고 하고 싶습니다. 미개통구간 공사 자체에 투입되어야 하는 그 귀한 석유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에너지를 왜 그런 비전없는 사업에 씁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듯, 앞으로 우리 사회의 중차대한 과제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로 요약되는 지금의 석유화학문명이 어떻게 하면 생태적인 대안사회로 연착륙할 수 있을지가 아닐까요. 그런데 그런 문명의 부드러운 이월, 전환에도 석유와 에너지가 꼭 필요합니다. 지구상에 아직 남은 천연 에너지자원은 지금이라도 그런 불요불급한 일에 써야 미구에 닥칠 대파국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천년 만년 가는 산을 위태롭게 만들면서 50년 앞도 밝게 보기 힘든 고속철도 사업에 백년대계 운운하며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고속철도 사업에 관한한, 이런 문제 말고도 국제신문 김해창 기자님이 따로 재판부에 낸 탄원문을 보면, 이 사업이 부실과 협잡, 비민주적 추진, 엉터리 타산성 계산, 숱한 계획 차질 등 얼마나 저급한 수준에서 강행되어 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기자적인 성실함으로 가득찬 그 글을 읽으면, 어떻게 이런 형편없는 사업이 아직도 철퇴를 맞지 않고 있는지, 모골이 송연할 지경입니다.

스님, 이번 도롱뇽 소송의 김종대 재판장님도 물론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비록 스님이 거부하셨지만 조정 권고안에서 법원이 환경평가를 명령하고 있다시피 하고 있는 것만 봐도 공단의 사전조사가 부실했다는 것을 단호히 비판하고 계신 거거든요. 그런데 그렇다면 당연히 터널공사를 계속 중지하고서 법원이 정한 6개월의 환경영향평가를 이제라도 사심없이 해야 하는데, 왜 재판장님은 공사를 시작하라고 했을까요.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물론 그것은 권고안의 '이유' 항목에 적시되어 있습니다. "이미 결정되어 진행 중인 대형국책사업은 시급히 중단시킬 사유에 관한 명백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는 막연히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어려운 나라경제를 생각하면 중단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이 이유에 동의하기 힘들고, 스님은 더욱 그렇겠죠. "우리 재판장님은 원효스님에 대해 책까지 쓰신 분인데, 그동안 재판과정에서 공단 측을 추상같이 질타하시고 공사중지를 명한 분도 바로 재판장님이신데…"

그러나, 스님. 저는 며칠 혼자 생각해보면서… 재판장님의 권고안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을 서운하게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스님한테 뺨을 얻어맞을 각오를 하고 말합니다. "이미 결정되어 진행 중인 대형국책사업" "어려운 나라경제"라는 말, 어떻게 보면 너무 상투적이지만, 이 말에 태산 같은 무게가 실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태산 같은 무게가!

재판장님이 공단 측이 말하는 엉터리 주장을 받아들이고 내놓은 권고안이라 해도, 정말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공단 측의 경제발전 운운하는 것과 같은 것들 말고는 희망이 없는 시대입니다. 너무 깊이 세뇌되어 있었고 오랜 세월 그런 기계적 사고와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에 취해 살아왔기에 그것이 한낱 거짓말임을 깨닫는 일도 너무 무서운 일입니다. 거짓된 꿈도 꿈의 효과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허망한 꿈의 기운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태산입니다. 그 태산이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어깨에 올라타 있습니다.

스님, 스님은 착각하시면 안됩니다. 재판장님은 성현에 대한 책을 쓴 저자 김종대가 아니라 대한민국 법복을 입은 판사님입니다. 그분은 법복을 입은 채 권고안을 쓰셨고 곧 판결문을 쓰셔야 합니다. 그러니 "이미 결정되어 진행 중인 대형국책사업"이란 말에는, 국가(정부)가 국민적 동의를 얻어 구성된 뒤 정책으로 계획하고 역시 국민적 동의를 얻은 국회를 통과한 뒤 시행된 사업이기에 사업시행에는 그 자체로 법적 행위로서의 법의 준엄성이 엄연히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나라경제"라고 했을 때는, 죽음으로 몰려가는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와 존재감의 상실 속에 불안과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청년실업자들의 존재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진행 중인 국책사업"과 "어려운 나라경제"를 법의 준엄함과 지금 현재 많은 사람들의 고통 그 자체로 받아들입니다. 바로 이웃과 친척의 삶에서 매일같이 접하는 삶의 고통이 그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속철도 사업이 그 고통의 해결책이 전혀 못 되는데도 국민이 그렇게 알고 또 믿고 있다면, 그것이라도 너무 가련하게 소망하지 않을 수 없다면, 천성산을 살려달라는 스님의 간곡한 호소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의 태산을 스님도 들어올릴 수 없고 재판장님도 혼자 자기어깨에서 벗겨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님, 재판장님이 스님의 기대와 믿음을 허물었다고 그분을 미워하지 마세요. '기각' 판정을 내리신 뒤라도 그날 저녁 재판장님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대성통곡하는 스님을 찾아오셔서 사죄의 말씀을 드릴 겁니다. 뿌리치지 마시고 스님이 재판장님의 손을 잡아주세요.

스님, 용서해주십시오. 스님은 천성산이 뚫린다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고 하시지만, 저는 스님의 간절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천성산은 곧 뚫린다고 각오하려 합니다. '진행중인 국책사업' '어려운 나라경제'라는 이유 말고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깊은 이유로 천성산은 뚫려나가야 하는 운명의 산인 것 같습니다. 설사 다른 우회노선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다른 작은 산과 들, 그리고 근처 지역주민에게 고통을 안겨주게 됩니다. 천오백여 년 전 원효스님이 산에 드셔서 화엄강의를 하시고 천 명의 성인을 배출해낸 산, 바로 우리 천성산은 너무도 뜻깊은 산이라 다른 존재들을 위해 희생되어야만 하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천성산은 '오냐, 지율이가 못한 일을 내가 해주마, 오너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천성산도 자체의 대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터널이 뚫려도 터널은 결국 붕괴하고 말 것입니다. 아니 터널을 뚫는 순간부터 산의 저항은 시작됩니다. 물을 뿜을 것이고 예측못할 단층의 지층과 지반을 내보이며 난공사로 이끌 것입니다. 터널완공 후에도 산은 항거합니다. 콘크리트의 틈을 노려 물을 누수시킬 것이며 엄청난 지압으로 콘크리트를 찌그려뜨리려 할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산 자체의 객관적 특성이면서도 태고적부터 산이 산다울 수밖에 없었던 산의 성정이자 생명력입니다. 산의 의지입니다. 스님의 천성산은 결국 터널을 무용지물로 만들 겁니다. 강원도의 수많은 산들도, 탄광에 의해 속이 엉망진창이 돼 있는데, 스스로 메꾸고 수맥의 새 진로를 찾으며 또 결코 공기와 만나서는 안되는 산의 속살은 살이 다할 때까지 누렇고 빨간 물을 밖으로 뿜으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천성산의 급소만 노려 터널을 뚫고 나가면 어쩔 수 없이 황폐화되고 말겠지만….

스님, 아무튼 저는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해봅니다. 이것은 패배의 한 심리적 기술일 뿐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렇게 몇 번을 마음먹어도 천성산을 스님의 말대로 하자면 "도적놈들" 같은 사람들의 손에 넘기고, 그후 몇 년이고 폭약 발파를 당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견고성으로 이루어진 터널을 안에 들인 뒤에는 또 미친 듯이 달리는 쇠덩어리에 오랫동안 시달릴 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다시는 천성산 근처도 가고 싶지 않는 마음이 됩니다. 제가 이런데 스님은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러니 '천성산이 뚫리는 걸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하시는 거겠지요.

스님, 그렇습니다. 제가 아무리 스님을 달래도 스님과 천성산의 관계는 너무 깊고 특별합니다. 산이 이겨낸다, 산은 쉽게 죽지 않는다, 백날 말해도 스님은 마음에서부터 도저히 터널이 뚫리는 천성산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천성산보다 스님이 더 걱정인 것입니다. 제가 이 긴 편지를 쓰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 이제 터널공사를 물리적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올초에 스님이 약 백일 간 혼자 몸으로 현장 사람들 앞에 몸을 내던져 "저런 독한 년은 처음 봤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공사를 막아냈지만,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 그들은 강력한 명분이 있기에 더는 스님의 실력저지를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환경단체가 기습 농성을 벌여도 법을 집행해야 하는 경찰 측이 가만있지 않습니다. 언젠가 북한산 관통터널 현장의 경우처럼 농성장을 정리하는 용역업체의 패거리가 동원될지도 모릅니다.

공사가 시작되면 하루에 몇십 미터씩 굴진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대법원 항고가 남아 있어 공단 측은 무조건 최대한 빠른 속도로 굴진하는 것이 최대 목표가 될 것입니다. 그랬을 때 시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천성산 터널은 기정사실이 되고 맙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래서 저는 너무 걱정이 됩니다. 천성산이 결국 뚫려나갈 때, 스님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물론 천성산과 스님이 맺은 관계대로 하겠지요. 그것은 지금껏 스님이 해오신 것을 보면 예측가능합니다. 스님은 조금이라도 천성산이 위기에 처하면 바로 단식을 행했고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조치나 약속이 나오면 단식을 푸셨습니다. 아마 천성산이 위태로워지면 스님 스스로 식사를 하실 수가 없는 그런 심정이 되는 듯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것 자체를 스님은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요. 세상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스님은 천성산과 약속을 했기 때문이지요. 그 약속, 스님의 목숨을 걸기로 한 약속인 줄 저는 압니다.

그렇다면 천성산이 죽는다면(스님은 터널공사를 그렇게 받아들이기에 저도 그 표현을 씁니다) 스님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인 셈입니다. 천성산이 살 수 있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있으면 스님의 목숨은 끊기지 않을 거고, 한순간 터널공사가 눈앞의 청천벽력같은 사건처럼 벌어지고 그걸 되돌릴 수 없다면, 스님은 목숨을 던져야 하는 사람인 셈입니다. 천성산과 생명을 건 약속을 하는 순간부터 그게 스님의 운명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이미 너무나도 행복하였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 않다" "수행자가 죽을 자리 찾는 것도 복이다, 나는 복이 많다"라고 스님 스스로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세상 누구도 스님과 천성산의 죽음을 말릴 수 없는 형편입니다. 스님은 오래 전부터 천성산과 한몸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양산시청에서 길을 내는 것을 보고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이 올 수 있었던 겁니다. 오직 천성산의 건재만이 스님을 살릴 수 있습니다. 아, 한몸, 같은 몸!

스님, 제가 이 사실을 언제부터 눈치챘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을 오래 전부터 이따금 지켜보면서 스르르 깨달아지는 게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두 발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천성산. 때로 독사처럼 무섭고 때로 도롱뇽처럼 예쁘고 때로 나무처럼 편안하고 때로 바위처럼 신념 굳은 천성산이구나. 스님이 천성산이네, 아니 천성산이 스님이네!

사람의 몸을 가진 하나의 개체가 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듣도 보도 못한 가공할 실천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스님이 유별나서가 아니라, 스님이 어떤 연유에서건 천성산을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천성산이 스님 목숨이 되어버린, 스님이 산 그 자체가 되어버린 그 하나됨의 사건에서 연유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 2심 판결로 터널공사가 시작되면, 법적 진행을 막을 수 없다면, 그래서 스님의 말대로 산의 죽음이 시작된다면, 되돌리지 못할 죽음이 선고된다면, 스님도 그와 함께 죽는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스님, 제가 말한 이것이 사실입니까. 정녕 진실입니까. 저는 법원의 조정권고안이 나온 지난주 화요일 이후 오직 이 질문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그렇다!" 하고 외치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저는 스님이 산과 한 그 신비로운 약속을 믿게 되었습니다. 스님이 해오신 기적과 같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실천을 보건대, 스님과 산이 하나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계종 원장에게도 온갖 직언을 서슴없이 하는 스님의 행동은 천성산이 뒤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뿜어낼 수 없는 용기로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스님과 천성산의 하나된 몸의 관계를 믿습니다. 이 믿음! 어쩌면 제 인생에서, 제 마음에서 일어난 사건 중 최대의 사건!

스님! 이제는 제가 자신있게 스님을 외쳐부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믿음은, 이제 제 인생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제 것입니다! 스님을 믿자마자 제게 해방의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저는 아이처럼 기뻤습니다. 이제 천성산이 살 길이 생긴 것이다! 천성산이 죽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제가 스님을 완전히 믿어버리자, 너무도 간단히 결론이 나왔습니다. 천성산이 죽어도 스님만 사신다면, 스님만 살릴 수 있다면, 결국 천성산이 사는 것이다! 천성산이 곧 스님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저의 기쁨이었습니다.

아니 분명히 천성산이 뚫려나가는데도 스님이 산다면 천성산이 살아 있는 것이라니. 다시 외칩니다. 왜 그러냐! 천성산과 스님이 한몸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제가 믿기 때문입니다! 스님만 살릴 수 있다면, 제게는 천성산이 사는 것과 똑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냐! 다시 진실을 외칩니다. 스님이 천성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저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이미 벌어져버렸기에 이제 누구도 거꾸러뜨리지 못합니다. 하여 저는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스님만 바라보겠다. 스님만 바라보겠다!

천성산이 완전히 허물어져버려도 저는 스님만 지키면 됩니다. 스님만 살리면 됩니다. 저의 천성산 생명운동은 이제 스님을 살리는 일 오직 그 하나입니다.

2심 판결이 나오는 날,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함께 천성산으로 가지 않고 법원에 온 스님만 붙들고 "여기 계셔야 한다, 산에 가시면 절대 안된다"라고 하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산에 가시면 스님은 죽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스님은 제게 식칼이라도 휘두르실까요. 저는 그 칼을 피해야 할까요? 스님을 천성산으로 가게 해 명이 끊어지도록 해야 할까요? 제 임무는 스님이 천성산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일 오직 하나입니다. 스님만 살면 그게 천성산이 사는 일이다, 제가 이렇게 믿는데, 이 믿음을 누가 거꾸러뜨린단 말입니까. 스님도 못 거꾸러뜨립니다!

스님, 터널공사가 시작되면, 스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천성산으로 갈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천성산 사랑 방식입니다. 그들 속에 사랑이 그런 방식으로 있다면 그 사랑은 표현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말리겠지만, 그들에게 유일한 천성산 사랑의 표현방식이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천성산 사랑 방식은 스님이 공사현장으로 절대 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최대한 천성산 멀리에 스님을 밧줄로 꼭꼭 묶어놓는 일입니다.

스님, 이것이 제가 이렇게 긴 편지를 쓰게 된 이유입니다. 제 마음, 제 결심을 받아주십시오. 천성산에 터널이 뚫려도 스님만 살릴 수 있다면, 그건 천성산이 살아 있는 것이나 같습니다. 그러니 스님의 몸은 스님 스스로 처분할 수 없습니다. 왜냐! 몇 번이나 말하지만, 스님이 천성산이니까, 우리들이 그렇게 믿으니까! 그리고 그 천성산은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

스님, 뜻이 이렇고 이치가 이러하니,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리더라도 천성산은 삽니다. 천성산은 절대 죽지 않는 산, 죽을 수가 없는 산입니다. 원효스님이 화엄강의를 할 때 하필 천성산 화엄벌을 그 강단으로 택한 것은 그만큼 천성산 자체가 화엄의 진리를 머금고 또 나타내고 있는 신령스런 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원효스님의 안목이니 틀림없습니다. 어느 산행인이 설악산, 지리산, 속리산 등 온갖 명산의 장점을 다 갖춘 산이라고, 꼭 지키자고 외치는 것도 들은 적 있습니다. 그런 천성산이기에 지율스님 같은 분을 품고 키워낼 수 있었던 겁니다….

스님, 이렇게 말을 드려도, 터널공사를 하라는 판결문을 받아들고 스님의 울부짖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스님은 너무도 통탄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스님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이 스님이 울부짖을 때 같은 크기로 같은 아픔으로 같은 뜨거운 눈물로 울부짖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 하고 안타까워 하는 것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천성산을 사랑하는 만큼 천성산의 마음 근처만 맴도는 미욱한 사람들도 사랑하여 주십시오. 그러니 스님, 천성산에서 터널공사가 시작되더라도, 아니 시작되었기 때문에라도! 그날부터 곡기를 취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단식을 하여선 안됩니다!

스님, 아직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진행중인 대형국책사업" "어려운 나라경제"라는 태산을 어깨에 얹은 채 재판장님은 마지막 홀로된 시간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도롱뇽 소송단 변호사님은 "판사 세 분 외 아무도 판결내용을 모른다"고 하십니다. 공단의 부실한 사전조사도 분명 질타하셨던 판사님이십니다.

아무튼 고속철도 사업은 재판장님의 어깨에 얹힌 그 태산을 들어올리지 못합니다. 그 태산은 오직 천성산 생명운동의 뜻이 널리 알려지고 우리 모두 그동안 살아온 낭비적이고 폭력적인 삶의 방식을 아프게 되돌아볼 때 들어올려집니다. 재판장님은 시대의 태산과 천성산의 무게를 재고 있을 것입니다. 재판장님이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저는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아, 어젯밤 제가 꾼 천성산 꿈이 오늘 재판장님의 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스님, 11월29일, 부산고등법원에서 뵙겠습니다.

김곰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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