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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만 커진 아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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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만 커진 아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묻는다

[특별기획] 한미동맹을 묻는다(1) 연재를 시작하며

필자는 2000년 3월부터 9월까지 <오마이뉴스>에 "미군 없는 한국을 준비하자"라는 제하의 글을 연재한 적이 있다.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을 넘어 주한미군 문제를 제대로 공론화 해보자는 취지였다. 이 연재물은 나중에 같은 제목의 책으로도 나왔다.

2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은 또다시 중대 화두로 떠올랐다.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터무니없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와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GSOMIA,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라는 압박이었다. 현재진행형인 이들 사안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한미동맹의 의미를 묻게 한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동맹이냐?'고.

지난 20년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배 가까이 늘어났고, 국방비는 3배 이상 커졌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력과 7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적어도 물리적인 국력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이미 세계 상위권으로 올라선 것이다.

이 사이에 미국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다양한 형태로 나오고 있다. 전통적이고 맹목적인 친미주의는 여전히 막강하다. 1980년대 한국사회를 강타했던 반미주의는 크게 위축되었다. 주목할 만한 현상은 '공미형' 친미주의와 '반미형' 핵무장론의 등장이다.

'비대칭 동맹'의 실체는?

'공미형' 친미주의는 미국의 정책이나 요구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미국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미국에 끌려 다니는 현상을 일컫는다. 주로 중도·진보 정권으로 여겨져 온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그리고 이들 정권의 지지층 일부에서 이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중도·진보 정권들이 미국 앞에서 작아지는 현상은 한미관계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워싱턴의 날갯짓이 서울로 오면 태풍으로 돌변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미국 정부 관리들, 한반도 전문가를 자처하는 미국 전문가들의 한마디가 국내 언론과 정치권을 거치면서 침소봉대되어 한국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온 것이다. 취재원이 마땅치 않으면 정체불명의 '소식통'이 인용되는 것도 단골 메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에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한미간에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둘러싸고 진통이 커지자 <조선일보>는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주한미군 1개 여단의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큰 파문이 일어나자 미국 국방부가 직접 나서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또한 보수 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렸던 것이 마치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압박을 초래한 것처럼 보도하곤 한다. 이러한 논조는 25일 <조선일보> 사설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한·미·일 삼각 안보 체제의 기본 틀인 지소미아를 파기하려 한 것도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의) 빌미를 줬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당치 않은 주장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분담금을 5배로 올려달라는 요구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 수개월 전에 이미 나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압박과 국내 극우·보수의 정치 공세가 맞물리게 되면, 중도·진보 정권은 한미관계뿐만 아니라 국내 여론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극우·보수 진영이 '안보 불안'과 '한미동맹 이상'을 제기할수록 중도·진보 정권의 콤플렉스는 커지고 운신의 폭은 좁아지는 양상을 보여온 것이다. 흔히 한미동맹을 가리켜 '비대칭 동맹'이라고 하는데, 이는 양국의 국력 차이 못지않게 한국 언론과 정치의 삐뚤어짐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도·진보 정권의 '공미형' 친미주의를 양해할 수만은 없다.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요구나 압력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을 때, 지지층들의 반응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곤 했다.

하나는 실망감이나 배신감의 토로이다. 이는 중도·진보 진영의 갈등과 분열로 이어진다. 또 하나는 미국으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엄청난 협박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정권의 선택을 이해하면서도 자괴감, 더 나아가 체념을 품게 만든다. 끝으로 정권의 선택에는 고도의 전략, 즉 '신의 한수'가 깔려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러한 막연한 믿음은 정부 정책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를 어렵게 만든다.

'반미형' 핵무장론의 경우는?

'공미형' 친미주의가 반미주의의 한 분파로 나온 것이라면, '반미형' 핵무장론은 맹목적 친미주의의 변형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핵무장이 가시화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미국이 서울을 구하기 위해 LA를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즉 미국의 핵우산을 믿을 수 없으니 우리도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를 이룬다. 극우·보수 매체와 정치인뿐만 아니라 상당수 국민도 핵무장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반미형' 핵무장론은 맹목적 친미주의와 동전의 앞뒤 관계에 있다. 미국의 동맹 전략의 핵심이자 한국에도 지속적으로 제공 의사를 밝혀온 핵우산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반미적 색채를 띤다. 하지만 독자적 핵무장론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 핵무장론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갖다 놓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추진은 한국이 칼의 손잡이가 아니라 칼날을 손에 쥐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미국 전술핵의 재배치는 '문 뒤의 총'을 문 앞에 갖다 놓자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핵전쟁 억제 효과보다 핵전쟁 발발 위험을 키우게 된다.

'우리 안의 미국'

미국의 위세는 여전하지만,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지위는 점차 약화되어왔다. 그러나 '우리 안의 미국'은 더 커지고 있다. 한국의 덩치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커졌지만, 정신적인 대미 종속성은 여전하거나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맹목적 친미주의와 그 변종인 반미형 핵무장론은 미국에 대한 '기대'를 함께 품고 있다. 미국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 혹은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것이라는 기대를 말이다. 하지만 이는 있는 그대로의 미국이 아니라 '우리 안의 미국'이다.

공미형 친미주의 역시 '우리 안의 미국'으로서의 성격이 짙다. 미국의 말을 듣지 않으면 보복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미국의 협박 못지않게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경우들이 많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에 국내 정치적 고려까지 더해지면 두려움은 배가 되기 마련이다.

이에 본 연재에서는 미국의 갑질 및 한미동맹의 문제점은 물론이고 우리 안의 미국에 대해서도 비판의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미동맹은 강화되어야 한다'는 신화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한미관계와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자 한다.

* 본 연재는 매주 1~2회, 약 3개월에 걸쳐 진행됩니다. 다음에 이어질 글은 '김대중은 미국의 역대급 압박을 어떻게 이겨냈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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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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