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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블랙리스트' 박중훈이 기억하는 노회찬, 그리고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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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블랙리스트' 박중훈이 기억하는 노회찬, 그리고 안성기

노회찬재단·프레시안 공동기획 '국민배우 박중훈과의 대화'

감독 겸 배우 박중훈은 고 노회찬 전 의원의 추모제에서 추도사를 한 7명 중 한 명이다. 노 전 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운 일도 있었다. 2008년 총선 때 서울 노원에 출마한 노 전 의원과 열흘 정도 동행했다. 선거본부에서 들고 온 호빵맨 인형이 '노 전 의원과 더 닮았으면 좋겠다'며 검은색 철사를 꼬아 안경을 씌우고, 듬성듬성 빗어 넘긴 머리를 만들어 준 이도 박중훈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 노회찬재단을 찾았다. 프레시안 협동조합과 노회찬재단이 공동주최한 제22회 함께데이 '국민배우 박중훈과의 대화'에 연사로 나서 강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 앞에 섰다. 그리고 생전 가까이 지냈던 "회찬이 형님"과의 기억을 전했다. 절친했던 선배 배우 "안성기 형님"과 기억, 영화에 대한 생각과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말했다.

어느덧 60세가 된 박중훈이지만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밝은 표정도, 또렷한 눈빛과 힘있는 목소리도 스크린 속 그대로였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강연과 대화에서 그는 열과 성을 다했고 어떤 질문에도 진지하게 답했다. 청중은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특유의 너스레에 때로 웃었다.

▲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 협동조합이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 노회찬재단에서 연 제22회 노회찬재단 함께데이 '국민배우 박중훈과의 대화'에서 이야기 중인 배우 박중훈. ⓒ노회찬재단

박중훈이 노 전 의원을 처음 본 것은 많은 사람이 그랬듯 방송을 통해서였다. "TV를 보는데 '불판을 갈자'고 하고, 이력을 보니까 노동운동도 하고. 이러면 왜, 잘 모르는 사람은 겁내잖아요. 저도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던 사람이에요. 그래도 저 양반이 무섭더라고요. 그런데 재미가 있는 거에요."

박중훈이 노 전 의원에게 매료된 이유도 많은 사람이 그랬듯 그의 유머 때문이었다. 노 전 의원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잘 이야기할까 대단한 사람이네'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친구들을 웃기길 좋아했고 한때 코미디언을 꿈꾼 적도 있는 그였기에 노 전 의원의 유머에 더 마음이 움직였을지 모른다.

그 길로 노 전 의원에 대해 찾아보고 2004년 당시 <아침마당>을 진행했던 이금희 아나운서에게 연락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충무로에 드나들며 자신을 출연시켜 달라고 부탁하며 돌아다녔을 정도로 행동력이 남달랐던 박중훈이었다. '친하게 지낸다'는 이 아나운서의 말에 밥자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이 아나운서는 훗날 노 전 의원 추모제의 사회를 봤다.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때였다. "절친"이라고까지 말하긴 부끄러울지도 모르나, 박중훈과 "회찬이 형님"의 사이는 종종 술자리를 할 정도로 깊어졌다. 둘다 술을 즐겼고 마음도 잘 통했다. 술자리에서 "고주망태"가 되지 않고 "도리"를 지키는 노 전 의원의 모습도 좋았다고 박중훈은 말했다. 한 가지 신기한 점도 있었다.

"방송이나 토론회 나가서는 유머감각이 뛰어난데 사석에서 만나면 수줍어하셔요. 말도 많지 않고 남의 말을 잘 들어요. 그리고 별로 안 웃겨요." 청중이 웃음을 터뜨리자 그는 "이 형님은 카메라가 돌아가야 웃기나 그런 생각도 했어요"라고 너스레를 덧붙였다.

▲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 협동조합이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 노회찬재단에서 연 제22회 노회찬재단 함께데이 '국민배우 박중훈과의 대화'에서 이야기 중인 배우 박중훈. ⓒ노회찬재단

2008년 노 전 의원의 첫 번째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갔다. 박중훈은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손석희 앵커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노 전 의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좋아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연락해서 돕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배우자도 "저 분은 되게 좋은 분 같다"고 말했다. 마음이 더 굳어졌다.

다시 한 번 행동력을 발휘했다. 노 전 의원에게 따로 연락해 "노원구에 곧 나오신다면서요? 제가 좀 돕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반가운 제안을 노 전 의원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후 예비후보 선거운동 기간에 열흘 정도 박중훈은 새벽부터 밤까지 노 전 의원의 모든 일정을 따라다녔다.

일주일 만에 병원에 가 면역력 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로 고된 일정이었다.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박중훈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저도 쭈뼛댔어요"라더니 잠시 숨을 고르고 그가 다시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그런데 나중에는 '뭐 누구 없나' 막 찾아다니게 됐어요. 하이에나처럼. 선거가 그렇더라고요."

그러나 결과는 석패였다. 통합민주당, 한나라당, 진보신당의 3자 구도 속에서도 공개 여론조사 기간 노 전 의원은 대개 선두 주자였다. 다만 막판 추세가 이상했다. "느낌이 쎄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안 될 리가 있겠어?' 이러고 미국에 촬영이 있어서 갔어요. '축하 전화라도 한 번 해야지' 마음먹고 있었는데 떨어진 거에요."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일이었다.

선거 직전 노 전 의원이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으로 고초를 겪을 때도 박중훈은 곁을 지켰다. <나를 기소하라> 출판회에서 축사를 했다. 여기에 노 전 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운 일이 겹친 탓이었을까. 이제야 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뒤로 광고 일이 끊겼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박중훈의 이름이 올랐다.

▲2008년 3월 배우 박중훈이 노회찬 전 의원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옆에 있는 호빵맨 인형에는 나중에 '노회찬 형님과 더 닮았으면 좋겠다'는 박중훈의 제안에 따라 검은색 철사로 만든 안경과 빗어넘긴 머리가 입혀졌다. ⓒ노회찬재단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노 전 의원의 낙마 뒤 '지못미' 열풍이 불었다. 박중훈과 노 전 의원도 더 친해졌다. 직접 만나면 대중적 이미지와 달리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봐왔지만, 노 전 의원은 그렇지 않았다. 보좌관에게도 친근하게, 또 예의를 지키며 대했다. 권력만을 노리지 않는 소신을 가진 정치인이라고도 느꼈다. 그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일어났다.

이후 2018년 7월 26일 박중훈은 노 전 의원의 추모제에 참석했다. "이제 겨울에 뜨거운 굴국밥 누구랑 먹습니까? 형님 그리워요. 더더 절망스러운 건 이 그리움이 점점 더 커질 것 같아요. 형님 이러시면 안 되죠.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이 자리 모든 사람과 함께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라고 맺은 추도사도 울며 읽었다.

▲배우 박중훈이 2018년 7월 26일 서울 서대문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노회찬 전 의원 추모제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JTBC> 유튜브 캡처.

잠시 분위기를 고른 박중훈은 또 한 명의 "형님"을 추억했다. 올해 초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선배 배우 안성기였다. 정치인과 배우로 살아온 길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박중훈이 마음으로 기리는 이들이었다. 박중훈은 안성기에 대해 "인격이 뭔지 알게 해 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중훈은 영화에 집중하기로 한 데에도 안성기의 영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자신 영화관에서 관객이 자신의 연기를 보며 울고 웃는 모습이 좋았기도 했지만, 1980년대 컬러 TV의 시대가 오며 많은 연기자가 열악한 영화 현장을 떠날 때 안성기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멋있었고 '나도 저 사람처럼 돼야겠다'고 생각했단다.

▲2006년 서울 영등포구 KBS 공개홀에서 열린 제27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라디오스타>로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한 배우 안성기(오른쪽)와 박중훈. ⓒ연합뉴스

이어진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영화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 OTT 시대를 보며 든 생각을 묻는 말에 박중훈은 "극장은 없어지지 않을 거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며 "영화관이 극을 보는 장소가 아닌 체험하는 장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관객의 집중력" 면에서는 차이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OTT에 출연하는 배우의 입장에 대해서도 그는 "듣기로는 연기에 대한 요구가 변했다. 예전에는 어떤 사람을 싫어하면 초반부에 한 번 드러내고 다음에는 그냥 안 보고 지나가면 됐다"며 "이제는 '내가 그 사람 싫어하는 거 알잖아', '내가 그 사람과 사이가 좋은 것 같니'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 주길 원해 메소드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박중훈은 "제 작품이 대부분 극장에서 상영돼 극장이 쇠락하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안타깝기는 하다"면서도 "시대가 달라지고 플랫폼이 달라졌는데 '나는 안 그러겠다'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넷플릭스에 좋은 작품이 있다면 너무 좋고 기대되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는 작품을 고를 때는 친분이나 장르가 아닌 "관객과의 신뢰가 최우선"이라고 했다. 이를 지키기 위해 "그 판단이 틀릴 수는 있지만, 시나리오라는 설계도를 보고 좋은 영화를 고르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영화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을 연기할 때 가족을 해치는 상상을 하며 지내야 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어디 가서 꺼내기 어려운 배우 노동의 고단함을 말하기도 했다. 배우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오래 남는 배우들은 거의 다 매너가 뛰어나다"고도 했다.

대화를 맺으며 박중훈은 "혹시 미필적 고의로 누구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었을 것 같아요"라며 청중의 마음을 살폈다. 이어 "오늘 뭐 보나 마나 틀림없이 좋은 시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라고 농을 던졌다. 청중 사이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 박중훈도 활짝 웃은 뒤 "감사합니다"라며 "굉장히 집중해서 공감하며 이야기를 들어주신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 협동조합이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 노회찬재단에서 연 제22회 노회찬재단 함께데이 '국민배우 박중훈과의 대화'에서 배우 박중훈과 청중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노회찬재단

대화가 끝난 뒤 박중훈은 청중이 들고 온 옛 영화 포스터, 자신이 쓴 책 <후회하지마> 등에 사인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노 전 의원의 연설 영상이 스크린에 영사되고 있는 노회찬재단 1층 로비에서였다.

두 시간의 강연에 사인회까지 세 시간 가까운 일정에 지칠 법도 하건만, 박중훈은 웃는 얼굴로 자신을 만나러 온 이들에게 농담과 따뜻한 말을 건네며 끝까지 상대를 배려했다. 그 모습이 그가 기억하는 두 형님과 닮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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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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