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시민사회에서 뜨겁게 분출되던 담론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그 선언을 넘어 훨씬 더 구체적이고 과감한 의제들을 뿜어내고 있다. 국민주권위원회와 국민주권센터, 시민의회, 시민법정, 주민자치회와 원탁회의, 사회연대경제와 협동조합청-공공은행-마을기금, 마을대학과 마을병원에 이르기까지.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시대적 요구는 거센 물결이 되어 정책 의제로 터져 나오고 있다.
왜 직접민주주의를 말하는가?
이러한 시대적 열망을 모아 2025년 10월 24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과 15개 세미나실에서 '2025 풀뿌리직접민주주의 국민주권대토론마당'이 열렸다. 그리고 이어 지난 10월 16일 개최된 '2026 대한민국 직접민주주의 박람회'는 지난해의 문제의식과 정신을 이어받아,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적인 '정치·민주주의 박람회'로 성대히 펼쳐졌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이른바 'K-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한류 바람과 함께 세계적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다시 직접민주주의를 외치는가? 한국 시민사회는 왜 이토록 질기게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며, 직접민주주의 콘텐츠 박람회까지 열고 있는 것인가? 그 근저에 깔린 진짜 동기는 무엇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소극적으로는 한국 민주주의가 더 이상 위기에 빠지지 않고 반동적 극우·파시즘 세력에게 허망하게 역습 당하지 않도록 단단한 방파제를 쌓기 위함이다. 적극적으로는 AI·로봇 대전환의 시대에 'AI 기본사회'를 건설하고, 제대로 된 '제7공화국'을 열어젖히는 주춧돌을 놓기 위함이다.
솔직해지자. K-민주주의가 상종가를 치고 있다는 찬사의 실제 내용은 무엇인가? 내란과 극우 전체주의라는 끔찍한 퇴행의 위기를 시민의 단결된 힘으로 가까스로 막아냈다는 뜻이지, 결코 우리 민주주의가 완성형 제도로 진화했다는 뜻이 아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위기를 겨우 면했을 뿐이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숙의민주주의가 대등하게 어깨동무하는 진짜 민주주의, 그리고 AI 기본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빼앗긴 '헌정 직접민주주의 3법(국민발안·국민소환·국민투표)'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대의정치(대의민주주의), 시민정치(직접숙의민주주의), 주민자치(풀뿌리민주주의)라는 세 바퀴가 함께 굴러가는 선진 제7공화국 시대를 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빼앗긴 절반의 민주주의
12·3 내란 사태의 충격 속에서 출범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는 국무회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국정을 펼치며 한때 70%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를 받았다. 국무회의 생중계를 보는 것이 드라마보다 재미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 6월 지방선거 이후 지지율은 30%대로 급락했다. 이 현상은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던진다. 권력의 원천 주체에 걸맞은 '국민주권(of the people)'의 제도화와, 권력의 운영 주체로서 '직접민주주의(by the people)'를 실행하는 구조 없이, 단지 위정자의 시혜적 국정운영(for the people)에만 의존하는 체제는 언제든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서민 대중을 위하는 마음이 절절한 소년공 출신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제도가 받쳐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직접숙의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협치하는 제도적 안착이 없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주주의는 뿌리째 위협 받는다. 급박한 경제 위기나 시스템의 균열이 생길 때 필연적으로 머리를 들어 올리는 파시즘의 위협을 막아낼 유일한 무기는 '헌정 직접민주주의 3법'이며, 이를 지켜낼 가장 튼튼한 담장은 '풀뿌리 주민자치'다. 이번 박람회가 "'For the People'을 넘어, 'Of & By the People'의 국민주권정부로!"를 슬로건으로 내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된 민주공화국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 헌정사의 숨은 비극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948년 선포된 제헌헌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삼균주의' 건국강령 정신을 이었다. 그 강령 속에는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라는 두 개의 눈동자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집권을 탐한 이승만 정권은 국민발안·국민투표라는 직접민주주의 권리와, 읍·면·동장 선출제 같은 주민자치 구성권이라는 귀한 눈동자를 무참히 뽑아버렸다. 4·19 혁명으로 직접민주주의의 불씨를 겨우 살려냈으나, 불과 1년 만에 5.16 군사 쿠데타로 좌절되었다. 급기야 유신헌법은 직접민주주의는 물론 대의민주주의의 눈알마저 빼버리며 민주주의를 철저히 짓밟았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우리는 마침내 '대의민주주의'라는 눈동자 하나를 겨우 되찾았다. 하지만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민주화의 주역들이 국정의 중심에 섰음에도, 우리는 빼앗긴 '직접민주주의'라는 또 하나의 눈동자를 여전히 되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문명사적 대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형식적 대의제에 갇혀 있던 87년 체제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 한국 정치는 엘리트 정치 카르텔이 권력을 독점하는 적대적 공생 구조로 고착되었고, 주권자인 시민은 선거철에만 표를 던지는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AI와 로봇이 주도하는 초록문명 시대, 시민들은 이미 '손안의 AI 비서'를 활용해 수많은 지식을 흡수하며 더욱 똑똑하고 주체적인 집단지성으로 거듭나고 있다. 기능을 상실한 대의민주주의가 더욱 똑똑해진 대중의 열망을 담아내지 못할 때, 정치는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빈틈을 타 극우 전체주의와 팬덤 정치가 국정을 흔들고 공동체를 파탄으로 몰아넣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러한 비극을 근본적으로 막아낼 유일한 길은 직접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명확히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 과업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완수해야 할 '제2의 민주화 운동'이다. 타성에 젖은 기득권 권력은 결코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지 않는다.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만 이룰 수 있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들이 직접 나선 현장이 바로 제1회 '2026 대한민국 직접민주주의 박람회'였다. AI 시대의 민주주의부터 청년 병역 개편 문제까지, 일상을 바꿀 20개 분과 세션에서 뜨거운 토론이 펼쳐졌다. 폐막 공연에서는 성북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 무용단과 섬세한 한국춤의 남명무용단, 선 굵고 패기 넘치는 K-풍류예술단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며 청중과 함께 신명 나는 공동체 떼춤을 추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매년 직접민주주의 박람회를 열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라는 두 수레바퀴가 강력하게 맞물려 돌게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단단한 방패이자, AI 대전환 시대에 참된 민주공화국 '제7공화국'의 문을 열어젖힐 강력한 창이다.
지난 10월 16일 첫발을 뗀 '2026 대한민국 직접민주주의 박람회'는 위대한 민주화 대장정의 당찬 신호탄이다. 2027년에는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는 민주주의의 성지 광주에서 본 박람회와 함께 '세계 직접민주주의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2028년부터는 전국 11개 광역시·도로 확대하여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대한민국에 직접민주주의와 자치가 완전히 뿌리내릴 때까지 이러한 국민공론마당과 직접민주주의 대장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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