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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비만 지키는 반도체 클린룸에선 사람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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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비만 지키는 반도체 클린룸에선 사람이 죽는다

[클린룸을 오가는 사람들] 가스감지기 작업자 임한결 이야기 ① 안전관리 사각지대 클린룸 지하공간을 아십니까

반올림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입니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를 신청하면서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해 생애사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아픔과 고통뿐 아니라 개인의 꿈과 행복에 대해 묻는 인터뷰를 했고, 재해경위서, 진술서가 아닌 삶을 담은 글을 적었습니다. 올 한 해 2월부터 한 명씩 총 11명의 삶을 구술기록으로 전해드립니다.

임한결 님은 2018년 10월 5일 사망했다. 당사자를 직접 인터뷰하는 경우에는 내가 인터뷰하며 본 모습이 그 사람의 모든 모습일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내가 본 일부의 모습이라도 글로 담아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임한결 님을 만날 수 없다. 그의 말, 말투, 표정, 행동을 보고 들을 수 없다. 사실이라 믿고 매달릴 수 있는 일부의 조각이라도 갖지 못한 상태에서 한 사람을 글로 적어내는 일에는 영 자신이 없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임한결 님을 다뤄야만 하는 이유는 분명했기에 그의 아버지와 친구를 인터뷰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아리송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것들을 다시 재구성해서 전하는 것이 어쩐지 왜곡으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므로 미리 밝혀둔다. 이 글은 임한결 님을 묘사하는 데에 실패한 글이다. 임한결 님은 이 글에서 비친 모습과 전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패일 수밖에 없는 글을 폐기하지 않고 거듭 고민한 끝에 세상에 공개하는 그 마음만큼은 전달되길 바란다.

▲가스감지기를 바라보는 고 임한결 ⓒ박정원

대화가 부족했던 아버지와 아들

아는 것도 많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잘 아시잖아요. 어떻게 보면 깊은 대화 하기도 좀 어렵고, 이제 그게 차츰차츰 이제 발전해 나가려고 하는 순간이었죠. 그때가 그 당시가.

임한결의 아버지는 위와 같은 말로 말문을 열었다. 소통이 부족했음을 느끼고 계셨지만 한결의 어린 시절부터 기억이 나는 이야기들을 조금 조금씩 꺼내 주셨다. 아버지의 기억 속 어린 한결은 조용하고 독립적인 아이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걱정했으나 걱정이 무색하게 학교 들어가서는 사교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한결을 본 친구의 말에 따르면 한결은 "안 밝았던 적이 없는 친구"였고 친구들이 매우 많았다.

운동, 특히 축구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4, 5학년 때 감독이 전화를 해 축구를 가르쳐보라는 제안을 했고 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내내 조기축구를 했다. 체육 특기생으로 대학에서도 체육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축구 교실에서 강사로 일을 했다. 그러나 운동인으로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체육 쪽에는 워낙 잘 나가는 사람이 많으니까 축구 교실 같은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잖아요. 운동을 좋아하니까 그쪽으로 하려고 그랬었는데 성장하고 학교 졸업하고 나니까 막상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거죠. 어쩔 수 없이 자기와 관계없는 그런 분야를 선택해야 하는 게 현실이고 그러니까.

▲축구공 삽화. ⓒ박정원

축구 교실에서는 일반 직장인의 반도 안 되는 돈을 벌었다. 시간은 시간대로 쓰지만 알바나 다름 없었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은 아니었다. 한결도 그런 고민을 했을까. 고민의 과정은 알 수 없으나 한결이 운동을 뒤로 하고 선택한 일은 삼성의 하청업체인 아이엠에스에서 가스감지기 구매, 납품, 시운전 및 점검을 하는 일이었다. 2015년 3월, 28살의 나이에 입사했다.

조그마한 회사였거든요 거기가. 기술을 좀 더 배우지 않을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것저것 해 가지고. 그러면 다른 데 나은 데도 들어갈 수 있고 기술 배우면. 그런 데 들어가는 걸 갖다가 반대도 안 하고 ‘해봐라’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지.

한결이 취급한 가스감지기는 LNG, 수소, 산소감지기로 밀폐 공간에서 가스 누출이 발생하거나 특정 기체의 농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상황을 감지하는 장치였다. 한결의 업무 중 제품의 발주, 납품이력 정리 등은 회사 사무실에서 이뤄졌지만 실제 납품과 시운전, 점검 업무는 삼성 공장에서 이뤄졌다. 한결은 기흥, 화성, 평택, 중국 시안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 그리고 천안, 아산에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공장, 송도에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에서 업무를 수행했다.

클린룸을 클린하게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

▲ 라인 구조. 2023년 5월 18일자 서울행정법원 2020구합86644 판결문에 삽입된 그림이다. ⓒ판결문

한결의 업무공간은 라인 내 서브팹(CSF, FSF), 공동구, 변전소 등이었다. CSF(Clean Sub Fab)은 반도체의 제조가 이뤄지는 메인팹(Main Fab)의 하부에 위치한, 공기 순환을 위하여 존재하는 공간이다. FSF(Facility Sub Fab)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화학물질 공급을 위한 밸브, 공기 순환을 위한 배기와 덕트관, 전기공급을 위한 전기 케이블, 화학물질 정화장치인 스크러버(Scrubber) 등이 설치된 공간이다. 한결이 업무를 위해 이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메인팹을 출입해야 했다.(아래 그림 참조)

핵심은 이것이다. CSF, FSF 등 지하 공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클린룸을 클린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클린룸이라 불리는 메인팹은 반도체 생산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미세먼지가 공정에 유입되는 것을 엄격하게 차단해야 한다. 그렇기에 오염물질이 많이 배출되는 설비는 클린룸 안에 위치할 수 없었다. 서브팹은 그 모든 오염을 수용하는 공간이었다. 여기에 더해 서브팹에도 클린룸의 유해물질이 그대로 유입될 수 있기에 그 위험은 결코 클린룸에 비해 경미하지 않다. 더욱이 이러한 서브팹은 반도체 제조가 직접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기에 유해물질 노출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이 공간에 대해 작업환경 측정 자체를 실시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삼성의 관심이 닿지 않는 공간에도 일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서브팹은 반도체를 만드는 클린룸이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 필수적인 공간이다. 아무 피해가 없었다면 있는지도 모르고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았을 공간이지만, 결국 이곳에서 일하던 한 사람이 죽고 말았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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