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부와 집권여당이 조금이라도 오만하고 군림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감당 못할 큰 위기가 왔다"고 말했다.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피의자인 이종섭 주호주대사와 문화방송(MBC) 기자에게 '회칼 테러' 발언을 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거취 문제를 두고, 당정 간 이견이 표출된 가운데, 대통령실을 향해 두 인사를 정리해야 한다고 에둘러 압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당내에서도 대통령실이 이 대사와 황 수석에 대한 입장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 위원장은 19일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오늘로 총선이 22일 앞으로 다가왔다. 진심을 전하고 자만을 경계하며 모두와 함께 가야 한다"며 이같이 밝힌 뒤 "국민을 섬기는 자세, 국민의 따끔한 지적을 귀하게 받드는 자세만이 22일 동안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에 지면 윤석열 정부는 집권하고 뜻 한 번 펼쳐보지 못하고 끝나게 될 것"이라며 "저들의 폭주를 막고 종북세력이 우리 사회 주류를 장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우리 뿐"이라고 대야 공세와 색깔론도 폈다.
발대식 뒤 기자들과 만나 한 위원장은 이 대사와 황 수석 문제에 대한 당정 간 이견에 대해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선거를 앞두고 민심에 민감해야 한다는 제 생각을 말씀드린 것"이라며 "국민들깨서 소모적인 정쟁으로 총선 앞에 다른 이슈보다 (이 대사와 황 수석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으니까 정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가 말씀드린 입장에서 변함 없다"고 말했다.
앞서 한 위원장은 지난 17일 기자들과 만나 "이종섭 대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공수처는 즉각 소환을 통보해야 하고,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며 "(황 수석의 발언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발언이고 본인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셔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전날 입장문을 통해 이 대사에 대해 "적임자를 발탁한 정당한 인사"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내부에서 황 수석 자진사퇴론이 확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언론 공지를 통해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이 대사와 황 수석의 거취 문제를 두고 '윤-한 갈등'이 재점화되고 있는 가운데, 여당 내에서도 수도권 후보를 중심으로 대통령실 대응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서울 동대문을에서 공천을 받은 김경진 전 의원은 이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대사 거취 문제에 대해 "민심의 흐름에 우리 전체, 특히 대통령실을 포함해 모두가 겸손하게, 겸허하게 반응해야 한다"며 "선거 기간에 우리 국민의힘, 또 윤석열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국민들께 보이는 태도와 자세, 느낌, 이것이 겸손이 아니라 오만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황 수석에 대해서는 "대다수 수도권 후보들과 생각의 맥을 같이하는데, 자진사퇴를 해주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성격적으로 읍참마속(泣斬馬謖)을 잘 못하신다. 하실 때는 하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종로 초선 최재형 의원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황 수석의 발언이나 이 대사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될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그 수준은 사퇴보다는 이 문제를 국민이 납득할 만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인천 동·미추홀을 4선 윤상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결단이 필요한 때"라며 "연이은 악재로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선거 결과를 가름할 수도권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 총선에서 패했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보시라. 윤석열 정부의 개혁은 물거품이 될 것이고 대한민국의 시계는 과거로 되돌아갈지 모른다"고 썼다. 그는 이날 중앙선대위 발대식 뒤 기자들과 만나서도 '대통령실의 이 대사, 황 수석 문제 대응을 어떻게 보나'라는 질문에 "민심의 따가움을 아직은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며 "(당 지도부가) 현재 민심이 이렇다는 걸 말해줘야 한다"고 답했다.
충남 공주·부여·청양 5선 정진석 의원도 이날 중앙선대위 발대식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대사에 대한 생각을 묻는 말에 "국민 눈높이라는 것과 법, 행정의 눈높이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은 국민 눈높이를 따를 때"라고 답했다. 그는 황 수석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이 어떤 때인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선거가 2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며 "또 이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 선거이고, 정말 우리가 건곤일척의 승부를 지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점을 모두가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영부인 명품백 수수 의혹' 때와 비슷하게 '윤-한 갈등'이 적절한 수준에서 봉합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위원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김경율 비대위원도 이날 중앙선대위 발대식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대사와 황 수석 문제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처음에는 차이로부터 시작하는데 조정되어질 수 있는 차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 대사 문제에 대해 "당이든 대통령실이든 공수처의 조속한 소환, 그리고 그에 따른 이 대사의 조속한 귀국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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