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미학연구소와 한국민족미학회가 주최하는 '2023 춘계 학술발표회'가 '1970, 80년대 민속극 부흥운동의 전개 양상과 그 사회문화사적 배경, 그리고 생성미학적 접근'이라는 주제로 지난 6월 29일 부산대학교 인덕관에서 열렸다.
학술발표회 자료집 가운데 김사열 경북대학교 명예교수의 발제문을 두 편으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4. 1990년대 이후 '386세대' 정치사회운동과 전문문예운동
1980년대 대학을 다녔다가 졸업한 이들은 각자의 선택에 따라 사회 각처로 진출하였다. 그들이 대학에서 겪은 주체적 민주화의 경험은 일반사회로 옮겨져서 일상의 민주화운동으로 혹은 다양한 부문별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후자는 바로 노동운동, 농민운동, 교육운동, 문화예술운동, 여성운동, 통일운동, 빈민운동 등이다.
생활 속 일상의 민주화나 부문별 민주화운동의 시작과 심화는 민주주의가 다양한 현장을 만나 확산되어 가는데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기존의 전체주의 체제처럼 국가가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거나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이 합리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국가가 경청하고 수용하여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정착은 그 사회의 공적 체계를 합리적으로 세우고, 개인 혹은 시민이 국가 권력의 진정한 주인이 되도록 정의로운 사회를 구축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1980년대 대학 졸업자 중 일부는 시민사회운동 속으로, 또다른 일부는 정치사회운동 쪽으로도 진입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대학 전체가 학생운동의 기류가 강해서 이들은 졸업 후에도 여러 세대 중 영향력을 가진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앞서 언급한대로, 대학진학률이 5% 미만이었던 1970년대와 달리, 1980년대는 30%에 달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른바 '386 세대(the 386 Generation)'22)이다.
정치권에서도 '386세대'는 그러한 세대 기류를 배경으로 도드라지게 세력을 형성하며 진입하였다. 다른 세대가 보수, 진보 정치권에 고루 포진하는 경향과 달리, '386세대' 주류는 대체로 민주당이나 진보정당 쪽에 자리 잡았다. 민주당 계열을 살펴보면, 그들은 김대중 정부 당시 일부가 정치권에 진입하였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17대 총선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대거 당선되어 다양한 정치 경력을 쌓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감당하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386세대'를 넓혀서 찾아보면,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문재인 정부 출범 시, 민정수석을 맡았던 PD계열 조국과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았던 NL계열 임종석에 대하여 한 언론에서는 'NL·PD 갈등 30년'23)을 거론하며, "화합해 문재인 대통령을 잘 보필할지 의문이다."는 야당 대변인 논평을 창간기획으로 실었다. 그렇지만, 기대했던 견원지간의 싸움은 전혀 없었다. 더구나 조국은 최근에 낸 저서 『가불 선진국』 머리말에서 학생운동 '당시 내부 노선 투쟁의 두 축이었던 NL대 PD의 대립은 이제 현실 적합성을 잃었다.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의 지향은 '민생민주'일 것'24)이라고 적고 있다.
1980년대 대학과 사회에 민주화운동의 바람이 불면서, 전국적으로 많은 다양한 전문문화단체들이 생겨나면서 사회변혁적 주제를 다룬 문화예술운동(professional culture and arts movement)이 확산되었다. 이 시기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마당극패들도 때로는 우리 사회의 문제, 때로는 지역사회의 문제 등을 연행의 주제로 두루 다루었다. 영남권에서도 80년대에 무려 16개 전문연희패가 생겨났는데, 대구에서 극단시인(1983년 1월)과 놀이패탈(1983년 12월), 부산에서 극단자갈치(1986년 3월), 극단새벽(1987년 9월), 놀이패일터(1988년 5월) 등이 창단을 선도하였다.25) 당시 분위기는, <영남지역마당굿운동협의회>가 1988년 7월에 창립되고, 「제1회 영남지역민족극한마당」을 벌였을 정도이다.
1988년 겨울 전국에서 마당극운동에 동조하는 많은 극단과 놀이패의 활동가들이 모여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한국민족극운동협회>의 전신, 이하 '민극협'으로 줄여 씀)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그러한 기류의 형성에는 각처에서 창단된 새로운 단체들이 대종을 이루었지만, 마당극운동의 흐름에 동조하는 기존의 연극단체들도 일부 합세하였다. 당시 대구지역에서는 5개 단체가 참여하였고, 구체적으로 놀이패탈, 극단시인, 극단처용, 극단떼풀이, 극단한사랑 등이다.26)
1988년 3월 3일 서울 미리내소극장에서 시작되었던 「전국민족극한마당」(이하 '한마당'으로 줄여 씀)은 1,2회 대회를 서울에서 진행하고 3회부터, 대구, 광주, 부산, 대전, 청주, 원주, 제주, 인천, 목포 등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되었다. 전국을 순회하며 지역마다의 자생적 문화를 바탕으로 한마당은 차츰 성장하였다. 또한 한마당을 진행하면서 지역의 공연예술은 그 경험을 부가하여 보다 굳건해져 갔다. '마치 관객과 광대가 서로의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더 큰 신명을 불러내듯 지역과 한마당은 선순환구조로 잘 짜인 큰 놀이판이 되었다. 한마당은 전통과 민중이 어우러진 공연예술축제라는 정체성에 맞게 지역으로, 민중으로, 우리의 신명이 살아있는 곳으로 지속적인 도전'27)을 벌여 나갔다.
1970년대에는 독재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문예단체의 결성, 비판적 공연 작품 허가, 자유로운 공연장 확보 등에 제약이 많았지만, 1980년대 이후는 달랐다. 전문문예단체의 결성도 그렇고, 작품 창작과 공연은 봇물처럼 쏟아졌다. 창작마당극 분야만 해도 「땅풀이」(제주 극단수눌음), 「한라산」, 「백조일손」, 「헛묘」 등을 포함하는 4·3 사월굿 연작(제주 놀이패한라산), 「일어서는 사람들」(광주 놀이패신명), 「금희의 오월」(광주 극단토박이), 「이 땅은 니캉내캉」과 「꼬리뽑힌 호랑이」(대구 놀이패탈), 「복지에서 성지로」(부산 극단자갈치), 「노동의 새벽」(서울 극단현장), 「호미풀이」(대전 마당극패우금치), 「창작춤판 춤으로 본 세상」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청주 열림터) 등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로 풍성한 공연작품 연보를 만들었다. 28)
1970년대 후반 민속극 복원과 마당굿 작업 시도는 80년대가 되면서 마당굿의 시대가 되었다. '신명을 솟구치게 하는 놀이정신과 개방적 포용성의 마당정신이 맺어 합쳐진 바탕 위에서 창조되는 마당굿은 예술의 생활화를 기약한다.'29) 한 마디로, 1980년대 민속극운동은 '마당극에서 마당굿으로'라는 명제로 요약되었다. 창작탈춤 연출가 최재우는 80년대 후반부를 '다양한 매체와 장르의 개발과 확산'30)이라고 적시하였다.
5-1. 민주주의 진화는 아직도 진행형
나라 단위의 민주화운동은 어떤 정권이나 정치인들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사안에 대하여 일반 시민들이 공감하여 1인 시위나 기자회견 혹은 의법청원활동 등을 통하여 잘못된 권력의 행위에 발언하고 수정을 일상적으로 요구하게 될 때 진정한 민주화가 정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은 현재도 진행형인 바, 대중의 깨우침과 연대가 강고해야만 겨우 성취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와서 이제는 해당 사례가 비일비재하여 나열하기도 힘들지만, 기독교권에 한정시켜 최근에 일어난 2가지 예만 들어보자.
(1) 한 예를 들자면, 2023년 3월 28일에 서울제일교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 NCCK 정의·평화위원회 등은 "대한민국 정부는 서울제일교회 파괴공작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 마련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다. 그것은 2022년 12월 1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로 줄여 씀)가 "서울제일교회 박형규 목사와 교인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 사건"에 대하여 채택한 결정문에 근거한 것이다. 그들은 만시지탄이기는 하나 이제라도 진화위가 진실을 규명하고 해당 결정문을 채택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대한민국 정부에 대하여 3가지를 요구하며 권면하였다.
(2) 다른 예를 들자면, 2023년 3월 9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는 "최악의 외교참사, 일본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히며, 윤석열 정부는 굴욕적인 강제징용 해법안을 즉각 철회하지 않는다면, 역사와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은 5월 15일에는 서울시청 광장에 모여 「민생파탄, 친일매국, 한반도 평화위협 윤석열 정권 규탄한다」는 주제를 내걸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시국기도회>를 공개적으로 열기도 하였다.
이같이, 온 국민이 이러저러한 공적 피해를 입었을 때, 그들처럼 나서서, "국가는 사과하고 과거 잘못에 책임을 다하라!"라고 적힌 손 피켓을 거침없이 들게 되면, 비로소 시민 주도적 민주주의는 정착하게 된다. 결코 도달하기 쉽지 않은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권력은 그 대상과 공유하거나 나누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5-2. 마무리: 21세기에도 민속극 부흥이 필요한가?
21세기에 들어서도 한국의 마당극운동단체들은 당대가 직면했던 문제들을 대상으로 수많은 창작 작품들을 생산하여 대중들과 꾸준히 만나왔다. 민극협의 한마당은 2001년 14회부터 지역순회를 마무리하고 특정지역에 안착하게 되었다. 성주에서 6년간 전국·지역 축제로 치러졌고, 목포와 증평, 통영 등지로 확대되었다.
2007년 한 해만 보아도, 민극협의 광대들은 목포, 증평, 성주를 포함하는 3개 지역에서 7·8월 보름의 행사 기간 동안 크고 작은 131회의 공연 연보를 완성했다. 참여 광대는 무려 650여명이었고, 새로 만들거나 사용한 무대가 13곳이었다고 하니 그 풍성한 규모와 콘텐츠의 넉넉함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성주-한마당만 해도, 공식참가작으로 「아이고 으이구」(청주 극단놀이패열림터), 「복지에서 성지로」(부산 극단자갈치), 「허삼관 매혈기」(부산 극단새벽), 「팔칠전」(부산 노동문화예술단 일터), 「여의와 황세」(진주 큰돌문화센터), 「애비」(대전 마당극단좋다), 「팔봉이 문」(대구 극단가인), 「청실홍실」(광주 극단토박이), 「달수의 저지가능한 상승」(서울 극단아리랑), 「찔레꽃 피면」(대구 극단함께사는세상) 등 무려 10개 작품이 선보였다. 거기에, 자유참가작 2개(극단함께사는세상의 「꼬리뽑힌 호랭이」, 극단터의 「산 가장자리 마을」)와 역대 우수작품 특별초청공연 2개(놀이패한라산의 「영감놀이」, 노동문화예술단일터의 「흩어지면 죽는다」), 신작 중심의 국내 초청공연으로 「체 게바라」(나무닭움직임연구소), 「저 놀부 두 손에 떡들고」(극단연극촌사람들)를 포함하여 6개, 해외극단 초청공연 4개 등을 합하면 4일 동안 무려 24개 작품이 공연되었다. 공연 회수의 증가는 당연히 콘텐츠의 질적 비약을 담보해 주었다.
2022년 기준으로 민극협은 30개 회원단체와 10개 준회원단체를 합하여 40개 그룹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탈춤과 마당극, 마당굿을 매개로 한 규모있는 축제가 광주, 목포, 진주, 통영, 안동, 구미, 청송, 청주, 강릉, 제주 등을 포함하여 20여개가 넘는 정도이니 대중적 인기가 무척 높은 편이다.
그런 축제와 활발한 공연을 바탕으로 21세기에도 한층 진화된 레전드급 작품들의 탄생이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첫 박효선 연극상 수상작인 「전태일-네 이름이 무엇이냐」(나무닭움직임연구소, 장소익 연출, 2020년)와 「수주탈춤 예수전」(창작탈춤패지기금지, 2022년) 등과 같은 작품의 등장이다. 후자의 경우, '마당굿운동 50주년 맞이 프로젝트'로 「수주탈춤 예수전」의 3부작 중 그 1부작인 「가나안 골목과 거리예배굿」(총연출 채희완)을 부산과 서울에서 3차례 선보인 적이 있는데, 세상이 좋아져서 나머지 2부작이 반드시 완성될 날을 기대해 본다.
그러한 불편한 시대와 일상에 대하여 발언하는 공연을 통하여 제기된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는가? 그러기는 쉽지 않다. 21세기에는 또 이 시대의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최근 정치권에서 일본과의 외교 관련으로 돌출한 '일본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이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 등을 공연 소재로 다룰 수도 있겠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남아있는 국내외 과거사 문제해결을 위한 개별 혹은 공동 대응 방안 모색도 필요하다. 기후위기와 생태적 혼란과 같은 전지구적 문제도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국가가 외형적으로 선진국 모습을 어느 정도 갖췄지만, 그 내부의 삶의 질 수준은 매우 빈한하다. 지나친 경쟁과 과도한 노동, 양극화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 및 산업재해사망률 1위, 합계출산율 최하위 등을 각각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문제 해결을 위하여, 다시 창작탈춤과 창작마당극을 포함하는 민속극 부흥운동(folk drama revival movements including creative mask dancing drama & Madang theater)이 필요한 시점이다.
각주
22)한국사회에서 1990년대에 30대로서,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의 집단을 일컫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486세대', '586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23)<[창간기획] NL·PD 갈등 30년…PD계열 조국에 음모론도 등장>, 김태윤 외 5명의 기자, 중앙일보, 2019.9.25
24)조국, 『가불 선진국』, 15쪽, ㈜메디치미디어, 2022.4.6
25)김사열, 「영남지방의 전문연희패」, 정지창·김사열 엮음, 『영남의 민족극: 1980~1989』, 369~379쪽, 도서출판우리, 1989.12.25
26)대구경북민주화운동사편찬위원회, 『대구경북민주화운동사』, 505쪽, 도서출판선인, 2020.12.23
27)민극협 편집부, 「제20회 전국민족극한마당 돌아보기」, 김태호·육봉숙·우종필, 『제20회 전국민족극한마당 백서』, 18쪽, 사단법인 한국민족극운동협회, 2007.11.13
28)[구술] 연출가 최재우(한국민족극운동협회 대표 역임) 증언(2023년 5월 23일)
29)채희완·임진택, 「마당극에서 마당굿으로」, 김윤수·백낙청·염무웅 편, 『한국문학의 현단계』, 창작과비평사, 1982
30)최재우, 「전통탈춤에서 창작탈춤으로」, 『우리문학 1』, 도서출판우리, 1986
31)교회와사회위원회, 『제107회 총회 1차 실행위원회 자료집』, 39~40쪽,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청주제일교회, 2023.5.12
32)교회와사회위원회, 『제107회 총회 1차 실행위원회 자료집』, 37~38쪽,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청주제일교회, 2023.5.12
33)민극협 편집부, 「제20회 전국민족극한마당 돌아보기」, 김태호·육봉숙·우종필, 『제20회 전국민족극한마당 백서』, 17쪽, 사단법인 한국민족극운동협회, 2007.11.13
34)[구술] 연출가 손재오(현재 한국민족극협회 이사장) 증언(2023년 5월 30일)
35)정희섭, 「탈춤인가? 가면극인가?」, 민족미학연구소·한국민족미학회 2022 가을 학술대회, 『한국탈춤의 생성미학적 접근』, 83쪽, 부산대학교 인덕관, 2022.9.22
36)「수주탈춤 예수전」의 1부작 '가나안 골목과 거리예배굿'은 박형규 목사가 당대의 문화운동가들과 노래극 '공장의 불빛', 마당굿 '금관의 예수', '진오귀굿' 등을 함께 만들어 즐기며 저항한 스토리를 재현 창작한 것이다. 참고로, '수주'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서울 제일교회 박형규 목사의 아호이다. 박목사는 1970~80년대 독재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는 중에 장기간(6년 8개월) 거리에서 예배드린 것으로 전세계 교계에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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