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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폭력은 회복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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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폭력은 회복할 방법이 없다"

[인권의 바람] 쌍용자동차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삶을 봐야 할 때

넘쳐나는 말과 사건 속에서 인권의 가치를 벼리기 위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들의 고민을 <프레시안>에 연재합니다. 우리의 말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여는 싹이 되고, 인권 감수성을 돋우는 생각의 밭이 되기를 바랍니다.

연일 윤석열 정부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에 대한 공권력 투입 보도를 접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마음이 무겁다.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투입된 경찰특공대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은 2018년부터 진행된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에서 국가폭력 사례로서 조사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책임자 처벌도, 회복을 위한 대책도 없이 속절없이 잊히고 있다.

11년 해고복직 투쟁을 한 노동자들에게 복직이란

2009년, 쌍용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쫓겨났다. 하청 노동자들의 계약 해지를 시작으로 정규직 노동자의 무급휴직, 희망퇴직, 정리해고에 징계해고까지. 다양한 형태로 적어도 3000여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2020년 초, 남은 복직 대기자가 모두 현장 배치가 되기까지 파악된 것만 30명이 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 사망했다. 동료의 죽음을 안고 여전히 복직을 위해 싸우는 이들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동료의 얼굴들을 떠올리고, 마지막 자신과 연락했던 순간을 복기해야만 했다.

이 고통스러운 순간을 안고 싸우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복직은 어떤 의미일까.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 당시 경찰 헬기에 매달린 컨테이너에서 쏟아지던 경찰특공대와, 그 안에 끌려 들어가 허리가 부러지게 맞았던 기억, 도망치다 건물에서 떨어졌던 동료들, 테이저건과 최루액에 맞았거나 맞고 괴로워하던 순간까지. 해고 노동자뿐만 아니라 공장 밖에서 헬기 모래바람과 욕설에 노출된 아내와 자녀들까지도, 고통스러운 국가폭력을 몸에 새기고 살았다.

경기경찰청은 2009년 발표한 '쌍용자동차 사태 백서'에서 경찰관들이 자발적으로 기사와 게시물에 댓글 등으로 여론 대응하여 큰 효과를 보았다고 밝혔다. 이로 인한 잘못된 여론은 내내 쌍용자동차 기사를 따라다니며 댓글로 해고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괴롭혔다. 그 당시 경찰과 회사로부터 청구된 손해배상 소송은 원금을 훨씬 뛰어넘어 현재 약 120억에 가까운 배상액으로 해고 노동자들의 삶을 여전히 옥죄고 있다.

해고 이후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기 두려워했다. 해고가 이들의 삶에서 앗아간 것은 국가에 대한 믿음이었고, 믿었던 지역과 동료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었다. 그런데도, 해고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2009년 이후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누구도 바로잡지 않은 국가폭력이 잘못되었음을 밝히기 위하여, 복직을 마음먹었다.

해고노동자들에게 복직은 2009년 이후 경험했던 폭력과 배제가 '우리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해고 노동자들은 자주 "회사를 하루만 다니더라도, 복직하고 나오겠다"는 말을 했다. 어떤 이는 해고 이후 일하던 직장을 관두고, 오랜 대기기간을 거쳐서 쌍용자동차에 복직했다. 그러한 간절한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에 많은 시민이 복직한 이들을 축하하고, 함께 기뻐했다.

눈을 감고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

그러나 복직은 복직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아픔의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순차적 복직이 시작되자 복직 노동자들은 자신들 내에서 누가 먼저 들어갈지를 두고 또다시 아픈 의자 놀이를 시작했다. 누구도 원치 않았지만 누군가는 순서의 뒤로 밀려야 했다. 초기 복직자가 복직한 뒤, 원래의 합의와 달리 복직 시기는 기한 없이 늦춰졌다. 복직을 기다리는 이들의 애만 탈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초기 복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복직하지 못한 채 순번을 기다리는 동료들에게 사치스러운 푸념이 될까 싶어 뒤로 밀렸다. 동료들끼리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할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났다.

▲2020년 10년 7개월만에 쌍용차의 마지막 해고노동자 46명의 복직이 이루어진 날. 첫 출근 뒤 공장 안에서 함께 해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이는 쌍용차 노동자들. ⓒ프레시안(최용락)

해고 이전 정비사업소에 고용되어 있던 노동자들은 해고 기간 정비사업소가 모두 외주화됨에 따라 평택 공장으로 복직했다. 이들을 포함하여 '복직'이지만, 해고 이전에 하던 일이 아닌 새로운 일을, 낯선 현장에서 익혀야 했던 이들이 많았다. 해고 기간 죽는 것 빼고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복직 운동을 해왔던 이들이 주간 2교대 근무하며 회사 안에서 빠르게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 섰다. 조립 장비를 쥐고 내내 단순한 업무를 반복하고, 공정에 따라서는 반복적으로 큰 힘을 줘야 하는 일이 많았다. 내내 일어선 채 일하는 노동자의 신체적인 피로도도 높았다. 복직자들은 회사에서도 의무실을 오가고, 퇴근 후 치료를 다니는 경우도 많았다. 퇴근한 노동자들의 팔에는 멍이 시퍼렇게 오르고, 몸에는 파스 냄새가 진동했다. 현장에서는 온종일 라인이 돌아가며 소음이 발생했고, 그 핑계로 이어폰을 낀 채 노래나 영상을 듣는 게 유일하게 그 시간의 고립감과 어색함을 견디는 방법이었다.

복직되고 일에 적응한다고 모두 같은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되지는 못했다. 더욱 괴로운 것은 심리적 문제들이었을 것이다. 2009년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렸던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 당시의 산 자와 복직자로 나뉘었다. 복직 노동자들은 같은 컨베이어벨트에 서 있는 산 자들과 마주했다. 해고 당시 봤던 싸늘했던 시선들, 해고자들을 향해 던져졌던 비난과 욕설들은 여전히 현장을 망령처럼 떠돈다. 10년간 낫기는커녕 곪아버린 상처들도 있었다. 복직이라고는 하지만 경력직 채용으로, 없어진 10년간의 호봉은 산자 혹은 이미 오래전 복직한 이들과 삶의 차이로 다가왔다. 해고 기간이 오래된 이들의 가계 부채와 반비례하게 같이 입사했던 동료 중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이들의 마음에는 박탈감마저 들었다.

물론 해고자들이 복직 이후 이러한 고통이 있으리라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복직이 이를 모두 견뎌낼 만한 문제로 만들 만큼, 강력한 회복의 열쇠가 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국가폭력과 이후의 손해배상 소송, 정신적 트라우마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폭력에 대한 사과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지만, 여전히 진실을 모르는 이들은 그들에 대한 낙인을 버리지 못했다. 복직의 의미가 완전한 회복이 아닌 회복의 기초였음에도, 복직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고통을 사회적 목소리로 내지 못하고 있다. 많은 복직자와 가족들은 눈을 감고 살아내겠다고 마음먹었다.

복직만으로 회복될 리 없는, 국가폭력의 상흔

최근 쌍용자동차 해고자였던 최성국 씨의 소식이 알려졌다. 2014년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부당해고 무효 소송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되면서 사실상 법적으로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복직할 수 있는 길이 닫혔다. 그런데도 여전히 법에 따른 투쟁으로 이기고 싶다는 의지를 밝힌 이들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최성국 씨였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당장의 치료비와 요양비, 가족들의 생계비가 걱정되는 상태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다시 한번 최성국 씨 가족에 대한 후원을 요청했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사례가 유일무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복직 이후 벌써 열 명 가까운 동료들이 각종 질환으로 사망했거나, 치료나 요양이 필요한 상태다. 이 요청은 눈을 감고 견디던 이들이, 더는 눈을 감고 견뎌낼 수 없다 외치는 목소리일 것이다. 최성국 씨와 그 가족의 문제는 견뎌내고 있는 쌍용자동차 복직자 다수의 문제다.

어쩌면 이는 예견된 문제였다. 해고 이후 해고 노동자의 심리적, 신체적 건강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 2018년 고려대 김승섭 교수팀과 인권위, 심리 치유센터 '와락'에서 진행한 해고자-복직자와 가족에 대한 건강 연구에서는 복직 이후 해고자들의 건강이 회복되고 있음을 보였으나, 이조차도 해고 경험이 없는 노동자들에 비해 높은 수준의 심리적, 신체적 건강 문제를 보이고 있었다. 따라서 복직자들의 건강과 안녕에 대한 조치 없이 개인이 눈을 감고 견뎌내는 상황이 이어지는 한, 복직한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의 위험은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

복직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과 복직으로 모두 회복되기 어렵다는 말은 상충하지 않는다. 장기 해고, 특히 해고를 둘러싼 국가폭력과 사회적인 낙인을 경험한 노동자들의 회복을 위해서는 꼭 마주해야 하는 진실이다. 복직해야만 하는 이유가 사회적인 회복이었다면, 여전히 남은 아픔들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다시 한번 사회에 던지고 있다.

우리는 가장 먼저 국가폭력 피해자로서 쌍용자동차 문제를 다시 바라보아야만 한다. 여전히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대법원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쌍용자동차 해고자에 대한 경찰의 손해배상 청구를 철회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그 이후 여전히 멈춰있는 상태다. 현재는 쌍용자동차 복직자들의 회복을 이야기하기는 너무 이르다. 여전히 손해배상 소송은 이들의 삶을 짓누르고, 국가폭력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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