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不穩)'. 온당하지 않다는 뜻으로 사상이나 태도가 기득권 내지는 통치 권력, 고정관념,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격을 가리킬 때 쓰인다. 이러한 성질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으나 우리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불쏘시개가 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프레시안>은 그러한 '불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불온'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이재명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메가 프로젝트'가 뜨겁다. 특히 이곳에 주52시간 예외,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 등 노동규제 특례를 담는 법안이 추진되면서 노동계가 변화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 문제를 사회적 대화로 풀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주목할 점은 민주노총의 변화다. 민주노총은 1999년 2월 사회적 대화 기구인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이후 이곳에 다시 가입한 적이 없다. 그런 민주노총이 먼저 사회적 대화를 언급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사실 사회적 대화 관련한 군불은 지난 4월, 이재명 대통령이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등 민주노총 집행부를 만난 자리에서 시작됐다. 당시 이 대통령은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서 이탈한 배경은 이해한다"면서 지금의 정부는 다를 것임을 약속했다. 현 정부를 믿고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달라는 요구였다. 이재명 정부의 러브콜에 화답한 모양새다.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그간 민주노총 집행부는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사회적 대화 기구에 가입하려 노력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내부 반발이 문제였다. 대의원대회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번 사회적 대화 참여 건도 이전과 비슷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왜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반대정부가 까. 그리고 민주노총 집행부는 왜 이 대화에 애써 참여하려 하는 걸까. 무엇보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 늘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로 끌어들이려 했는데, 굳이 싫다는 단체의 참여를 독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노동체제와 사회적 합의를 연구해 온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를 만나 이 질문을 던졌다. 노 교수는 비판사회학회 회장,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등을 역임했고, '한국의 노동체제와 사회적 합의', '노동체제 변동과 한국 국가의 노동정책' 및 다수의 노동 관련 논문을 썼다.
아래 그와의 일문 일답.
"정부는 노동계를 대등한 관계로 두기 싫어한다"
프레시안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월 10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서 이탈한 배경은 이해한다”면서도 “우리 정부에서는 일방적 결정이나 들러리 역할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을 믿고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달라는 우회적 표현으로 읽힌다.
노중기 : 다양한 함의가 들어있는 표현이라고 본다. 하나씩 이야기해 보자. 민주노총은 1999년 2월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대화 기구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탈퇴 결정을 내린 뒤, 한 번도 그것을 바꾼 적이 없다. 지난 30년 가까이 민주노총 집행부가 이를 바꾸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렇다 보니 이재명 정부에서는 다시 돌아오라고 손짓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이 1999년 탈퇴한 이유는 무엇인가.
노중기 : IMF 때이기에 김대중 정부는 노동계와 노사정 대화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정부는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을, 노동계는 교원노조 합법화와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 실업자 노조 가입, 5인 미만 사업장 고용보험 확대 등을 얻어냈다. 하지만 이후 문제가 발생했다. 이같은 합의를 2월 6일에 했는데, 2월 13일 국회에서 정부의 요구안인 정리해고제와 파견법만 통과시킨 것이다. 그나마 교원노조 합법화는 추후에 통과됐으나 당시 합의했던 이외의 것들은 끝까지 법 통과가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공무원노조의 노동기본권을 인정한다고 했으면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프레시안 : 큰 틀에서 합의했다 해도 디테일로 들어갔을 때는 정부가 칼자루를 쥔 듯하다. 신뢰를 잃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이 들어가지 못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의 그간 행보를 보면 사회적 대화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킨 점이나 산업재해율을 낮춘 점은 매우 주목해서 봐야 한다.
노중기 : 맞는 이야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작년에 6월 취임하고 8월에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개혁적이었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되기 전인 지난 20년 동안 정부 내 보수 관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그런 사회적 의미가 있는 노란봉투법을 이재명 정부는 사회적 대화 없이 국회를 통과 시켰다는 점이다.
프레시안 : 노동계에서도 반대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거 아닌가.
노중기 : 그런 측면도 있지만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사회적 대화로 이것을 풀어갔다면 정부는 노동계의 정치적 지지도 끌어당길 수 있었다. 또한 노동계에 불리한 정책과 맞교환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요즘 진행하는 메가 특구법 같은 것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좋은 장점이 있음에도 정부는 노란봉투법은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나.
노중기 : 노동계를 정부와 대등한 관계로 두기 싫어서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정부의 아래에 있어야 하고 이들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우려하고 견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큰 틀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유럽에서의 사회적 대화는 노동의 정치적 동의를 얻어 경제 운용이든 정치적 운용이든,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하려는 국가의 시도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노동계를 카운터 파트너로 삼는 게 아니라 포섭을 해서 정치적으로 굴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쁘게는 눈가림으로 사회적 대화를 함으로써 저항하기 힘들게 만들어 놓고 다른 일을 추진한다.
"'자본의 요구'를 사회적 대화라는 이름으로, 화장을 해서 밀어붙이는 식"
프레시안 : 너무 냉정하게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민주노총 집행부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회적 대화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노중기 : 말했다시피 민주노총 집행부는 그간 여러 차례 사회적 대화에 들어가려 노력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노동 존중'을 기치로 건 문재인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주 40시간 등 여러 노동 친화 정책을 내놓았다. 들어갈 명분이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노중기 : 초기에는 그런 정책을 펼쳤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식이 됐다. 대표적인 게 최저임금 산입법과 탄력근로제다. 이는 그간의 노동정책을 매우 후퇴하는 정책들이었다. 이런 법들이 통과되는데, 사회적 대화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그럼에도 사회적 대화 기구에 들어가려고 했다.
보수정권에서는 아니었지만, 이전 민주당 정부에서는 늘 그래왔다. 문재인 정부도, 노무현 정부도 계속해서 민주노총을 이 대화 기구에 참여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번번이 민주노총 내부 반발에 부딪혀 들어가지 못했다.
프레시안 : 왜 민주당 정권에서는 민주노총을 끌어들이려고 하나.
노중기 : 사회적 대화라고 하는 게 노동에서 문제가 되는 제도를 개선하는 대신,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내주는 식의 교환이다. 그런데 한국의 사회적 대화는 노동유연화라든가 정리해고 등 정부에서 노동의 후퇴를, 즉 노동자들의 저항이 필연적으로 보이는 정책을 추진하려고 할 때 나온다.
프레시안 :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막무가내로 진행했다가는 노동자들의 저항, 즉 파업이나 총궐기 등이 발생할 수 있을 듯하다.
노중기 : 그렇기에 그 저항을 정치적으로 무마하는 과정으로 사회적 대화가 사용된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계약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등 근로기준법의 기본적인 사항을 건드리는 '노동 5법'을 사회적 합의로 도장 찍어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했다. 민주노총은 빠지고 한국노총과 합의를 했는데, 이마저도 나중에 한국노총은 반대하면서 사회적 대화 기구를 탈퇴했다.
프레시안 : 그때 이 법에 반대하며 민주노총이 총궐기 투쟁을 했고, 그것이 최순길 게이트와 맞물려 촛불시위로까지 이어졌다.
노중기 : 정부가 하고 싶은 '자본의 요구'를 사회적 대화라는 이름으로, 즉 화장을 해서 밀어붙이는 식이다. 물론, 국민의힘 세력들은 민주노총하고는 아예 대화를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나마 김영삼 정부 때나 대화가 진행됐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의 사회적 대화는 ‘민주노총 빼고’였다.
"사회적 대화를 하려면 중앙집권적 산별노조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이야기를 듣고 보면 지금까지 한국에서 진행된 사회적 대화는 어찌 보면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대화가 아닌듯하다.
노중기 : 민주당 정부가 굳이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에 집어 넣으려는 것은 이들이 들어오는 것 자체로 노동운동의 자율성, 파업할 권리, 목소리 낼 자유 등이 제한당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운동에서 계급적 노선을 유지하는 유일한 집단이다.
프레시안 : 유럽의 경우 사회적 대화가 잘 이뤄진다고 들었다.
노중기 : 유럽의 코포라티즘(Corporatism) 연구자들은 사회적 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구조적 조건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노동도, 국가도, 자본도 만족할 만한 사회적 대화를 한 나라는 스웨덴이나 독일, 오스트리아 정도다. 이 나라들을 보면 첫째로 '중앙집권적 산별노조'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우리나라에도 산별노조가 존재하지 않나.
노중기 : 그것과는 다르다. 이들 산별노조는 위에서 결정하면 밑에서는 거부를 못한다. 우리의 경우 금속노조가 결정해도 현대자동차 노조가 자기 멋대로 한다. 그건 중앙집권적 산별노조가 아니다.
프레시안 : 왜 중앙집권적 산별노조가 필요한가.
노중기 : 사회적 합의라는 게 맨 꼭대기들끼리 합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합의한 것을 밑에서 안 지키면 어떻게 하나. 이를 막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올해는 파업을 안 하고 대신 일자리를 받기로 합의했다면 밑에서는 파업을 하면 안 된다. 그런데 밑에서 파업을 한다? 사회적 대화는 깨지게 된다. 반대로 산업안전 관련해서 노조가 현장 체크를 하기로 했는데, 현장 노조가 역량이 안 돼서 이를 실행하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합의는 깨진다.
여기다가 유럽의 노조 조직률은 30~40%나 된다. 그리고 이들이 합의한 내용은 전체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식이다. 일례로 프랑스는 노조 조직률이 7%밖에 되지 않지만 이들이 결정한 노사합의 사항을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도 다 지킨다.
프레시안 : 그것은 왜 그런가.
노중기 : 효력 확장 제도를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철도 노조가 합의안을 만들면, 산별, 즉 전체 철도 노동자에게 다 적용되는 식이다. 그렇기에 프랑스의 노조 조직률이 7%인데, 90% 넘는 노동자들이 단체협약 적용을 받는다.
프레시안 : 한국은 양대노총을 합해서 13% 정도 된다. 이 정도도 꽤 많이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이들이 적용받는 단체협약 등은 비노조원에게는 적용받지 않는다.
노중기 : 산별노조의 영향력이 실제로 미쳐야 한다. 노조는 기업 내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합의가 유효하고, 노조가 그렇게 힘이 있으면 사용자들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1999년 사회적 합의를 했으나 지켜지지 않은 건, 노동운동이 이를 지키게 할 능력이나 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중앙집권적 산별노조 체제다.
"보수 진보 양당 사이에서 힘 발휘할 노동 정당이 필요해"
프레시안 :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노중기 : 보수 진보 양당 사이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좌파 정당, 즉 노동 정당의 존재다. 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민당, 스웨덴의 사회당 등은 노동조합과 깊게 연관돼 있다. 이들 정당은 집권을 꼭 안 해도 된다. 다만 집권에 가까이 갈 정도의 사회적 힘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우리나라로 치면 교섭 정당 정도인가.
노중기 : 그보다는 좀더 힘이 세야 한다. 20명의 의원으로는 아무런 힘을 못 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민주노동당 의원이 10명이었다. 그때는 아무리 해도 무엇을 할 수가 없었다.
프레시안 : 노동 정당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노중기 :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는 대의제 민주주의 사회로 의회가 결정을 한다. 그렇기에 사회적 대표들, 즉 노조 대표와 사용자 대표, 정부 대표가 합의안을 도출해도 정치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조건이 안 되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면 ‘노동자들의 고용보험이 약하니 고용보험 기금을 조성해서 노동자들을 좀 더 안전한 조건에서 일하도록 만들자’라고 사회적 합의를 했다고 하자. 그러면 고용보험 기금, 즉 돈을 만들어 내야 되지 않나. 국가 예산은 국회에서 사인을 해줘야 한다.
프레시안 : 사회적 합의를 했어도 정치권에서 거부하면 도루묵인 듯하다.
노중기 : 법률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래서 유럽의 사회적 합의는, 예를 들면 독일, 스웨덴에서 사회적 합의를 한다고 하면 노사정 대표가 합의를 한 뒤, 독일 기민당, 사민당 대표가 무조건 법률화 한다는 약속이 견고하게 돼 있다.
프레시안 : 힘이 강한 노동 정당이 존재하기 때문인 듯하다.
노중기 : 반면, 우리는 합의를 해도 정부가 끊임없이 핑계 댈 때가 있다. 1999년 사회적 합의가 이를 전형적으로 드러냈다고 본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민주노총이 더는 독자투쟁 노선을 가기가 쉽지 않고, 고립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은 새로운 노동운동의 대안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듯하다.
노중기 : 그런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회적 대화는 항상 국가가 만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즉, 사회적 대화라는 정치의 장을 여는 것 자체가 자본의 노동에 대한 공세의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다. 아주 전략적인 공격이라고 표현하겠다. 그럼에도 노동계 입장에서는 이 장에 안 들어갈 수가 없다. 여론의 압력도 있고, 실제 국가가 무언가를 해주겠다고 하는데 안 들어간다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즉, 키는 저쪽이 쥐고 있고 노동계는 끌려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뜯겨나가는 상황이다.
"사회적 대화, 제도와 룰의 문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프레시안 :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방법이라고 생각하나.
노중기 : 사회적 대화로 노동의 주요 과제를 푸는 방식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까 말했든 우리는 이를 위한 두 가지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다만,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대화를 하더라도, 노동계에 도움이 되면 진행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이를 거부하는 일종의 전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실상 답이 없는 문제인 듯하다.
노중기 : 그렇다고 노동계가 잃기만 한 건 아니다. 정리해고법을 내줬지만 1999년 민주노총이 합법화되었고 2018년 여러 한계가 있었지만 비정규직을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담론을 얻을 수 있었다. 실제로 약 20만 명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 영향으로 민주노총 조직률이 80만에서 120만으로 늘어났다. 또한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는 노력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난 30년 간의 사회적 대화 자체만으로 예스냐 노냐를 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단순히 예스 or 노로 답하기 어렵다. 노동계는 어떤 형태로든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나기도 하고 때론 빼앗길 수도 있지만 사회적 대화라는 이름 위에서 뭔가를 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회적 대화는 한국에서 매우 부정적인 효과가 많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해야 되겠지만 무작정 거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할 수도 있고, 때로는 해야 되기도 한다는 게 제 입장이다.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이 될 듯하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숙의 토론을 통한 표결이 아닌 합의제, 산별 참여를 원칙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기존 경사노위와는 다른 조직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리라고 보는가.
노중기 : 예를 들어보겠다. 문재인 정부가 10년 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던 사회적 대화를 원위치 하겠다며 기존 노사정위원회를 없애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만들었다. 옛날 노무현 때 했던 노사정위원회 대화 방식은 문제가 심각하고 이것으로는 민주노총이 들어올 수 없으니 새로운 판을 짜서 민주노총이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어떤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실질적인 기능이 마비됐다. 이것을 ‘조직 형식의 문제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한국 사회적 대화의 구조적 한계라고 볼 것인가’, ‘민주노총의 잘못된 전략 때문인가’, ‘정부의 잘못된 전략인가’에 대한 답은 학문적으로 진단해야 한다. 그것을 건너 뛰고 민주노총 집행부가 말하듯이 제도와 룰의 문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프레시안 : 결국,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없다면 이번 사회적 대화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노동계에 '계륵'이 되어버린 사회적 대화는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듯하다.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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