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1시,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 한국에 사는 우크라이나인들과 그들의 지인 약 50여 명이 모여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거나 몸에 둘러싸고 있었다. 손톱을 우크라이나 국기 색으로 물들인 사람도 있다. 이들은 다들 "전쟁 멈춰"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한국에서 바리스타로 근무하는 재한 우크라이나인 홀리나(25)씨는 카메라를 들고 우크라이나인들의 모습을 담으러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의 가방에도 우크라이나 국기 색의 배지가 달려있다. 그는 재한우크라이나인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는 시위의 기획자 중 한 명이다.
"사진을 찍어서 재한우크라이나 모임, 우크라이나 대사관, 우크라이나 현지에 전달하려고 해요. 시위에 참여하신 분들이 다들 사진을 찍는데 막상 볼 수 있는 곳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어서 사람들한테 보여주려고요."
홀리나씨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접경 지역 근처에 있는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 주변의 작은 도시에서 왔다. 그의 가족들과 친척들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고 있다. 사이렌이 울리고 폭격이 시작되면 방공호에 숨는 것이 가족들의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르키우에 머무는 그녀의 친구들 사정은 더 나빴다고 전했다.
실제로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11일(현지시각) 하르키우에 있는 정신병원에 폭격을 가했다. 시네후보프 하르키우 주지사는 하루키우가 하루 89번 포격을 당하고, 학교 48곳이 파괴되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홀리나 씨는 한국 정부의 인도주의적 지원에 재한우크라이나인들이 고마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홀리나씨는 "전투기나 군대를 보내 달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라며 "인도주의적 지원이나 경제적 제재에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홀리나씨는 또한 많은 한국인 지인들이 "What can i do?"(우리가 뭐를 할 수 있을까)라고 물어봤다며 그에 대한 본인의 답은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변에 알리고 안부를 물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진행하는 시위는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지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직접 진행하는 시위이기 때문에 발언 대부분은 우크라이나어로 진행된다.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학생회장 김기범(24)씨는 "우크라이나 국가나 우크라이나의 영광과 관련된 노래를 부른다"며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나 '우크라이나는 하나다' '민간인 살상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러시아의 폭격을 멈추려면 비행금지구역 지정이 시급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가장 앞에 배치했다. 집회 기획자 중 한 명인 홀리나씨는 "오늘은 비행금지구역 지정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라며 "전투기와 같은 군사적 지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는 최근에 나토와 미국 등에 자국 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미국은 확전 가능성을 이유로 거절했다.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면 우크라이나 영공에 오는 러시아 전투기를 요격해야 한다.
한국에서 배우 겸 모델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아나스탸사 소코로바(29)씨도 이날 집회에 참여해서 발언에 나섰다.
그는 "대선으로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를 생각해주는 한국 시민들에게 고맙다"라며 "최근에 한 가지 깨달은 점은 선진국이라는 게 자원이나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가 아니라 마음이 넓은 국민들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또 "우리 가족 괜찮을까, 우크라이나 괜찮을까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라며 "대피소에 있는 아이 한 명이 오랫동안 먹지 못하고 수분이 부족해져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어야 할까라고 생각했다"라며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나스탸사 소코로바 씨는 본인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마친 우크라이나인들은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시청역-숭례문 방향으로 행진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너어로 구호를 외치기도, 이따금씩 한국어로 "응원해주세요"나 "함께해주세요" 등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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