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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못해 사람이 죽었는데, 애초 비상구 설치의무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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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못해 사람이 죽었는데, 애초 비상구 설치의무 없었다고?

[아리셀 2심 판결을 말한다] ③ 방치는 참사로 이어진다

끔찍한 이야기지만, 화재는 끼임·추락·부딪힘 같은 다른 산재사고와 다른 특징이 있다. 불이 났다고 곧바로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다. 대피할 수 있으면 산다. 그러려면 '비상구'가 있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비상구는 주 출입구와 다른 방향에 설치되어야 하고,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장 또는 그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 설치해야 한다. 핵심은 그것이 단순한 문이 아니라 "안전한 장소로 대피할 수 있는" 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 사무실에까지 별도 비상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폭발위험이 있는 리튬을 절단하는 작업장이라면 주 출입구 외에 비상구를 두어야 한다(안전보건규칙 제17조 제1항).

아리셀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문제 삼은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3동 1층에서는 위험물질인 리튬을 절단했지만, 화재가 난 3동 2층에서는 위험물질을 직접 취급하지 않았으므로 2층에는 비상구 설치의무가 없다는 주장이다. 안전보건규칙은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뿐 아니라 "그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도 비상구를 설치하라고 정한다. 그런데 피고인들은 조문에 "각 층"이라고 쓰여 있지 않으니, 1층에만 비상구가 있어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항소심 재판부인 수원고등법원 제1형사부는 제1심과 달리 피고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 판단은 여러 점에서 잘못되었다.

▲ 아리셀 화재 당시 모습. ⓒ연합뉴스

첫째, 항소심은 위험의 현실을 지나치게 안이하게 보았다. 항소심은 위험물질 취급층이 아닌 곳은 천장과 벽체 때문에 위험이 확대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실제 화재와 폭발은 법원이 상정한 것처럼 천천히 진행되지 않는다. 아리셀 참사에서도 폭발과 화염은 순식간에 작업장을 덮쳤다. 특히 리튬 1차전지는 열폭주와 연쇄폭발 위험이 크다. 3동 2층도 전해액 주입 직후의 불안정한 전지가 밀집되어 있었고 용접·튜빙 작업이 이루어지던 공간이었다. 단순히 "위험물질 취급층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위험성을 축소할 수 없다.

둘째, 항소심은 형벌법규 해석 원칙을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적용했다. 조문에 "각 층"이라는 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층별 비상구 설치의무를 부정한 것이다. 그러나 형벌규정이라고 해서 모든 경우의 수를 기계적으로 열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 해석으로 의무내용을 예측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안전한 장소로 대피할 수 있는 비상구"라는 문언 자체가 이미 실제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피난체계를 뜻한다. 피난층이 아닌 상층 노동자에게 안전한 장소란 결국 지상이나 직통계단으로 연결되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 이는 확장해석이 아니라 문언과 상식에 따른 해석이다.

셋째, 항소심은 산업안전보건법 해석에 관한 대법원 법리를 사실상 외면했다. 대법원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충돌사건 판결에서 안전보건규칙상 의무는 형식적 준수 여부가 아니라 "예상 가능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안전조치"가 있었는지로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명목상 조치를 취했더라도 실제 재해를 막을 수 없는 수준이라면 안전조치의무 위반이라는 취지다. 그런데 항소심 논리대로라면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5층 건물에서도 1층에만 추가 비상구가 있으면 법 위반이 아니다. 위험이 급속히 확산되면 상층 노동자는 사실상 탈출할 방법이 없는데도 말이다.

넷째, 항소심은 "비상통로"도 지나치게 좁게 보았다. 항소심은 비상통로가 고정된 통로여야 한다며 화재 당시 노동자들의 실제 대피경로를 비상통로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현장의 작업위치와 위험요소는 사업주가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사업주는 어디에서 불이 나더라도 노동자가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지 미리 설계해야 한다. 아리셀 3동 2층은 리튬전지 적재 위치와 작업 동선이 상시적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샌드위치 패널 구조 때문에 특정 방향의 탈출이 차단되어 있었다. 노동자들이 폭발 직후 가장 위험한 장소로 몰린 것은 비상통로 유지의무 위반의 전형적인 결과다.

이번 항소심 판결은 산업현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위험이 크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최소한의 형식적 기준만 지키라는 법이 아니다.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들라는 법이다. 그런데 항소심은 "문언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사업주의 책임범위를 축소했다. 그 결과 위험물질이 있는 층에서 화재가 발생해도 다른 층 노동자는 대피수단 없이 고립될 수 있다는 메시지만 남게 되었다.

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은 거제조선소 판결의 법리에 따라 안전보건규칙을 해석해야 한다.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이라면 각 층별로 실질적으로 안전한 대피수단을 두어야 한다. 비상통로란 말 그대로 비상시에 대피할 수 있는 통로다. 아리셀 공장에서는 화재가 충분히 예상되었음에도 평소 아무런 조치가 없었고, 그 방치가 참사로 이어졌다. 이에 대한 단죄는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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