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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상대 '핵 억제'가 불통이라 'MD'가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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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상대 '핵 억제'가 불통이라 'MD'가 필요하다고?

[정욱식 칼럼] 사라진 논쟁, 멀어지는 평화

2021년 6월 9일 미국 상원군사위원회에선 흥미로운 토론이 벌어졌다. 미사일방어체제(MD)를 주제로 한 이날 청문회에서 미국 정부의 전현직 고위관료들은 미국 주도의 MD는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 및 러시아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자 앵거스 킹 상원의원이 "그럼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날아오는 미사일에 대한 방어 대책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로버트 수퍼 전 국방부 핵·MD 담당 부차관보는 "핵 억제"라고 답했다.

킹은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통하는 핵 억제가 "북한을 상대로는 통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북한의 지도자가 우리를 공격하면 자신의 나라가 지도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알지 않겠느냐"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에 대한 수퍼의 답변이 걸작(?)이다. 북한이 미국을 공격해도 "북한의 지도자는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MD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화를 소개한 이유는 미국이 MD를 추구하면서 얼마나 비합리적인 가정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따져보기 위함에 있다.

이에 앞선 2021년 2월 하순에도 존 하이튼 합참차장이 비슷한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우리의 MD 능력은 현재 중국, 러시아, 이란이 아니라 분명히 북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이튼은 2017년의 사례를 상기시켰다. 2017년에 "김정은이 실제로 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을 사용하려고 했던 가능성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도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나는 이 주장에 도전하고 싶다. 미국의 정보기관을 포함해 대부분의 기관들과 사람들은 북한이 '생존'을 위해 핵무장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유독 MD를 합리화할 때에는 북한을 '자살'도 두려워하지 않는 미치광이로 취급한다. 생각해보라. 북한이 미국이나 동맹국을 향해 핵미사일을 쏜다면 북한은 어떻게 될까?

굳이 북한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미국의 대북 핵 위협은 '팩트'에 해당된다. 이와 관련해 한 언론은 "1950년대부터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반복적으로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해왔고, 계획해왔으며, 위협해왔다"고 지적했다.

이는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의 보도가 아니었다. 미국의 <AP> 통신이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이해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를 분석해 2010년에 보도한 것이다.

그 이후에도 미국의 대북 핵 위협은 증가하면 증가했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북한을 핵 선제공격 대상에 계속 올려두었고 심지어는 1000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해 전술핵 재개발을 비롯한 핵무기 현대화에도 착수했다. 이러한 팩트를 종합해보면, '북한에는 핵 억제가 불통하니 MD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MD를 둘러싼 미국 내 논의를 보면 두 가지 기류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동맹국들과 함께 MD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러시아 및 중국과의 '전략적 안정'을 고려해 이들 나라와 미국 주도의 MD와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는 '핵 억제'가 통하고 북한을 상대로는 '핵 억제'가 통하지 않는다는 가정에 기초해서 말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한반도가 또다시 강대국 정치의 희생양이 될 우려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 매파들의 한반도 '분할 통치(divide and rule)'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주류는 한반도의 북쪽을 MD의 최대 구실로 삼아왔다. 반면 한반도의 남쪽은 MD 포섭의 대상이 되어왔다. MD의 명시적·잠재적 대상국들인 북한, 중국, 러시아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이야말로 미국에게는 최고의 지정학적 이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는 이러한 근본 문제를 둘러싼 토론이라도 활발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보수 정권들이 미국 주도의 MD에 편입되려는 움직임을 비판했었다. 사드 배치 반대나 재검토 주장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논쟁 자체가 거의 사라졌다. 국방력 강화에서 MD는 대표적인 분야가 되었고 여당이 된 민주당도 더 이상 MD의 문제점을 거론하지 않는다.

논쟁마저 사라진 오늘날, 한반도 평화는 멀어지고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주머니는 두둑해지고 있다. 관련해서 졸저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에 쓴 글 일부를 인용해본다.

"중국 고사에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창과 방패'를 의미한다. 유래는 이렇다. 초나라의 한 장사꾼이 저잣거리에 창과 방패를 갖다 놓고는 "여기 이 방패는 어찌나 견고한지 제아무리 날카로운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습죠"라고 말하고, "여기 이 창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꿰뚫지 못하는 방패가 없습죠"라고 했다.

그러자 한 행인이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거요"라고 묻자, 장사꾼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이 장사꾼은 세계 최대의 무기판매국 미국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으로는 각종 공격용 무기들을 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사일을 막으라고 MD도 팔려고 한다. 우리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행인이 되지 못하면 장사꾼 미국의 영원한 호구가 되고 말 것이다."

※ 필자의 신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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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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