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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야 하는 나로서는 결사반대일세!

[도서정가제와 책의 생태계] 6

2014년 마련된 현행 도서정가제가 올해 11월 20일까지 재검토를 앞두고 있습니다. 도서정가제 변경으로 바뀌는 것은 책 판매 가격만이 아닐 것입니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는 동안 신생출판사, 신간발행종수, 독립서점이 늘어났습니다. 도서정가제는 책을 기획하고, 작성하고, 제작하고, 유통하고, 독해하고, 논의하는 ‘책의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도서정가제 개정이 촉발한 사회적 논의에 책의 생태계에 속해 있는 출판사노동자, 책방운영자, 작가들도 고민을 보태고자 합니다.

도서정가제와 책의 생태계 연재 바로가기

나는 시인, 소설가 등의 잡다한 약력을 갖고 있지만 최근 십여 년 동안에는 독후감을 줄기차게 써내는 서평가로 더 많은 ‘활약’을 했다. 여기서 활약이라는 말은 별 게 아니다. 독자들의 신뢰를 받거나 저술가들의 인정을 받는 서평가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 어느 글쓰기보다 독후감을 써서 번 수입이 더 안정적이고 꾸준했다는 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수입으로 내가 오매불망하는 오디오인 마크 레빈슨 앰프나 탄노이 스피커를 사지는 못했다. 그만한 원고료를 받지도 못했을 뿐더러, 서평으로 번 수입의 절반 이상을 책 사는 데 바쳤기 때문이다.

서평은 ‘어느 책’에 관한 것이지만, 어느 한 권만 읽고 쓰여지는 서평은 없다. 서평가는 어느 한 권의 책에 대한 서평을 쓰기 위해 그 주제와 연관된 4~8권 정도의 책을 함께 읽거나 참조한다. 독후감을 써서 번 돈이 이 일에 들어갔다. 그런데 잡지사로부터 ‘이 책에 대해 써 달라’는 맞춤 청탁을 받고 쓰는 경우는 손실이 없지만, 자신이 매번 서평 할 책을 선정해 잡지사에 원고를 넘겨야 하는 경우는 마땅한 책을 고르기 위해 몇 배수의 책을 검토하거나 구입해 읽어야 한다. 독후감을 써서 번 돈이 이 일에 들어갔다. 십여 년 간, 평균 매달 50만원 정도를 책 사는 데 썼다.

한 달의 도서 구입비가 그 정도면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좋은 서평을 욕심내는 사람에게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도서관과 (신간)서점, 그리고 헌책방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집에서 가까운 두 군데의 도서관에 부지런히 신간 구입을 신청하고, 신간 가운데 참조만 하거나 현장에서 일독이 가능한 책은 서점에서 메모를 하며 읽고, 앞으로 서평을 하게 될 주제와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구간은 헌책방에서 미리 사서 쟁여 두었다(예컨대 내년 어느 달에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뉴스를 오늘 봤다면 거기에 맞게 서평을 제출하기 위해 그때부터 교황에 대한 책을 모으고, 어느 해 어느 달에 브라질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면 거기에 맞추기 위해 미리부터 관련 주제의 책을 읽어 두는 식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이,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 집의 장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도서관과 서점, 그리고 헌책방이 다 필요하다.

서두가 길었다. 내가 이 글로 참여하고 있는 ‘도서정가제와 책의 생태계’라는 연재 기획은 2014년 마련된 현행 도서정가제(가격할인제)가 개악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위기 때문에 긴급히 마련되었다. 그런데도 서평가의 도서 구입비 같은 극히 사적으로 보이는 고충을 늘어놓은 데는 이유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에 공표되어 안정적으로 시행중인 현행 도서정가제를 더 낫게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폐기·개악하기로 노선을 바꾸면서 ‘소비자의 권리’를 근거로 들고 있다. 문화부가 폐기·개악을 염두에 둔 재검토를 하게 된 흑막은 청문회와 탐사보도를 필요로 하지만, 여기서는 도서정가제 폐기·개악론자들이 여론전에 이용하고 있는 ‘소비자 후생’의 허점에 대해서만 거론하겠다.

▲2014년 도서정가제 전면 시행 하루 전 서점 모습. ⓒ연합뉴스

도서정가제를 파기하려는 완반모(완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모임)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도서정가제 폐지 국민청원’(2019. 10. 14)에 동의한 20만 명 넘는 서명자들은, 현행 도서정가제가 소비자의 후생에도 역행하고, 시장의 법칙도 위반한 반헌법적 제도라고 외친다. 이들은 ‘내가 소비자’라면서, 현행 도서정가제는 소비자가 시장에 나온 상품을 다양한 가격대에서 다양하게 선택·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 박탈한다고 말한다. 소비자는 어떤 상품이든 가격비교를 통해 보다 저렴한 구매를 할 권리가 있는데, 유독 책만이 ‘문화 공공재’니 ‘상품의 문화적 특성’이라는 허울을 앞세워 소비자의 선택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들은 모두 틀렸다.

시장에 파는 물건이라고 해서 모두 시장의 법칙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수도세·전기세·가스 요금·철도 요금 같은 국민의 경제와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상품들의 가격 인상을 지금도 억제하고 있다. 현재는 흐지부지 됐지만 정부는 오랫동안 이발소·목욕탕·숙박료 같은 서비스업, 라면·자장면·소주·두부와 같은 주요 식품의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행정지도를 했던 역사가 있다. 정부가 쌀값을 통제하지 않았다면 ‘한강의 기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도시민들은 생산비보다 낮게 추곡수매를 해야 하는 농민들의 희생을 자신들의 권리로 알았다. 소비자 후생을 외치는 이들은 그것과 똑같은 일을 도서 시장에서 되풀이하려고 한다.

책도 돈을 받고 파는 상품이고 거기서 생기는 이득도 개인(사장)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데 무슨 ‘문화 공공재’냐고 조소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한 나라의 지식기반과 문화 창달에 책이 기여하는 몫을 십분 이해했기에 책값은 교육비나 의료비처럼 부가세 10%가 면제된다. 이 때문에, 책은 ‘문화 공공재’가 아니라고 외치는 완반모 회원과 ‘도서정가제 폐지 국민청원’에 동의한 20여 만 명의 서명자들도 한 권 씩의 책을 살 때 마다 가만히 앉아서 10%의 원천적인 할인혜택을 누린다. 이들은 한 권씩 책을 살 때마다 솔선해서 10%의 가격을 더 치르는 것으로 언행일치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책을 문화 공공재로 정당하게 대접하는 이런 제도는 일본에도 없는 것으로, 일본 출판계의 숙원 사업이 바로 출판물에 대한 소비세 면세다.

소비자 후생을 앞세워 도서정가제를 폐기·개악하려는 이들은, 2014년 11월 21일부터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부터 책값이 부담되어 더는 책을 살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직간접 할인율을 15%로 제한한 2014년 11월부터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책값이 비싸졌다는 이들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끊을 때 일시적인 금단 증상이 생기는 것처럼, 이들이 도서정가제 이후 책값이 비싸졌다고 체감한 것은 도서정가제 이전의 할인폭과 비교하여 도서정가제 이후의 할인폭이 줄어들어서다. 때문에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책값이 비싸졌다는 이들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지만, 이들이 책값이 비싸졌다고 느꼈던 체감에는 완전히 공감한다. 돈의 감각은 우리 오감에 감겨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들과 정반대 방향에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책값이 싸졌다는 것을 체감했다.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은 출판사의 편집자들이며, 간혹 작가들을 만난다. 내가 즐겨하는 약속장소는 광화문의 대형서점(교보문고·영풍문고,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반디앤루니스)인데, 사람을 만나러 나선 김에 늘 책을 샀다. 2015년 한 해 동안, 서점에서 사람을 만나 찻집이나 술집으로 자리를 이동해서, 내가 가장 즐겼던 화제는 책값이었다. 예컨대 방금 산 책을 요모조모 살피며 “이 책값은 2만원이네. 도서정가제 이전인 작년에 나왔으면 2만 5천원이었을건데,”, “이 책은 1만 8천원이네. 도서정가제 이전이었으면 2만원을 훌쩍 넘었을 건데.” 대부분 출판사 편집자들이었고, 책을 많이 접하고 구매하는 작가들은 대체로 내 말에 동의했다. 그때 내가 거론했던 서적들을 여기서 호명할 수 있으면 훨씬 실감이 나련만, 그 책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나는 지금 내 장서가 있는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도서정가제 이후 책값이 비싸졌다는 이들이 느낀 체감의 정체는 책값이 오른 게 아니라 할인폭이 줄어든 데에 있다. 도서정가제 직후 책값 자체는 오히려 도서정가제 이전보다 싸지거나 최소한 더 비싸지지 않았다. 이것이 매달 50만원 씩, 십여 년 동안 책을 샀던 나의 체감이다.

소비자 후생을 외치는 이들은 ‘공짜 할인’이 없다는 것은 왜 모를까. 자본주의 시장 법칙을 그렇게 소상하게 알고 있다면서, 도서정가제가 무너지고 할인폭을 더 허용하거나 할인을 자유롭게 하면 정가에 거품이 생기는 것은 왜 모를까. 도서정가제가 무너지고 할인율이 확대되면 출판사는 예상되는 할인율을 미리 정가에 반영하게 된다. 이런 조삼모사는 도서정가제가 폐기·개악될지도 모르는 미구의 일이 아니라, 현재도 벌어지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출판사는 현행 도서정가제 아래서 책값을 매길 때, 15%의 할인을 가격 정책에 반영한 정가를 책정한다. 외형만 15% 할인인 이런 기만은 아무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할인율을 미리부터 정가에 반영하는 이런 기만은 (신간)서점에서 책을 팔고 사는 일회적 행위로 종료되지 않는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이, 서평가나 독서가에게는 서점 뿐 아니라 도서관과 헌책방도 필요하다. 도서정가제가 무너져 출판사들이 자구책 삼아 할인율을 정가에 반영하게 되면, 도서관의 신간 구매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헌책방에서 파는 중고서적의 가격도 오르게 된다. 도서관의 신간 구매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헌책방에서 중고서적을 매입하는 가격은 액면가(정가)의 10%다. 그러니까 헌책방에서는 1만원 짜리 책을 1천원에 사서, 5~6천원에 파는데, 헌책방은 책에 인쇄되어 있는 액면가만 본다. 도서정가제가 무너지면 출판사는 커진 할인폭 만큼 정가를 높이게 되고, 덩달아 중고서적의 가격도 오르게 된다. 독서가와 서평가에게 이 모든 것은 재앙이다.

솔직히 말해, 시인·소설가의 입장에서는 도서정가제가 무너지든 말든 괘의치 않을 수도 있다. 소설가 한강과 시인 박준이 도서정가제를 지지하는 대담을 하고 나서 소비자 후생을 외치는 이들로부터 ‘갬성팔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지만, 베스트셀러 소설가와 시인인 이들이 자기 이익에만 충실하자면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더 낫다. 도서정가제가 무너지면 출판사는 커진 할인폭 만큼 정가를 높이게 되고, 따라서 정가의 10%를 인세로 받는 작가도 이익을 본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경우, 2만원 하던 소설책이 2만 5천원이 되고, 1만원 하던 시집이 1만 2천원이 되었을 때, 늘어난 차액에서 나오는 인세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도서정가제를 지키려고 한다.

소비자 후생을 외치는 이들은 도서정가제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은 싼 가격을 찾아 인터넷을 찾거나, 대형 쇼핑몰의 바겐세일을 이용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들에게 도리어 반문하고 싶다. “그래서 당신 가족·친지와 친구들이 하는 가게가 다 망하거나 실업자가 되고 나니 속이 시원하십니까?” 산불로 이 쪽 산을 다 태워 먹었으니, 저 쪽 산도 다 태워 먹어야 한다는 심보가 아니라면, “당신들은 싼 가격을 찾아 … ”라는 독촉은 자멸의 논리일 뿐이다. 공공의 가치와 영속되어야 할 미래를 소비자의 권리로 축소하는 것은 금을 진흙으로 바꾸는 일이다.

도서정가제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 법제를 3년 단위로 재검토하도록 규정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조항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일몰법’이니 ‘한시법’이니 하는 취급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도서정가제는 3년마다 이 제도를 무너뜨리려는 수상쩍은 세력의 공격을 받는다. 하므로 현행 도서정가제가 안정되는 것은 물론이고, 실상은 ‘가격할인제’에 지나지 않는 현행 도서정가제를 좀 더 완벽한 도서정가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저 조항이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3년마다 가격 제도 논란이 소모적으로 되풀이되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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