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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의 산물 '선거인단 제도'가 트럼프를 살린다?

[2020 美 대선읽기] 트럼프, 또 표 적게 얻고도 대통령 되나?

"이번 선거가 향후 수십년을 좌우할 것이다."

대선을 10여일 앞두고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 유세에 뛰어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뿐 아니라 미국 정치와 사회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대다수의 전문가들(정치인, 학자, 언론인 등)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10월 28일,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11월 3일)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전 다수의 전문가와 언론인들의 예상을 뒤집고 당선이 됐습니다. 때문에 이번 선거를 앞두고 누구도 승자를 쉽게 예측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100년 만에 발생한 팬데믹 상황은 결과를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합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번 '선거 불복' 가능성을 직접 말했습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선거 당일 밤 승리를 선언할 수 있을 정도로 압승하지 못할 경우, 선거 결과를 둘러싼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극우세력을 향해 "물러나서 대기하라"고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불투명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느 때와 너무 다른 2020년 선거를 만든 '현실'입니다. 트럼프 정부 4년을 정치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11월 3일 미국인들의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미국 대선 전까지 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을 3편으로 나눠서 게재할 계획입니다. 두번째 글입니다.

(첫번째 글 바로 가기 : 바이든이 승리한다고 해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남는다)

트럼프의 코로나19 확진이 '옥토버 서프라이즈'?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0년 대통령 선거 레이스에서 줄곧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에 뒤쳐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4월부터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은 바이든 후보에 비해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트럼프 측에선 선거 막판인 10월에 대선 판도를 뒤집을 '옥토버 서프라이즈'를 준비 중이라는 얘기를 암암리에 언론을 통해 흘렸다.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 게이트' 같은 '폭탄'을 또 준비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트럼프 측에선 바이든의 둘째 아들 헌터 바이든 관련 의혹을 '옥토버 서프라이즈'로 기대하고 있었다.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던 주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오래 전부터 헌터가 우크라이나, 중국 등에서 일하던 때의 뒤를 캤다. 이 과정에서 '부작용'이 일어나 지난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하원에서 트럼프가 탄핵 소추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트럼프와 줄리아니는 미련을 못 버리고 헌터가 수리를 맡겼던 노트북에서 나온 이메일과 사진 등을 입수했다며 이 내용을 우호적인 언론을 통해 터뜨렸다. 헌터가 중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으며, 바이든이 이에 일조했다는 것이 주요 의혹이었다. 하지만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인데다 바이든이 개입했다는 증거를 찾기는 난망한 의혹이었다. 친트럼프 성향의 매체인 <뉴욕포스트>에서 이를 보도했지만 별다른 파문이 일지 않았다. <뉴욕포스트>에서도 기자들이 취재와 기사 작성을 거부해 <폭스뉴스>에서 피디로 일하다가 막 이직한 기자가 기사를 썼다. 트럼프는 지난 22일 마지막 TV토론에서 바이든을 향해 대뜸 "러시아에서 돈을 받지 않았냐", "중국에서 돈을 받지 않았냐"고 몰아세웠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는데 실패하면서 또 한번의 거짓말 기록만 늘렸다.

오히려 지난 2일 트럼프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던 일이 10월에 있었던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트럼프가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방역지침을 무시해 퇴원을 강행하고 대규모 유세를 조기에 재개하면서 판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긴 힘들다. 트럼프는 코로나19에 대해 “독감과 같은 것”이라며 항상 위험을 축소시켜서 말했고, 대다수의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말을 믿고 따랐다.

트럼프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여전히 “코로나19에 걸렸던 내가 지금 (유세를 하러) 여기에 온 것을 보라”며 코로나19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주장했고, 바이든은 “이번 선거는 과학과 망상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선거 전까지 이런 구도를 흔들 사건은 발생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누구도 바이든의 승리를 자신있게 얘기하지 못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유권자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6년 대선에서도 트럼프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비해 300만 표나 적게 득표했지만 대통령이 됐다.

선거인단 제도와 승자독식제가 왜곡시키는 '대표성'과 '표의 등가성'

이번 대선에서도 트럼프가 바이든에 비해 더 많이 득표할 가능성은 현 시점에서 3%에 불과하다.(선거 예측 전문사이트 <파이브서티에잇>(538) 예측 모델. 바이든이 유권자들로부터 더 많은 표를 얻을 확률은 97%에 달한다.) 그럼에도 이 예측 모델에 따르면 트럼프가 대선에서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은 12%가 남아 있다. 2016년 선거를 앞둔 시점에 트럼프가 승리할 가능성도 29%에 불과했지만 최종 승자가 됐다.

미국 대선은 일반 유권자들이 참여하는 '대중 투표'(popular vote)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지 않고, 각 주를 대표하는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50개 주마다 선거인(elector)을 선출하는 방법은 다르며, 각 주의 상원의원(2명)과 하원의원(인구에 비례해서 주 별로 다름) 수를 더한 숫자가 각 주의 선거인단 숫자가 된다. 전체 선거인단은 50개주의 선거인단(535명)에 워싱턴D.C.의 3명을 더한 538명이다.

'11월 첫번째 일요일 다음주 화요일'(올해는 11월 3일) 대중투표가 전국적으로 실시되며, 그로부터 약 한달 뒤인 '12월의 두번째 수요일 다음주 월요일'(올해는 12월 14일)에 선거인단 선거가 실시된다. 이때 선거인단은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찍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주에서 한달 전에 있었던 대중투표 결과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를 찍어야 한다. 예를 들어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미시간에서 힐러리에 비해 불과 1만1000표(힐러리 47.0% v. 트럼프 47.3%)를 더 얻었다. 하지만 미시간의 선거인단 16명의 표는 모두 트럼프가 가져간다. 선거인단 득표 계산은 '승자독식제(winner-take-all)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48개주에서 '승자독식제'를 채택하고 있고, 메인주(선거인단 4명)와 네브라스카주(3명)만 구역별로 각 구역의 승자가 표를 획득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이들 주는 선거인단 숫자가 워낙 작아 결과에 큰 영향을 못 미친다.) 최종적으로 전체 선거인단(538명) 중 과반(270명)을 확보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이처럼 간접선거 방식인데다 승자독식제로 득표수를 계산하기 때문에 대중투표에서 더 많은 표를 얻었지만, 선거인단 선거에서 지면서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미국 대통령제 역사상 5번 이런 일이 일어났다(1824년, 1876년, 1888년, 2000년, 2016년).

2000년 대선에선 조지 W. 부시(공화당)와 앨 고어(민주당)이 맞붙었다. 대중투표에서 고어가 50만 표를 더 얻었지만, 선거인단 선거에서 부시가 271표를 확보하면서 승리했다. 두 후보의 승부는 부시 후보의 동생인 잽 부시가 당시 주지사인 플로리다주(선거인단 29명)에서 불과 수백표 차이로 갈렸다. 그런데 플로리다에서 사용된 투표기의 문제로 개표가 누락되는 등 선거 결과를 둘러싼 의혹이 제기됐고, 고어는 재검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선거가 끝난 뒤 한달 넘게 지나서도 승자가 확정되지 못했고, 플로리다주에서는 부시 지지자들이 선거사무소를 습격해 난동을 부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결국 연방 대법원은 재검표를 불허하는 결정을 내려 부시의 손을 들어줬고, 고어는 패배를 인정했다.

2016년 트럼프(공화당)와 클린턴(민주당)의 선거 결과는 선거인단 제도의 문제를 더 극명히 보여준다. 클린턴은 대중투표에서 300만 표 가까이 더 얻었지만, 트럼프가 주요 경합주에서 근소한 표 차이로 승리하면서 결과를 뒤집었다(트럼프 306 : 클린턴 232). 특히 원래 민주당이 우세하던 '러스트벨트'의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에서 트럼프가 총 7만여 표를 더 얻으면서 46명의 선거인단을 가져갔다. 전국의 300만 표보다 3개주의 7만 표가 더 중요하게 작동한 셈이다.

트럼프가 이번 선거에서도 이긴다는 것은 2016년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란 얘기다. 두 번의 선거 모두에서 실제 유권자의 지지를 적게 받았지만, 일부 지역에서 표를 더 많이 받아서 8년 동안 대통령으로 재임하게 된다.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 원리인 '표의 등가성'과 '대표성'이 모두 왜곡되는 셈이다.

남부지역, 노예를 '5분의 3'으로 계산해 선거인단 숫자 늘려...백인 우월주의의 산물

이런 선거인단 제도는 미국 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선거인단은 1789년 필라델피아 헌법에 포함돼 있다. 미국 건국 과정은 건국 시조들(founding fathers)의 정치적 협상 과정이었으며, 그 협의의 최종 결과물이 바로 '헌법'이다. 미국은 각 주(state)들이 연합한 '연방제 국가'다. (미국은 건국 당시에는 13개주, 현재는 50개의 주로 구성돼 있다.) 영국의 식민지를 경험했던 이들 건국 시조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선택하면서 정치적으로 우려했던 지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권력의 집중. 둘째, 대중주의.

우선 '권력의 집중'은 영국 절대왕정에 대한 경험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연방정부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주정부에 실질적인 권한을 많이 부여하고, 주의 크기와 무관하게 대등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랬다. 상원과 하원, 양원제로 의회가 구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상원은 영토, 인구 규모와 무관하게 각 주별로 2명씩을 선출하는 반면, 하원은 인구에 비례해 의석을 배정했다. 연방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실질적인 행정 권한 보다는 외교적 수반의 의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둘째, 대중주의(포퓰리즘)에 대한 우려는 18세기 당시 미국과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여전히 왕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민주주의를 선택했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 공화정의 정신과 철학에 가까운 형태였다. 건국 시조들의 정치철학은 귀족주의, 엘리티즘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권자의 단순투표로 대통령이 결정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우세했다. 또 18세기에는 지금처럼 후보자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유권자들에게 동등한 권한을 주는 것이 위험하다고 여겨졌다. 따라서 단순다수 득표제가 아닌 선거 방식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또 중요한 지점은 당시에 미국 남부지역에는 노예제가 존재했다. 노예가 있었던 남부와 그렇지 않은 북부 사이에 정치적, 경제적 이해 관계가 크게 갈렸으며, 헌법 제정 당시에 매우 중요한 협상 포인트였다. 당시 노예들은 투표권이 없었다.(당시 전체 인구의 13%만이 투표권이 있었다.) 그러나 남부 백인들은 노예 인구까지 합산해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려고 했다. 결국 이 협상 과정에서 남부 주들은 노예 1명을 '5분의 3명'으로 계산해 선거인단 수를 더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하버드 케네디스쿨 알렉산더 키사르 교수는 "선거인단제도는 '5분의 3 절충안'을 도입해 처음부터 남부 주들에 더 많은 정치력을 부여했다"며 "선거인단 제도는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CNN과 인터뷰에서 비판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간접선거 방식인 선거인단제도가 백인 우월주의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CNN 화면 갈무리

미 국민 61%가 선거인단제 폐지에 찬성...그러나 공화당은 포기할 수 없다

ABC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0년 동안, 선거인단제도를 폐지하거나 개혁하기 위한 700개 이상의 제안이 의회에 제출됐다. 하원에서는 1969년 선거인단제도를 폐지하는 법안이 통과됐지만 상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은 선거인단제도 폐지를 주장했다. 워런은 "나는 한표, 한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선거인단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국민의 61%가 선거인단제도 폐지를 찬성한다(지난 9월 갤럽 조사). 하지만 이 제도는 지지하는 정당과 거주하는 주에 따라 이해관계가 명확히 갈린다. 민주당 지지자의 절대 다수가 선거인단제도의 폐지를 찬성하지만 이에 찬성하는 공화당 지지자는 민주당의 4분의 1에 그쳤다. 2000년과 2016년 대선에서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한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가 선거인단제도를 통해 대권을 거머쥐는 과정이 보여주는 것처럼 선거인단제도는 현 시점에서 공화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선거인단제도를 폐지하기 위해선 개헌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화당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개헌선(상원과 하원의 3분의 2 의석)을 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개헌이 아니라 각 주별 선거인단제도에 대한 협약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National popular vote interstate compact). 이 협약은 전국 대중 투표 개별 주의 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전국적으로 대중투표에서 이긴 후보에게 선거인단 투표를 하자는 내용으로 현재 16개주(캘리포니아 등 15개주와 워싱턴 DC, 선거인단 192명에 해당)가 서명했다. 하지만 이 협정이 효력을 갖기 위해선 과반(270명)이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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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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