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모두 납세의 의무를 지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조세저항의 두려움에 뒤로 숨지 말고 설득과 합의를 통해 '보편 증세'의 길로 한걸음 더 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경향신문)
지난 2일 문재인 정부의 첫 세법 개정안이 발표된 뒤에 나온 주요 언론사 사설의 일부이다. 색깔이 완전히 다른 두 언론이 한 목소리로 '보편적 증세'를 촉구하고 있다. 보수 언론조차 부자 증세만으로는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본 셈이다. 먼저, 이 논의를 만들어 낸 문재인 정부 세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2017년 세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이번에 발표된 세법 개정안의 주요 목적은 '소득 재분배와 좋은 일자리의 창출'이다. 지난 대선 때 약속했던 공약의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에도 초점을 두고 있다.
먼저 고소득 개인과 법인에 대한 과세를 강화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연 소득 3억 원, 5억 원(과세표준 기준)을 초과하는 고소득자에 대해 소득세율을 각각 40%, 42%로 각각 2%포인트씩 인상했다. 그리고 연 소득 2000억 원을 초과하는 대기업에 대해서도 현행 22%에서 25%로 법인세의 세율을 인상했다. 그간 20%의 세율이 적용되던 대주주의 주식 양도소득에 대해 25% 구간을 신설했고, 납부 대상인 대주주의 범위도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또,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처럼 법정 명목세율을 높임과 동시에 그간 대기업들과 고소득자들이 많은 혜택을 보았던 비과세·감면 제도는 축소했다. 대기업의 연구개발(R&D) 세액 공제, 이월결손금 공제 한도, 설비투자 세액공제도 축소되었다. 고배당 기업 주주에 대한 특례 등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특례도 정비되었다.
반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지원 제도는 강화되었다. 저소득 가구를 위한 근로·자녀장려금 지급액을 늘리고 월세 세액공제율을 인상했다. 0~5세 대상의 아동수당(월 10만 원)을 신설하고 중증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비 세액공제를 확대했다. 연소득 7000만 원 이하 근로자가 도서 구입 및 공연 관람에 지출한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확대하여 문화 생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다.
다음으로, 일자리 창출에 대한 지원은 늘어났다. 투자 여부에 관계없이 고용을 늘릴 경우 1인당 일정 금액(700만~1000만 원)을 공제하는 고용증대세제를 신설하고 중소기업의 사회보험료 세액공제를 확대했다. 직전 3년 평균임금 증가율을 넘어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를 늘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기업에 대한 세액 공제액을 7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확대했다. 창업·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창업기업에 대한 추가적인 세액공제를 만들었다. 이런 여러 가지 세제 개편을 통해 정부는 연간 5.5조 원의 추가 세수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2017년 세법 개정안, 어떻게 볼 것인가?
공공 자금인 세금의 역할에 비추어보면 소득재분배와 일자리 창출에 목적을 둔 정부의 세법 개정안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지난 수십 년 간 역대 정부들은 법인세를 줄이고 대기업 및 고소득자에게 편중된 비과세·감면 제도를 실시했다. 그 결과, 조세 제도가 형평하지 않게 운영됐다. 또한 중소기업의 일자리를 창출, 임금 인상, 정규직 전환에 따른 인센티브를 두어 일자리의 질을 높이려 한다는 점에서 목적 자체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번 세법 개정안에 담긴 수단도 적절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① 고소득 개인과 법인에 대한 명목세율 인상
우리나라의 소득의 양극화는 극심하다. 지난 2월 발표된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득 상위 1% 계층의 소득이 국민의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나날이 증가하여 2015년 기준으로 14.2%를 기록해 역대 최고라고 한다. 소득 상위 10%의 소득 비중 역시 매년 높아져 48.5%에 이른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2016년 월 평균 소득은 144만7000원으로 전년 대비 5.6% 감소한데 비해, 소득 상위 20%의 월 평균 소득은 834만8000원으로 전년 대비 21%나 증가했다. 특히 소득 최하위 계층의 소득 감소폭이 가장 크다고 한다. 자산의 양극화는 더 심각하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상위 0.47%가 가계 총 금융자산의 16.3%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의 양극화도 심각하다. 산업은행 발표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인세율은 1993년 이후 9번이나 인하되었다. 특히 1982년~2016년까지 기업의 과세 소득은 125배 늘었으나 법인 세수는 66.7배 오르는 수준에 그쳤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 소득의 비중이 5배 증가하는 동안 법인세 비중은 2.3배 오르는 데 그쳤다는 통계도 있다(<경향신문>, 2017년 7월 27일자, "법인세 깎아준 9년, 대기업 '성장과실'만 챙기고 '국가기여'는 줄어")
이런 상황 속에서 고소득 개인과 법인을 대상으로 명목세율을 인상하면 소득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은 다시 복지를 통해 서민·중산층의 주머니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한 번 더 재분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기 이루어진 2%의 법인세 인하 효과가 투자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에 이루어질 법인세의 인상이 보수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투자 축소를 초래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② 비과세·감면 제도를 통한 서민·중산층 지원
일자리 창출 및 서민·중산층에게 적용되는 세법 개정안은 주로 공제를 늘리고 감면을 확대하는 비과세·감면 제도를 담고 있다. 서민과 중산층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면서 가처분 소득을 늘린다는 점에서 그 의도는 존중할 만하다. 하지만 비과세·감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특히 근로소득자의 절반이 근로소득이 낮아 면세자인 상황에서 비과세·감면 제도로 인해 혜택을 볼 수 있는 저소득 근로자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비과세·감면을 통한 지원은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즉, 소득이 많아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일수록 공제 및 감면제도를 통해 혜택을 받는 소득액이 큰 것이다. 따라서 소득의 재분배 차원에서 간접적으로 형평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특히, 비과세·감면 제도의 효과는 연말에 공제나 환급액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해당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시기와 혜택이 적용되는 시기 간의 불일치가 발생하면서 경제 주체들의 선택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비과세·감면 제도가 많아질수록 조세 제도를 복잡하게 만드는 등 행정상의 문제도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유럽 복지국가들에서는 비과세·감면을 통한 조세 정책보다는 재정 사업을 통해 복지 정책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③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는 공약 이행을 위해 178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계했다. 이 중에서 국세 세입의 확충을 통해서는 77.6조 원을, 특히 세제 개편을 통해서는 11.4조 원을 달성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시민단체들이 지적했듯이 필요한 재원의 크기에 비해 세제 개편을 통해 달성하겠다는 액수가 너무 작다. 보편적 증세를 비롯해 증세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주문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2017년 세법 개정안,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이처럼 이번 세법 개정안은 장점과 단점이 뒤섞여 있다. 고소득자·대기업 과세 강화를 통해 소득 재분배라는 목적을 달성하면서 조세 제도의 형평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비과세·감면 방식을 통한 지원은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공약에 비해 이 정도의 증세는 미약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조세 제도의 형평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조세 제도 자체의 지속 가능성과도 관련이 깊다. 지난 보수 정권을 거치는 동안 납세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상당히 악화되었다. 올해 초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국민 납세 인식 조사에 따르면, '가능하면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고 응답한 비중이 2012년 24.6%에서 2015년 42.7%로 약 두 배나 상승했다.
심지어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서 내고 싶지 않다는 응답의 비중은 6.2%에서 10.2%로 늘어났다. 본인이 납부한 세금과 비교해 정부로부터 받은 혜택의 수준에 대한 응답에서 '낮은 수준'으로 보는 인식이 약 70%였다. 그리고 조세 제도의 형평성에 불만을 가진 응답자의 비율은 82%였다. 이런 응답 내용에 비춰보면, 우리 국민의 세금에 대한 인식은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두 번의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 국민의 세금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악화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높은 지지를 받는 정부라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당장 보편적 증세를 이끌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이번 세법 개정안의 가장 큰 의미는 조세의 형평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개선하고 조세 제도에 대한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의 부를 더 많이 가져가는 측이 세금을 더 부담하고 있음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장차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보편적 증세 논의를 가능케 할 디딤돌의 역할을 할 것이다. 특히,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실 거주자 중심의 부동산 시장 개편 등은 기득권층이 아닌 보통 사람들을 중심에 놓은 국정의 운영이라는 점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여러 정책들의 혜택이 체감되면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조세 제도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보수 언론들조차도 보편적 증세의 필요성과 더불어 조세 정의를 거론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가는 데 필요한 증세 논의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증세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 국민의 촛불 혁명에 기인한 것처럼 세금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개선된다면, 그리고 복지의 혜택이 체감되어 국민의 증세 요구가 공론으로 일어난다면 얼마든지 증세는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증세에 대한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결정하며 나아가기보다는 차근차근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면서 단계적으로 전진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 국민이 느끼고 싶은 것은 이번 정부가 지난 두 차례의 보수 정부들처럼 세금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고, 소중한 공동 자금을 제대로 걷고 쓰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신뢰일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끝내 국민 행복의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갈 것이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이제 실손의료보험 대수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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